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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AI 사무실에서 릴리 딜까지, Chai Discovery의 초고속 성장기

AI로 약을 만든다. 몇 년 전만 해도 공상과학 같은 말이었지만, 지금 실리콘밸리와 빅파마의 돈과 인재는 여기에 몰리고 있습니다. 그 한가운데에 떠오른 이름이 바로 ‘Chai Discovery(차이 디스커버리)’입니다.

2024년 설립, 1년 남짓 된 이 스타트업은 이미 1조 원이 넘는 기업가치, 2억 3천만 달러 규모의 투자, 그리고 제약 공룡 Eli Lilly(일라이 릴리)와의 굵직한 파트너십까지 손에 넣었습니다12. 게다가 회사의 출발점은 다름 아닌 OpenAI의 사무실 안이었죠2.

이 글에서는
Chai Discovery가 어떻게 등장했고,
어떤 기술로 릴리 같은 빅파마를 설득했으며,
AI 의약품 개발 판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스토리 형식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AI 신약 개발, 왜 모두 Chai Discovery를 본다?

신약 개발은 ‘돈 많이 쓰고, 시간 오래 걸리고, 실패는 기본’인 산업입니다. 기존 방식은 수십만 개의 후보 물질을 무작정 시험관에 넣어 보는 식의 고비용·저효율 “하이 스루풋 스크리닝(high-throughput screening)”에 많이 의존해 왔습니다2. 하나의 약이 환자에게 도착하기까지 10년, 수천억 원이 드는 게 업계의 상식이죠.

Chai Discovery가 노린 틈은 바로 여기입니다. 이 회사의 목표는 단순히 “AI로 약을 빨리 찾자”가 아니라, 아예 “분자 설계를 위한 CAD(캐드) 소프트웨어를 생명과학에 가져오자”에 가깝습니다12. 엔지니어가 건물을 지을 때 CAD 툴을 쓰듯, 제약사가 항체나 단백질을 설계할 때 Chai의 소프트웨어를 쓰게 만들겠다는 야심이죠.

특히 Chai-2라는 플랫폼은 항체 설계에 특화된 AI 모델입니다. 회사에 따르면 Chai-2는 실험으로 검증했을 때 두 자릿수(10% 이상)의 히트율을 보여주는 첫 ‘제로샷(zero-shot) 항체 설계’ 플랫폼입니다1. 결과적으로 과거 몇 달 걸리던 탐색 과정을 몇 주 단위로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1.

이 정도 퍼포먼스를 보여주니 실리콘밸리의 대표 VC들은 물론, OpenAI, Thrive Capital, Menlo Ventures, Dimension 같은 이름들이 투자자 리스트에 줄줄이 등장합니다13. 2025년 12월에 마무리된 시리즈 B 라운드에서 회사는 1억 3천만 달러를 추가로 끌어오며 기업가치 13억 달러(약 1조 7천억 원)를 인정받았습니다12.

그리고 이 성장 스토리의 방점을 찍는 이벤트가 바로 Eli Lilly와의 파트너십 발표입니다.

OpenAI 사무실에서 시작된 ‘프로테오믹스 스타트업’ 구상

Chai Discovery의 이야기는 2024년 훨씬 이전, 약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씨앗은 의외로 단순한 문자 메시지였습니다. 보낸 사람은 OpenAI CEO, 샘 올트맨이었죠2.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인 조시 메이어(Josh Meier)는 2018년 OpenAI의 리서치·엔지니어링 팀에서 일했습니다2. 그가 회사를 떠난 뒤, 샘 올트맨은 메이어의 대학 동기이자 당시 스트라이프(Stripe) 엔지니어였던 잭 덴트(Jack Dent)에게 연락을 보냅니다. “프로테오믹스(proteomics) 스타트업을 같이 해보는 건 어떠냐”는 제안이었습니다2.

프로테오믹스는 단백질 전체를 대상으로 구조, 기능,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AI와 결합하면 특정 질병에 맞는 단백질·항체를 설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죠. 하지만 당시 메이어의 판단은 “아직 기술이 부족하다”였습니다. 단백질을 이해하는 AI 모델 자체가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2.

그래서 메이어는 페이스북(현 메타)의 AI 리서치 조직, Meta FAIR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ESM-1이라는, 최초의 트랜스포머 기반 단백질 언어 모델 개발에 참여합니다2. 오늘날 단백질·항체를 다루는 AI의 전 단계에 해당하는 중요한 연구였습니다.

이후 그는 AI 기반 신약 개발 회사 Absci에서 3년간 실전 경험을 쌓습니다2. 단순 알고리즘 연구를 넘어, “이런 모델을 실제로 어떻게 ‘약’으로 연결할 것인가”를 현장에서 익힌 셈입니다.

2024년이 되자, 상황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대형 언어 모델과 생성형 AI 기술이 폭발적으로 발전했고, 단백질·분자 모델도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메이어와 덴트는 “이제 때가 됐다”고 판단하고, 다시 샘 올트먼에게 연락을 넣습니다. “그때 얘기했던 그 프로테오믹스 회사, 이제 진짜 시작하자”는 메시지였습니다2.

