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 뮤직·엔비디아 AI 계약, 음악의 판을 다시 짜다
음악이 “추천 알고리즘”을 넘어, 나와 대화를 주고받는 존재가 된다면 어떨까요? 내 기분을 이해하고, 지금 읽는 책의 분위기까지 반영해 플레이리스트를 짜주는 AI. 이 상상에 가장 먼저 손을 든 곳이 바로 유니버설 뮤직 그룹(UMG)과 엔비디아입니다.
2026년 1월, 세계 최대 음원 카탈로그를 가진 유니버설 뮤직이 AI 최강자 엔비디아와 손을 잡고 새로운 음악 AI 계약을 발표했습니다12. 핵심은 엔비디아의 음악 특화 모델 ‘뮤직 플라밍고(Music Flamingo)’를 활용해 음악 감상, 발견, 창작 방식을 통째로 다시 설계하겠다는 것. 단순한 기술 제휴가 아니라, “AI 슬롭(slop)”이라 불리는 저급 AI 음악과 선을 긋고, ‘책임 있는 AI 음악’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선언에 가깝습니다34.
이 글에서는
뮤직 플라밍고가 어떤 기술인지,
이번 계약이 왜 음악 산업에서 중요한 분기점인지,
아티스트와 팬에게 실제로 어떤 변화가 올지
차근차근 풀어보겠습니다.
유니버설 뮤직×엔비디아, 무엇을 합의했나?
이번 계약의 구조를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유니버설은 세계 최대 음악 카탈로그를 내어주고, 엔비디아는 최첨단 AI 인프라를 제공한다. 목표는 ‘새로운 음악 경험’과 ‘저작권을 존중하는 AI’.”14
유니버설 뮤직은 테일러 스위프트, BTS, 드레이크, 비욘세 등 글로벌 톱 아티스트가 소속된 세계 1위 음반사입니다15. 이들이 가진 수천만 곡 규모의 카탈로그는 그 자체로 음악 산업의 “빅데이터”이죠. 이번 협력으로 이 방대한 데이터가 엔비디아의 AI 모델을 학습·테스트하는 기반이 됩니다.
엔비디아는 그래픽카드를 넘어, 현재 전 세계 AI 데이터센터의 심장 같은 존재입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AI 슈퍼칩, GPU 클러스터, 그리고 대규모 오디오·언어 모델 기술을 유니버설에 제공해,
음악 분석
팬 경험 퍼스널라이제이션
아티스트용 창작 도구
를 함께 설계합니다16.
UMG는 이 파트너십의 방향을 ‘책임 있는 AI’로 못 박고 있습니다.
즉,
아티스트의 동의 없이 곡을 몰래 학습시키지 않고
원저작자를 명확히 밝히며
수익 배분 구조까지 고민하는
“저작권 친화형 AI”를 만들겠다는 거죠146.
흥미로운 포인트는, 이 계약이 유니버설의 첫 AI 거래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앞서 스플라이스(Splice), 스테이블리티 AI(Stability AI), Udio 등과도 창작·라이선스 관련 협업을 진행해 왔고15, 이번 엔비디아 계약은 그 중 가장 규모가 큰 “플랫폼급” 딜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76.
뮤직 플라밍고: 음악을 ‘사람처럼’ 이해하는 AI
엔비디아가 앞세운 무기는 ‘뮤직 플라밍고(Music Flamingo)’라는 대규모 오디오-언어 모델입니다. 이 모델의 목표는 단순합니다. “음악을 사람처럼 이해하는 것”46.
기존의 추천 알고리즘은 대개 플레이 횟수, 스킵률, 장르 태그 같은 숫자와 레이블에 의존했습니다. 반면 뮤직 플라밍고는 실제 음악 신호와 가사를 깊게 파고들어 다음과 같은 요소를 추출합니다46.
곡의 구조: 인트로–벌스–후렴–브리지–클라이맥스 같은 전개
화성 진행: 코드 변화, 장·단조, 전조 포인트
감정의 흐름: 밝음/어두움, 긴장/해소, 에너지의 고저
음색과 사운드 질감: 기타 톤, 드럼 질감, 보컬 스타일
가사의 맥락: 이야기 흐름, 키워드, 분위기
문화적·정서적 레퍼런스: 장르 역사, 유사한 곡과의 연관성
또 하나 눈에 띄는 기술적 특징은, 이 모델이 최대 약 15분 길이의 트랙도 통째로 분석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6. 덕분에 3분짜리 팝송은 물론, 재즈 즉흥 연주나 록 밴드의 긴 라이브 트랙, 클래식 교향곡까지 긴 호흡의 음악도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게 왜 중요할까요?
아티스트 입장에서는, 자신의 곡을 AI에게 “해부”해보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예를 들어
어느 구간에서 청자가 감정적 피크를 느낄지
어떤 코드 진행이 ‘슬픔’으로, 어떤 리듬이 ‘희망’으로 인식되는지
를 정량적으로 살펴볼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다음 곡을 설계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뮤직 플라밍고는 생성 기능까지 갖추고 있어, 아티스트의 아이디어 스케치를 빠르게 사운드로 구현하거나, 특정 감정을 기반으로 코드·멜로디 제안을 내놓는 식의 활용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UMG와 엔비디아는 ‘AI가 완곡을 대신 만드는 툴’보다는 ‘사람이 주도권을 쥔 채, AI를 보조수단으로 활용하는 방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146.
