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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고장을 ‘듣는’ 시대, 전기차 화재를 막을 새 기술

전기차 배터리가 갑자기 화재를 일으키기 전에, 미리 “배터리야, 괜찮아?” 하고 물어볼 수 있다면 어떨까요?

MIT 연구진은 실제로 비슷한 일을 해냈습니다. 리튬 이온 배터리가 내는 아주 미세한 소리를 분석해, 언제 고장 나거나 화재 위험에 가까워지는지 미리 감지하는 기술을 개발한 것입니다1.

이 글에서는 리튬 이온 배터리가 왜 위험해질 수 있는지, MIT가 어떻게 ‘배터리의 숨소리’를 해독했는지, 그리고 이 기술이 전기차·에너지 저장시설·스마트폰 안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리튬 이온 배터리는 왜 때때로 폭발할까?

리튬 이온 배터리는 스마트폰, 노트북, 전기차, 에너지 저장 장치까지 현대 전자기기의 심장입니다. 에너지 밀도가 높고 오래 쓰고 빨리 충전되는 대신, 한 가지 큰 약점이 있습니다. 바로 화재와 폭발 위험입니다2.

배터리 내부에는 리튬 이온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도록 유기 용매에 리튬염이 녹아 있는 전해질이 들어 있습니다. 문제는 이 전해질이 가연성(잘 탄다) 이라는 점입니다3.

다음과 같은 상황이 겹치면 일이 크게 꼬입니다.

  • 배터리가 심하게 충격을 받거나 눌렸을 때

  • 설계·제조 불량으로 내부 단락(쇼트)이 생길 때

  • 과충전·과방전으로 전압을 너무 무리하게 쓸 때

  • 고온 환경에 오래 방치될 때

이때 배터리 내부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고, 전해질과 전극이 연쇄적으로 분해되면서 열을 더 만들고, 또 그 열이 새로운 반응을 불러오는 열 폭주(thermal runaway) 라는 악순환이 시작됩니다34.

열 폭주가 시작되면 배터리 안에서는 다음과 같은 일이 동시에 벌어집니다.

  • 내부에서 가스가 빠르게 생성돼 압력이 치솟고

  • 전해질과 주변 소재가 타면서 온도가 수백 도까지 올라가며

  • 결국 ‘펑’ 하고 파열되거나 큰 불길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항공·해운·소방 분야에서는 이미 리튬 이온 배터리를 “새로운 화재 위험원” 으로 보고, 별도의 경보·진압 지침을 마련하고 있을 정도입니다34.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다가 갑자기 문제가 터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연구자들의 오랜 고민은 단 하나였습니다.

“배터리가 폭주하기 전에, 어디선가 보내는 조용한 SOS 신호는 없을까?”


배터리는 이미 말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못 들었을 뿐

리튬 이온 배터리가 충전·방전되고 노화되는 동안,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미세한 물리적 변화가 일어납니다. 전극 소재는 리튬 이온이 들락날락할 때마다 부풀었다 줄었다 하며, 그 과정에서 균열이 생기기도 하고, 가스가 발생하기도 합니다56.

흥미로운 점은, 이런 변화가 전부 아주 작은 소리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초음파에 가까운 미세한 ‘딱’, ‘피식’ 같은 소리들입니다.

이른바 음향 방출(acoustic emission) 이라고 부르는 현상인데, 재료에 미세한 균열이 생길 때나 내부 구조가 갑자기 변할 때 나오는 소리입니다. 건설·재료 분야에서는 오래전부터 구조물 균열 감시에 쓰이던 기법이죠.

MIT 연구팀이 떠올린 질문은 간단했습니다1.

“배터리에서도 이 음향 방출을 잘 기록해서 분석하면,
고장이 시작되는 순간을 잡아낼 수 있지 않을까?”


MIT가 한 일: 전압·전류와 ‘소리’를 동시에 들여다보기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습니다. 배터리가 내는 소리는 너무 약하고, 노이즈가 심하며, 여러 원인이 뒤섞여 있습니다. MIT 연구진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접근을 했습니다1.

먼저, 연구팀은 특수 실험 플랫폼을 만들었습니다. 이 장치는 두 가지를 동시에 수행합니다.

