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메모리 칩을 싹쓸이한다? 곧 ‘전자기기 인플레이션’이 온다
올해 새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을 눈여겨보고 있다면, 이 글을 끝까지 읽는 게 좋습니다.
이제는 CPU보다 RAM 칩, 그중에서도 DRAM이 가격을 끌어올리는 주범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AI 데이터 센터가 메모리 칩을 말 그대로 ‘먹어치우는’ 수준으로 쓰면서, 전 세계에 메모리 부족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꽤 단순합니다. 칩 값이 오르고, 제조원가가 오르고, 결국 스마트폰·PC·게임기·TV 같은 거의 모든 전자제품 가격이 함께 오를 가능성이 커졌습니다12345.
이 글에서는
왜 갑자기 RAM 칩이 모자라는지,
이게 우리 지갑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앞으로 몇 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을지,
소비자 관점에서 최대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AI 데이터 센터가 왜 이렇게 많은 메모리를 먹어치울까?
예전에는 메모리 칩 수요를 결정하는 게 주로 PC와 스마트폰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판이 바뀌었습니다. AI 데이터 센터, 특히 거대한 언어 모델과 생성형 AI를 돌리는 서버들이 메모리 시장의 ‘절대 갑’으로 떠올랐습니다12.
AI 서버 안에는 GPU나 AI 전용 칩이 들어가는데, 이 칩이 제 성능을 내려면 주변에 엄청난 양의 고속 메모리가 붙어 있어야 합니다. 대표적인 게 HBM(고대역폭 메모리)와 차세대 서버용 DRAM입니다1.
왜 이렇게까지 많이 필요할까요?
AI 모델, 특히 대형 언어 모델은
수십억~수조 개의 파라미터(매개변수)를 가진 ‘디지털 뇌’라고 보면 됩니다.
이걸 학습시키고, 우리가 채팅할 때마다 빠르게 응답하게 만들려면,
한 번에 메모리에 올려두는 데이터가 엄청나게 크고
초고속으로 읽고 쓰기를 반복해야 하며
GPU와 메모리가 물리적으로 매우 가깝게 붙어 있어야 합니다2.
AI 전문가들은 “AI 작업은 메모리를 중심으로 설계된다”고까지 말합니다2.
즉, 메모리를 아끼면 성능이 바로 떨어지니, “메모리를 줄여서 비용을 낮춘다”는 선택지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구조입니다.
이 때문에 NVIDIA,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회사들이 HBM과 고급 DRAM을 쓸 수 있는 만큼 최대치로 주문하고 있습니다145. 그 결과, 메모리 칩 시장은 완전히 AI 중심으로 재편되는 중입니다.
DRAM 가격, 한 분기에 50%·다음 분기에도 40%? 무슨 일이야
AI 수요가 폭발하면서 가장 직접적인 충격을 받은 건 DRAM 가격입니다.
시장조사 기관 자료에 따르면, 가장 흔하게 쓰이는 DRAM(일반 RAM 칩) 가격이 이번 분기에만 50% 올랐고, 다음 분기에도 추가로 40% 오를 것으로 예상됩니다25.
조금 더 극단적인 사례를 보면, 16Gb DDR5 DRAM 칩 가격이 1개당 약 4배까지 뛴 경우도 보고되고 있습니다1.
메모리 수요는 공급보다 이미 약 10% 정도 앞서가고 있고, 격차는 더 벌어지는 중입니다2.
반대로 말하면, 메모리 제조사가 갑자기 생산량을 크게 늘리지 않는 이상, 가격이 내려갈 명분도, 여유 재고도 거의 없는 상태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변수도 있습니다.
NVIDIA가 자사 AI 칩에서 LPDDR(저전력 모바일 메모리)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이 메모리는 원래 스마트폰·태블릿·고급 노트북이 쓰던 영역입니다4.
그런데 NVIDIA처럼 ‘규모가 말도 안 되는 대형 고객’이 같은 부품을 같이 쓰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같은 수레에서 물건을 가져가는 손님이 몇 명 안 될 때는 모두가 넉넉히 가져갑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루에 물건을 트럭으로 싹쓸이해가는 손님이 등장했습니다.