OpenAI는 즉각 씨드 투자자로 참여했고, 샌프란시스코 미션 지구에 있는 OpenAI 사무실 일부분을 Chai Discovery 팀에게 내줍니다. 네 명의 공동 창업자(조시 메이어, 잭 덴트, 매튜 맥파를론, 자크 부이트로)가 OpenAI 건물 안에서 사실상 ‘입주 스타트업’ 형태로 회사를 세운 것입니다2.

덴트는 당시를 “OpenAI가 사무 공간까지 내어준 덕분에, 우리는 밖에서 허덕일 필요 없이 기술 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는 취지로 회상합니다2. 이렇게 Chai Discovery는 AI 업계의 심장부에서 태어난, 말 그대로 ‘AI 네이티브’ 바이오테크로 출발합니다.

Chai-2: 항체를 “제로샷”으로 그려내는 분자 CAD

그렇다면 릴리를 비롯한 빅파마가 관심을 보인 Chai Discovery의 핵심 기술, ‘Chai-2’는 무엇일까요?

Chai-2는 크게 두 가지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제로샷 설계”와 “실험에서 통하는 히트율”입니다.

전통적인 신약 탐색은, 마치 벽에 화살을 수천 개 던져 몇 개 맞기를 기다리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후보 항체나 단백질을 수없이 만들어 보고, 그중에서 작동하는 것만 추리는 구조죠. AI가 도와준다고 해도, 학습 데이터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물질을 중심으로 추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Chai-2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갑니다. “제로샷”이라는 표현은, 알려진 유사 사례가 많지 않은 타깃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새로운 항체 서열을 생성하고, 그중 상당 부분이 실제 실험에서 효과를 보인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회사 측은 Chai-2가 실험 기준으로 두 자릿수(10% 이상)의 히트율을 보여주며, 생성된 분자들도 ‘약으로 쓰기 적합한(drug-like)’ 특성을 갖도록 설계된다고 설명합니다1.

이 말은 곧,
예전에는 수개월 돌려야 나왔을 결과를
몇 주 단위로 당겨올 수 있고1,
동시에 ‘실험실에서 바로 써볼 수 있는’ 후보를 대량 생성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Chai Discovery는 이런 모델을 단순 API가 아니라, 제약사 연구원들이 실제로 “분자를 설계·수정·평가”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묶음, 즉 “분자용 CAD 툴” 형태로 제공하려고 합니다12. 연구자가 구조를 입력하면 AI가 후보 항체를 그려주고, 실험 결과를 다시 피드백해 모델을 고도화하는 식의 폐루프 워크플로우를 만들겠다는 그림입니다.

또 하나의 차별점은 모델의 출처입니다. 공동 창업자 잭 덴트는 “우리 코드베이스의 모든 한 줄은 집에서 만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2. 공개된 대형 언어 모델을 그대로 가져다가 파인튜닝하는 방식이 아니라, 단백질·분자라는 특수 도메인에 맞춘 전용 아키텍처를 처음부터 설계했다는 것이죠. 이 부분은 기술 투자자 관점에서도 큰 매력 포인트입니다. 복제하기 어려운 ‘모델 모트’를 가진 회사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Eli Lilly와의 파트너십: 빅파마가 본 ‘실전 가능성’

2026년 1월, Chai Discovery는 Eli Lilly와의 파트너십을 공식 발표합니다14. 릴리는 당뇨·비만·면역질환 등에서 굵직한 블록버스터 약을 가진 글로벌 제약사로, 최근 몇 년간 AI와 데이터 기반 신약 개발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이번 협업의 핵심은 두 축입니다.

첫째, 릴리가 Chai의 ‘프런티어 AI 플랫폼’을 그대로 도입해 여러 질환 타깃에 대한 신규 생물학적 치료제(항체 등)를 설계하는 데 쓰는 것1. 즉, Chai-2와 그 주변 툴을 릴리의 연구 파이프라인에 붙이는 작업입니다2.

둘째, 릴리 전용 커스텀 모델 개발입니다. Chai는 릴리의 대규모 내부 데이터를 활용해, 릴리의 연구 워크플로우에 최적화된 “전용 AI 모델”을 따로 학습시키기로 했습니다1. 이 모델은 다른 고객사에서는 쓸 수 없는, 릴리 전용 자산이 됩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딜이 그냥 ‘미래를 위한 공동 연구’ 수준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협업 발표 전에 이미 릴리가 Chai의 모델이 설계한 후보들을 직접 평가해 보는 파일럿 과정을 거쳤고1, 그 결과를 보고 본격 파트너십으로 이어졌다는 점이 강조됩니다. 즉, 최소한 내부 실험 수준에서는 “쓸 만하다”는 판단이 나왔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타이밍도 절묘합니다. 이 발표 직후 릴리는 Nvidia와 함께 10억 달러 규모의 AI 신약 개발 연구소를 샌프란시스코에 구축하겠다고 따로 발표합니다2. 데이터, 컴퓨트, 제약 노하우를 한데 모으는 ‘공동 혁신 랩(co-innovation lab)’ 구상입니다. 릴리는 한쪽 손으로는 인프라(엔비디아와의 랩)를, 다른 한쪽 손으로는 애플리케이션 레이어(Chai 같은 AI 플랫폼)를 동시에 챙기고 있는 셈입니다.

