폴 그레이엄의 Relentlessly Resourceful
폴 그레이엄의 Relentlessly Resourceful를 읽고 느낀 점을 적어봤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3개의 에세이 중 하나이다.
Relentlessly resourceful이라는 단어는 끊임없는 수완이라고 직역되는데 나는 '가차없이 자원이 많은'이라고 번역한다. PG는 이의 반대는 hapless 인 즉 불운한이라는 뜻인데 수동적(passivity)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는 세상이나 환경에 의해 지배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내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PG는 relentressly resourceful이 미식 축구의 러닝백 포지션과 같다고 한다. 이 포지션은 결단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유연하며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끈질기게(relentlessly) 무언가를 추구해야 하며, 앞에 있는 장애물이 거품 덩어리인지 화강암인지 모르기 때문에 수완을 발휘해야 한다. 이는 새로운 것을 계속 시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There's no reason to believe there is any limit on the amount of newly created wealth consumers can absorb, any more than there is a limit on the number of theorems that can be proven.
ChatGPT : 이 문장은 소비자들이 새롭게 창출된 부를 흡수할 수 있는 양에 한계가 없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즉, 시장과 경제는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새로운 제품, 서비스, 기술 등을 통해 창출되는 부의 양에 제한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수학의 정리들이 증명될 수 있는 숫자에 한계가 없는 것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수학에서 새로운 정리를 발견하고 증명하는 것처럼, 경제에서도 지속적으로 새로운 부가 창출될 수 있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 저자는 혁신과 창의성이 경제 성장의 주요 동력이며, 이러한 성장에는 본질적으로 한계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혁신과 창의성이 있다면 창출될 수 있는 부(Wealth)에는 제한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반면에 이 혁신과 창의성의 수만큼만 창업가가 만들어 질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스타트업은 거의 실패가 확실한 일 같다. 하지만 그 한계를 인정하고 그곳에서부터 거슬러갈 수 있는 방법을 실행해야 한다. 세상의 조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기 때문에 너무 이상한 일(awkwards)이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소멸해 가는 엔트로피의 법칙에서 단 하나의 역행으로 흐름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 누구나 세상의 중력으로부터 나와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중력을 인식하는 사람은 결국 그곳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황무지에 떨어져도 그곳에서 물을 찾고 식량을 찾고 길을 찾을 수 있는 능력. 누구나 실패라고 말하지만 무한한 방법으로 성공으로 이끌어 내고 결국에 찾아내는 방법. 절망과 불운 가운데 희망과 비전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을 '가차없이 자원이 많은'이라고 하지 않을까? 복은 받는 수 만큼 정해진다. 내면에 자원이 많으면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진다.
성공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만드는 것이고 그곳에 도달하는 방법은 끊임 없이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다. (마인크래프트인가...)
마지막으로 내가 너무 어렵게 이야기한것 같아 챗GPT에게 마이크를 넘긴다.
"끈질기게 자원을 찾아내는"은 어떤 도전과제가 있더라도 해결책을 찾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우 결단력 있고 영리한 사람을 묘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