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슈미트가 본 AI·바이오·국가 경쟁의 미래
핵심 요약
AI와 바이오의 결합은 신약 개발, 세포 모델링 등에서 산업 구조 자체를 바꿀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바이오 테러와 초지능 같은 심각한 위험도 키운다. 에릭 슈미트는 이를 둘러싼 기술·인프라·인재·국가 경쟁 구도를 설명하며, 미국의 연구 투자 축소와 정책 혼선이 가장 큰 리스크라고 강조한다.
AI와 바이오의 결합: '로봇 실험실 + AI 모델'이라는 미래 공장
에릭 슈미트가 제시한 대표적인 AI·바이오 융합 사례는 "AI 모델 + 로봇이 자동으로 돌아가는 웻랩"이다.
한 연구 그룹은 먼저 화학을 이해하는 대규모 AI 모델을 만들고, 이 모델을 로봇 실험실과 연결했다. AI는 새로운 약 후보를 스스로 가설 형태로 생성하고, 로봇 실험실은 밤새 자동으로 실험을 수행한 뒤 결과를 다시 AI에게 돌려준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인간 연구자가 일일이 설계·실험·분석하던 사이클이 크게 압축된다. 이 그룹의 목표는 "2년 안에 인간이 표적화할 수 있는 모든 약물 표적을 식별하는 것"인데, 만약 실현된다면 제약 산업 전체의 출발점이 완전히 바뀐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AI는 "어디를 탐색해야 할지"를 좁혀주는 검색 공간 축소 엔진 역할을 한다. 둘째, 실험실은 점점 인간 손이 아닌 로봇 팔과 자동화 설비가 24시간 돌아가는 공장처럼 변해간다.
앞으로의 바이오 연구 현장은, 사람 중심의 '장인 연구실'에서 AI·로봇이 함께 일하는 '자동화 공장형 연구실'로 구조가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바이오 산업의 숨은 병목: '스케일 업'과 죽음의 계곡
슈미트는 AI보다 오히려 "바이오 제조를 키우는 기술과 인프라"가 더 큰 병목이라고 강조한다.
바이오 스타트업들은 실험실 규모에서는 흥미로운 성과를 내지만, 이를 산업 규모로 확대할 때 큰 벽에 부딪힌다. 배양 탱크(발효조)는 얼마나 필요하고, 어떤 공정으로 얼마나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지, 공장·설비·공급망을 어떻게 구축할지 등 '스케일 업 공학'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기업이 실험실에서는 성공했지만, 대량생산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자금 조달과 경제성이 맞지 않아 무너진다. 이 구간을 흔히 "죽음의 계곡"이라 부르며, 슈미트는 보고서의 핵심 권고가 바로 이 구간을 넘기 위한 제조 과학과 인프라 투자라고 말한다.
즉, 바이오 혁신은 더 똑똑한 실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실험실에서 나온 결과를 싸고 많이 만들 수 있는 공학·공장·금융 구조가 함께 따라붙어야 한다.
AI는 과대평가가 아니라 '과소평가'되어 있다
슈미트는 "AI는 과대포장된 게 아니라 오히려 과소평가되어 있다"고 말한다. 언론은 챗GPT 같은 대화형 서비스에 집중하지만, 그건 이미 지난 세대 이야기라는 것이다.
현재 큰 변곡점은 세 가지 방향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첫째, 언어 모델의 안정적 성능 향상(더 큰 모델, 더 많은 데이터, 더 많은 연산). 둘째, 강화학습을 통한 '계획·추론' 능력의 등장. 셋째, 프로그래밍·수학 같은 형식적 작업에서 인간 상위 수준 성능에 도달할 조짐이다.
특히 강화학습 기반 모델들은 문제를 풀 때 여러 가지 시도와 되돌리기를 반복하며 '결정 트리'를 따라 탐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인간이 문제를 풀 때 가지를 뻗어가며 시행착오를 경험하는 방식과 닮아 있다.
