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역경(易經)과 운명(運命)
주 문왕(周文王)은 상(商)나라 주왕(紂王)의 핍박으로 옥에 갇힌 상황에서도 역경(易經)을 완성했습니다. 이 때문에 역경은 '주역(周易)'이라고도 불립니다. 주 문왕은 인간 사회의 법칙과 대자연의 법칙이 상통한다는 깨달음을 바탕으로 역경을 집필했지만, 역경은 탄생 초기부터 신비주의적 색채를 띠고 심지어 점을 치는 도구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거치며 역경은 과연 어떤 운명과 조우했을까요? 대만 사범대학 쩡스창(曾仕強) 교수의 강의는 역경의 진정한 의미와 그 속에 담긴 지혜를 탐구합니다.
1. 주 문왕(周文王)의 비극과 역경(易經)의 탄생
상나라의 주왕은 폭군으로 백성들의 지탄을 받았습니다. 반면 서쪽 제후국의 수장이었던 주 서백(周西伯), 즉 후대의 주 문왕은 덕망이 높아 민심을 얻고 있었습니다. 주왕은 이러한 주 서백을 견제하고자 그를 유리(羑里)에 가두었습니다. 옥에 갇힌 주 서백은 자신의 귀한 인생 경험과 지혜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자신이 언제든 주왕에게 살해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주왕은 심지어 주 서백의 아들을 죽여 그 살점으로 국을 끓여 주 서백에게 먹이는 잔혹한 시험을 감행했습니다. 자신의 아들 고기임을 알면서도 주 서백은 아들을 먹었습니다. 이는 그가 비정해서가 아니라, 대의를 위해 목숨을 부지하고 언젠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습니다. 이 지극한 인고의 시간 속에서 주 서백은 옥중에서 역경을 저술하기 시작했습니다.
복희씨(伏羲氏)의 팔괘(八卦)는 문자가 없는 '무자천서(無字天書)'였지만, 주 문왕은 이 팔괘를 두 개씩 겹쳐 **육십사괘(六十四卦)**로 만들고, 각 괘에 **괘사(卦辭)**를, 각 효(爻)에 **효사(爻辭)**를 붙여 구체적인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옥중에서 저술된 이 경문들은 주왕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때로는 우회적이고 모호한 표현을 사용했으며, '길흉(吉凶)', '회령(悔吝)', '무구(无咎)'와 같은 점복(占卜) 용어들을 포함하여 역경에 신비로운 외투를 입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인위만물지령(人為萬物之靈)", 즉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위대한 사상을 역경에 담아, 인간의 책임과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2. 역경(易經)의 수난: 점술서로의 변질
역경은 주 문왕의 교화(敎化) 의도와 달리, 처음부터 신비주의적 색채를 띠게 된 '불행'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역경을 보존시킨 '행운'이 되기도 했습니다. 진시황(秦始皇)의 분서갱유(焚書坑儒) 때, 많은 서적이 불태워졌지만 역경만은 점을 치는 '실용적인' 책이라는 이유로 화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진시황 이후 한(漢)나라 시대에 이르러 역경은 **'이리(義理)'**와 **'상수(象數)'**라는 두 가지 큰 흐름으로 나뉘었습니다. '이리'는 역경의 철학적, 도덕적 의미를 탐구하는 학문이었고, '상수'는 괘상과 숫자를 통해 길흉을 점치는 기술적인 학문이었습니다. 쩡스창 교수는 역경이 본래 '일음일양지위도'처럼 '합일'의 정신을 강조하는데, 이처럼 역경을 이리와 상수로 분리하고 상수를 미신으로 치부하는 경향을 비판합니다. 심지어 오로지 이리만을 추구했던 한 학자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는데, 이는 이성만 강조하고 감성(情)과 경험(數)을 외면한 극단적인 태도가 가져올 수 있는 비극을 보여줍니다.
안타깝게도 역경은 민간에서 점차 '점술서'의 이미지가 굳어져 갔습니다. '운세를 보고(算命)', '풍수지리(看風水)'를 살피고, '택일(擇日)'을 하거나 심지어 '성명학(姓名學)'에까지 활용되면서, 역경은 그 심오한 철학적 의미보다 신비로운 '술수(術數)'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팔괘(八卦)'를 농담이나 근거 없는 이야기로 치부하는 것은 이러한 역경의 불행한 역사를 반영합니다.
3. 역경(易經)의 진정한 의미: 자천우지(自天佑之)와 인본주의(人本主義)
그렇다면 역경의 진정한 용의(用意)는 무엇일까요? 역경은 결코 맹목적인 운명론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본주의(人本主義)'**에 입각하여 인간의 주체적인 노력과 자기 성찰을 강조합니다.
