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콘텐츠로 건너뛰기

제4장. 장르의 법칙과 톤 앤 매너

장르를 이해한다는 것의 의미

장르는 관객과 작가 사이의 약속이다.
관객은 공포영화를 선택하면서 어느 정도의 긴장, 놀람, 어둠을 예상하고, 로맨스를 선택하면서 설렘과 감정의 진폭을 기대한다. 이 약속에 맞춰 기대를 적절히 충족시키면서도, 예상 밖의 변주를 주는 것이 장르 작업의 핵심이다.

AI 시대에도 이 원리는 같다.
다만 이제는 관객뿐 아니라 AI에게도 "어떤 기대를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려줘야 한다. 프롬프트에서 장르를 명확히 지정하고, 그 장르가 가진 핵심 요소를 언어로 설명하는 일이 점점 더 중요해진다.

장르는 선택이 아니라 설계다.
내가 어떤 정서, 어떤 체험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지 결정하는 순간, 그에 가장 적합한 장르를 골라 설계해야 한다.

주요 장르의 기본 법칙

각 장르에는 관객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기대하는 필수 요소들이 있다.
이 요소를 완전히 무시하면 "장르를 잘한다"는 평가를 받기 어렵다. 반대로 이 요소들을 과하게 클리셰로만 사용하면 진부해진다. 핵심은 "필수 요소는 지키되, 배치와 조합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로맨스는 관계의 변화가 중심이다.
처음의 거리감에서 시작해, 갈등과 오해, 선택과 회복을 거치며 관계가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줘야 한다. 결말은 해피엔딩이든 씁쓸한 이별이든, 감정적 여정이 완성되었다는 느낌을 줘야 한다.

스릴러와 미스터리는 정보의 통제 싸움이다.
관객보다 인물을 더 많이 알게 할지, 덜 알게 할지를 설계하면서 긴장과 궁금증을 만들고 해소한다. 중요한 단서는 반드시 초반부터 배치하되, 자연스럽게 숨겨서 나중에 "아, 그때 그게 이거였네"라는 깨달음을 주어야 한다.

공포는 안전감의 붕괴를 다룬다.
일상처럼 안전해 보이는 상황에서 서서히 균열이 생기고, 결국 낯선 공포가 침투한다. 공포 자체보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불안"이 핵심이다. 음악, 조명, 공간, 침묵 등 연출 요소까지 포함해 설계해야 한다.

SF와 판타지는 규칙을 가진 상상이다.
세계관은 아무리 기발해도 내부 규칙이 일관되어야 한다. 관객은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이해한 뒤, 그 규칙 안에서 인물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보고 싶어 한다. 마법이든 기술이든, 사용 조건과 한계가 분명해야 한다.

드라마는 장르적 장식이 아니라 인간을 전면에 둔다.
사건 자체보다 인물의 내면, 관계, 성장, 상처가 중심이며, 작은 사건에도 깊은 감정적 의미가 부여된다. 장르적 요란함 대신, 세밀한 감정선과 섬세한 상황 묘사가 중요하다.

장르의 법칙을 깨는 방법

장르는 지키기 전에 이해부터 해야 한다.
법칙을 모른 채 깨면 미숙함이 되고, 이해한 뒤 비틀면 새로운 스타일이 된다. "왜 이 장르에서 이 요소가 반복되는지"를 먼저 분석하라. 그 이유가 보이면, 무엇을 유지하고 무엇을 뒤집을지 선택할 수 있다.

기대는 충족과 배신의 리듬으로 조절한다.
장르가 요구하는 필수 장면과 감정은 어느 정도 충족시키되, 그 타이밍과 방식에서 관습을 어긋나게 하는 식으로 변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로맨스에서 고백 장면은 유지하되, 고백의 대상이나 장소, 혹은 고백 이후의 반응을 예상 밖으로 설계하는 방식이다.

AI에게 장르 파괴를 요구할 때는, "무엇을 일부러 어기려는지"를 명시하는 편이 좋다.
예를 들어 "전형적인 좀비물의 '좀비는 무조건 적'이라는 전제를 깨고, 좀비와 공존을 모색하는 드라마로 써줘"처럼, 기본 법칙과 깨고 싶은 지점을 동시에 언어화하면 AI가 방향을 훨씬 잘 잡는다.

