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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D 밴스: 미국 첫 밀레니얼 부통령의 성장과 정치 여정

JD 밴스: 미국 첫 밀레니얼 부통령의 성장과 정치 여정

JD 밴스: 미국 제50대 부통령의 삶과 정치

도입

JD 밴스(JD Vance)는 미국의 정치인이자 작가, 변호사, 그리고 해병대 참전용사다. 그는 2025년부터 미국의 50대 부통령으로 재임하며, 밀레니얼 세대 첫 부통령이라는 상징적 위치에 올랐다. 밴스의 삶은 오하이오의 빈곤과 폭력이 만연한 환경에서 시작해, 유명 저서 《Hillbilly Elegy》를 통해 전국적 주목을 받으며, 보수주의 정치의 중심으로 들어서기까지 파란만장했다.

성장 배경과 학업, 군 경력

1984년 오하이오 미들타운에서 태어난 밴스는 스코틀랜드-아일랜드 계열의 혈통을 물려받았다. 어린 시절은 빈곤과 가족의 분열, 그리고 어머니의 약물 중독으로 점철됐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그의 주 양육자였으며, 애팔래치아 문화 속에서 성장했다. 미들타운 고등학교 졸업 후 미 해병대에 입대해 이라크에 군 기록병으로 파병되었고, 그곳에서 중사로 복무하며 여러 훈장을 받았다.

군복무를 마친 그는 GI Bill(군복무자 대상 학비 지원)을 이용해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과 철학을 우등으로 졸업했다. 이후 예일 로스쿨에서 법학전문박사(JD)를 취득, 당시 교수 에이미 추아의 권유로 자신의 성장기를 집필하게 되었다.

사회 진출과 초기 저술 활동

예일 졸업 후 밴스는 상원 보좌관과 법원 서기, 대형 로펌 시들리 오스틴에서 짧게 일했다. 이내 실리콘밸리로 옮겨 피터 틸(벤처 투자자)의 미트릴 캐피탈에서 벤처캐피탈리스트로 활동했다. 2016년, 그는 자신의 가족사와 애팔래치아 빈곤 문제를 담은 회고록 《Hillbilly Elegy》를 출간하며 전국적 명성을 얻었다. 이 책은 농촌 백인 하층 계층의 현실을 분석한 수작으로 평가받았지만, 일부에서는 편견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책의 성공으로 밴스는 미국 사회 엘리트들과 교류하며 정치적 시각을 넓혔고,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CNN 패널로도 참여했다. 이후 그는 혁신 투자와 보수 정책 단체 운영에도 활발히 나섰으며, 동명의 자선단체 'Our Ohio Renewal'을 창립해 오하이오의 교육과 중독 문제에 접근했으나, 이 단체는 실질적 성과 없이 소멸했다.

벤처 투자 및 지역 경제 활성화

밴스는 미트릴 캐피탈 이후 스티브 케이스가 설립한 혁신 투자사 Revolution LLC에 합류, 전통 경제권 밖 지역에 투자하는 'Rise of the Rest' 프로젝트 확장 업무를 맡았다. 또 자신이 공동 창업한 벤처 캐피털 나랴 캐피탈을 통해 애팔래치아 지역 기업인 AppHarvest 등 다양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그러나 AppHarvest는 경영 미숙과 열악한 환경 문제로 파산했다.

정치 입문과 상원의원 활동

2022년 밴스는 오하이오 연방상원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민주당의 팀 라이언을 꺾고 당선됐다. 상원의원으로서 그는 철도 안전 강화를 위한 초당적 법안 등을 공동 발의했으나, 대부분의 입법 시도가 좌절됐다. 공직에서 그는 친트럼프(Trumpism) 노선을 분명히 하며 당내 신세대 보수주의를 상징했다.

2024년 대선과 부통령 지명

2024년 밴스는 공화당 전당대회 직전 도널드 트럼프의 러닝메이트로 낙점되었다. 트위터 및 실리콘밸리 오피니언 리더들의 적극적 지지가 컸다. 트럼프-밴스 조가 대선에서 승리하며 미국 첫 밀레니얼 부통령의 탄생을 알렸다.

동시에 밴스는 공화당 전국위원회 재정책임자도 맡았다. 언론과 정계에서는 그를 ‘국가보수주의’(national conservatism), ‘우파 포퓰리즘’(right-wing populism)의 대표주자로 평가했다. 밴스 스스로는 자신의 정치 성향을 ‘포스트리버럴 라이트’(postliberal right)라고 언급한다.

논쟁적 발언 및 정치적 입장

밴스는 낙태, 동성결혼, 총기 규제 등에 강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출산율 저하 문제와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부모에게 비부모보다 더 큰 투표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등 논란이 됐던 발언들이 있다. 아동 없는 공직자에 대해 “더 냉혹하고 사회적 안정성을 해친다”고 발언해 비판을 받았으나, 나중에 이 부분을 일부 수정했다.

한편, 이민자와 소수자에 대한 발언으로도 자주 논란의 중심에 섰으며, 이슈가 확산될 때마다 ‘가짜 미디어 논쟁 유도’ 전략임을 자인하기도 했다. 교육,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대학 등의 제도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비판자이며, 연방정부 사법기관에 대한 불신 역시 자주 드러냈다.

부통령 취임과 주요 행보

2025년 1월 20일, 밴스는 미 연방대법관 브렛 캐버노로부터 부통령 선서를 받았다. 그는 미국 최초 해병대 출신 부통령이자, 조 바이든 이후 두 번째 가톨릭 신자 부통령이다. 취임 직후 중국 부총리와 회담을 갖고, 최초로 현직 부통령 자격으로 그린란드를 방문해 미행정부의 ‘그린란드 영유권’ 구상을 주장했다.

뮤닉안보회의(Munich Security Conference)에서는 ‘유럽의 최대 안보 위협’이 외적이 아닌 ‘내부의 위협’이라고 강조하며 미국-유럽 간 관계에 새로운 논쟁을 불러왔다. 동시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서는 미군 지원 축소와 외교적 해결을 주장,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와의 백악관 회동에서 신랄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사생활과 신앙

밴스는 예일 로스쿨 시절 만난 인도계 변호사 우샤 칠루쿠리와 결혼, 세 자녀를 두고 있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힌두교와 기독교 의식을 혼합한 형태로 치러졌다. 밴스는 원래 개신교 보수 신앙을 갖고 있었으나, 2019년 가톨릭 교회에서 세례와 견진성사를 받았으며, 이는 피터 틸의 영향이 컸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가톨릭 교리의 친밀함을 자주 언급하며, 이주민 문제에 관해서도 ‘ordo amoris’(사랑의 질서) 개념에 기반한 보수주의적 입장을 강조한다. 동시에 가족 중 사촌인 네이트 밴스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해, 밴스의 대(對)우크라이나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결론

JD 밴스의 인생사는 미국 사회의 분열, 이동, 계급 그리고 이념적 논쟁의 흐름을 압축한다. 그는 노동자 계층의 상징에서 ‘우파 엘리트’로, 가난한 시골 출신에서 미국 부통령에 이르기까지 비범한 변신을 이뤄냈다. 밴스는 ‘트럼프 시대’ 미국 보수주의의 방향을 대표하며, 혁신적이면서도 논쟁적인, 동시에 정치적 실험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본 포스트는 Wikipedia의 문서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J._D._V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