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적 포도나무 십자가: 조지아의 기독교화와 그 왕국들
사도적 포도나무 십자가: 조지아의 기독교화와 그 왕국들
서론
코카서스 산맥의 남쪽에 자리한 조지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독교 국가 중 하나로, 그 신앙의 역사는 국가 정체성, 문화, 그리고 지정학적 운명과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 있다. 조지아 정교회는 단순한 종교 기관을 넘어, 수천 년간 외세의 침략과 이데올로기적 압박 속에서 민족의 언어, 예술, 그리고 영혼을 지켜온 보루였다. 본 연구 보고서는 조지아의 기독교 전래 과정과 기독교 왕국의 형성을 다각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1세기 사도들의 첫 발걸음부터 4세기 성녀 니노에 의한 국가적 개종, 그리고 수많은 순교와 저항을 통해 다져진 신앙의 유산을 추적할 것이다. 또한, 조지아의 독특한 교회 건축 양식과 전례, 그리고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다성음악 찬양에 이르기까지, 기독교가 조지아의 문화적 DNA에 어떻게 각인되었는지를 심층적으로 탐구한다. 본 보고서는 총 6개의 장으로 구성되며, 역사적 서술과 신학적 분석을 결합하여 조지아 기독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 현대적 의미를 통전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1. 씨앗의 파종: 조지아 기독교의 초기 전파 과정
조지아 정교회의 자기 이해와 정체성의 핵심에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직계 제자들에 의해 직접 설립되었다는 사도적 기원(Apostolic Origin)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전통은 단순한 역사적 주장을 넘어, 조지아 교회의 독립성(Autocephaly)과 영적 권위의 신학적 근간을 이룬다. 1세기 사도들의 선교 활동과 4세기 성녀 니노의 결정적인 역할은 조지아 땅에 기독교 신앙의 씨앗이 어떻게 뿌려지고 발아했는지를 보여주는 두 개의 거대한 기둥이다.
1.1 사도들의 선교: 성 안드레아와 성 시몬의 발자취
조지아 정교회 전승에 따르면, 기독교 복음이 조지아에 처음 전파된 것은 1세기 사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1 이 초기 선교의 주역은 예수의 첫 번째 제자로 불리는 사도 안드레아(Andrew the First-Called)와 열심당원 시몬(Simon the Canaanite)이다.
첫째로 불리운 사도 안드레아의 콜키스(Colchis)와 이베리아(Iberia) 여정은 조지아 교회 설립의 기원으로 간주된다.3 전승에 따르면 안드레아는 조지아 서부(콜키스)와 동부(이베리아) 전역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파하고 최초의 기독교 공동체를 설립했다.1 특히 그는 '사람의 손으로 만들지 않은' 기적의 성모 마리아 이콘(An acheiropoieta of the Virgin Mary)을 지니고 다녔다고 전해진다.3 이 사도적 선교는 조지아 교회가 다른 교구의 파생이 아닌, 사도로부터 직접 기원했다는 주장의 핵심 근거가 된다. 조지아 정교회는 그의 조지아 도착을 기념하는 5월 12일을 국경일로 지정하고, 그의 안식일인 12월 13일과 함께 연 2회 그를 기린다.3
이와 병행하여, 사도 시몬 역시 조지아에서 활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주로 압하지야(Abkhazia)로 알려진 조지아 서부 해안 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했으며, 현재의 뉴 아토스(New Athos)인 아나코피아(Anakopia) 마을 근처에서 순교하여 묻혔다고 한다.1 일부 전승은 그가 이교도들에게 고문을 당한 후 십자가형에 처해졌다고 구체적으로 묘사한다.9 그의 순교지로 알려진 곳에는 오늘날 그를 기리는 동굴과 9-10세기에 지어진 교회가 남아있다.10
이 두 사도의 활동에 더해, 사도 마티아(Matthias)가 조지아 남서부에서 선교하다 고니오(Gonio)에 묻혔다는 전승도 존재한다.2 이처럼 복수의 사도들이 조지아의 각기 다른 지역에서 활동했다는 전승은 조지아 전역에 걸친 광범위하고 근원적인 복음 전파를 강조한다.
이러한 사도적 기원 주장은 단순한 역사적 자부심을 넘어선다. 이는 심오한 정치신학적 함의를 지닌다. 고대 교회 세계에서 최고의 권위는 사도로부터 직접 이어지는 계승(Apostolic Succession)에서 나왔다. 조지아 교회가 안드레아와 시몬이라는 두 명의 사도가 자국 영토의 동부와 서부에서 각각 선교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교회의 기원이 단일하고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도적 권위에 있음을 천명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주장은 10-11세기에 체계화되었는데, 이는 당시 강력한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청이 조지아 교회의 독립적 지위에 대해 제기하던 관할권 주장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신학적 방패 역할을 했다.13 즉, 조지아 교회는 다른 교회의 선교로 세워진 '자(子)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직접 세운 '사도적 교회'라는 선언이었으며, 이는 조지아 교회가 수 세기 동안 독립(Autocephaly)을 쟁취하고 유지하는 투쟁의 중심축이 되었다.
