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정전이 드러낸 로봇택시의 민낯, 그리고 Waymo의 재가동
샌프란시스코 한복판.
주말 오후 갑자기 도시 전체가 깜깜해지고, 신호등이 동시에 숨을 멈췄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장면은 따로 있었죠. 하얀 자율주행차들이 도로 한가운데 줄줄이 멈춰 서 있고, 사람들은 그 차들을 피해 지그재그로 빠져나가야 했습니다.
이 로봇택시들의 주인공은 바로 구글 모회사 알파벳이 운영하는 웨이모(Waymo).
대규모 정전으로 한바탕 혼란을 겪은 뒤, 웨이모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로봇택시 서비스를 다시 재개했습니다123.
이번 사건은 단순한 “서비스 장애”가 아닙니다.
도시 인프라와 자율주행 기술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 교통’이 얼마나 인간의 도움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에 가깝습니다.
이 글에서는
정전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로봇택시들이 길 한복판에서 멈춰야 했는지, 그리고 웨이모가 어떤 개선책을 내놓았는지까지 한 번에 정리해 보겠습니다.
1. 무슨 일이었나? 정전이 만든 ‘로봇택시 교통 마비’의 현장
이번 사태의 출발점은 교통이 아니라 전기였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변전소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광범위한 정전이 이어졌고, 한때 최대 13만 명에 달하는 PG&E 고객들이 전력을 잃었습니다123. 일부 지역은 다음날까지도 수만 가구가 전기를 공급받지 못했죠1.
전기가 나가면 도시에서 가장 먼저 티 나는 변화는 신호등입니다.
교차로의 빨간·초록 불이 모두 꺼지면서 도로는 순식간에 혼돈 모드로 진입했습니다. 시는 경찰과 소방, 주차 단속 인력까지 총동원해 차량 흐름을 정리해야 했고, 시장은 “꼭 필요하지 않으면 차를 몰고 나오지 말 것”을 주민들에게 당부했습니다12.
그 와중에 SNS와 커뮤니티에는 이상한 풍경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도로 한가운데, 혹은 교차로 중앙에 멈춰 서 있는 하얀 자율주행차들.
깜빡이는 비상등, 그 옆을 간신히 비집고 지나가는 일반 차량들.
어떤 영상에는 한 교차로에 웨이모 차량이 다섯 대나 모여 서 있어, 사람 운전자들이 진입 자체를 못 하고 있는 상황도 포착되었습니다423.
웨이모 대변인은 이후 성명을 통해 이렇게 인정했습니다.
“정전은 샌프란시스코 전역의 교통 체증과 신호 장애를 불러왔고, 그 과정에서 자사 차량 일부가 평소보다 오래 정차하는 바람에 교통 흐름에 마찰을 일으켰다”123.
결국 웨이모는 토요일 저녁,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 전체에서 로봇택시 서비스를 ‘스스로’ 중단했습니다.
대부분의 진행 중이던 운행은 목적지까지 완료했지만, 이후 차량들은 차고나 안전한 장소로 이동하거나 길가로 차를 빼도록 조치되었습니다123.
다행히 다음날 저녁, 전력과 교통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웨이모는 다시 서비스를 재개했다고 밝혔습니다142.
2. 왜 멈춰 섰을까? 로봇택시가 정전과 신호등을 보는 방식
그렇다면 질문은 하나로 모입니다.
“전기 나간 거랑 자율주행차랑 무슨 상관인데, 차들이 길 한복판에서 서 버린 걸까?”
웨이모의 설명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첫 번째 포인트는 신호등 인식 로직입니다.
웨이모의 자율주행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는 신호등’을 인간 운전자처럼 ‘4방향 정지 교차로’로 처리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123.
즉, 네 방향 모두가 일단 멈추고, 순서대로 조심히 지나가는 상황을 기본값으로 삼았다는 뜻이죠.
이론상으로는 이게 맞습니다. 실제 도로교통법도 비슷하게 규정하고 있고, 작은 규모의 정전이나 일부 교차로 신호 장애 정도라면 이 방식이 충분히 작동합니다.
문제는 이번처럼 도시 전역의 신호등이 한꺼번에 꺼진 ‘규모’였습니다.
두 번째 포인트는 ‘확인 요청(confirmation check)’ 시스템입니다.
웨이모 차량은 스스로 상황 판단을 하되, 애매하거나 위험도가 높다고 판단되면 원격의 ‘플릿 대응 팀(운영자 팀)’에 “지금 이 상황에서 이렇게 움직여도 되는지” 확인을 요청하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56.