“AI 슬롭”과 결별: 책임 있는 AI 전략의 핵심
요즘 SNS 피드를 보면 AI가 만든 듯한 비슷비슷한 로파이, “누가 들어도 드레이크스러운” 모창 트랙이 넘칩니다. 이런 저급·무단 AI 콘텐츠를 가리켜 업계에서는 “AI 슬롭(AI slop)”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유니버설과 엔비디아는 이번 파트너십을 두고 “AI 슬롭에 대한 해독제”라고까지 표현했습니다476.
이 말은 세 가지 의미를 내포합니다.
첫째, 무단 학습과 저작권 침해에서 벗어나겠다는 선언입니다.
유니버설은 그동안 저작권 없는 AI 학습에 강경하게 대응해왔습니다. 스트리밍 플랫폼에 “AI가 우리 음악을 마음대로 긁어가지 못하게 막아달라”고 요구하고, 무단 AI 학습 스타트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죠68. 그러다 이제는 “우리가 직접 허용한 데이터, 투명한 조건, 명확한 보상 구조 안에서 AI를 쓰겠다”는 쪽으로 전략을 선회한 것입니다.
둘째, ‘퀄리티’와 ‘브랜드’의 문제입니다.
AI가 찍어낸 듯한 저급 음악이 넘쳐나면, 결국 스트리밍 플랫폼 안에서 음악의 가치 자체가 희석됩니다. 유니버설 입장에선, 자사 아티스트의 작품이 이런 슬롭 속에 섞이는 상황을 막을 필요가 있습니다. 엔비디아와의 협업으로 “고품질, 아티스트 참여형, 브랜드가 보증하는 AI 음악”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47.
셋째, 산업 전체의 룰을 선점하겠다는 의지입니다.
AI와 음악 저작권을 둘러싼 법과 규칙은 아직 정립 중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 지배력을 가진 유니버설이 “이렇게 하면 아티스트 권리를 지키면서도 AI를 쓸 수 있다”는 모범 사례를 만드는 건, 향후 규제와 표준을 설계하는 데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16.
결국 이 파트너십은 “AI를 막을 수 없다면, 최소한 제대로 된 방식으로 쓰자는 쪽”에 업계가 기울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음악 발견의 변화: 장르 대신 ‘감정’과 ‘공감대’로 찾는다
이번 계약에서 가장 대중에게 와닿는 변화는 ‘음악을 찾는 방식’일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까지의 스트리밍 추천은 대체로 다음 네 가지 축을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장르
아티스트
인기 차트
사용자의 과거 재생 기록
하지만 유니버설과 엔비디아가 그리고 있는 미래는 조금 다릅니다. 그들은 “감정”과 “문화적 공감대”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음악 탐색 방식을 이야기합니다146.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읽는 미스터리 소설에 어울리는, 약간 불안하지만 완전히 우울하진 않은 음악 틀어줘.”
“90년대 홍콩 느와르 영화 같은 분위기에, 요즘 K-팝 감성 조금 섞어서 들려줘.”
“이별 직후는 지났고, 이제 슬픔에서 좀 벗어나고 싶은데 너무 신나는 건 싫어. 그 사이 어디쯤인 노래.”
뮤직 플라밍고는 곡의 구조와 감정선, 사운드의 질감, 가사의 스토리까지 통합적으로 분석하기 때문에 이런 ‘복합적인 요청’을 이해하고 곡을 추천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46.
또한, AI가 음악의 “문화적 맥락”까지 파악하기 시작하면 다음과 같은 새로운 플레이리스트도 가능해집니다.
특정 사회운동, 시대 분위기, 지역 문화와 연결된 음악
영화/드라마/밈에서 재조명된 곡들을 묶은 컬렉션
특정 아티스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신인들만 모은 큐레이션
UMG 측은 “장르나 단순 재생 데이터가 아니라, 감정과 문화적 공명으로 음악을 발견하는 시대를 열겠다”고 강조합니다16. 이게 성공한다면, 플레이리스트 문화 자체가 ‘알고리즘이 밀어주는 곡’에서 ‘내가 구체적으로 원하는 경험을 설계하는 과정’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아티스트 인큐베이터: AI를 함께 설계하는 실험실
“AI가 음악을 만든다”는 말이 아티스트에게 위협적으로 들리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UMG와 엔비디아는 “AI 도구를 아티스트와 함께 설계하겠다”며 ‘전용 아티스트 인큐베이터(artist incubator)’를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146.
이 인큐베이터에서 할 일은 크게 세 가지로 예상됩니다.
첫째, AI 창작 툴을 공동 설계·테스트.