서브장르와 혼합 장르 설계

현대 시나리오는 거의 항상 혼합 장르에 가깝다.
로맨스 스릴러, SF 블랙코미디, 성장 드라마와 판타지의 결합 등, 최소 두 개 이상의 장르가 섞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때 가장 중요한 질문은 "무엇이 1순위인가"다.

주장르와 부장르를 분리해 생각하는 것이 좋다.
관객이 영화 예고편을 보고 "어떤 경험을 기대하는지"를 기준으로 가장 상위 장르를 정한다. 예를 들어 스릴러에 로맨스를 곁들이는지, 로맨스에 스릴러 요소만 곁들이는지에 따라 장면 구성과 감정선의 비중이 크게 달라진다.

혼합 장르에서 충돌하는 법칙을 조정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코미디와 스릴러는 리듬이 정반대에 가깝다.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웃음을 주려면, 웃음이 긴장을 완전히 깨지 않고 오히려 더 낯설게 만들도록 설계해야 한다. 한 장면 안에 두 장르의 톤이 싸우지 않도록, 장면별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유리하다.

톤 앤 매너의 정의

장르가 "무엇을 다루는가"라면, 톤 앤 매너는 "어떻게 들리고 어떻게 느껴지는가"다.
톤은 작품의 전반적인 정서와 온도, 태도다. 냉소적인지, 따뜻한지, 진지한지, 유머러스한지 같은 느낌의 기조를 말한다. 매너는 이 톤을 구현하는 구체적인 표현 방식, 즉 말투, 카메라, 음악, 색감, 편집 리듬 등이다.

같은 장르라도 톤 앤 매너에 따라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된다.
로맨스 코미디와 멜로 드라마는 둘 다 사랑을 다루지만, 대사, 장면 구성, 음악, 색감이 전혀 다르다. 톤 앤 매너는 장르 안에서 당신만의 목소리를 만들어 주는 도구다.

AI에게 시나리오를 맡길 때, 장르만 말하는 것과 톤 앤 매너까지 설명하는 것의 결과는 크게 다르다.
"로맨스 영화 시나리오"와 "현실적인 대사와 담백한 톤, 잔잔한 멜로 드라마 톤의 로맨스"는 완전히 다른 글을 만들어낸다. AI는 말해준 만큼만 이해한다는 전제를 항상 기억해야 한다.

톤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

톤은 한두 문장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인물 말투, 상황의 크기, 유머의 밀도, 폭력이나 감정의 수위, 카메라와 음악의 스타일까지 합쳐져야 비로소 하나의 톤이 된다. 시나리오 단계에서는 특히 대사와 행동 묘사가 톤을 크게 좌우한다.

인물의 말투는 작품의 정서를 대표한다.
모든 인물이 비슷한 말투를 쓰면 톤이 단조로워지고, 핵심 인물의 말투가 작품의 전반적인 정서를 이끌도록 설계하면 통일감이 생긴다. 냉소적인 주인공이 던지는 건조한 한마디가 전체 작품을 차갑게 만들 수 있다.

상황의 크기와 과장 정도도 톤을 규정한다.
말도 안 되는 우연과 과장된 행동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세계관이라면 밝은 코미디 톤이 될 가능성이 크고, 작은 사건도 인물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면 보다 현실적인 드라마 톤에 가깝다.

감정의 표현 수위와 방식도 중요하다.
눈물과 고성이 잦은 작품은 멜로적, 때로는 막장에 가깝게 느껴질 수 있고, 감정을 절제해 묘사하면 차분하고 현실적인 인상을 준다. 같은 이별 장면이라도, 오열하며 매달리는지, 차분히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이 된다.

매너: 표현 방식의 구체화

매너는 "어떤 태도로 서술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기술이다.
시나리오에서는 스테이지 디렉션의 문체, 디테일의 선택, 카메라와 사운드에 대한 지시 방식에서 매너가 드러난다. 예를 들어 "카메라는 천천히 그녀의 떨리는 손을 잡아낸다"와 "그녀의 손은 조금 떨린다"는 같은 사실을 다루지만 분위기는 다르다.