초기엔 이게 안전망 역할을 했습니다.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함부로 움직이기보다는, 인간 운영자에게 한 번 더 물어보도록 설계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정전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도시 곳곳의 신호등이 동시에 꺼지면서, 수많은 웨이모 차량이 한꺼번에
“여기 신호등 꺼졌는데, 이거 맞게 처리하고 있는 거야?”
라고 플릿 대응 팀에 확인을 날린 겁니다56.
웨이모는 이를 “집중적인 확인 요청 급증(concentrated spike)”이라고 표현했습니다56.
운영 인력과 시스템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문의가 몰리면서, 차량은 응답을 기다리며 그대로 서 있게 됐고, 그 사이에 도로는 더 막히는 악순환이 이어졌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신호등이 꺼지면 4방향 정지로 보도록 설계
애매하면 본사(플릿 팀)에 물어보는 보수적인 전략
그런데 도시 전체 신호가 꺼지자, 문의가 폭주
답을 기다리며 교차로 한가운데서 오래 멈춤
이게 사람 운전자들에게는 ‘길막’으로 보이는 상황 발생
웨이모 입장에서는 “너무 조심해서 생긴 사고는 아니지만 사고 같은 일”에 가까웠고, 인간 운전자 입장에서는 “위험한 건 아니지만 답답함이 폭발하는 상황”이었습니다.
3. 웨이모는 무엇을 바꾸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위기 대응
웨이모도 이 상황을 가볍게 넘기지 않았습니다.
사건 직후 자사 블로그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계획과 비상 대응 프로토콜 개선을 공개했습니다567.
첫 번째 변화는 정전 인지 능력 강화입니다.
웨이모는 앞으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에 “지역별 정전 상황에 대한 추가 컨텍스트”를 제공하겠다고 밝혔습니다567.
쉽게 풀면 이런 겁니다.
“이건 그냥 한두 개 교차로의 신호 장애가 아니라, 도시 전체 전력망에 문제가 생긴 상황이다”라는 걸 차가 스스로 알 수 있게 하겠다는 것.
이렇게 되면, 차량은
“내가 있는 교차로 하나만의 이상”이 아니라
“현재 도시 전체에서 벌어지는 패턴”을 고려해서 행동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같은 ‘꺼진 신호등’이라도
소규모 장애 → 지금처럼 보수적으로, 필요 시 본사에 확인
대규모 정전 → 좀 더 과감하게, 로컬 판단 위주로 진행
이렇게 전략이 달라지도록 만드는 게 이번 업데이트의 핵심입니다56.
두 번째 변화는 확인 요청 시스템의 스케일 조정입니다.
웨이모는 이 시스템을 “초기 배포 단계에서 안전을 위해 만든 장치”라고 설명하면서, 이제는 실제 운영 규모에 맞게 조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56.
즉,
평상시에 유용했던 ‘과잉 신중 모드’를
비상 상황에서는 교통 마비를 일으키지 않을 정도로 완화
하는 방향으로 손보겠다는 의미입니다.
세 번째는 비상 대응 프로토콜 전면 재점검입니다.
웨이모는 “이번 사건에서 얻은 교훈을 비상 대응 프로세스에 빠르게 반영하겠다”고 반복해서 강조했습니다123.
도시 당국과의 실시간 소통 방식, 차량을 언제·어디까지 운행할지 중단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지, 멈춰야 한다면 어디에 세워야 할지 같은 세부 절차가 여기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웨이모가 “망가진 사례”만 있던 건 아니라는 겁니다.
웨이모에 따르면 정전 당일, 자사 차량은 꺼진 신호등 7,000개 이상을 문제없이 통과했다고 합니다56.
즉, 대부분의 상황에선 시스템이 잘 작동했지만, 일부 교차로와 특정 순간에 ‘집단 정지’ 현상이 집중적으로 드러난 셈입니다.
4. 로봇택시 시장에서 웨이모가 갖는 의미와 이번 사건의 파급력
이번 일은 웨이모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도시가 완벽하게 돌아갈 때” 기준으로 설계된 자율주행 시스템이, “도시가 망가졌을 때”도 버틸 수 있느냐는 더 큰 질문을 던진 사건에 가깝습니다.
웨이모는 현재 서부권 로봇택시 시장의 대표 주자입니다.
샌프란시스코, 피닉스, LA, 오스틴, 애틀랜타 등 미국 주요 도시에서 상용 로봇택시 서비스를 운영 중이며, 2025년에만 1,400만 회 이상의 탑승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2.
최근 유출된 문서에서는 웨이모가 일주일에 약 45만 건의 탑승을 제공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는데, 이는 불과 몇 달 전 알파벳이 공식 발표한 수치의 거의 두 배 수준입니다.
이 정도 규모면, 작은 도시의 택시 호출량을 웨이모 한 회사가 책임지는 셈입니다.
