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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베이스와 운영체제의 절묘한 만남, Pick OS의 모든 것

요약

데이터베이스와 운영체제, 둘 다라고? 1960년대 탄생한 독특한 소프트웨어 ‘Pick OS’는 당신이 상상하던 데이터 관리의 모든 경계를 허문 존재입니다. SQL, UNIX, 또는 MS-DOS보다 먼저 만들어진 Pick OS는 지금은 잊혀진 이름이지만, 당대에는 개발자들의 열광적 팬을 거느렸던 혁신의 상징이었습니다. 이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특별한 구조와 철학, 그리고 오늘날까지 남은 영향력까지 흥미진진하게 풀어봅니다.

미군 프로젝트에서 출발한 혁신의 씨앗

1965년, 미 육군은 베트남전과 관련된 신형 공격 헬리콥터 ‘Cheyenne’ 개발 프로젝트에서 부품 관리의 복잡한 과제에 직면합니다. 언어 장벽 없이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으면서도, 다양한 하드웨어에서 유연하게 동작하는 데이터 시스템이 필요했습니다. 개발을 맡은 TRW사는, 프로그래머 Don Nelson과 MBA 출신의 Richard Pick(이후 Pick OS의 창시자)을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죠. 이들이 만든 시스템은 곧 데이터관리 혁신의 표본이 됩니다.

세상에 없던 영어 같은 데이터 질의, GIRLS와 GIM의 탄생

처음에는 'GIRLS(Generalized Information Retrieval Language System)'라는 장난스러운 이름이 붙었지만, 군 당국의 요구로 'GIM(Generalized Information Management)'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GIM의 가장 놀라운 특징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영어 형태로 데이터를 조회할 수 있었던 ‘프로즈형 쿼리 언어’였습니다. 예를 들어 “LIST THE TITLE AUTHOR AND ABSTRACT…”처럼 완전한 문장으로 데이터를 요청할 수 있었죠. 이런 방식은 오늘날의 NoSQL, MongoDB 등과 닮아있으며, 실제로 그와 같은 유연성을 60년대에 이미 구현한 셈입니다.

하드웨어 제약에서 벗어난 가상화의 원조

GIM의 또 다른 혁신은, 미정의 하드웨어에서도 작동할 수 있도록 ‘가상 소프트웨어 환경’(일종의 초기 가상머신)을 도입한 것이었습니다. IBM 메인프레임뿐 아니라 여러 플랫폼에서 데이터를 자연스럽게 다룰 수 있게 만든 덕분에, 이후 Pick OS는 다양한 컴퓨터 환경에 손쉽게 포팅될 수 있었습니다.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개념은 당시로선 매우 파격적이었습니다.

인수, 소송, 그리고 Pick OS의 독자적 진화

TRW가 소프트웨어 저작권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면서 Pick OS는 사실상 공공재가 되었고, Richard Pick은 이를 기반으로 독자적인 사업을 시작합니다. 이후 Microdata라는 컴퓨터 회사와 협력하여 ‘REALITY’ 미니컴퓨터에 Pick OS를 탑재하기도 했죠. Pick은 궁극적으로 하드웨어 대신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사업에 집중하며, Honeywell 등 여러 기업에 Pick OS를 공급하며 시장을 확장합니다. 이 과정에서 소송과 협상, 브랜드 분화 등 드라마 같은 사건들이 이어졌습니다.

Pick OS만의 독특한 데이터 구조와 파일관리

Pick OS의 데이터베이스는 오늘날의 SQL DB처럼 테이블에 나누는 방식이 아니라, 계층적이고 유연한 레이어 방식으로 정보를 관리했습니다. 각 사용자는 시스템-마스터 딕셔너리-데이터 딕셔너리-파일 순으로 깊이 내려가며 필요한 데이터를 다루었죠. 아이템, 속성, 값, 서브값 등 세분된 구조 덕분에, 사용자마다 완전히 다른 형태의 데이터를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극도의 유연성, Multivalue 필드와 자유자재 데이터

Pick OS에서는 모든 데이터가 ASCII 텍스트로 저장되고, 한 필드에 여러 값(예: 전화번호 3개)을 콤마나 특별한 문자로 구분하여 한 번에 입력할 수 있었습니다. 길이 제한도 없었고, 원하면 숫자든 날짜든 언제든지 가공 가능한 자유도가 보장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유연성이 종종 버그나 실수의 원인이 되는 동시에, 대기업의 복잡한 업무엔 대단히 실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Pick BASIC, 데이터와 한 몸이 된 프로그래밍

Pick OS에는 자체 개발 언어 ‘Pick BASIC’이 포함되어, 수천종의 업무용 패키지 제작이 가능했습니다. 쉽고 직관적이며, 데이터베이스와의 통합이 강력한 Pick BASIC 덕분에 비전문가도 효율적으로 데이터 처리 프로그램을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Pick BASIC은 코드의 자유투와 응용 폭에서 프로그래머들의 틀을 깨주었고, “데이터 관리의 벽이 사라졌다”고까지 평가됐습니다.