이런 방식은 더 이상 단순한 "문장 다음 단어 맞추기"를 넘어서, 복잡한 목표를 향해 단계적으로 계획하고 조정하는 능력으로 진화하고 있다. 슈미트가 보기에, 지금 논의되는 AI의 모습은 이 거대한 변화의 "서막"에 불과하다.
1년·3년·6년: 프로그래머, AGI, 초지능에 대한 타임라인
슈미트가 소개한 실리콘밸리(그가 "샌프란시스코 컨센서스"라 부르는) 내부 전망은 꽤 공격적이다.
그는 1년 안에 대부분의 프로그래밍이 AI가 주도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본다. 이미 많은 연구 기관에서 연구용 코드의 10~20% 정도를 AI가 생성하고 있으며, 이 비율이 빠르게 올라가는 중이다.
또한 1년 안에 최고 수준 대학원생급 수학 능력을 가진 AI가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공유된다. 수학은 인간 언어보다 구조가 단순하고 형식화되어 있어, AI가 학습하고 증명·추론을 자동화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 흐름이 3~5년 정도 이어지면, 특정 분야의 최고 전문가 수준을 한 시스템 안에 묶어놓은 "AGI(일반 인공지능)"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여기서 AGI는 분야별 '최고 수준 인간'의 종합판에 가깝다.
더 나아가 컴퓨터가 자기 자신을 개선하는 비율이 커지면, 인간 집단 전체보다 뛰어난 지능체, 즉 "ASI(초지능)"에 도달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제기된다. 슈미트가 인용한 실리콘밸리 내부의 대략적 예상은 "6년 안팎"이다.
그는 이 일정이 정확하다고 단언하지는 않지만, 방향과 속도에 대한 진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에이전트와 일의 재구성: "모두가 실직한다"는 오해
슈미트가 그리는 가까운 미래의 업무 모습은 "에이전트(agent)"라는 개념으로 설명된다. 에이전트란 입력과 출력, 기억을 가지고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스스로 학습하는 소프트웨어 단위를 뜻한다.
예를 들어 집을 사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조건에 맞는 땅을 찾는 에이전트, 법·규제를 검토하는 에이전트, 계약을 진행하는 에이전트, 설계를 돕고 시공사를 찾는 에이전트 등으로 쪼갤 수 있다. 각 에이전트가 서로 연동되면, 현재 사람과 사무실이 나눠 맡는 복잡한 행정·비즈니스 프로세스를 상당 부분 자동화할 수 있다.
이 논리는 부동산뿐 아니라 기업 프로세스, 정부 행정, 학문 연구 과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래서 "프로그램만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지식 노동 전반이 재구성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다만 슈미트는 이를 곧바로 "대량 실업"과 직결시키지는 않는다. 역사적으로 자동화는 직무를 바꿔왔지만, 결국 새로운 유형의 일자리와 산업을 더 많이 만들어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관건은 사람과 제도가 얼마나 빨리 역할을 재설정하느냐라고 본다.
미국 vs 중국: 칩 규제, 오픈소스, 네트워크 효과 전쟁
AI·바이오 경쟁은 본질적으로 국가 간 산업·안보 경쟁과 연결된다. 슈미트는 특히 중국을 주요 경쟁자로 묘사한다.
미국은 첨단 칩 수출 통제를 통해 중국의 AI 발전 속도를 늦추려 했다. 하지만 중국 측은 제재를 회피하거나 새로운 알고리즘으로 다른 형태의 컴퓨팅 자원을 활용하며 빠르게 따라붙고 있다. 또한 중국의 대표적인 오픈소스 모델들은 전 세계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 기술이 빠르게 확산된다.
흥미로운 점은, 중국이 오픈소스로 공개한 알고리즘이 곧바로 미국 기업들에도 흡수된다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기술적으로 이득이지만, 동시에 "위험한 모델"이 전 세계로 퍼지는 확산 문제를 키운다.