  1. 리튬 이온 배터리를 실제 사용하듯 충전·방전하면서

  2. 그 순간순간 나오는 음향 방출을 초음파 센서로 기록

즉, 한쪽에서는 배터리의 전압·전류·온도 등 전기화학 데이터를 수집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소리 데이터를 모으는 구조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런 전기적 상태일 때, 이런 소리가 난다” 라는 거대한 매핑 데이터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상태의 데이터는 아직 ‘잡음 덩어리’입니다. 연구팀이 한 핵심 작업은 바로 신호 처리와 패턴 분석입니다.

  • 음향 신호를 시간·주파수 영역으로 나눠 분석하고

  • 전압·전류 변화와 동기화해,

  • “어떤 소리 패턴이 어떤 전기화학 이벤트와 함께 나타나는지”를 찾아낸 것입니다1.

그다음 단계는,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단순히 “소리가 났네”로 끝나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 소리가 안전한 현상인지, 위험의 시작인지 알아야 하니까요.

그래서 연구진은 시험이 끝난 배터리를 실제로 분해했습니다. 그리고 전자현미경(SEM) 으로 내부를 들여다보며, 어디에 균열이 생겼는지, 전극과 분리막, 집전체에 어떤 손상이 있는지를 일일이 확인했습니다1.

이 과정을 통해, MIT 팀은 배터리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1. 가스 생성에 의해 나는 소리
    전해질과 전극의 부반응(side reaction)으로 가스가 생기면서 구조가 변하거나, 기포가 터질 때 발생하는 음향 신호입니다.

  2. 전극 균열에서 나는 소리
    충·방전 과정에서 전극이 반복적으로 팽창·수축하며 내부에 미세 균열이 생기거나 확장될 때 나는 소리입니다.

이 두 가지는 배터리 열화와 고장의 주요 메커니즘으로 알려져 왔습니다7. MIT 팀은 드디어 이 메커니즘들이 어떤 ‘소리의 얼굴’을 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매칭해낸 셈입니다1.


“끓기 전 작은 기포”를 보는 것처럼: 화재 전조를 듣다

이 연구의 하이라이트는, 단순히 배터리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수준을 넘어, 화재를 일으키는 열 폭주 전에 나오는 경고음까지 포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MIT 연구팀은 미국 오크 리지 국립 연구소(ORNL)와 협력해, 열 폭주 실험을 진행했습니다1. 배터리를 의도적으로 과부하 상태로 몰아붙여, 실제로 화재 직전까지 가는 상황을 재현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아주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 열 폭주가 시작되기 이전

  • 배터리 내부에서 가스가 빠르게 생성되는 단계가 있으며

  • 이때 특정한 음향 방출 패턴이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입니다1.

즉, 배터리가 불이 나기 전에 “나는 지금 가스를 빠르게 만들고 있어, 곧 위험해질 수 있어”라는 신호를 소리로 내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연구를 이끈 MIT의 마틴 Z. 바잔트 교수는 이 상황을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물이 끓기 전에 바닥에서 올라오는 작은 기포를 보는 것과 같다”1

냄비의 물이 끓기 시작하면 이미 늦습니다. 하지만 아래에서 작은 기포가 올라오는 걸 보면, 곧 끓기 시작하겠다는 걸 누구나 알 수 있죠.

배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보이는 연기나 불꽃이 나오기 훨씬 전에, 내부에서는 이미 가스가 생성되고 구조가 망가지며 위험이 쌓여갑니다. MIT의 기술은 바로 이 “작은 기포 단계” 를 소리로 잡아내는 것입니다.


단순·수동·비파괴: 왜 이 기술이 특히 매력적인가

배터리 상태를 진단하는 방법은 이미 많습니다. 전압·전류 패턴으로 수명을 예측하는 알고리즘, 임피던스 측정, 온도 센서, 심지어 X선·분광 분석까지 다양한 도구가 쓰이고 있습니다56.

하지만 실제 전기차나 대규모 에너지 저장시설에 적용하려면, 몇 가지 현실적인 조건이 중요합니다.