그만큼 웨이모의 장애는 곧 도시 전체의 교통 문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번 사태를 두고 MIT 교통연구센터 연구자는 “정전 같은 상황에서 로봇택시들이 도시에 대량으로 깔려 있을 때, 어느 수준까지 허용할지 규제 당국이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1.
흥미롭게도, 같은 시각 일론 머스크는 X(옛 트위터)에 이렇게 썼습니다.
“Tesla Robotaxis were unaffected by the SF power outage.”14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테슬라는 아직 샌프란시스코에서 ‘완전 무인’ 로봇택시 서비스를 운영하지 않습니다.
지금 테슬라가 제공하는 것은 항상 운전자가 탑승해 있어야 하는 “FSD(감독 필요)” 기반 서비스이고, 캘리포니아 규제당국은 테슬라에 ‘무인 주행 서비스 허가’를 내주지 않은 상태입니다1.
결국 이번 사건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웨이모는 완전 무인 로봇택시를 실제로 돌리면서 ‘현실의 리스크’를 먼저 맞고 있다.
그만큼 문제도 더 빨리 드러나고, 개선의 압박도 더 크다.
동시에, 도시와 규제기관은 “얼마나 많은 로봇택시를 허용할지”라는 새로운 숙제를 떠안게 됐다.
5.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완전 자율주행’ 시대를 보는 현실적인 시각
이제 마지막으로, 이 사건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을 짚어 보겠습니다.
첫 번째, “완벽한 AI 운전자는 아직 없다”는 점입니다.
웨이모는 신호등이 꺼진 상황을 법규 그대로 처리하도록 설계했고, 추가로 사람 운영자와 상의하는 안전장치까지 붙였습니다.
종이 위에서는 매우 모범적인 설계였지만, 실제 도시에서는 그 ‘모범답안’이 오히려 혼란을 키워 버렸습니다.
AI가 사람보다 잘하는 영역이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정전처럼 드물고 복잡한 사건에서는 여전히 인간의 직관과 유연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 셈입니다.
두 번째, 기술만큼 중요한 건 ‘인프라와 제도’라는 점입니다.
자율주행차는 도로, 신호등, 통신망, 전력망, 규제 시스템 등 온갖 인프라 위에서 돌아갑니다.
이번 사건처럼 전력망이 한 번 삐끗하면, 도로 위의 첨단 로봇도 함께 휘청일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자율주행을 도입하려는 도시라면, 단순히 “차를 허용할지 말지”가 아니라
대규모 정전·재난 시 로봇택시는 어떻게 운행을 제한할 것인지
어느 시점에, 어떤 구역에서 강제 회수를 명령할 것인지
책임 소재(사고, 교통 마비 등)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
까지 함께 설계해야 합니다.
세 번째, 신뢰는 숫자가 아니라 ‘위기 대응’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입니다.
웨이모는 이미 수백만, 수천만 번의 운행 데이터를 쌓았고, 주당 수십만 명이 실제로 로봇택시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건 “통계적으로 안전했다”는 숫자보다,
“정전 났을 때 교차로 한복판에서 길을 막고 서 있던 그 차”입니다.
웨이모가 이번 사건 이후
소프트웨어를 빠르게 업데이트하고
비상 프로토콜을 손보고
도시와의 협업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567.
앞으로 자율주행 서비스를 이용할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 회사가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보는 것이
“이 회사가 몇 백만 km를 사고 없이 달렸는가”만큼이나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것입니다.
시사점 정리
이번 샌프란시스코 정전 사태는 로봇택시의 미래를 비관적으로만 볼 이유도, 낙관적으로만 볼 이유도 동시에 없다는 걸 보여줍니다.
웨이모는 거대한 도시에서 완전 무인 로봇택시를 실제로 돌리는 거의 유일한 플레이어입니다.
그 덕분에 ‘현실 세계의 버그’가 이렇게 대형 사건으로 튀어나오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이런 사건을 통해 기술과 제도가 함께 성숙해 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자율주행 시대를 준비하는 도시와 기업, 그리고 사용자 입장에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제 조금 더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자율주행차가 완벽해지면 어떻게 될까?”가 아니라,
“완벽하지 않은 자율주행차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이번 웨이모의 정전 사태와 서비스 재개는,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한 첫 번째 리얼 테스트에 가까웠습니다.
이후 어떤 업데이트와 정책 변화가 이어질지, 그리고 다른 도시들이 이 사례를 어떻게 참고할지 지켜볼 만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참고
5Waymo explains why its robotaxis got stuck during the SF black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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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Waymo robotaxis stop in the streets during San Francisco power outage
2Power outage paralyzes Waymo robotaxis when traffic lights go ou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