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수상자들이 만든 ‘창작자 AI 연합’, 할리우드는 왜 뭉쳤나
엔터테인먼트 업계에도 드디어 ‘AI 룰 메이커’가 등장했습니다.
오스카 수상 감독과 제작자, A급 배우와 뮤지션들까지 손잡고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AI 사용 규칙을 만들기 위한 연합체, ‘창작자 AI 연합(CCAI, Creators Coalition on AI)’을 공식 출범시켰습니다12.
이들은 AI 자체를 막겠다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가 괜찮고, 어디서부터가 선을 넘는지”
그 기준을 업계 차원에서 명확히 정리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창작자 AI 연합이 어떤 조직인지,
어떤 AI 규칙을 만들려 하는지,
그리고 이 흐름이 앞으로 콘텐츠 업계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쉽고 재밌게 풀어보겠습니다.
할리우드에 등장한 ‘창작자 AI 연합’이란 무엇인가
먼저 이름부터 정리해볼까요.
CCAI(Creators Coalition on AI)는 말 그대로 창작자들이 주도하는 AI 연합입니다.
오스카 수상작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공동 감독 다니엘 콴, 제작자 조나단 왕, 그리고 배우 조셉 고든 레빗이 핵심 설립 멤버로 나섰고12, 여기에 나탈리 포트먼, 케이트 블란쳇, 폴 매카트니, 기예르모 델 토로, 마크 러팔로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A-리스트들이 지지 서명을 올렸습니다23.
이 연합이 하려는 일은 단순합니다.
“AI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쓰일 때, 사람과 기술이 공정하게 공존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자.”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이런 역할을 자처합니다.
영화사, OTT, 제작사, 길드(WGA, SAG 등)들이 AI 관련 결정을 할 때 자문해주는 ‘AI 윤리·정책 허브’
각종 협회, 노조, 스튜디오들의 요구를 브릿지처럼 연결해주는 조정자
“빨리 하는 사람들” 대신 “제대로 하려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돕는 규범 형성 주도 세력1
재미있는 건, 이 연합이 급하게 만들어진 계기입니다.
디즈니가 OpenAI와 대형 파트너십을 발표하면서, 상당수 할리우드 인사들이 “우리는 아무 말도 못 들었는데, 벌써 딜이 끝나버렸네?” 하는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1.
그 여파로, “이대로 있다가는 또 한 번 스트리밍 때처럼 크리에이터가 힘의 중심에서 밀려나겠구나”라는 위기감이 쌓였고, 그게 CCAI 출범으로 이어졌습니다.
AI 규칙의 네 기둥: 동의·보상, 일자리, 안전장치, 인간성
CCAI가 내세운 핵심 키워드는 네 가지입니다12.
1. “내 작품, 내 데이터” – 동의와 공정 보상
오늘날 많은 생성형 AI 모델이 기존 영화, 음악, 시나리오, 이미지를 학습 데이터로 사용합니다.
문제는, 이 데이터의 상당수가 창작자의 명시적 동의 없이 쓰였다는 점입니다.
CCAI는 여기에 아주 단순한 원칙을 적용하자고 말합니다.
창작물이나 개인 데이터가 AI 학습에 사용된다면
→ 미리 동의를 구하고
→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지급해야 한다.
이건 사실 새로울 것도 없습니다.
음악 스트리밍 로열티, 방송 재송신료처럼 저작물 사용에는 대가를 지급한다는 기존 원칙을 AI에도 그대로 확장하자는 것에 가깝습니다.
2. 일자리를 없애지 말고, ‘전환 계획’을 세우자
AI가 대본 초안을 뽑고, 얼굴을 합성해 엑스트라를 만들어내고, 목소리를 복제하는 시대입니다.
기술만 놓고 보면, “사람을 줄여도 되겠다”는 유혹이 너무 강하죠.
CCAI는 이 지점에서 브레이크를 겁니다1.
AI를 도입하더라도,
어떤 직무가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 투명하게 밝히고
교육·전환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람들이 새로운 기술 환경에서도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단순히 “AI가 대신할 테니 사람은 정리하자”가 아니라,
“AI가 들어오면, 사람의 역할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를 포함한 장기 인력 전략을 세우자는 제안입니다.