재치 있는 묘사를 쌓으면 코미디 매너에 가까워지고, 건조하고 객관적인 묘사를 쌓으면 다큐멘터리 같은 매너가 된다.
매너는 개별 문장의 취향처럼 보이지만, 계속 반복되면 "이 작품이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를 보여주는 철학이 된다.

AI에게 매너를 전달하려면, 특정 작품을 레퍼런스로 제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영화 A처럼 건조하고 절제된 묘사로" 또는 "드라마 B처럼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대사 톤으로"처럼 구체적인 예시를 곁들이면, AI가 문체와 표현의 방향을 더 정확히 맞출 수 있다.

장르와 톤의 불일치 전략

일부러 장르와 톤을 어긋나게 할 수도 있다.
잔혹한 사건을 담담하고 건조한 톤으로 다루면 섬뜩한 효과가 생기고, 무거운 설정을 밝고 환한 톤으로 그리면 아이러니가 생긴다. 이는 관객에게 새로운 정서적 경험을 준다.

그러나 어긋남이 작동하려면, "왜 이렇게 다루는지"에 대한 명확한 의도와 일관성이 필요하다.
몇 장면만 묘하게 다르게 쓰면 실수처럼 느껴지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전략으로 밀어붙이면 하나의 스타일이 된다. 판이한 요소들을 억지로 섞기보다, 의도와 메시지가 있을 때만 선택하는 것이 좋다.

AI 시대의 장르 설계와 톤 관리

AI는 장르의 전형을 빠르게 재조립하는 데 능하다.
반대로 말하면, 아무 지시도 하지 않으면 가장 익숙한 클리셰를 조합해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AI에게는 "장르의 기본 법칙은 유지하되, 어떤 클리셰를 피하고 싶은지"를 구체적으로 언어화해 줘야 한다.

장르와 톤을 AI에게 전달하는 기본 순서는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어떤 감정 경험을 주고 싶은지 명확히 한다. 그 감정에 가장 적합한 장르와 서브장르를 선택한다. 작품의 기본 온도와 태도, 즉 톤을 한두 문장으로 요약한다. 그 톤을 구현할 매너(대사 스타일, 묘사 방식, 리듬 등)를 예시와 함께 설명한다.

AI에게 시나리오 초안을 맡기고 나면, 인간 작가는 주로 톤과 매너를 다듬는 편집자 역할을 하게 된다.
장르 구조 자체는 AI가 빠르게 만든다 해도, 말투, 뉘앙스, 정서의 깊이는 인간이 조정해야 한다. "이 대사는 너무 설명적이다", "이 장면의 감정은 더 절제해야 한다"처럼, 톤을 기준으로 수정 방향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연습: 나만의 장르와 톤 정리

한 작품을 시작하기 전, 단 한 장의 "장르·톤 선언문"을 만들어보는 습관이 도움이 된다.
이 작품의 장르와 서브장르, 관객에게 주고 싶은 감정, 전체 톤의 온도(차가움-따뜻함), 진지함과 유머의 비율, 대사의 현실감 정도 등을 짧게 적어두면, 초고를 쓰는 동안 방향을 잃지 않게 해준다.

AI와 협업할 때도 이 선언문은 유용하다.
프롬프트의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선언문을 그대로 또는 요약해서 AI에게 제시하면, 초고 단계부터 장르와 톤이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결과물을 얻을 확률이 높아진다.

장르의 법칙과 톤 앤 매너는 창작의 족쇄가 아니라, 관객에게 정확한 경험을 전달하기 위한 설계 도구다.
AI는 이 도구를 빠르게 조합할 수 있는 강력한 엔진이고, 당신은 어떤 법칙을 선택하고 어떻게 변주할지 결정하는 설계자다. 이 장의 목표는, 그 설계자의 감각을 기르는 데 있다.

이 노트는 요약·비평·학습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저작권 문의가 있으시면 에서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