1.2 조지아의 광채: 성녀 니노의 결정적 역할
1세기 사도들의 씨앗이 뿌려진 후, 4세기에 이르러 조지아, 특히 동부의 이베리아 왕국이 기독교 국가로 거듭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바로 카파도키아 출신의 여성, 성녀 니노(St. Nino)이다.14
전승에 따르면, 카파도키아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니노는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체험한 후, 예수의 성의(Seamless Robe of Christ)를 찾아 이베리아로 가라는 계시를 받고 여정을 시작했다.15 조지아에 도착한 그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포도나무 가지 두 개를 엮어 십자가를 만들었다.17 그 가지가 중력에 의해 자연스럽게 아래로 처진 형태의 이 '포도나무 십자가(Grapevine Cross)'는 조지아 정교회의 가장 독특하고 중요한 상징이 되었다.
성녀 니노의 선교는 기적적인 치유의 은사를 통해 힘을 얻었다. 그녀는 당시 불치병을 앓던 이베리아의 나나(Nana) 왕비를 기도로 치유했다.19 이 사건은 그녀가 왕실과 접촉하고 신뢰를 얻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후 그녀는 조지아 전역에 교회를 세우는 것을 도왔으며, 말년에는 은수자로서 기도에 전념하다 보드베 수도원에 묻혔다.16
성녀 니노의 이야기는 조지아 기독교화의 독특한 성격을 드러낸다. 대부분의 국가적 개종 서사가 성 파트리치오(아일랜드)나 클로비스(프랑크 왕국)와 같은 남성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과 달리, 조지아의 핵심적 복음 전파자는 여성이었다. 이는 조지아 영성의 역사에 깊은 여성적 요소를 부여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녀가 만든 십자가의 재료이다. 수입된 목재나 금속이 아닌, 조지아의 농업과 문화의 중심인 포도나무 가지를 사용한 것은 기독교 신앙의 토착화(Inculturation)를 상징하는 심오한 행위이다. 이는 기독교가 외부에서 강요된 외래 종교가 아니라, 조지아의 땅과 삶의 본질을 통해 표현될 수 있는 신앙으로 받아들여졌음을 시사한다. 이처럼 전통적인 남성 위계질서에서 벗어난 인물과 토착적 상징을 통해 이루어진 개종은, 조지아 민족과 정교회 신앙 사이에 강력하고 유기적인 유대를 형성하는 기반이 되었다.
2. 기독교 왕국의 부상: 개종, 통합, 그리고 순교
4세기, 이베리아 왕국의 기독교 공인은 조지아 역사의 분수령을 이루는 사건이었다. 이는 단순히 종교적 신념의 전환을 넘어, 국가의 지정학적 방향을 설정하고 새로운 민족 정체성을 구축하는 과정이었다. 미리안 3세의 개종 드라마와 이후 수 세기 동안 이어진 순교의 역사는 조지아 기독교가 어떻게 왕권과 결합하고 민족의 영혼에 깊이 뿌리내렸는지를 증언한다.
2.1 4세기 이베리아의 지정학적 배경과 개종
4세기 이베리아 왕국(카르틀리)은 서쪽의 로마 제국과 동쪽의 페르시아 제국이라는 두 거대 세력 사이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 불안정한 지정학적 위치에서 종교적 소속은 곧 정치적 노선을 의미했다. 당시 페르시아는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고 있었고, 로마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종 이후 급속히 기독교화되고 있었다. 따라서 이베리아 왕국이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것은 페르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새롭게 부상하는 기독교 제국인 로마(비잔티움)와의 연대를 선언하는 결정적인 외교적 행보였다.
2.2 한 왕의 개종: 미리안 3세와 나나 왕비의 이야기
이베리아 왕국의 공식적인 기독교화는 미리안 3세(Mirian III)의 극적인 개종 이야기를 통해 이루어졌다. 전승에 따르면, 미리안 왕은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갑작스러운 어둠에 휩싸여 길을 잃고 절망에 빠졌다.14 그가 믿던 이교의 신들에게 드린 기도는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아내 나나 왕비가 믿던 '니노의 신'에게 기도했고, 그 순간 기적적으로 빛이 돌아오며 시야가 밝아졌다.14
이 신비로운 체험을 신의 계시로 받아들인 미리안 왕은 수도 므츠헤타로 돌아와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선포했다. 이미 성녀 니노의 기도로 병을 치유받아 기독교에 감화되어 있던 나나 왕비와 함께, 왕은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다.22 그는 곧바로 콘스탄티누스 대제에게 사절을 보내 사제와 주교를 파견해 줄 것을 요청했고, 이를 통해 백성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교회를 조직적으로 설립할 수 있었다.14 이로써 이베리아 왕국은 337년경, 아르메니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국가가 되었다.14 미리안 왕과 나나 왕비는 조지아 정교회에 의해 성인으로 추대되었으며, 그들의 무덤은 므츠헤타의 삼타브로 수도원에 보존되어 있다.22
미리안 왕의 개종 이야기는 개인의 영적 체험인 동시에, 국가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강력한 건국 신화로 기능한다. 왕이 이교의 어둠 속에서 길을 잃었다가 새로운 신앙의 빛으로 구원받는다는 서사는, 조지아 민족 전체가 이교의 암흑기에서 벗어나 기독교 문명의 빛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압축한다. 이 신화는 왕권의 새로운 기독교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이후 수 세기 동안 조지아를 정의할 왕권과 교회의 신성한 동맹을 공고히 하는 헌장 문서 역할을 했다.
