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장애를 다시 보다: 관계 속에서 이해하는 새로운 정신의학 패러다임

이번 글은 성격장애를 기존의 '개인 내면의 결함'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동적 현상'으로 바라봅니다. 글의 첫 부분에서는 성격장애가 사실상 '관계장애'임을 제시하고, 이어서 기존 성격장애 모델의 한계를 짚으며 왜 관계적 접근이 필요한지 설명합니다. 이후 컴퓨테이션 정신의학의 최신 연구를 통해 성격장애를 '관계의 오류'로 바라보는 논리를 소개하고, 정신화 이론을 연결해 이 오류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살펴봅니다. 이어서, 어린 시절 관계 경험과 컴퓨테이션적 오류가 성격장애를 어떻게 발생시키는지 설명하고, 치료가 결국 '관계의 질'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밝힙니다. 마지막으로 '자기-관계'와 '타인-관계'의 구분을 통해 진단 및 치유의 핵심을 정리하며, 전체적으로 각 파트가 관계의 중요성을 중심으로 어떻게 유기적으로 이어지는지 구조를 제시합니다.
성격장애, 실제로는 ‘관계장애’일지도 모른다
성격장애란, 한 개인의 내면적 특질에서만 비롯된다고 여겼던 기존 이론에서 벗어나, 지금은 ‘관계장애’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헤겔과 프로이트 등 고전 철학과 정신분석의 통찰은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정체성이 사실은 타인과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어린 시절 안정적인 돌봄 관계가 있었던 사람은 스스로를 가치 있게 여기고,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반면, 불안정하거나 결핍된 관계는 이후 심리적·정서적 문제로 이어지곤 하죠. 결국 성격장애의 진짜 본질은 ‘나와 타인의 관계 맺기 방식’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최근 연구들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왜 기존 성격장애 모델은 한계를 가질까?
전통적인 성격장애 진단이나 모델링은 주로 ‘묘사’에 집중해왔습니다. 문제의 중심을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왜 그리고 어떻게 이런 문제가 생기는지 설명하는 데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정체성, 대인관계, 인생 방향에서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왜 그런 문제가 시작되고 지속되는지 깊이 있게 해석하지는 못하지요. 기존 모델들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거나 변수가 제한되어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컴퓨테이션 정신의학: 성격장애를 ‘관계의 오류’로 풀다
새로운 패러다임에서는 성격장애를 ‘오작동하는 관계의 컴퓨테이션’으로 풉니다. 컴퓨테이션 정신의학이란, 인간의 심리를 데이터와 연산 과정처럼 분석하는 방법입니다. 이 접근법에 따르면, 우리의 정서적 고통이나 대인관계 문제는 자기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해석하는 방식에 ‘오류’가 생기면서 발생합니다. 불안은 위협을 ‘과장해서 계산’하는 오류, 현실 오판은 ‘의미 부여의 착각’ 등으로 설명할 수 있죠. 이런 컴퓨테이션적 모델을 적용하면, 성격장애 역시 ‘자기-타인 관계에 대한 추론의 오류’로 볼 수 있습니다.
성격장애의 핵심 원리: ‘정신화’와 의미 해석의 균형
이론적으로, 성격의 본질은 자기 자신과 타인을 바라보고, 서로를 해석해가는 과정(정신화, mentalizing)에 있습니다. 건강한 정신화란, 자신과 타인의 생각·감정·욕구를 적절히 추론하며 관계 맺기에 활용하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은 이 과정에 효과적인 균형을 맞추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 ‘내면’만 해석하거나(내적 정신화), 반대로 ‘겉모습’만 보려는(외적 정신화) 극단적 추론 방식이 문제가 됩니다. 결국, 정신화의 왜곡이 성격장애의 중심에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성격장애의 발생: 어린 시절 관계 경험과 컴퓨테이션의 오류
성격장애가 어떻게 생기는지 궁금하다면, 어린 시절의 양육 환경을 떠올려봐야 합니다. 초기 돌봄자가 안정적이면 아이는 자기와 타인을 균형 있게 이해하고 긍정적으로 관계를 맺습니다. 반대로, 돌봄자가 일관성 없이 극단적으로 대하거나, 혼란스럽게 반응한다면, 아이는 자기 자신과 타인을 극단적(과도하게 좋거나 안 좋게) 또는 비현실적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이런 ‘내면화 과정’이 개인의 관점과 대인관계 방식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죠. 더 나아가, 이미 왜곡된 대인관계 방식은 주변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강화되기도 합니다.
성격장애의 치료, 관계의 질에서 시작된다
성격장애를 실제적으로 개선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관계의 질’에 달려 있습니다. 치료자는 환자의 부정적 반응이나 방어를 개인의 의도적 행동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과거 경험에서 비롯된 자동적 반응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환자가 치료자를 ‘타인’이라기보다 과거의 ‘그림자’처럼 다루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치료적 접근은 ‘진정성, 공감, 비판단적 태도’로 환자를 대하는 것에 있습니다. 이런 방식이 새로운 관계 경험을 제공하고, 환자가 스스로와 타인을 더 건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돕습니다.
‘자기-관계’와 ‘타인-관계’를 구분해서 이해할 것
성격장애의 진단과 치료를 위해선, ‘나는 스스로와 잘 지내고 있는가’와 ‘나는 타인과 잘 지내고 있는가’를 구분해서 파악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어떤 환자는 자기 성공에 집착하고 타인을 등한시하는 반면, 다른 환자는 타인의 인정 없이는 불안해하고 자기 자신을 무시합니다. 전자는 ‘자기-관계’에 어려움이, 후자는 ‘타인-관계’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죠. 각각에 맞춘 치료와 성장 전략이 필요합니다. 이를 현대 정신의학에서는 ‘자율성(autonomy)’과 ‘연관성(relatedness)’이라는 두 축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마무리하며: 성격장애, 끝내 ‘관계의 문제’로 돌아가다
최근 연구들은 성격장애를 개인의 고유한 결함이 아니라, 관계의 균형 문제로 바라볼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합니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오래된 통찰이 현대 과학의 언어로 되살아나고 있죠. 내면의 결함이 아니라, ‘자기-타인 관계를 맺는 방식’이 문제라는 인식은 치료와 사회적 이해 모두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합니다. 혹시 스스로나 주변에 성격장애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관계를 바꾸면 삶도 바뀐다’는 점을 꼭 기억해 보세요. 우리 모두의 내부에는, 과거와 타인에게서 배운 또다른 나와 가능성이 숨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