AI는 "네트워크 효과"가 강한 산업이기 때문에, 한 번 승자가 결정되면 지배력이 압도적으로 쏠릴 수 있다. 슈미트는 만약 어느 한 국가가 다른 국가보다 몇 개월~1년 정도 먼저 초지능을 확보하면, 전 세계 지능 인프라의 90% 이상을 독점할 수 있는 상황을 상정한다.
그때 뒤처진 국가는 사이버 공격, 지식재산 절도, 모델 교란(적대적 공격), 심지어는 물리적 데이터센터 공격까지 고려할 수 있는 안보 위기로 내몰릴 수 있다. 이것이 그가 "눈 바늘 구멍(eye of the needle)을 안전하게 통과해야 한다"고 표현하는 이유다.
바이오 보안: AI가 잘못 쓰이면 '공격이 방어보다 유리'
바이오 영역에서 AI가 낳는 가장 큰 위험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새로운 병원체 설계 또는 기존 바이러스의 위험도 상승 변형. 둘째, 감시·진단 시스템을 피해 가도록 설계된 변이체 생성이다.
현재는 오픈소스 모델에 안전장치를 두고 위험한 합성 실험 프로토콜 등은 답변하지 않도록 막고 있다. 그러나 이 안전장치는 비교적 쉽게 우회될 수 있고, 모델이 충분히 강력해지면 악의적 사용자가 위험한 설계를 얻는 것이 가능해진다.
다만 지금 단계에서 실제로 치명적인 병원체를 설계하고, 생산하고, 대량으로 퍼뜨리는 것은 높은 기술과 인프라가 필요한 국가 수준의 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개인 테러리스트가 당장 그 수준에 도달하기는 아직 어렵다는 것이다.
문제는 '공격이 방어보다 유리한 구조(offense-dominant)'라는 점이다. AI를 이용해 방어·치료제 개발도 빠르게 할 수 있지만, 치명적인 공격이 한번 성공하면 피해는 회복 불가능에 가까울 수 있다. 그래서 단순히 "AI로 방어도 같이 세우면 되지 않느냐"는 낙관론에 대해, 슈미트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미국 과학 연구의 위기: 간접비 논란과 인재 유출
슈미트가 가장 격앙된 어조로 비판한 부분은 미국 정부의 연구비 정책 변화다.
미국 대학 연구비에는 연구자 인건비·소모품 등 직접비뿐 아니라 건물, 장비, 행정 인력 같은 인프라 비용을 포함한 간접비(오버헤드)가 있다. 역사적으로 이 간접비는 꽤 높은 비율(특히 바이오 분야는 65~85%)로 책정되어 왔는데, 최근 이를 일괄적으로 15% 수준으로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겉으로는 "대학이 과도하게 건물을 짓는다"는 식의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 구조상 연구 인프라가 모두 간접비에 들어가기 때문에, 이는 곧 대규모 예산 삭감과 같다. 당장 많은 대학이 연구비 불확실성 때문에 신규 채용을 멈추고 있고, 젊은 연구자는 기업으로 빠져나가거나 해외로 떠날 유인이 커지고 있다.
슈미트는 이것을 "과학 전체에 대한 공격"에 가깝다고 본다. 미국의 높은 1인당 소득과 산업 경쟁력은 결국 과학·기술·창업 생태계에서 나왔는데, 그 뿌리인 대학 연구 지원을 흔드는 것은 중국 등 경쟁국이 막대한 투자를 하는 시점에서 치명적인 자해 행위라는 것이다.
민간 자선이 일부 메울 수는 있지만, 정부 예산 규모와의 격차가 너무 커 완전한 대체는 불가능하다고 그는 지적한다.
데이터와 신뢰성: 좋지 않은 데이터 vs 악의적으로 조작된 데이터
AI의 힘은 결국 데이터에서 나온다. 하지만 모든 데이터 문제가 같은 수준의 위험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노이즈가 있는 데이터"라면, AI는 통계적 기법으로 어느 정도 평균을 맞추고 오류를 줄일 수 있다. 문제는 악의적으로 조작된 데이터, 즉 출처와 생산 과정을 알 수 없거나 의도적으로 왜곡된 데이터다.
