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맛깔나는 대사와 서브텍스트
대사는 왜 이렇게 중요한가
시나리오에서 대사는 인물의 입을 빌린 행동이다. 인물이 어떤 말을 하느냐는 곧 그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지금 무슨 선택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관객이 가장 직접적으로 귀로 듣고 기억하는 요소가 대사다. 구조와 플롯이 이야기를 움직이는 골격이라면, 대사는 관객의 감정을 자극하는 언어적 촉매제다.
AI 시대에도 이 점은 똑같다. AI가 만들어준 줄거리나 캐릭터가 있어도, 마지막에 관객 마음을 훅 파고드는 것은 여전히 문장, 그중에서도 대사다.
대사의 핵심 기능
대사는 보통 세 가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
첫째, 정보 전달이다. 인물, 사건, 세계관에 대한 필수 정보를 관객에게 알려준다. 다만 이 기능만 강조되면 "설명 대사"가 되어 지루해진다.
둘째, 캐릭터 드러내기다. 같은 상황이라도 누군가는 농담으로 넘기고, 누군가는 정면으로 화를 낸다. 말투, 어휘, 길이, 침묵의 패턴까지 모두 캐릭터의 일부다.
셋째, 갈등과 긴장 만들기다. 대사 한 줄은 관계를 한 단계 더 밀어붙이거나, 오해를 심화시키거나, 감정의 폭발을 준비하는 역할을 한다.
AI로 대사를 생성할 때도 이 세 가지 기능을 항상 체크해야 한다. 이 대사가 정보만 나열하는지, 캐릭터를 드러내는지, 갈등을 전진시키는지를 기준으로 필터링하면 완성도가 올라간다.
좋은 대사의 기본 원칙
좋은 대사는 "멋있어 보이는 말"이 아니라 "지금 이 인물이 이 상황에서 실제로 할 법한 말"이다. 기본적으로 다음 기준을 염두에 두면 좋다.
우선 말하는 사람 기준이다. 직업, 나이, 교육 수준, 성격에 따라 어휘와 문장 길이는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의도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말을 시킬 수도 있지만, 그럴 땐 반드시 의도가 있어야 한다.
다음은 듣는 사람 기준이다. 상대와의 관계에 따라 정직해질지, 감출지, 돌려 말할지가 결정된다. 같은 사실이라도 부모에게 말할 때와 동료에게 말할 때의 대사는 완전히 달라야 한다.
상황과 장르도 중요하다. 시간 압박이 심한 장면에서는 짧고 날카로운 대사가, 감정이 휘몰아치는 장면에서는 비문, 중언부언, 말꼬리 흐리기가 오히려 리얼하다. 장르적으로 코미디는 리듬과 타이밍, 스릴러는 정보의 숨김과 미끼가 핵심이다.
마지막으로, 영화적 경제성을 지켜야 한다. 같은 정보를 두세 줄로 말할 수 있다면 한 줄로 압축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대사가 길어질수록 "글 냄새"가 나고, 화면에서 살아 움직이는 힘은 줄어든다.
서브텍스트란 무엇인가
대사는 보이는 텍스트와 보이지 않는 서브텍스트로 구성된다. 텍스트는 인물이 실제로 입 밖으로 꺼낸 말이다. 서브텍스트는 그 말 뒤에 숨어 있는 진짜 생각, 감정, 의도다.
예를 들어 "괜찮아"라는 말의 서브텍스트는 상황에 따라 "진짜로 괜찮다", "전혀 안 괜찮다", "당장 꺼져", "난 더 이상 기대하지 않아" 등 완전히 달라진다. 관객이 재미를 느끼는 지점은 이 서브텍스트를 읽어낼 때 생긴다.
서브텍스트는 대사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표정, 동작, 침묵, 카메라 구도, 음악 등이 모두 서브텍스트를 강화하는 장치다. 시나리오 단계에서 할 일은 "인물의 겉말과 속마음 사이에 간극을 설계하는 것"이다.