  • 장착이 쉽고 저렴해야 하고

  • 배터리 모듈을 뜯어내지 않아도 되고

  •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어야 합니다

MIT 팀이 제안하는 음향 기반 진단의 큰 장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 완전 비파괴(Nondestructive)
    배터리 표면에 초음파 센서(또는 마이크로폰)를 붙이고, 외부에서 지나가는 소리를 듣기만 하면 됩니다. 내부를 건드릴 필요가 없습니다1.

  2. 완전 수동(Passive)
    센서는 배터리가 원래 하는 일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배터리가 원래 내는 소리만 ‘도청’하는 구조라, 추가적인 자극을 줄 필요가 없습니다.

  3. 구조가 단순한 장치로 구현 가능
    초음파 센서와 신호 처리 회로, 그리고 소리를 해석하는 소프트웨어만 있으면 됩니다. 현재의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에 모듈 형태로 통합하는 것도 충분히 상상 가능합니다1.

  4. 대규모 시스템에 적합
    전기차 한 대에 수백 개의 셀이 들어가고, 그걸 다시 묶은 대규모 저장장치(ESS)는 수천, 수만 개의 셀로 구성됩니다. 모든 셀에 복잡한 센서를 박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모듈 단위로 음향 센서를 달고, 전체적인 ‘소리 패턴’을 보는 건 상대적으로 현실적입니다.

종합하면, 이 기술은 “조용히 옆에서 듣기만 하는 건강검진” 에 가깝습니다. 그것도, 위험이 크게 드러나기 전에 미리 이상 징후를 잡아낼 수 있는 수준까지 나아가고 있습니다.


전기차·ESS·스마트폰까지, 어디에 어떻게 쓰일 수 있을까?

이제 상상력을 조금 더 보태 볼 시간입니다. MIT의 연구가 상용화되고 성숙해지면, 우리 일상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 수 있을까요?

1. 전기차: 주행 중 배터리 상태 ‘실시간 청진’

전기차는 수십 kWh의 에너지가 작은 공간에 빽빽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리콜 사례에서 봤듯이, 특정 배터리 팩의 제조 불량이나 셀 손상은 곧 큰 화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전기차 하부에 장착된 배터리 팩에 음향 센서가 붙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센서들은 주행 중에도 계속해서 배터리 모듈의 소리를 듣습니다.

  • 특정 모듈에서 비정상적인 균열 패턴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리면,

  • BMS가 이를 감지해 “해당 모듈 출력을 줄이고”,

  • 계기판에 “배터리 점검 필요” 경고를 띄우는 식입니다.

더 나아가, 열 폭주 전 가스 생성 신호가 감지된다면, 차량 시스템이 자동으로:

  • 즉시 충·방전을 제한하고

  • 모듈을 전기적으로 분리하고

  • 운전자에게 “안전한 곳에 즉시 정차하라”는 경고를 보내며

  • 원격 서버로 데이터를 전송해 제조사와 정비소가 대비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배터리가 갑자기 불난다”는 느낌이라면, 미래에는 “배터리가 며칠 전부터 계속 기침을 하고 있었고, 그 데이터를 보고 미리 병원(정비소)에 예약했다”는 상황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2. 대규모 에너지 저장시설(ESS): 조기 경보 시스템의 핵심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수백 MWh 규모의 리튬 이온 ESS가 전 세계에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이 중 일부는 이미 대형 화재 사고를 경험했고, 우리나라에서도 ESS 화재는 큰 사회적 이슈였습니다.

ESS의 경우, 한 번 화재가 나면:

  • 진압이 매우 어렵고

  • 주변 설비와 인프라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으며

  • 장시간 전력 공급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48.

음향 센서를 활용한 진단 시스템은 ESS에 특히 유용할 수 있습니다.

  • 모듈 또는 랙 단위에 초음파 센서를 배치하고

  • 정상 운전 시의 소리 패턴을 ‘학습’한 뒤

  • 특정 랙에서 가스 생성 관련 소리가 증가하면,
    해당 랙의 운전을 줄이거나 완전히 차단하고, 현장 인력에게 경보를 보낼 수 있습니다.

현재도 온도·전압·전류 기반 진단이 쓰이고 있지만, 음향 정보는 전통적인 센서보다 더 빨리, 더 직접적으로 구조적 이상을 알려줄 가능성이 있습니다5.