3. 딥페이크와 오남용, 선을 넘지 않도록 ‘안전장치’
배우의 얼굴을 무단 합성한 광고, 이미 고인이 된 배우의 디지털 더블, 실제로 하지 않은 말을 하게 만드는 딥페이크 영상.
이제는 뉴스에서 심심찮게 보는 장면입니다.
CCAI는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먼저 다음과 같은 최소 안전장치를 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12.
초상권, 목소리, 연기 스타일을 AI로 재현할 때는 사전 동의와 계약
딥페이크 콘텐츠에는 명확한 표시와 추적 가능성
명백한 명예훼손·사기성 딥페이크에 대해선 법적 대응과 신고 채널 마련
흥미로운 건, 이런 흐름이 법·규제와도 맞물려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 일부 주와 캘리포니아는 이미 AI·딥페이크를 포함한 자동화 기술의 사용을 규제하거나 투명성을 요구하는 규칙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34.
할리우드는 이보다 한발 빨리, 업계 자율규범을 만들겠다는 셈이죠.
4. “엔터테인먼트는 결국 사람 이야기” – 인간 창의성의 중심성
CCAI의 마지막 축은 ‘인간성’입니다.
AI가 아무리 훌륭한 그림, 대사, 음악을 만들어도,
관객이 진짜로 반응하는 건 인간의 경험과 감정에서 나온 이야기라는 전제를 분명히 합니다12.
그래서 이들은 AI를 ‘대체자’가 아니라 도구로 위치시킵니다.
“초안, 참고자료, 시각 효과, 반복 작업”에는 AI를 활용하되
최종적인 해석, 감정, 메시지는 여전히 인간이 책임져야 한다.
다시 말해, “AI가 감독”이 되는 게 아니라
“감독이 AI를 잘 쓰는 시대”를 지향하는 셈입니다.
CCAI는 AI를 싫어하지 않는다, ‘빨리’보다 ‘바르게’가 목표다
이쯤 되면 한 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이거, 그냥 반(反)AI 단체 아닌가?”
CCAI는 여러 차례 “우리는 AI 자체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못을 박습니다12.
오히려 기술의 잠재력을 인정하고,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 속에서 활용하자는 입장에 가깝습니다.
이들이 문제 삼는 건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다음과 같은 환경입니다.
“나중에 봐서 문제 생기면 그때 막자”는 식의 무규칙 실험
저작권·노동·안전 문제를 충분히 검토하기도 전에 속도전만 벌이는 투자 경쟁
크리에이터를 파트너가 아닌 데이터 원료 정도로 취급하는 태도
그래서 CCAI는 “빠르게 하는 사람들과, 제대로 하려는 사람들 사이에 선을 긋겠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1.
이 선은 기술을 막기 위한 장벽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AI 활용을 위한 가드레일에 가깝습니다.
왜 지금, 왜 할리우드인가: 글로벌 AI 규제 흐름과의 연결
흥미로운 건, 이런 움직임이 세계적인 AI 규제 흐름과도 맞물려 있다는 점입니다.
스탠퍼드 AI 인덱스에 따르면,
2024년 한 해에만 미국 45개 주에서 700건 가까운 AI 관련 법안이 발의됐고,
연방 차원에서도 AI를 언급한 규제 건수가 2배 이상 늘었습니다3.
유럽연합은 2024년에 AI 법(AI Act)라는 포괄적 규제 틀을 마련했고3,
영국, 한국, 일본 등도 각자 가이드라인과 정책을 준비 중입니다.
규제 전문가들은 지금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3.
AI 속도는 너무 빠르고
적용 분야는 너무 다양해서
기존 법과 기관만으로는 대응이 어렵다.
그래서
국가 단위의 강한 법(‘하드 로’)과 함께,
업계가 스스로 만드는 기준·가이드라인(‘소프트 로’)이 함께 필요하다고 보죠.
