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이경(易經)의 지혜: 모든 것의 근원, '인본(人本)' 사상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는 각기 다른 기원과 형상을 가졌지만, 1, 3, 5라는 숫자의 위치와 그들이 상징하는 오행(五行) 및 방위는 놀랍도록 일치합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중화 문화의 핵심을 관통하는 '중(中)' 사상, 그리고 모든 것의 근본이자 중심이 되는 **'인본(人本)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대만 사범대학의 쩡스창(曾仕強) 교수는 역경(易經)의 관점에서 '인본'이 무엇이며,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이 지혜를 이해하고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해 심도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1.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의 공통점과 차이점: 변화 속의 불변
하도와 낙서는 모두 '천수현상(天垂現象)' 즉, 하늘이 드리운 현상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하도는 1부터 10까지의 숫자를 모두 포함하는 반면, 낙서는 1부터 9까지의 숫자만을 가지며 '10'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이 둘은 '1, 3, 5'의 위치를 공유합니다. 이 숫자들은 각각 물(水), 나무(木), 흙(土)을 상징하며, 만물의 근원과 생존의 필수 요소를 나타냅니다.
1(水): 만물의 시작이자 생명의 근원. 과학적으로도 생명체가 물에서 시작되었음이 증명되듯이, 물이 없으면 어떤 생명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3(木): 생명력과 성장의 상징. 햇빛과 물을 통해 자라는 나무처럼, 생기가 있어야 만물이 번성할 수 있습니다.
5(土): 만물의 기반이자 중심. 오행의 중심인 흙은 모든 생명체가 뿌리내리고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며, '중(中)'의 의미를 내포합니다.
이처럼 1, 3, 5의 위치가 변하지 않는 것은, 그것들이 바로 인간 생존의 '근본(根本)'이자 '선천적인 생화작용(先天性生化作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동물들도 본능적으로 물과 나무가 있는 곳을 찾아 살아가듯이, 이들은 지식과 무관하게 모든 생명체에게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인간이 지식을 맹신하여 이러한 본능적 감각과 자연에 대한 경각심을 잃어가는 것을 교수는 경고합니다.
반면, 7과 9, 2, 4, 6, 8과 같은 다른 숫자들은 하도와 낙서에서 위치가 변합니다. 이는 역경이 '변(變)'의 철학임을 보여주며, 고정된 하나의 해석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시대에 따라 유연하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역경이 '명정론(命定論)'이 아닌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개인의 덕(德)을 닦으면 정해진 운명도 바꿀 수 있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2. '중(中)' 사상: 합리적인 삶의 기준
우리 민족은 스스로를 '중국(中國)', '중화 민족(中華民族)', '중화 문화(中華文化)'라고 부르며 모든 것에 '중(中)'이라는 글자를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이 '중'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교수는 '중'이 단순히 중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合理的)'**임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중(中)'의 본질: '중'은 고정된 목표나 기준이 아니라, 상황과 조건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하는 '탄력적인 합리성'을 뜻합니다. 서양 수학과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모든 것을 규격화하고 획일화하려는 현대 사회의 경향을 교수는 비판합니다. 모든 인간은 각자 다른 존재이므로, 획일적인 기준은 비합리적이라는 것입니다.
대동소이(大同小異): 중화 문화의 특성은 '큰 틀에서는 같고 작은 부분에서는 다르다(大同小異)'는 것에 있습니다. 종교의 자유를 예로 들며,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모든 종교는 '선을 행하고 덕을 쌓으라'는 큰 가르침은 같지만, 세부적인 방식과 믿음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중'의 자세라는 것입니다.