"자천우지 길 무불리(自天佑之, 吉无不利)": "스스로 하늘을 도우면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는 역경의 가르침은 운명이 외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천리(天理)를 깨닫고 자연의 도리(道理)에 순응하여 노력할 때 하늘도 돕는다는 의미입니다. 즉,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하늘의 이치와 자연의 도리를 깨달았는가,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인간의 주체성 회복: 사찰의 문턱을 밟지 않는 규칙, 한밤중에 비구니를 만나면 재수 없다는 미신 등, 겉으로는 미신처럼 보이는 규칙들도 사실은 안전과 질서 유지를 위한 합리적인 의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역경은 이러한 현상들을 통해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고, 나아가 자신의 처지를 반성하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성찰하도록 이끌고자 합니다.
신(神)이 아닌 스승으로서의 불(佛): 불교의 '불(佛)'은 원래 '깨달은 자', 즉 '교사(敎授)'를 의미합니다. 부처님은 우리가 깨달음을 얻고 수행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따라서 맹목적인 '구신배불(求神拜佛)'은 자신이 해야 할 수양을 게을리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행위일 뿐입니다. 신에게 뇌물을 바치듯 복을 빌면 복이 온다면, 그 신은 '탐관오리(貪官汚吏)'와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점(占)의 올바른 활용: 점은 미래를 예측하여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길흉을 미리 파악하여 '이로운 것은 취하고(趨吉)', '해로운 것은 피하는(避凶)' 지혜를 얻기 위함입니다. 어떤 사람의 운명을 예측했을 때, 그가 '혈광지재(血光之災, 피를 볼 재앙)'를 겪을 것이라고 했다면, 그가 단지 운명을 피하려고 숨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예측을 거부하고 스스로 지극히 조심하며 모든 위험 요소를 피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즉, 점은 인간의 '자율성'을 강조하며, 예측을 통해 스스로를 단련하고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4. 역경(易經)의 세 가지 특성: 모호성, 유연성, 여백
역경이 수천 년간 생명력을 유지하며 동양 사상에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특유의 세 가지 특징 때문입니다.
모호성(模糊性): 역경은 몇 개의 간결한 기호와 상징만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설명을 최소화합니다. 이는 독자에게 무한한 상상의 공간을 제공하며, 어떻게 해석하든 나름의 도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합니다. 이러한 '모호함' 덕분에 역경은 시대를 초월하여 다양한 해석과 통찰을 가능하게 합니다. 쩡스창 교수는 우리가 말을 할 때 모든 것을 명확하게 설명하기보다는 '점입가경(點入佳境)'처럼 핵심을 짚어주고 여운을 남기는 것을 선호하는 중국인의 언어 습관도 역경의 영향이라고 설명합니다.
유연성(靈活性): 역경은 상황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집니다. 주 문왕이 쓴 경문들은 이렇게 해석해도 옳고 저렇게 해석해도 옳습니다. '옳은 것 속에 그른 것이 있고, 그른 것 속에 옳은 것이 있다'는 음양의 이치처럼, 세상에 절대적인 옳고 그름은 없다는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서양인들이 '옳고 그름(right or wrong)'을 명확히 구분하려는 것과 달리, 중국인들은 '성인도 때로는 잘못할 수 있고, 악인도 때로는 선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성단시비(聖斷是非)'의 지혜를 가집니다.
여백(空白性): 중국 회화에서 '여백(空白)'이 중요한 역할을 하듯이, 역경 또한 많은 '여백'을 남겨둡니다. 서양 회화가 캔버스 전체를 채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중국 회화는 빈 공간을 통해 오히려 더 깊은 의미와 무한한 상상력을 전달합니다. 이는 독자들이 각자의 경험과 깨달음에 따라 역경을 해석하고 채워나가도록 존중하는 태도를 반영합니다.
5. 역경(易經)의 운명과 인간의 성장
역경은 그 자체로 고난과 역경(艱難險阻)의 역사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험난한 과정은 역경을 더욱 단단하고 심오하게 만들었듯이, 인간의 삶 또한 고난과 마주할 때 비로소 배우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순탄하게만 살아온 사람은 '먹고 마시고 즐기는(吃喝玩樂)'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죽는 것과 같습니다. 더 많은 시련을 겪을수록 인간은 더욱 성숙해지고 지혜로워집니다.
역경의 육십사괘는 우주에 존재하는 64가지 '상황(情境)'을 상징하며, 이는 우리 삶의 모든 단면을 반영합니다. 이 괘상을 통해 우리는 삶의 이치를 깨닫고, 스스로를 수양하여 '자천우지'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역경은 단순히 미래를 예측하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을 이해하고 세상을 살아갈 지혜를 얻는 영원한 스승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