CCAI는 바로 이 ‘소프트 로’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법이 디테일을 다 담기 전에,
현장에서 일하는 창작자들이 먼저 “이건 최소한 지켜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는 셈입니다.
이건 나중에 법과 정책이 만들어질 때,
현실을 반영한 규칙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합니다.
앞으로 콘텐츠·크리에이터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제 이 흐름이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짚어보겠습니다.
영화·드라마 업계 종사자뿐 아니라, 유튜버·작가·디자이너·마케터 등 모든 콘텐츠 크리에이터에게 꽤 중요한 시그널입니다.
첫째, “내 콘텐츠는 내 데이터”라는 인식이 더 강해질 것입니다.
이미지, 영상, 대본, 심지어 SNS 글까지,
AI 시대에는 모두가 잠재적인 학습 데이터가 됩니다.
앞으로는
플랫폼·툴이 내 콘텐츠를 학습에 쓰는지
수익 공유 구조가 있는지
AI 관련 약관이 어떻게 바뀌는지
이 부분을 확인하는 게 권리 보호의 필수 스텝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둘째, AI 활용 능력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스킬이 됩니다.
CCAI조차 “AI를 아예 쓰지 말자”는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인간 중심으로 잘 쓸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죠.
크리에이터 입장에서 보면,
아이디어 발굴, 리서치, 레퍼런스 찾기
콘티·시놉시스·초안 작성
썸네일·타이틀·메타데이터 최적화
이런 반복·준비 작업에 AI를 활용하고,
정작 중요한 세계관, 캐릭터, 메시지, 감정선은 사람이 쥐고 가는 구조가 유리해질 수 있습니다.
셋째, 딥페이크·성대모사·디지털 더블 관련 계약 조항이 점점 중요해질 것입니다.
앞으로 배우·인플루언서·크리에이터 계약서에는
얼굴·목소리·이미지를 AI로 재현할 수 있는지
할 수 있다면 어디까지, 얼마 동안, 어떤 플랫폼에서
AI 재현물에 대한 수익 배분 구조는 어떻게
이런 내용이 필수로 들어갈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은 할리우드 이야기 같아도,
국내 광고·브랜드 협찬·IP 비즈니스 계약에도 비슷한 조항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시사점: AI 시대, “기술을 두려워할 시간”보다 “룰을 같이 만들 시간”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언제나 기술 변화의 최전선에 서 있었습니다.
사운드 필름, 컬러, TV, 비디오, 스트리밍…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영화는 끝났다” 같은 말이 나왔지만,
결국 산업은 형태를 바꾸면서 살아남았습니다.
AI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속도와 파급력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냥 두면 언젠가 좋아지겠지”라고 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창작자 AI 연합(CCAI)의 등장이 말해주는 건 단순합니다.
기술을 막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기술을 둘러싼 룰을 누가 만들 것인가?
지금까지는 대체로
플랫폼, 빅테크, 투자자들이 이 룰을 주도해왔습니다.
CCAI는 여기에 “창작자도 테이블에 앉겠다”고 선언하는 움직임입니다.
콘텐츠를 만드는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도 비슷합니다.
AI를 무조건 두려워하기보다는
AI가 내 일, 내 권리, 내 수익 구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스스로 공부하고
가능한 한 초반부터 룰 만들기에 목소리를 보태는 것
기업이나 플랫폼이 만든 약관을 수동적으로 따르기보다는,
커뮤니티·조합·협회 차원에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요구하는 시도가
국내외 곳곳에서 등장할 가능성이 큽니다.
AI 시대의 창작자는
기술을 쓰는 사람인 동시에,
기술의 규칙을 함께 설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할리우드에서 벌어지는 이 실험은,
곧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콘텐츠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변화를 남의 이야기로만 보지 않고
“내 업계에서는, 내 콘텐츠에서는 어떤 룰이 필요할까?”를 지금부터 고민해 보는 것입니다.
참고
1Hollywood Talent Launches Creative Coalition On AI
2Hollywood Insiders Launch AI Creators Coalition
3Oscar winners and Hollywood A-listers launch coalition to set AI rules for entertainment indust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