법치(法治)보다 덕치(德治)와 이치(理治): 서양 사회가 '법치(法治)'를 강조하는 반면, 중국은 '이치(理治)'와 '덕치(德治)'를 중시합니다. 이는 법치가 모든 것의 기초가 되지만, 그보다 더 높은 경지인 덕치와 이치가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중국인'은 언제 어디서든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하면서도, 결코 이기적인 투기적 기교(投機奇巧)를 부리지 않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이는 '요순(堯舜)' 임금이 '집중(執中)' 즉 '중(中)'을 잘 실천했기에 위대한 성군으로 추앙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3. 합리적(合理的) 기준의 확립: 천리(天理), 인리(人理), 지리(地理)
그렇다면 '합리적'이라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공자도 "공평무사한 것을 합리적이라고 한다(公說公有理, 婆說婆有理)"고 말했듯이, 서로 다른 주장 속에서 합리적인 기준을 찾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교수는 이 기준을 세 가지로 제시합니다.
천리(天理): 하늘의 이치, 즉 자연의 섭리와 법칙에 부합해야 합니다.
인리(人理): 인간의 도리, 즉 사람 간의 도덕과 윤리에 부합해야 합니다.
지리(地理): 땅의 이치, 즉 환경과 조건에 부합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 이치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균형점을 찾는 것이 진정한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사람은 자신을 위해 사는가, 타인을 위해 사는가?'라는 무의미한 논쟁 대신, 음양의 이치처럼 자신을 위하면서도 동시에 타인을 위하는 '합리적인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어떤 결정이든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심사숙고하며 시험적으로 적용해본 후 최종 결정을 내리는 '사환지원(四緩之源)'의 지혜를 가르칩니다.
4. '이일이이(一而二, 二而一)'의 우주관과 '대략여차(大致如此)'의 지혜
서양 철학이 '일원론(一元論)'과 '다원론(多元論)' 사이에서 2천년 넘게 논쟁을 이어온 반면, 동양의 역경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一而二, 二而一)'**라는 독특한 우주관을 제시합니다. 구름 한 점이 두 점으로 나뉘었다가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것처럼, 음과 양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상호 전환합니다. 이 모든 것이 살아있는(活的) 자연의 모습이며, 고정된 죽은 개념이 아님을 역설합니다.
따라서 인간의 능력은 유한하기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언어와 문자 자체가 한계가 있으며, 인간의 인지 능력 또한 제한적입니다. 그러므로 '거의 그러하다(差不多)' 혹은 **'대략 이러하다(大致如此)'**는 표현이야말로 가장 높은 수준의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64괘와 각 괘의 6효(爻)로 나누어 '정황(情境)'을 설명하는 역경의 방식은, 복잡다단한 세상의 모든 상황을 '대략'이나마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5. 이인위본(以人爲本): 모든 학문의 주도자, 인간
역경의 육효(六爻) 구조에서 가장 아래 두 효는 '지리(地理)', 가장 위 두 효는 '천도(天道)'를 나타내며, 가운데 두 효는 **'인도(人道)'**를 상징합니다. '인본(人本) 사상'은 현대 사회에서도 기업 경영의 핵심 철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그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야 합니다.
교수는 가장 높은 '천도'와 가장 깊은 '지리'는 인간의 힘으로 완벽하게 이해하고 바꿀 수 없지만, 그 중간에 있는 네 개의 효(가운데 두 효, 그리고 지리와 천도에 가까운 효들)는 인간의 의지로 변화시키고 주도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인간이 우주 만물의 중심이자 주도자임을 의미합니다.
길흉화복 인인현(吉凶禍福 因人而現): 인간이 존재하기에 길하고 흉하며, 화와 복이 나타납니다.
순역동정 인인명(順逆動靜 因人而明): 인간이 존재하기에 순리적이고 역행하며, 움직이고 고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집니다.
동식광물 인인차(動植礦物 因人而差): 인간이 존재하기에 동식물과 광물이 분류되고 가치가 부여됩니다.
인간이 존재하기에 세상의 모든 학문과 가치가 성립됩니다. 병원의 원장이 인간인 것처럼, 인간은 이 우주에서 주도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본' 사상은 오직 중화 문화의 역경에서 비롯된 독특하고 위대한 지혜입니다. 인간이 만물의 근본이자 주도자로서, '중(中)'의 지혜를 통해 변화 속에서도 불변의 원칙을 지키며 합리적인 삶을 살아갈 것을 역경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