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책을 견디기 힘들 때 이 말을 되뇌보세요. 난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 좋은 사람이야
올해 최고의 책 중 하나로 베키 케네디가 쓴 아이도 부모도 기분좋은 원칙 연결 육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어떤 구절에 영감을 얻어서 포스트 네 개나 올렸을 정도로 말이죠.
그 중에서도 가장 영감이 된 건, 부모로서 '아이에게 고함을 칠 때의 나'와 '아이와 즐겁게 놀아주는 나'가 모두 나라는 사실을 수용할 수 있을 때, 죄책감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으면서 아이와의 유대를 회복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TCI라는 기질 검사에서 자기수용이라는 것이 자신의 한계나 결점조차 내 모습으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내담자에게 설명할 때가 많은데, 아이에게 필요 이상으로 화낸 후에는 저 역시 못난 제 모습을 자기수용하는 게 어려웠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베키 케네디는 '부모로서 난 최악이야'라는 식으로 죄책감과 수치심 가득 찬 자기혼잣말을 하게 되는 것은 추후 자녀와의 관계에서 비슷한 문제가 재발할 가능성을 높인다고 봅니디.
그렇게 하기보다 "두 가지 모두 진실이라는 관점으로 나쁜 감정에 대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잘못된 행동을 한 것은 맞지만, 이제까지 아이가 잘되기를 바라며 이런저런 노력을 실천해 온 부모로서의 정체성 또한 진실이라는 것이죠.
행동과 정체성 둘 다 진실이라고 볼 때 죄책감과 수치심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다고 보는 저자의 관점이 상담자이자 부모인 제게 큰 위로가 되고, 양육과 상담 모두에서 실천적으로도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고 보기 때문에 연결 육아를 올해 최고의 책 중 하나로 꼽게 될 것 같습니다.
양육에서 심리상담으로 주제를 옮겨오면, 부모로서 제가 그러했듯이 두 가지 모두 진실이라는 관점을 내담자가 취할 수 있게 돕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가능할 때라야 비로소 대안적인 행동을 하는 게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상사의 업무 질책에 무능감을 느끼며 자기비판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하는 가상의 내담자가 있다고 할 때, 당신 잘못만은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익할 뿐만 아니라 내담자의 현재 관점과 감정을 무시하는 것일 수 있다는 점에서 해로울 수 있습니다.
그보다는 지금 내담자가 경험하는 어려움의 정황과 감정을 충분히 탐색하여 그런 상황 지각이라면 내담자가 경험하는 것과 같은 감정을 경험하게 되는 게 자연스럽다고 언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에 더해, 상담자는 내담자가 현재 처한 어려움과 자기인식이 내담자의 정체성 그 자체로 치환되지 않을 수 있도록, 내담자 삶의 또 다른 이야기를 충분히 구체적으로(!) 듣고 더 큰 조망에서 현재 사건을 바라볼 수 있게 도올 수 있어야 합니다.
가상의 상담자-내담자 대화를 살펴보겠습니다.
상담자: "상사의 질책을 받을 때 특히 무능하다고 느끼신다고 하셨는데, 그때의 느낌을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어요?"
내담자: "아... 마치 제가 정말 작아지는 것 같고... 머리가 하얘져요"
상담자: "그때의 느낌이 다른 어떤 경험을 떠올리게 하나요?"
내담자: (잠시 생각하다가) "아... 어릴 때 아버지가 성적표 보시면서 질책하시던 때가 생각나네요. 그때도 이렇게 꼼짝 못하고..."
상담자: "아, 그런 연결점이 있었군요. 지금 상사 앞에서의 경험이 어린 시절 아버지 앞에서의 경험과 비슷한 느낌을 주나봐요"
내담자: "네... 지금 생각해보니 비슷해요. 그때도 제가 뭘 해도 안 된다는..."
상담자: "학창 시절에는 성적으로 평가받으셨던 거고, 지금은 업무로 평가받고 계시네요. 그런데 혹시 그 사이에 잘 해내신 일들도 있었을까요?"
내담자: "음... 대학 때는 제가 관심 있는 분야에서는 꽤 성과를 냈었어요. 특히 팀프로젝트할 때는..."
상담자: "아, 그때는 어떠셨나요?"
내담자: "제가 좋아하는 일이었고... 팀원들과 의견을 나누면서 할 때는 더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상담자: "지금과는 좀 다른 모습이었네요. 그럼 현재 업무에서도 그런 순간들이 있나요? 작게라도요"
내담자: "음... 신입 직원 교육할 때는 오히려 제가 편하고 자신감이 있어요"
이런 대화를 통해:
현재의 무능감이 어디서 왔는지 이해하고
과거의 다른 경험들을 발견하며
현재의 긍정적 순간들도 찾아가면서
"난 무능해"라는 단일한 자기개념에서 "평가받는 상황에서는 위축되지만, 협업하고 가르치는 상황에서는 강점을 발휘하는 사람"이라는 더 넓은 자기이해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은 내담자가 처음에 꺼낸 이야기, 특히 내담자가 현재 느끼는 무능감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내담자 정체성의 전부는 아님을 알립니다. 즉, 더 넓은 자기 삶의 맥락 속에 현재 부정적 자기개념과 '배치되지만 양립 가능한 또 다른 진실'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더 유연한 상황 대처를 가능하게 합니다. 무능한 사람이라는 자기개념에 갇히기보다,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는 등 구체적인 변화를 시도할 수 있게 됩니다.
원문 출처: 잔향 심리상담 : 네이버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