릴리의 TuneLab 프로그램(사내 AI·머신러닝 기반 신약 연구 조직)을 이끄는 알리자 애플(Aliza Apple)은 “Chai의 생성 설계 모델과 릴리의 생물학 전문성, 데이터가 만나면 처음부터 더 나은 분자를 설계하는 frontier를 넓힐 수 있을 것”이라는 취지로 말합니다2. Chai를 단순한 실험 도우미가 아니라, ‘초기 설계 단계의 게임 체인저’로 보고 있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투자자들이 보는 Chai: 거품일까, 세대 교체의 신호일까

AI 기반 신약 개발, 이른바 “AI 드러그 디스커버리”에 대해 업계 시선은 갈립니다. 경험 많은 제약사 출신 전문가들 중 일부는 “실제 약 하나 통과시키는 게 얼마나 힘든데, 모델 좀 잘 돌린다고 판이 바뀌겠냐”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2. 알고리즘은 좋아졌어도, 여전히 독성·부작용·임상 디자인 등 현실 세계의 난제가 산더미처럼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본 시장의 반응은 꽤 명확합니다. Chai의 시리즈 B를 공동 리드한 Oak HC/FT의 공동 설립자 애니 라몬트는 “이 세대 안에 ‘컴퓨터 위에서 설계된 신약’이 상식이 될 것”이라고까지 표현합니다15. 그녀는 Chai를 “카테고리를 재구성할 프런티어 모델 회사”로 규정합니다.

Chai의 또 다른 핵심 투자자인 General Catalyst의 엘레나 비보크 역시, 속도와 범위를 모두 강조합니다. 그녀는 “Chai 같은 회사와 빠르게 파트너십을 맺는 바이오파마들이, 가장 먼저 새로운 분자를 임상에 들여보낼 것”이라고 말합니다2. 내부 계산으로는 2026년에 Chai와 본격 협업을 시작하면, 2027년 말에는 첫 ‘first-in-class(세계 최초 기전)’ 신약 후보가 임상 시험에 들어갈 수 있다고 보는 듯합니다2.

흥미로운 포인트는 여기입니다. 투자자들은 “임상과 규제는 여전히 오래 걸리겠지만, 그 앞단(발견·최적화)은 압축할 수 있다”고 봅니다. 즉, 신약 개발의 전체 타임라인은 여전히 길 수 있지만, 후보를 찾고 다듬는 시간을 크게 줄여서, 더 많은 시도를 빠르게 해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기대입니다2.

물론 이 낙관론이 실제 성과로 이어질지는 아직 검증 중입니다. Chai-2가 높은 히트율을 보여 준다고 해도, 결국 사람에게 투여할 수 있는 약으로 완성되는 과정은 또 다른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술과 자본, 그리고 빅파마의 의지가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시사점: Chai Discovery가 여는 AI-바이오의 다음 챕터

Chai Discovery의 이야기를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OpenAI 사무실 작은 구석에서 시작한 아이디어가, 1년 만에 빅파마와의 전략 파트너십과 유니콘급 기업가치로 이어졌다.”

여기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시사점은 몇 가지입니다.

첫째, 진짜 ‘딥테크’ 스타트업은 기술 타이밍을 정확히 맞춘다는 점입니다. 샘 올트먼과의 초기 대화가 있었을 때도 창업은 충분히 가능했지만, 메이어는 “아직 아니다”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페이스북·Absci에서 기술과 도메인을 충분히 쌓은 후에야 회사를 세웠습니다2. 결과적으로 Chai는 “AI 붐 이후”에 등장했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AI와 신약 개발의 결합은 결국 “모델 성능 + 도메인 데이터 + 워크플로우 통합”의 싸움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Chai가 릴리와 협업하며 릴리 전용 모델을 따로 학습시키는 전략은, 단순 SaaS를 넘어 고객사의 내부 데이터와 공정까지 파고드는 형태입니다1. 이는 향후 AI 바이오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어디로 향할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셋째,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연구자·엔지니어·창업자에게는 ‘초기 진입 타이밍’이라는 점입니다. General Catalyst는 “2026년에 파트너십 시작 → 2027년 첫 임상 진입”이라는 로드맵을 공공연히 이야기합니다2. 이는 지금부터 2~3년이, 기술 고도화와 파트너십 구축의 골든타임이 될 수 있다는 시그널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에게는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앞으로 10년 뒤, 우리는 약국에서 처방받는 약의 설명서에 ‘이 약의 초기 설계는 AI가 했습니다’라는 문장을 보게 될까?”

Chai Discovery는 그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며 전력 질주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아직 성공이 보장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AI 신약 개발이라는 거대한 실험의 최전선에 서 있는 플레이어라는 점만큼은 분명합니다.

참고

1Chai Discovery Announces Collaboration with Eli Lilly and Company to Accelerate Biologics Discovery

5Chai Discovery Announces Collaboration with Eli Lilly and Company to Accelerate Biologics Discovery - BioSpace

#AI뉴스#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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