나머지 손님에게 돌아갈 몫이 부족해지고, 자연스럽게 “비싸게라도 살래요?”라는 상황이 됩니다.
지금 메모리 시장이 딱 이런 구조입니다4.
칩이 AI 쪽으로 쏠리면, 내 스마트폰·노트북은 어떻게 되나
메모리 칩 제조사 입장에서 AI 고객은 “적게 만들어도 많이 남는 장사”입니다.
HBM이나 고급 LPDDR, 고성능 서버용 DRAM은 단가도 높고, 마진도 두껍습니다12.
그래서 삼성, SK하이닉스, 마이크론 같은 업체들은 생산 능력의 큰 부분을 HBM·고부가가치 메모리로 전환하고 있습니다12. 이 말은 곧, 다음을 의미합니다.
일반 PC용 DRAM 생산은 상대적으로 뒷전
스마트폰·게임기·TV 등에 들어가는 메모리 칩 물량도 줄어듦
결국, 소비자 제품에 들어가는 칩은 “적게·비싸게” 공급
실제로 글로벌 PC 제조사들은 벌써 경고를 시작했습니다.
일부 PC 업체는 2026년 초에 완제품 PC 가격을 15~20% 올릴 수 있다고 예고했고1, 스마트폰의 경우도 2026년 평균 판매 가격이 전년 대비 약 6.9%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습니다5.
더 구체적으로 보면,
200달러 이하 보급형 스마트폰은 부품 원가가 20~30% 상승
중·고가 스마트폰은 10~15% 정도 원가 증가
메모리와 저장장치는 한 대의 스마트폰·PC 원가에서 약 10~25%를 차지하기 때문에, 이 부분이 20~40% 오르면 최종 제품 가격도 5~10% 이상 오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45.
이렇게 되면 제조사들도 선택을 해야 합니다.
소비자 가격을 올려서 마진을 지킬 것인가
가격은 최대한 억제하되, 카메라·디스플레이·스피커 같은 다른 부품을 다운그레이드해 원가를 맞출 것인가5
당장 눈에 보이는 변화는 “가격 동결인데, 이상하게 스펙이 별로”인 제품이 늘어나거나,
혹은 “같은 급인데 작년보다 10만~20만 원 비싸진” 기기가 늘어나는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큽니다.
이 상황이 일시적일까, 아니면 몇 년 갈까?
반도체 메모리 산업은 원래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사이클 산업’입니다.
과거에는 PC·스마트폰 수요가 줄면 가격이 내려가고, 다시 새 제품이 많이 팔리면 가격이 오르는, 비교적 예측 가능한 패턴이었습니다1.
하지만 이번 DRAM·RAM 부족은 양상이 다릅니다.
첫째, AI 수요가 단발성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금도 전 세계 빅테크들은 “AI 데이터 센터 건설 전쟁”을 벌이고 있고, 수백억 달러 단위로 투자를 이어가고 있습니다124. 한두 해 쓰고 끝나는 인프라가 아니라, 계속 증설·업그레이드되는 장기 프로젝트입니다.
둘째, 공급을 단기간에 늘리기 매우 어렵다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반도체 공장은 “짓고 싶다” 해서 1~2년 안에 뚝딱 나오는 건물이 아닙니다.
부지를 정하고, 장비를 들이고, 공정을 안정화하는 데까지 보통 2~3년 이상이 걸립니다4.
업계 분석에 따르면,
기존 공장에서는 2026년쯤이면 사실상 “증설할 수 있는 만큼 다 늘린 상태”가 될 것이고2
그 이후 공급을 늘리려면 새로운 팹(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되어야 합니다.
마이크론이 미국 아이다호에 짓고 있는 새 공장도 2027년에야 가동될 예정입니다2.
일부 전문가는 메모리 가격 강세와 공급 부족이 2027~2028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1.