비즈니스 시장을 사로잡은 이유와 UNIX와의 차별성

Pick OS는 ‘데이터 관리 중심의 운영체제’라는 컨셉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모든 문제는 결국 데이터 관리의 문제”라는 창립자 Richard Pick의 철학은, 각종 보고서 생성과 하드웨어 독립성에서 최적의 도구로 인정받았습니다. UNIX가 개발자와 해커들을 위한 도구였다면, Pick OS는 기업용 데이터 관리에 특화되었죠. 이용자들은 Pick OS를 종교처럼 찬양하며, 제품에 대한 애착을 보였습니다.

브랜드 분화와 오픈 시장의 한계

Pick OS 라이선스 고객들이 각자 브랜드와 커스터마이징을 하면서, Mentor, Zebra, Revelation 등 다양한 이름으로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이는 소프트웨어의 생태계를 넓혀줬지만 동시에 ‘Pick OS’라는 정체성은 희미해졌고, 개발사/통합사/유통사의 경쟁과 분화로 인한 혼란도 심화됩니다. UNIX와 비슷하게 ‘조각난 생태계’의 함정에 빠진 셈이죠.

PC 시대, 멀티유저 혁명과 시장 성장

IBM PC와 MS-DOS의 등장 이후에도, Pick OS는 뛰어난 멀티유저 지원(여러 직원이 동시에 한 PC에서 작업)을 무기로 폭풍 성장합니다. 비싼 메인프레임 없이도 여러명이 동시에 데이터를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이 각광받았고, 1980년대에는 매해 40%씩 설치 수가 증가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새로 등장한 PC 포트 버전의 독점 판매 정책은 라이선스 고객들과의 갈등을 부르고 말았죠.

GUI 시대의 도전과 기술 흐름에 뒤처진 Pick OS

90년대 들어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 없이 명령어 입력만 지원하는 Pick OS는 시장에서 점차 도태됩니다. Windows 3.0의 인기와 함께, 사용 편의성이 중요해지면서 Pick OS의 입지는 급격히 줄어듭니다. Pick OS는 UNIX와의 통합, 신규 GUI 계획 등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지만, 본질적으로 ‘고전적 데이터베이스 관리 플랫폼’으로 머물게 되었습니다.

창립자 Richard ‘Dick’ Pick, 열정과 고집의 빛과 그림자

Richard Pick은 회사를 평생 개인 소유로 유지하며, 대기업이나 투자자와의 협력을 거부했습니다. 이런 장인정신은 Pick OS의 독립성과 혁신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동시에 시장 확대와 마케팅, 방향성 면에서 한계를 자초했습니다. “PC는 장난감”이라며 불신하거나, 광고를 줄이는 등 고집스러운 결정들이 결국 성장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Pick OS의 오늘, 그리고 남은 유산

Richard Pick은 1994년 갑작스러운 세상을 떠났고, 이후 Pick Systems도 다양한 합병과 재편을 겪으며 Rocket Software에 흡수되었습니다. NoSQL과 같은 최신 기술에 밀려 지금은 일부 기업만이 Pick OS를 사용하는 수준이지만, 데이터베이스 혁신의 뿌리고 이정표로 Pick OS가 남긴 족적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혹시 Pick OS를 사용해봤거나 개발 경험이 있다면, 그 소중한 이야기를 공유해 주세요. 시대를 앞서간 데이터 관리 철학이 오늘날에도 여러 형태로 살아 숨 쉬고 있으니까요.


단순한 운영체제나 데이터베이스가 아니라, ‘세상을 데이터로 풀다’는 철학과 유연성을 담았던 Pick OS의 역사는 지금까지도 많은 기술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기술이 변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 중심에 Pick OS가 있었던 건 아닐까요? 데이터 관리와 시스템 설계에 관심 있다면, 한 번쯤 Pick OS의 정신을 되새겨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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