서브텍스트가 왜 맛깔을 더하는가
모든 걸 대사로 말해버리면 관객은 생각할 여지를 잃는다. 반대로 아무 것도 제시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서브텍스트는 이 사이의 균형점이다. 말은 적당히 숨기고, 행동과 맥락으로 힌트를 주는 방식이다.
관객이 "저 사람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네?"라고 느끼는 순간, 인물은 입체감을 얻고 장면은 두께가 생긴다. 단순한 정보 교환이 아니라 감정과 해석의 게임이 된다.
AI 시대에는 특히 서브텍스트 설계가 중요하다. LLM은 텍스트 레벨에서는 그럴듯한 대사를 잘 생성하지만, 인물의 실제 욕망과 감정, 둘 사이의 모순까지 고려한 "숨긴 말"은 그대로 두면 평면적이 되기 쉽다. 작가는 AI 결과물 위에 서브텍스트를 입히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서브텍스트를 만드는 기본 전략
먼저 인물의 진짜 욕망을 명확히 정의한다. "지금 이 장면에서 이 인물이 가장 원하는 것 하나"를 적어둔다. 이게 서브텍스트의 핵심이 된다.
그다음 인물이 겉으로는 그 욕망을 숨길 이유를 만든다. 체면, 관계, 위험, 자존심, 업무 규정 등 무엇이든 좋다. 서브텍스트는 "원하지만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을 때 자연스럽게 생긴다.
그 후에 겉으로 나오는 대사와 행동을 설계한다. 말은 다른 주제를 건드리지만, 표정과 타이밍, 어색한 웃음, 화제 전환이 진짜 욕망의 힌트가 되게 한다.
마지막으로 장면의 목표를 잊지 말아야 한다. 서브텍스트는 장면의 감정을 풍부하게 만들되, 이야기를 흐리면 안 된다. 관객이 "무슨 장면인지"는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모호함은 감정에서만 허용하고, 이야기의 방향은 명확하게 유지하는 것이 좋다.
대사를 다듬는 AI 활용 방식
AI에게 처음부터 "완벽한 대사"를 요구하기보다, 초안 생성 도구로 사용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우선 상황, 인물의 목표, 관계, 장면의 감정 톤을 간략히 요약해 입력하고, 여러 버전의 대사를 받아본다.
그다음 사람이 할 일은 세 가지다. 첫째, 캐릭터에 맞지 않는 말투를 제거하고 자신의 캐릭터 프로필에 맞게 통일한다. 둘째, 정보만 나열하는 대사를 줄이고 행동과 감정이 느껴지는 표현으로 바꾼다. 셋째, 가장 중요한 대사 몇 줄에는 의도적인 서브텍스트를 부여한다.
AI에게 "겉으로는 화내지 않으려 하지만, 속으로는 배신감에 타오르는 인물이 하는 대사"처럼 서브텍스트 조건을 함께 제시하면, 처음부터 더 입체적인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최종 조율은 반드시 작가의 역할로 남겨두는 것이 좋다. 관객의 문화적 맥락, 미묘한 뉘앙스, 장기적인 시리즈 톤은 아직 인간의 직관이 훨씬 정확하다.
연습 과제
한 장면을 선택해 인물 두 명의 목표와 서로에게 숨기고 있는 것을 한 줄씩 서술해 본다. 그런 다음 겉으로 드러나는 대사를 6~8줄 정도만 써본다. 이때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직접 쓰지 않는다.
이후 AI에게 같은 설정을 입력해 대사를 생성하게 한 뒤, 자신이 쓴 버전과 비교해본다. 어느 쪽이 더 캐릭터에 맞는지, 어느 쪽이 더 많은 서브텍스트를 품고 있는지를 판단하며 수정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AI는 빠른 초안 생성 도구로, 당신은 서브텍스트와 캐릭터 일관성을 책임지는 감독으로 역할이 분리된다. 이것이 "AI 시나리오 레볼루션"에서 대사와 서브텍스트를 다루는 가장 현실적인 협업 방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