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연구소는 전기를 어떻게 스스로 만들어 쓰기 시작했나
AI 열풍을 떠받치는 건 사실상 ‘전기’입니다. 그런데 지금 전 세계 전력망이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AI 연구소와 클라우드 기업들은 아예 “전기를 직접 만들어 쓰는 시대”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왜 전력망이 AI 데이터 센터를 감당하지 못하는지
일론 머스크의 xAI, OpenAI·오라클 같은 AI 연구소가 전력을 어떻게 ‘자급자족’하는지
가스 터빈·엔진·연료전지 등 다양한 현장 발전 기술의 장단점
앞으로 AI 시대 전력 시장이 어떻게 바뀔지
를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보겠습니다.
1. 전력망이 먼저 한계에 부딪혔다: “그리드는 이미 매진”
AI 데이터 센터가 쓰는 전력은 어느 정도일까요? 미국 기준으로 보면, AI 데이터 센터 전력 수요는 2023년 약 3GW에서 2026년에는 28GW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됩니다1. 웬만한 대형 원전 수십 기가 동시에 돌고 있어야 맞출 수 있는 수준이죠.
문제는 전력을 만드는 것보다 ‘데이터 센터까지 가져오는 송전망’을 확충하는 데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린다는 점입니다.
미국 텍사스 전력망 운영기관 자료를 보면, 매달 ‘수십 기가와트’ 규모의 데이터 센터 전력 신청이 쏟아지는데 실제로 1년 동안 승인된 용량은 1GW 남짓에 불과합니다. 전력망이 사실상 “매진”된 셈입니다1.
그렇다고 AI 클라우드 회사들이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을까요? AI 클라우드는 기가와트당 연간 10~12억 달러, 한국 돈으로 조 단위 매출을 낼 수 있는 사업입니다1. 데이터 센터를 6개월만 빨리 돌려도 수천억~수조 원이 왔다 갔다 하는 판이라, 전력망의 3~5년짜리 증설 계획을 기다려 줄 여유가 없습니다.
이제 기업들의 계산법은 아주 단순해졌습니다.
“그리드(전력망) 기다리느니, 우리가 직접 발전소를 지으면 안 될까?”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2. 일론 머스크의 xAI가 보여준 ‘치트키’: 트럭 위 발전소
이 흐름을 가장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사례가 일론 머스크의 AI 연구소 xAI입니다.
xAI는 10만 개 GPU가 들어가는 초대형 클러스터를 4개월 만에 구축해 업계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1.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핵심은 “전력망을 아예 우회해 버린 전략”입니다.
xAI가 선택한 방법은 이렇습니다.
대형 변전소를 기다리지 않는다.
대신 트럭에 실을 수 있는 가스 터빈과 가스 엔진을 통째로 가져온다.
데이터 센터 옆에 바로 내려 설치하고, 거기서 전기를 뽑아서 GPU에 공급한다.
이 방식으로 xAI는 데이터 센터 인근에 500MW가 넘는 터빈 설비를 이미 배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1.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속도’입니다. 기가와트급 AI 데이터 센터 경쟁에서는, 누가 더 빨리 돌려보느냐가 승부를 가릅니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속도가 곧 해자(모트)”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xAI는 허가 문제도 독특하게 해결했습니다. 한 주(州)에서 인허가가 막힐 것을 대비해, 아예 두 개 주 경계에 가까운 곳을 골라 “어디든 먼저 허가 내주는 쪽과 하겠다”는 식의 입지 전략을 쓴 겁니다. 실제로 테네시 주는 제때 허가를 내주지 못했지만, 미시시피 주는 빠르게 허가를 내며 xAI의 발전소 건설을 허용했고, 결과적으로 xAI는 기가와트급 전력원을 확보했습니다1.
3. OpenAI·오라클·크루소… AI 연구소는 왜 ‘발전소 회사’가 되었나
xAI만 이런 건 아닙니다.
