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와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와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

서론: 제2차 세계대전과 원자폭탄의 사용

1945년 8월 6일과 9일, 미국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이 두 도시는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국면에서 핵무기의 유일한 실전 사용 사례가 되었다. 폭격 직후부터 연말까지 15만 명에서 24만 6천 명이 사망했고, 이 중 절대 다수는 민간인이었다. 전례 없는 파괴는 일본의 항복 결정과 세계사의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배경: 전쟁의 막바지와 핵무기의 개발

태평양 전쟁이 1945년까지 이어지면서 일본군은 극렬한 저항을 지속했다. 미국은 점점 더 큰 인명 피해를 감수하며 필리핀, 오키나와 등지를 점령했다. 동맹군은 '다운폴 작전(Operation Downfall)'이라 불리는 일본 본토 침공을 준비 중이었으나, 예상 희생자는 미군만 최대 수십만 명, 일본 측은 수백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전쟁 후반, 미국은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를 통해 두 유형의 핵폭탄—우라늄 기반의 '리틀 보이(Little Boy)'와 플루토늄 기반의 '팻 맨(Fat Man)'—을 개발했다. 영국, 캐나다와의 합의 아래 사용 허락도 받았다.

원자폭탄 투하 작전의 결정과 실행

미국은 일본 주요 도시 중 군사・산업적 가치와 심리적 효과를 고려해 표적을 선정했다. 도쿄, 교토 등이 검토됐으나, 역사적・종교적 의미로 인해 교토는 제외되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최종 목표가 되었다.

이후 일본에 조건부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 선언(Potsdam Declaration)'이 발효되었으나, 일본 정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고 항전을 지속했다. 1945년 8월 6일, 전용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Enola Gay)'가 히로시마 상공에서 우라늄 폭탄을 투하했고, 8월 9일에는 나가사키에 플루토늄 폭탄이 떨어졌다.

폭격의 전개와 직접적 영향

히로시마에는 약 34만~35만 명, 나가사키에는 25만~27만 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폭심지 인근은 사실상 완전 파괴되었고, 약 절반 이상의 사망자는 하루 만에 희생되었다. 생존자 다수 역시 수개월 내 방사선 피폭, 화상, 외상, 기아 등으로 사망했다.

병원, 학교, 교통망 등 도시 기능은 사실상 마비되었다. 의료진 역시 대부분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었기에 구조 활동이 극히 제한적이었다.

일본의 항복과 전후 변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파괴, 그리고 소련의 대일 참전이 맞물리면서, 일본 천황은 국민 보호와 더 이상의 파멸 방지를 이유로 연합군에 항복할 것을 결정했다. 8월 15일 공식적으로 항복을 발표함으로써 전쟁이 사실상 종료되었다. 9월 2일 항복문서에 서명하며, 일본은 연합군의 통치 하에 들어가 전후 재건의 길로 접어들었다.

인명 피해와 후유증

두 도시에서 1945년 말까지 각각 9만~16만 6천 명(히로시마), 6만~8만 명(나가사키)이 숨졌다. 직접적인 폭풍과 열, 이어진 화재 외에도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급성 증상이 다수 발생했고, 수개월 내 사망자가 속출했다. 이후 수년~수십 년에 걸쳐 백혈병, 암


본 포스트는 Wikipedia의 문서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Atomic_bombings_of_Hiroshima_and_Nagasa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