3. 스마트폰·노트북·휴대용 배터리: ‘조용한 폭탄’에서 ‘예측 가능한 위험’으로

휴대용 전자제품이나 보조배터리 화재는 여전히 전 세계에서 꾸준히 발생하고 있고, 항공기나 실내에서 발생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34.

물론, 작은 기기 안에까지 고급 음향 센서를 넣는 건 비용·공간 문제로 당장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응용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 품질 검사 단계
    배터리 제조 공장에서, 출고 전 마지막 테스트로 음향 기반 검사를 추가하는 것입니다. 충·방전 중 이상한 음향 패턴을 보이는 셀은 출고 전부터 걸러낼 수 있습니다. 이는 곧 리콜 비용 절감과 브랜드 신뢰도 상승으로 이어집니다1.

  • 고가·고위험 기기 우선 적용
    항공·군사용 장비, 데이터센터용 UPS, 대형 드론 배터리 같은 분야부터 음향 진단을 적용해, 안전성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MEMS(초소형 센서) 기술이 더 싸지고 작아지면,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에도 이런 청진기가 들어갈 날이 올 수 있습니다.


정리하며: 배터리 안전, 이제는 ‘눈’이 아니라 ‘귀’로도 본다

리튬 이온 배터리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전기차와 에너지 전환의 핵심 기술로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동시에, 항공·해운·도시 안전 측면에서 “관리해야 할 위험” 이기도 합니다34.

지금까지 우리는 주로 전압, 전류, 온도, 외형 같은 ‘눈으로 보는 정보’ 에 의존해 배터리 상태를 추정해 왔습니다. MIT 연구는 여기에 새로운 감각을 추가합니다.

바로 “배터리의 소리를 듣는 귀” 입니다.

이 기술의 의미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 리튬 이온 배터리는 충·방전·노화 과정에서 미세한 음향 신호를 낸다.

  2. MIT 연구팀은 이 소리를 전압·전류 데이터, 전자현미경 분석과 연결해,

    • 가스 생성

    • 전극 균열
      두 가지 주요 열화·고장 메커니즘을 소리로 구분해냈다1.

  3. 특히 열 폭주로 화재가 나기 전에, 가스 생성 단계에서 나오는 특정 음향 패턴이 경고 신호 역할을 할 수 있음이 확인됐다1.

  4. 이 방식은 수동·비파괴·상대적으로 단순한 장치로 구현 가능해, 전기차·ESS·품질 관리 등 다양한 분야에 실용적으로 적용될 여지가 크다.

개인적으로, 배터리 안전 기술의 트렌드는 앞으로 두 축으로 갈 것 같습니다.

  • 더 안전한 배터리 설계
    비가연성 전해질, 고체 전해질, 온도 민감 전해질 등으로 아예 열 폭주를 덜 일으키는 배터리 만들기53.

  • 더 똑똑한 상태 감시·예측 기술
    음향, 임피던스, 변형(스트레인), 온도, 전기 신호 등 다양한 센서를 결합해, 배터리를 실제로 사용하는 동안 디지털 트윈처럼 실시간으로 상태를 추적하는 방향5.

MIT의 “배터리 고장을 듣는” 연구는 이 중 두 번째 축에서 아주 중요한 퍼즐 한 조각을 채운 셈입니다.

전기차를 타는 우리 입장에서는, 언젠가 차량 설명서에 이런 문장이 등장할지도 모릅니다.

“이 차량에는 배터리 상태를 실시간으로 청취하는 안전 시스템이 탑재되어 있습니다.
이상 징후가 감지되면 자동으로 출력을 제한하고 운전자에게 알려 드립니다.”

그날이 멀지 않아 보입니다.


참고

1Listening to battery failure | MIT Technology Review

2Lithium-ion battery - Wikipedia

3One small change in battery design could reduce fires, researchers say

4Your phone and laptop could be a fire hazard at 35,000 feet - CBS Texas

5High-fidelity hierarchical modeling of lithium-ion batteries: a cross-scale electrochemical-mechanical framework

6A Comprehensive Review of Spectroscopic Techniques for Lithium-Ion Battery Analysis

7Using Digitalization to Reduce Laboratory Testing Time for Lithium-Ion Cells

#AI뉴스#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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