OpenAI와 오라클은 2025년 10월 텍사스에 2.3GW 규모의 현장 가스 발전소를 주문했습니다. 이것만 해도 웬만한 국가의 기저 발전소급 규모입니다1.
또 다른 사례로, 크루소 에너지가 개발 중인 ‘Stargate(스타게이트)’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오픈AI, 오라클, 소프트뱅크가 함께 추진하는 초대형 AI 데이터 센터 포트폴리오인데, 텍사스 애빌린의 플래그십 캠퍼스만 해도 1.2GW를 목표로 합니다2. 이곳 역시 전력망을 믿고 기다리지 않고, 데이터 센터 개발사인 크루소가 직접 발전소까지 통째로 맡아 짓는 구조입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플레이어들도 등장합니다.
한국의 두산 에너빌리티는 xAI용 H급 가스 터빈 1.9GW를 수주했습니다1.
선박용 엔진으로 유명한 핀란드의 Wärtsilä(베르칠라)는 미국 데이터 센터와 800MW 계약을 체결했습니다1.
초음속 여객기 스타트업 Boom Supersonic은, 원래 비행기용으로 개발하던 터빈을 데이터 센터 발전용으로 팔아 1.2GW 계약을 따냈습니다1.
즉, AI 연구소와 클라우드 기업이 “우리가 발전소도 같이 할게”라고 선언하면서, 기존 발전터빈·엔진 업체뿐 아니라 항공·조선 산업까지 통째로 전력 시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셈입니다.
4. 현장 발전의 세 가지 축: 가스 터빈·엔진·연료전지
그렇다면 데이터 센터는 어떤 기술로 직접 전기를 만들까요? 크게 세 가지 부류를 쓸 수 있습니다.
4-1. 가스 터빈: 빠르게, 크게, 비행기 엔진까지 동원
가장 눈에 띄는 건 가스 터빈입니다.
GE Vernova의 LM2500XPRESS 같은 ‘항공기 엔진 기반(aeroderivative)’ 터빈은 설치가 빠르고, 출력 변화에도 민첩합니다2.
크루소의 애빌린 사이트는 이런 터빈으로 최대 1GW에 가까운 전력을 뽑을 계획입니다2.
ProEnergy는 보잉 747에 쓰였던 CF6-80C2 엔진을 개조해 50MW급 가스 터빈을 공급하며 1GW 이상을 팔았습니다3.
Boom Supersonic 역시 자사 초음속 제트 엔진과 거의 같은 터빈을 데이터 센터용 발전기로 판매 중입니다3.
장점은 대규모 전력을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확보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필요할 때 출력 조정이 빠르다는 점입니다.
단점은 연료가 대부분 천연가스여서 온실가스 배출이 크고, 단일 설비당 투자비가 크다는 점, 그리고 그리드 대비 kWh당 전기요금이 높아지기 쉽다는 점입니다13.
4-2. 내연기관(Recip Engine): 배처럼, 공장처럼 돌려 쓰는 엔진
선박 엔진 제조사 Wärtsilä가 데이터 센터용 전력 시장으로 들어온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1.
이들이 공급하는 중속(Medium-speed) 엔진은 원래 대형 선박이나 발전소에 쓰이던 엔진인데, 장점이 명확합니다.
부분 부하 운전에 효율이 좋고
개별 모듈을 여러 개 쌓는 구조라 확장이 쉽고
정비·부품 교체 경험이 이미 풍부하다
대신 대형 가스 터빈에 비해 시스템 전체 효율이 떨어질 수 있고, 소음·진동 문제가 있어 방음·진동 대책에 비용이 들어갑니다. 그래도 “여러 기를 병렬로 쉽게 증설·감축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전력 수요가 급격하게 튀는 AI 트레이닝용 데이터 센터와 궁합이 맞습니다.