정리하자면,
“조금 기다리면 내년쯤 다시 싸지겠지?”라는 기대는 이번에는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소비자는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아마 이런 생각이 드실 겁니다.
“그래서… 지금 사야 하나, 기다려야 하나?”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현재 시장 전망과 트렌드를 기준으로 실질적인 판단 기준을 몇 가지 제안해 볼 수는 있습니다.
첫째, 1~2년 안에 반드시 바꿔야 할 기기가 있다면 ‘너무 오래’ 미루지 않는 편이 유리할 가능성이 큽니다.
시장 조사기관과 업계 관계자들은 “지금은 오히려 아직 덜 오른 시기일 수 있다”며, “사야 할 기기가 확실하다면 앞당기는 게 낫다”는 의견까지 내놓고 있습니다25.
둘째, 고용량 RAM·대용량 저장공간 옵션의 가격 프리미엄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같은 모델에서 8GB→16GB RAM, 256GB→512GB 저장공간 업그레이드 비용이 지금보다 더 비싸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세대에서 조금 넉넉한 사양으로 사두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셋째, 중저가 제품의 ‘숨은 다운그레이드’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 제조사들은 원가를 맞추기 위해
– 카메라 센서 크기 축소
– 디스플레이 주사율 하향
– 스피커/진동 모터 품질 절감
– 이전 세대 부품 재활용
같은 방식으로 티 나지 않게 스펙을 낮출 수 있습니다5.
단순히 “램 몇 GB, 저장공간 몇 GB”만 보지 말고,
카메라, 디스플레이, 충전 속도 등 전체적인 균형을 보는 습관이 더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넷째, PC를 직접 조립하거나 업그레이드하는 사용자라면 RAM·SSD 가격 추이를 특히 주의 깊게 보셔야 합니다.
일부 유통사에서는 이미 RAM 모듈을 메인보드와 묶어 파는 등 “물량 배분”에 들어갔고1,
완제품 PC 업체는 RAM 가격 때문에 제품 가격 조정을 예고한 상태입니다1.
시사점: ‘AI의 편리함’과 ‘기기 인플레이션’ 사이에서
정리해 보면 상황은 이렇습니다.
AI 데이터 센터가 HBM·DRAM·LPDDR 같은 메모리 칩을 대량 소비하면서
메모리 칩 공급이 빡빡해지고, DRAM 가격이 분기 단위로 수십 퍼센트씩 상승하고 있으며125
메모리 제조사는 수익성이 높은 AI용 메모리에 집중하느라 일반 소비자 제품용 칩 공급이 줄어들고
그 결과, 스마트폰·PC·태블릿·게임기·TV 등 거의 모든 전자기기 가격이 오르거나, 같은 가격에 스펙이 낮아질 가능성이 커졌습니다145.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AI 서비스(챗봇, 이미지 생성, 번역 등)가 편리해질수록,
그 뒤에서 돌아가는 데이터 센터는 더 많은 메모리를 요구하고,
그 부담의 일부가 우리가 사는 전자기기 가격에 전가되는 구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몇 년간 IT 기기를 고를 때
“무조건 최신, 무조건 교체”보다는
정말 필요한 성능이 무엇인지
몇 년을 쓸 것인지
업그레이드 여지가 있는지
이 세 가지를 기준으로 좀 더 전략적으로 구매하는 습관이 중요해질 거라고 봅니다.
AI가 만드는 새로운 세상은 분명 흥미롭지만,
그 이면에서 벌어지는 메모리 전쟁과 가격 파동에도 조금은 눈을 돌려 볼 때입니다.
당장 내 다음 스마트폰·노트북 가격이 그 싸움의 직접적인 결과물이 될 수 있으니까요.
참고
1RAM Shortage 2025: How AI Demand is Raising DRAM Prices | IntuitionLabs
2Memory loss: As AI gobbles up chips, prices for devices may rise | NPR
3The AI frenzy is driving a memory chip supply crisis | Reuters
4A 'seismic' Nvidia shift, AI chip shortages and how it's threatening to hike gadget prices | CNB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