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키어 스타머: 영국 노동당 총수에서 총리까지

키어 스타머: 영국 노동당 총수에서 총리까지

키어 스타머: 생애와 정치 여정

키어 로드니 스타머(Keir Rodney Starmer)는 1962년 9월 2일 런던 사우스워크(Southwark)에서 출생하여 서리(Surrey)에서 성장했다. 노동계 집안에 태어난 스타머는 소년 시절부터 정치적 관심을 보였으며, 레이게이트 그래머 스쿨(Reigate Grammar School)에서 수학했다. 가족 중 처음으로 대학에 진학해 리즈 대학교(University of Leeds)에서 법학 학사(LLB)를, 옥스퍼드 대학교 세인트 에드먼드 홀(St Edmund Hall, Oxford)에서 법학 전문학위(BCL)를 취득했다. 청소년기에는 음악에도 관심이 많았고, 16세에 노동당 청년 사회주의자(Labour Party Young Socialists)에 가입했다.

법조인 시절과 공적 활동

스타머는 1987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주로 인권(human rights) 및 형사 변호에 집중했다. 2002년에는 퀸즈 카운슬(Queen’s Counsel, 현재는 King’s Counsel)로 발탁되면서 법조계 리더로 자리잡았다. 그는 사형선고를 받은 캐리브해 지역 피고인 변호와도 연관됐으며, 대형 인권 소송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옹호로도 주목받았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영국 공공기소청(Director of Public Prosecutions, DPP)과 크라운 프로시큐션 서비스(Crown Prosecution Service, CPS) 수장으로 활동하면서, 스티븐 로렌스(Stephen Lawrence) 살인 사건 등 다양한 중대 사건을 다뤘다. 법과 형사정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14년 기사작위(Knight Commander of the Order of the Bath, KCB)를 수여받았다.

정계 진출: 의원에서 당수로

북아일랜드 인권 자문 경험을 계기로 정치 진로를 모색한 스타머는 2015년 총선을 통해 홀번 앤드 세인트 판크라스(Holborn and St Pancras) 지역구에서 하원의원(MP)으로 당선됐다. 브렉시트(Brexit)를 둘러싼 국민투표에서는 잔류(Remian) 입장을 고수했으며, 제2국민투표 추진에도 관여했다. 그는 제러미 코빈(Jeremy Corbyn)의 섀도 내각에서 사법, 브렉시트 관련 주요 역할을 맡았고, 2020년 노동당 대표 선출에서 승리하며 당수와 야당 대표가 됐다.

당 개혁과 정치적 노선 조정

코빈 체제의 좌파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타머는 노동당의 정치적 노선을 중앙(centre)으로 이동시켰다. 그는 경제 안정, 일자리 창출, 공공 서비스 개혁을 약속하며, 반유대주의(antisemitism) 척결에 집중했다. 내부 분열과 당원 감소라는 난관에도 불구하고 2023년과 2024년 지방선거, 2024년 총선에서 노동당을 대승으로 이끌었다. 같은 시기 영국 내에서는 심각한 생활비 위기(cost-of-living crisis), 파업(industrial disputes), 이민 문제 등 복합적 사회 현안을 맞이했다.

총선 승리와 총리 취임 후 정책

2024년 7월, 14년 동안 이어진 보수당 통치를 끝내고 대형 의석차로 집권했다. 스타머 정부는 철도 국유화, 노동권 강화, 최저임금 인상, 에너지 산업 내 공기업 설립(Great British Energy)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민 정책에서는 기존의 르완다 송환 계획을 중단하고, 영국해협(English Channel) 밀입국 근절을 위한 국경 보안 사령부(Border Security Command)를 신설했다. 또, 감옥 과밀화 해소를 위해 조기 가석방과 형법 개정에 착수했다.

경제적으로는 투자·생산성 증대, 혁신산업 육성, 재정안정 등 공급측 경제학(modern supply-side economics) 기조를 반영한 예산안이 발표됐다. 투명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지, 교육, 기후변화 대응(탈탄소화) 등에서 다양한 개혁을 약속했다.

외교 정책과 국제 관계

총리 취임 직후 미국, 유럽, 아시아의 정상들과 잇따라 회담하며, 영국-미국 간 “특별한 관계”(Special Relationship)와, 우크라이나 지원, 나토(NATO) 방위비 확대 공약 등을 밝혔다. 유럽연합(EU)과는 브렉시트 후 관계 복원, 독일과의 협력 강화 논의가 시작됐다. 중동에 대해선 이스라엘-가자 전쟁에서 이스라엘 지지 입장과 휴전 촉구를 병행했으며, 무기 수출 일부를 제한하여 국제법 준수 의지를 밝혔다.

정체성과 사회 이슈 대응

정치적 노선은 초기 좌파에서 중도(centre)로 변화한 평가를 받는다. ‘스타머리즘(Starmerism)’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지만, 내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그는 민생안정·공공서비스 개혁·지역 분권(localism) 강화 등 시스템적 변화에 방점을 둔다. 상원의 폐지 및 선거제 개혁, 녹색 기술 투자, 기후변화 대응, 노동권 증진 등이 그의 정책적 우선순위다.

LGBTQ+ 권리나 이민, 인권 등 사회적 쟁점에서도 절충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으며, 최근 ‘여성’ 정의 관련 논란에서는 “생물학적 여성(biological women)” 중심 해석으로 일부 단체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흑인 인권, 여성 안전, 인종평등법 제정 약속 등 다문화 사회에서의 정의 실현도 강조한다.

사생활과 개인적 면모

스타머는 빅토리아 알렉산더(Victoria Alexander)와 결혼해 슬하에 두 자녀를 두고 있다. 그는 스스로 무신론자라고 밝혔으나, 가족과 함께 유대교 전통을 존중하고 안식일(Shabbat)을 지키며 살아간다. 열렬한 아스널(Arsenal) 축구팬이자, 동네 아마추어팀에서도 활동했다. 법조 시절에는 진보적 매체(예: The Guardian)에 기고하기도 했으며, 사회주의 대안(Socialist Alternatives) 잡지의 편집자로도 경험을 쌓았다.

2024년부터는 10 다우닝 스트리트에서 ‘프린스(Prince)’라는 시베리안 고양이와 함께 지낸다. 2025년에는 타임( TIME)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스타머는 일관된 신념보다는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정책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실용적 지도자라는 평과, 탈진영적 리더십을 지향하며 영국 사회의 “국가적 재건(national renewal)”을 약속하고 있다.


본 포스트는 Wikipedia의 문서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Keir_Star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