4-3. 연료전지와 배터리: 조용하지만 아직은 비싼 미래 기술
연료전지는 수소나 천연가스에서 전기를 직접 뽑는 기술로, 소음이 적고 효율이 높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Bloom Energy 같은 업체가 데이터 센터용 연료전지를 공급하며 시장을 넓혀가고 있습니다1.
다만,
초기 CAPEX(설비 투자비)가 크고
대규모 기가와트급으로 바로 확장하기에는 아직 경제성이 애매합니다.
그래서 현재는 “주요 전력원”이라기보다는,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는 특정 국가/지역에서
일부 부하를 담당하는 보조 전원
혹은, 친환경 이미지와 결합한 전략적 선택지 정도로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에 배터리(BESS, 대용량 에너지 저장장치)가 결합되면 그림이 달라집니다.
데이터 센터는 부하 변동이 크고, 순간적으로 전력 사용량이 튀어 오르는 “스파이크”가 자주 발생합니다. 이런 순간 부하는 전력망에 큰 스트레스를 주는데, 그리드 스케일 배터리나, 데이터 센터 옆에 붙어 있는 BESS가 이 스파이크를 흡수해주면 전력망에도, 데이터 센터에도 모두 도움이 됩니다4.
전력 수요가 낮고 전기가 싸고 깨끗할 때 충전하고
피크 시간이나 전기가 부족할 때 방전하며
데이터 센터의 요금과 전력망 부담을 동시에 줄여주는 구조입니다4.
5. 현장 발전, 장점과 함정: “빠른 대신 비싸고 복잡하다”
이쯤에서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그리드 대신 현장 발전이 그렇게 좋으면, 다들 그냥 그걸로만 쓰면 되는 거 아닌가?”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장점과 단점이 매우 뚜렷합니다.
5-1. 장점: 속도와 입지 자유, 그리고 ‘전력 확보’라는 무기
가장 큰 장점은 속도입니다.
대형 송전선·변전소를 기다리면 3~7년이 걸릴 수 있지만3,
가스 터빈·엔진 기반 현장 발전소는 몇 개월~1년 안에 가동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AI 데이터 센터 하나가 400MW를 쓰고, 이를 6개월 일찍 돌릴 수 있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수조 원 규모의 매출 차이가 발생합니다1. 이 정도 경제적 인센티브가 있으면, “그리드가 느리면 내가 발전소를 짓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또 하나의 장점은 입지 선택의 자유입니다.
예전에는 전력망이 받쳐주는 곳에서만 데이터 센터를 지을 수 있었다면, 이제는 가스 파이프라인만 있다면 사막 한가운데, 항만 근처, 바람 좋은 곳 어디든 대형 AI 센터를 지을 수 있습니다. 전력망이 따라오지 못하면, 현장 발전소로 먼저 ‘앵커(닻)’를 내린 후 나중에 전력망과 연계하는 방식도 가능합니다2.
5-2. 단점: 그리드보다 비싸고, 허가가 복잡하며, 환경 논란까지
하지만 단점도 만만치 않습니다.
첫째, 비용입니다.
BNP 파리바 분석에 따르면, 미국 오하이오의 한 데이터 센터 고객을 위한 소규모 가스 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 비용은 MWh당 약 175달러로, 일반 산업용 전기요금의 약 2배 수준으로 추정됩니다3. 스스로 발전소를 갖는다는 건, 값싼 대규모 공용 인프라(전력망)의 경제성을 포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둘째, 인허가입니다.
발전소를 짓는 순간, 단순한 “전기 소비자”가 아니라 “발전 사업자”의 룰을 같이 따라야 하는 경우가 많이 생깁니다.
대기오염 허가
온실가스 규제
소음·진동 문제
연료 공급·안전 기준
이 모든 것을 통과해야 하고, 이 과정이 지연되면 아무리 GPU가 창고에 쌓여 있어도 전기를 못 가져다 쓰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실제로 오라클/스타게이트의 일부 기가와트급 시설은 발전 허가 문제로 일정 지연을 겪기도 했습니다1.
