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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의 역사, 지리, 정치, 외교 개요

파키스탄의 역사, 지리, 정치, 외교 개요

파키스탄: 개요

파키스탄은 남아시아에 위치한 국가로 공식 명칭은 이슬람공화국 파키스탄(Islamic Republic of Pakistan)이다. 인구는 2억 4천만 명을 넘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으며, 무슬림 인구로는 세계 2위를 차지한다. 수도는 이슬라마바드이며, 최대 도시는 카라치다. 남쪽은 아라비아해와 오만만에 접하고, 동쪽으로 인도, 서쪽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란, 북동쪽으로 중국과 국경을 맞댄다. 지리적, 인구적, 전략적으로 남아시아의 핵심 국가로 꼽힌다.

명칭의 유래

'파키스탄(Pakistan)'의 명칭은 1933년 초우드리 라흐맛 알리가 처음 만들었다. 'Panjab', 'Afghania', 'Kashmir', 'Sindh', 'Baluchistan'의 이름에서 첫 글자를 취해 결합했고, 페르시아어와 우르두어로 ‘순수한 땅’을 의미한다.

역사 흐름

고대와 이슬람 도래

파키스탄 영역에는 메흐르가르(기원전 6500년), 인더스 문명 등 수많은 고대 문명이 번성했으며, 이후 아케메네스(페르시아)부터 무굴제국, 영국령 인도 제국까지 여러 제국의 지배를 거쳤다. 8세기 이슬람이 도입된 이후 남아시아 이슬람 문화권의 중심지가 되었다.

현대 국가의 탄생과 분리

20세기 초, 무슬림 인구의 정치적 대변과 자주권 요구가 두드러지면서 '파키스탄 운동'이 전개되었다. 1947년 인도와 분리독립할 때 무슬림 다수 지역이 파키스탄으로, 힌두교 중심 지역이 인도로 분할됐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인구 이주와 비극적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국가 발전과 도전

독립 후 영국식 의원 군주제에서 시작하여 1956년 헌법 제정과 함께 이슬람 공화국을 선포했다. 이후 지속적인 정치적 변동, 문민-군부 교체, 동파키스탄의 방글라데시 독립(1971), 무슬림 정체성과 이슬람 율법(shariah) 도입, 그리고 핵무장 등 굵직한 사건을 겪었다. 냉전기에는 미국, 이후에는 중국 등과 군사·전략 동맹을 강화했으나, 내부적으로는 빈곤·문맹·테러·부패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리와 환경

파키스탄은 88만 ㎢의 광대한 땅을 지니고, 북부 산악, 인더스 평원, 발루치스탄 고원으로 크게 나뉜다. 험준한 카라코람과 힌두쿠시 산맥에는 K2 등 세계적 고산이 있으며, 남쪽은 사막과 해안, 대규모 삼림(약 5% 미만의 산림율), 다양한 동식물이 존재한다. 기후는 열대에서 온대까지 남북에 따라 다양하며, 계절풍과 극심한 강수 변화로 잦은 가뭄과 홍수를 겪는다.

정치와 제도

국가 구조

파키스탄은 연방제, 의원내각제를 취하는 민주공화국이지만 군부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 국가원수는 대통령, 실질적 권한은 총리에게 있다. 의회는 양원제(상원, 하원)이고, 사법부는 대법원과 고등법원을 갖는다. 4개 주(펀자브, 신드, 카이버 파크툰크화, 발루치스탄), 3개 준주(이슬라마바드 특별구, 길기트-발티스탄, 아자드 카슈미르)로 구성된다.

이슬람의 정치적 역할

파키스탄은 이슬람을 기반으로 건국됐으며, 국가정체성과 정치제도에 꾸준히 이슬람 율법이 강조됐다. 1949년 ‘목표결의’와 1973년 헌법에 따라 ‘국가는 이슬람 공화국이고, 모든 법은 쿠란과 순나(선지자 언행)에 부합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신정을 지향하는 세력과 세속주의, 지역주의 간의 갈등이 정치적으로 지속된다.

외교와 안보

외교 정책

파키스탄은 독자적 외교 노선을 추구해왔으며, 핵 보유(Full spectrum deterrence)를 통한 안보 확보, 카슈미르 분쟁 등 인도와의 갈등, 무슬림 국가들과의 연대, 그리고 중국과의 ‘철우의 우정(Iron Brother)’을 중시한다. 미국, 서방국가, 러시아,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양한 관계를 모색해왔으나, 지역 안보와 전략·종교적 변동성에 따라 파키스탄의 외교 지향도 변화한다.

