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의 개념과 역사적 발전
파시즘의 개념과 역사적 발전
파시즘의 기본 이해
20세기 초 유럽에서 출현한 파시즘(fascism)은 극우(ultra-right), 권위주의(authoritarianism), 그리고 국가주의(nationalism)를 특징으로 하는 정치이념 및 운동이다. 파시즘은 독재적 지도자, 중앙집권적 권력, 전체주의(totalitarianism), 군국주의(militarism), 폭력의 미화,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집단 체제, 그리고 경제·사회 생활의 강한 통제를 내세운다. 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평등주의 등과 근본적으로 대립한다. 이러한 파시즘은 정치 스펙트럼에서 극우에 해당한다.
개념의 형성 및 상징
‘파시즘’이란 용어는 이탈리아어 fascio(다발)에서 유래했으며, 다수의 힘이 결집되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의미를 상징한다. 고대 로마의 파스케스(fasces: 도끼에 막대기를 다발로 묶은 상징)에서 유래한 이 이미지는 집단적 강인함과 통합을 강조한다. 이 상징은 처음에는 이탈리아의 좌파·노조 조직에서도 사용됐으나, 무솔리니(Benito Mussolini)가 이끄는 전투단(Italian Fasces of Combat)이 1919년에 결성되면서 파시즘의 상징으로 확립됐다.
정의와 이론적 특징
파시즘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학계에서도 일치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핵심요소를 가진다.
부정적 지향: 자유주의, 공산주의, 보수주의에 대한 반발
목표: 국민적 독재체제 구축, 경제·사회 체계의 체계적 변형, 민족 또는 인종의 확장
양식: 영웅주의(herorism), 낭만적 상징주의(symbolism), 대중 동원의 의례화, 남성성(masculinity) 및 청년성 중시, 카리스마적 지도자 중심
로저 그리핀(Roger Griffin)은 파시즘의 본질을 ‘국가(민족)의 재탄생(palingenesis)을 꿈꾸는 대중적 초국가주의(ultranationalism)’라 요약한다. 파시즘은 기존 사회질서에 안주했던 전간기(right-wing authoritarianism) 권위주의 체제와 달리 ‘혁명’의 성격을 띤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또한, 폭력의 합리화, 분열된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지도자 집단, 과거 영광의 재현이라는 신화에 집착한다.
역사적 전개와 확산
19세기~1차 세계대전 전후
파시즘 사상의 뿌리는 고대 스파르타의 군국주의,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 3세 시대, 사회적 다윈주의(social Darwinism), 니체(Nietzsche)의 염세주의, 쇠퇴와 몰락에 대한 위기의식 등 다양한 사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1880년대 이후, 물질주의, 합리주의, 자유주의에 대한 반발이 일어나고 집단적 심성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정치운동으로의 변모
이탈리아에서 제1차 세계대전 전후 혼란 속에 무솔리니의 전투단과 파시즘 정당이 등장했고, 독일에서도 나치(Nazism)와 같은 유사 사조가 나타났다. 이들은 총력전(total war)을 통해 민간인과 군인의 경계가 사라진 ‘군사 시민권’을 주창하였다. 폭력은 정화와 혁신의 도구로 간주됐고, 영원한 투쟁(perpetual war)과 대중 선동이 일상화되었다.
권력장악과 체제 구축
1922년 무솔리니는 ‘로마 진군(March on Rome)’으로 집권, 이탈리아를 세계 최초의 파시스트 국가로 만들었다. 집권 후 파시스트들은 소비에트 유사 구조의 ‘기업국가(corporatism)’를 표방하며 노동자, 자본가, 정부가 통합된 사회적 구조를 구축했다. 천황의 신격화와 일당제(one-party state) 등도 각국 파시즘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독일에서는 나치가 민주주의 붕괴 후 권력을 장악, 인종 위계와 국가의 절대적 지도자(푸어러/Führer) 중심의 체제를 수립했다. 파시즘 운동은 이탈리아, 독일 외에도 헝가리, 루마니아, 스페인, 브라질 등지로 확산됐다.
이데올로기 및 사회적 성격
극단적 국가주의와 인종주의
파시즘은 ‘국민’ 또는 ‘민족’을 자연적 유기체로 규정하고, 국민적 결속과 동질성을 강조했다. 내부의 '적'으로 간주하는 집단(유대인, 소수민족, 성소수자 등)이나 외부의 적에 대항해 단일한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다. 이런 ‘내집단-외집단’의 도식은 종종 인종주의(racism)와 결합해 genocide, 박해, 추방 등으로 이어졌다.
전체주의와 사회 통제
파시스트 국가에서는 국가가 개인의 삶을 전면적으로 규정했으며, 교육, 미디어, 예술 등은 모두 체제 선전과 동질성 강화의 수단이 되었다. 의례, 상징, 대중집회 등 ‘정치의 미학화(aestheticization of politics)’는 국민들의 집단적 감정에 호소했다.
경제구조
파시스트 국가는 자유방임이나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 모두를 거부하고, 국가가 시장에 강력하게 개입하는 디리지즘(dirigisme) 및 ‘자립경제(autarky)’를 지향했다. 사회계급 내 갈등보다는 국민적 연대를 강조하며, 기업과 노동자의 이해를 국가가 중재하는 기업주의(corporatism)를 채택했다.
젊음, 남성성, 영웅주의
파시즘은 청년정신(youth), 남성성(masculinity), 영웅주의(heroism)와 군사적 규율을 숭상했다. ‘새 인간(New Man)’상과 전투적 미학이 강조되며, 기존의 평등, 자유, 관용, 타협보다 강인함, 복종, 순혈성, 희생이 미덕이었다. 무솔리니나 히틀러 등 원형적 지도자는 대중적 숭배의 대상이 되어 퍼스낼리티의 숭배(cult of personality)가 체제를 유지했다.
성 역할과 가족
파시스트 체제는 전통적 가족, 출산 증가, 여성의 역할 제한 등 ‘도덕적 위생(moral hygiene)’을 주장했다. 여성은 출산과 양육의 임무에 집중하도록 독려받았고, 남성은 전사의 역할을 부여받았다.
파시즘의 한계와 비판
파시즘은 극단적 권위주의와 반민주주의, 국가폭력, 인종주의, 전체주의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파시스트 권력의 대량 학살 및 인권침해 등은 현대사회에서 파시즘 자체를 ‘절대악’으로 규정하게 했다. 정치적 경멸어나 허위성(ideological dishonesty), 파시스트 지향성의 불명확함, 기회주의적 노선변경 등도 자주 지적받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와 현대
1945년 이후, 파시즘은 국제적으로 ‘타락한 이념’으로 인식되어 공식적으로 포기되거나 금지됐다. 그러나 여러 사회에서는 네오-파시즘(neo-fascism), 포스트-파시즘(post-fascism)처럼 이름만 바꾼 형태 또는 소수 극단운동으로 존재해왔으며, 일부 국가, 사회 변동기에 극우 파시즘적 경향이 다시 부상하기도 한다. 반파시즘(antifascism) 운동과 사회적 경계 또한 계속 진화하고 있다.
본 포스트는 Wikipedia의 문서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