셋째, 환경 논란입니다.
최근 몇 년간 디젤 발전기는 ‘비상용 백업’ 정도로만 허용되었는데, AI 데이터 센터 수요 때문에 일부 지역에서는 디젤 발전기 가동 시간 상한을 완화하는 움직임까지 나오고 있습니다3.
또한 “AI 데이터 센터 때문에 오래된 가스 피커플랜트(피크 전력용 오래된 화력 발전소)가 다시 돌아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전력망이 감당 못하는 순간, 가장 빠르게 응답할 수 있는 건 결국 화석연료 기반 발전소기 때문입니다.
6. 앞으로의 방향: ‘마이크로그리드’에서 ‘하이퍼그리드’로
이 모든 움직임을 더 큰 그림으로 보면, 흥미로운 변화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원래 데이터 센터는 전기를 사서 쓰는 ‘고객’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발전소와 전력망까지 함께 설계하는 ‘에너지 기획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5.
Stargate 프로젝트에서 크루소는 단순한 데이터 센터 개발사가 아니라,
가스 발전소
대규모 배터리
풍력·태양광 연계
나아가 SMR(소형 모듈형 원전) 같은 장기 전원 계획6
까지 포함한 “Grid-Interactive Compute Plant(그리드와 상호작용하는 컴퓨트 발전소)”를 짓고 있습니다2.
한마디로 말해,
예전에는 “전력망 위에 데이터 센터가 얹힌 구조”였다면
앞으로는 “데이터 센터 + 자체 발전소 + 배터리 + 재생에너지”가 하나의 ‘하이퍼그리드’처럼 움직이는 구조로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2.
동시에, 전력망 운영자와 규제 당국도 이 흐름을 쫓아가야 합니다. 현재는 발전소 인허가(FERC)와 대형 부하(데이터 센터) 인허가(주 유틸리티 규제)가 따로 놀면서 인터커넥션(연계) 지연이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2. 미국 에너지부는 이미 “20MW 이상 대형 부하(데이터 센터 등)에 대한 연계 규칙을 정비해야 한다”고 촉구한 상태입니다2.
시사점: AI 시대, 전기 이야기를 빼고는 아무 이야기도 못 한다
정리해보면,
AI 데이터 센터 전력 수요는 3GW → 28GW 이상으로 폭증 중이며, 기존 전력망은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1.
AI 클라우드는 기가와트당 연 10~12억 달러의 매출을 낼 수 있어1, ‘전력 확보 속도’가 곧 경쟁력입니다.
일론 머스크의 xAI, OpenAI·오라클, 크루소 등은 가스 터빈·엔진·연료전지·배터리를 활용해 데이터 센터 옆에 발전소를 직접 짓고, 전력망을 우회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습니다123.
현장 발전은 빠르고 유연하지만, 전력망보다 비싸고 인허가·환경 규제가 복잡해 새로운 리스크를 낳고 있습니다13.
결과적으로 데이터 센터는 “전기 소비자”에서 “에너지 시스템 설계자”로 진화하고 있으며, 마이크로그리드를 넘어선 ‘하이퍼그리드’라는 새로운 전력 아키텍처가 등장하는 중입니다52.
앞으로 AI·클라우드 비즈니스를 이야기할 때, GPU 숫자만 보는 시대는 끝날 것 같습니다.
“이 데이터 센터는 전기를 어디서, 어떻게 조달하는가?”
“가스·재생에너지·배터리·원전 등을 어떤 비율로 섞어 쓰는가?”
“전력망과 어떤 방식으로 연계하거나 독립하는가?”
이 질문이 곧 AI 경쟁력, 그리고 국가 차원의 산업 전략을 가르는 핵심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AI를 만드는 알고리즘과 모델만큼, AI가 먹는 ‘전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참고
1How AI Labs Are Solving the Power Crisis: The Onsite Gas Deep Di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