현재 많은 공개 데이터베이스는 누구나 입력을 추가할 수 있지만, 실제로 누가 어떤 조건에서 데이터를 생산했는지에 대한 검증이 약하다. 이 상태에서 AI가 무차별 학습을 하면, 조작된 정보가 '사실'처럼 내장되는 위험이 있다.
바이오 분야에서는 여전히 데이터 자체가 부족하다는 구조적 문제도 있다. 세포 수준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과정에 대한 정밀 데이터가 누적되어야만, 신뢰도 높은 예측과 설계가 가능하다. 그래서 실험 데이터를 표준화된 형식으로 공유하고, 재현 가능성을 검증하며, 출처를 명확히 기록하는 작업이 점점 더 필수적이 된다.
최근에는 엔트로픽이 제안한 MCP(Model Context Protocol) 같은 기술을 통해, 모델이 다양한 데이터 소스의 구조를 자동으로 해석하고 질의할 수 있게 하는 시도가 진행 중이다. 이는 데이터 연결의 기술적 장벽을 낮추지만, 동시에 데이터 출처와 신뢰성 관리의 중요성을 더 키운다.
AI·바이오가 여는 긍정적 미래: 세포 모델링과 질병 정복 가능성
어두운 위험에도 불구하고, 슈미트는 AI·바이오가 장기적으로 의료와 생명과학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본다.
그는 특히 "디지털 세포 모델링"을 중요한 분기점으로 꼽는다. 현재까지도 하나의 세포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반응하고 변화하는지를 완전히 디지털로 시뮬레이션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유전체·전사체·단백질·대사체 데이터를 결합하고, AI로 패턴을 학습시키는 연구가 빠르게 진전 중이다.
세포 간 신호를 마치 언어처럼 해독하는 시도도 진행되고 있다. 만약 세포 언어의 '문법'과 '어휘'를 잘 이해하게 된다면, 암·면역질환·노화 등 난치 영역을 훨씬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는 신약과 치료법이 등장할 수 있다.
슈미트는 "10년 뒤에는 아무도 이 시스템의 내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연구자들은 매일 그것을 쓰고 있을 것"이라고 비유한다. 양자역학이 처음 나왔을 때 직관과 어긋나 보였지만, 지금은 누구나 그 위에 반도체·레이저·통신 기술을 올려 쓰는 것처럼, AI·바이오도 그렇게 일상의 기반 기술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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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바이오의 결합을 이해할 때, 단순히 "AI가 실험을 빨리 도와준다" 정도로 보면 핵심을 놓치기 쉽다. 실제로는 실험 설계·실행·분석·제조·규모 확장까지 전체 파이프라인이 재구성되고 있고, 이는 연구 문화·산업 구조·국가 전략을 동시에 흔들고 있다.
학습·연구·사업 측면에서 현실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포인트는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최소한의 AI 리터러시(프로그래밍 도구로서의 LLM, 강화학습·에이전트 개념)를 익혀 어떤 일을 맡기고 어떻게 검증할지 판단하는 역량을 키우는 것. 둘째, 데이터 품질·출처·보안의 중요성을 감각적으로 익혀 "어떤 데이터 위에 쌓인 결과인지"를 항상 묻는 습관을 들이는 것. 셋째, 기술 자체만큼이나 제도·규범·안보 논의를 따라가며, 자신의 전문성이 어디서 가장 큰 사회적 가치를 낼 수 있는지 계속해서 위치를 재조정하는 것이다.
AI·바이오 혁신이 만들어낼 변화는 너무 크고 복잡해서 한 번에 모두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처럼 초기 단계일 때 기본 개념과 구조를 잡아두면, 앞으로 나오는 뉴스·연구·정책을 훨씬 더 잘 해석하고 활용할 수 있다.
출처 및 참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