카슈미르 분쟁

카슈미르(히말라야 산악지대)는 1947년 분리 이후 인도, 파키스탄, 중국 3국이 부분적으로 혹은 전면 지배권을 주장하며 4차례 이상 전쟁과 국지분쟁을 겪고 있다. 국제사회는 현재 분쟁지역의 국경선을 실상적 경계선(Line of Control)으로 인정하고 있으나, 주민 투표 등 영구적 해결은 여전히 요원하다.

군사력

파키스탄 무장세력은 세계 7위 규모(66만 정규병, 약 29만 준군사 조직, 2024년 기준)로, 국내 정치와 안보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육군, 해군, 공군과 다양한 준군사 조직이 있으며, 국방력 증강과 핵 억제력을 중시한다. 평화유지군 파병, 아프간 무자헤딘 지원, 대테러전 등 국제 안보에서도 적극적 역할을 해왔다.

경제와 인프라

파키스탄은 PPP 기준 세계 24위, 명목 GDP 기준 43위의 경제 규모를 가지고 있다. 농업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변화했고, 인구의 상당수가 농업에 종사한다. 카라치와 펀자브의 산업화가 두드러진 반면 발루치스탄 등은 저개발 상태다.

면화, 밀, 설탕, 유제품 등 농산물이 있고, 섬유산업·건축자재(시멘트)·중공업 등이 성장해왔다. 서비스업(IT, 통신, 금융 등)이 최근 성장의 동력이 되고 있다. 그러나 빈부 격차, 복지 미비, 만성적인 에너지 부족과 공공서비스 불안, 중동 등에서의 해외 노동이 주요 외화 수입원이라는 한계가 여전하다.

교통 및 에너지

전국적으로 고속도로와 항만, 도시 대중교통(BRT, 메트로)이 발전 중이다. 핵발전 및 수력, 화석연료 중심으로 전력원이 구성된다. 특히 중국의 대규모 투자(CPEC)는 인프라와 경제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인구와 사회

2023년 인구는 2억 4천만 명 이상이며, 빠른 인구 증가와 도시화가 특징이다. 젊은 인구 비율이 높고, 카라치·라호르가 초대도시로 성장했다. 75~85개의 언어와 다양한 민족이 공존한다. 주요 언어는 우르두어(공용어)와 영어이며, 펀자브어, 파슈토어, 신디어 등 지역어도 활발히 사용된다.

이주와 해외동포

분할 이후 인도, 아프간, 방글라데시, 미얀마 등에서 유입된 이주민이 많다. 특히 아프가니스탄 분쟁에 따른 난민 유입이 컸으며, 수백만의 파키스탄계 해외동포가 중동·유럽·북미 등에 거주하면서 상당한 외화 송금원이 되고 있다.

종교

이슬람(96% 이상)이 국교로, 국가정체성의 중심이다. 수니파 중심이나 시아파, 소수 자파, 수피즘 등이 존재하며, 인도 기원 신앙인 힌두교(2%대)와 기독교(1%대)도 주요 소수 종교다. 일부 지역에서는 조로아스터, 시크교, 불교, 카라쉬족의 애니미즘 등 다양한 신앙이 이어진다.

교육과 문화

파키스탄은 의무 초·중등교육 체계를 채택하고 있으나, 문해율(약 62%)과 교육 예산 비중은 낮다. 대학과 종교학교, 직업교육기관이 혼재하며, 여성 및 지역별 교육 격차가 크다. 말랄라 유사프자이 등 교육 권리 신장 운동 또한 사회적 이슈다.

문화적으로는 확연한 위계와 공동체 중심의 전통이 강하다. 샬와르 카미즈는 파키스탄 전역의 전통의상이고, 각 주·민족별로 독자적 의복, 음악, 음식, 건축, 문학유산이 풍부하다. 건축은 인더스 문명, 불교, 이슬람, 무굴, 영국식, 현대 양식이 다양하게 섞여 있다.

예술, 언론, 스포츠

과거 국영매체가 우세했으나, 21세기 들어 사설 언론과 방송, 영화(롤리우드) 산업이 성장했다. 언론의 자유는 군부 및 정부 비판 등에 제한이 존재하지만, 그 영향력은 지속되고 있다.

문학은 우르두어, 펀자브어, 신디어 등 다양한 언어로 시·소설·수피 시가 등 다채롭게 이어진다. 요리문화는 영국·무굴·중앙아시아·중동의 영향을 녹여내 스파이스와 다양한 음식이 발달했다.

스포츠는 크리켓이 가장 인기가 많고, 하키, 축구, 스쿼시 등도 사랑받는다. 국제대회에서의 강점과 다양한 스포츠 문화가 공존한다.

마침

파키스탄은 종교와 전통, 다양성, 젊음, 지속되는 도전이 교차하는 국가다. 불안정과 역동성이 공존하며, 내적·외적 변화와 개발 속에서 남아시아와 세계정세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중견국(middle power)이다.


본 포스트는 Wikipedia의 문서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Pakist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