작곡가, 프로듀서, 보컬리스트 등이 직접 참여해
어떤 기능이 있으면 실제 작업에 도움이 되는지
어디까지는 AI가 해도 되지만, 어디부터는 인간의 영역이어야 하는지
크레딧·저작권·수익 배분은 어떻게 설계해야 공정한지
를 함께 논의합니다.
둘째, “도구의 톤”을 정하는 작업.
같은 AI 생성기라도,
실험적인 전자음악에 특화된 툴
K-팝 보컬 프로덕션을 지원하는 툴
영화·게임용 사운드스케이프에 특화된 툴
등으로 성격을 나눌 수 있습니다. 어떤 톤과 스타일을 우선할지 결정하는 데 아티스트의 의견이 강하게 반영될 것입니다.
셋째, 교육과 가이드라인.
AI 시대의 아티스트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툴 사용법”이 아니라,
AI를 활용해도 ‘자기만의 색’을 유지하는 방법
데이터와 저작권을 지키는 최소한의 노하우
팬과의 관계에서 AI를 어떻게 활용할지 (예: AI 챗봇, 인터랙티브 콘텐츠)
같은 실전적인 가이드입니다. 인큐베이터는 이런 교육 프로그램의 베이스 캠프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아직 구체적인 툴의 모습이나 서비스 출시 일정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미 Udio, Stability AI, Splice 등과의 협업을 통해 실험을 진행해 온 만큼15, 이 인큐베이터는 “UMG가 그동안 여러 파트너사에서 얻은 노하우를 집약하는 허브”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시사점: 음악 산업과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
이번 유니버설–엔비디아 AI 계약은 단순한 기술 뉴스가 아니라, 음악 산업 전체에 몇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첫째, AI는 적인가, 도구인가?
유니버설은 한때 AI를 강하게 경계하며 방어에 집중했지만, 이제는 “우리가 주도권을 쥔 상태에서 AI를 도구로 쓰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68. 이는 앞으로 더 많은 레이블과 아티스트가 고민해야 할 선택지이기도 합니다.
둘째, 저작권과 공정한 보상은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엔비디아는 “아티스트의 작품을 보호하고, 출처를 명시하며, 저작권을 철저히 존중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146. 하지만 실제로 어떤 계약 구조와 수익 분배가 나올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합니다. 분명한 건, AI 시대에도 “누가 어떤 가치를 창출했는지”를 추적하고 보상하는 시스템이 필수라는 점입니다.
셋째, 우리 각자의 음악 경험은 얼마나 달라질까?
사용자 입장에서는 꽤 흥미로운 변화가 예상됩니다.
그냥 “인기 차트”가 아니라, 지금 내 감정·상황에 맞춘 정교한 큐레이션
아티스트가 본인의 작품을 AI와 함께 재해석해 보여주는 새로운 콘텐츠
라이브 쇼, 메타버스 공연, 게임 안에서의 인터랙티브 사운드 같은 새로운 포맷
정리하자면, 이번 계약은 “AI가 음악을 대체한다”는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AI를 잘 길들인 레이블이 아티스트와 팬 모두에게 새로운 가치를 줄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거대한 실험에 가깝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를 지켜보고 싶습니다.
실제로 아티스트에게 얼마나 투명하게 이익이 돌아가는지,
음악이 ‘더 인간적인 경험’이 되느냐, 아니면 ‘더 효율적인 상품’으로만 소비되느냐.
AI는 이미 음악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이제 중요한 건 “누가, 어떤 철학으로 쓰느냐”이고, 이번 유니버설–엔비디아 계약은 그 첫 번째 큰 사례로 역사에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참고
1[News] UNIVERSAL MUSIC GROUP TO TRANSFORM MUSIC EXPERIENCE FOR BILLIONS OF FANS WITH NVIDIA AI (UMG 공식 발표 자료 요약 버전 중 일부 내용은 PRNewswire와 동일한 주제의 보도자료와도 교차 확인됨)
https://www.universalmusic.com/universal-music-group-to-transform-music-experience-for-billions-of-fans-with-nvidia-ai/
2Universal Music Group, the world's leading music company | Home Page - UMG
https://www.universalmusic.com/universal-music-group-to-transform-music-experience-for-billions-of-fans-with-nvidia-ai/
3UNIVERSAL MUSIC GROUP TO TRANSFORM MUSIC EXPERIENCE FOR BILLIONS OF FANS WITH NVIDIA AI | PR Newswire
https://www.prnewswire.com/news-releases/universal-music-group-to-transform-music-experience-for-billions-of-fans-with-nvidia-ai-302653913.html
4Universal and Nvidia Promise New Partnership Is an “Antidote to AI Slop” | Pitchfork
https://pitchfork.com/news/universal-and-nvidia-promise-new-partnership-is-an-antidote-to-ai-slop/
7UMG’s latest major AI partnership arrives via tech giant NVIDIA, with promise of ‘antidote to generic AI slop’ | Music Business Worldwide
https://www.musicbusinessworldwide.com/umgs-latest-major-ai-partnership-arrives-via-tech-giant-nvidia-with-promise-of-antidote-to-generic-ai-slo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