2.3 피로 세워진 신앙: 순교의 역사
조지아의 기독교는 평화 속에서만 성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신앙을 지키기 위한 투쟁과 순교를 통해 그 정체성을 단련했다.
트빌리시 10만 순교자 (1227년): 조지아 순교사에서 가장 비극적이고 영광스러운 사건은 1227년 화레즘 제국의 술탄 잘랄 알딘의 트빌리시 침공 당시 일어났다. 그는 정복한 도시의 시민들에게 메테히 다리 위에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이콘을 놓고 그것을 밟고 지나가며 이슬람으로 개종할 것을 강요했다.24 이를 거부하는 자는 참수될 것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조지아 연대기에 따르면, 약 10만 명에 달하는 트빌리시 시민들이 신앙을 버리기를 거부하고 순교의 길을 택했다.25 그들의 피로 므츠바리(쿠라) 강이 붉게 물들었다고 전해지며, 이로 인해 메테히 다리는 '10만 순교자의 다리'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28
승리의 전달자 성 게오르기우스: 조지아의 수호성인은 성 게오르기우스(조지아어: 기오르기)이다.30 그의 이름은 조지아(Georgia)라는 국명과도 연관이 있을 정도로 민족과 깊이 결부되어 있다. 용을 무찔러 공주를 구출했다는 그의 유명한 전설은 11-12세기경 조지아에서 처음 등장했는데, 이는 페르시아, 몽골, 오스만 등 '용'으로 상징되는 거대한 침략자들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던 조지아인들의 민족적 상황과 깊은 공명을 일으켰다.30 역사적으로 그는 303년경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 당시 신앙을 지키다 순교한 군인 성인이었다.30 조지아의 국기인 '다섯 십자가기' 역시 성 게오르기우스의 십자가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처럼 반복되는 순교의 역사는 조지아 민족의 회복탄력성을 이해하는 핵심 기제이다. 10만 순교자의 이야기는 군사적 패배와 참혹한 학살을, 신앙을 지켜낸 영적 승리로 재해석한다. 이는 희생자로서의 무력감을 영웅적 자기희생과 불굴의 충성심으로 전환시키는 강력한 서사이다. 이 이야기는 세대를 거쳐 전승되고 기념되면서, 국가가 군사적으로 정복당할지라도 그 영적인 핵심만큼은 결코 정복될 수 없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문화적 생존 전략으로 기능했다. 따라서 조지아 역사에서 순교는 단순히 고통의 기록이 아니라, 침략자에 맞서 민족 공동체를 결속시키고, 불굴의 기독교 신앙에 기반한 국가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근원적인 이데올로기였다.
3. 돌과 영혼의 성소: 주요 교회와 수도원의 설립
조지아의 기독교 신앙은 땅과 하늘을 잇는 수많은 교회와 수도원을 통해 구체적인 형태로 구현되었다. 이 성소들은 단순한 예배 공간을 넘어, 민족의 역사와 신앙의 전설, 그리고 예술적 혼이 응축된 신성한 지리의 중심점 역할을 한다. 므츠헤타의 고대 영적 수도부터 트빌리시의 역동적인 랜드마크, 그리고 코카서스 산맥의 고고한 성채에 이르기까지, 이 건축물들은 조지아의 신앙 연대기를 돌에 새긴 기록이다.
다음 표는 본 보고서에서 다룰 주요 기독교 유적지의 핵심 정보를 요약한 것이다. 이를 통해 각 장소의 건립 시기, 건축 양식, 그리고 핵심적인 의의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표 3.1: 조지아의 주요 기독교 유적지
유적지 명칭 | 위치 | 건립/재건 시기 | 주요 건축 양식 | 핵심적 의의 및 관련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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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 므츠헤타 | 4세기 (최초); 11세기 (현재) | 십자-돔 양식 | 유네스코 세계유산. 그리스도의 성의가 묻혔다고 전해짐. '생명의 기둥' 전설. 왕실 대관식 및 매장지. 14 |
즈바리 수도원 | 므츠헤타 | 6세기 | 테트라콘크 (초기 십자-돔) | 유네스코 세계유산. 성녀 니노가 첫 십자가를 세운 자리에 건립. 므츠헤타를 조망. 15 |
메테히 교회 | 트빌리시 | 5세기 (최초); 13세기 (현재) | 십자-돔 양식 | 전략적 절벽 위의 왕실 교회. 요새, 러시아 군 막사, 스탈린이 수감되었던 감옥으로 사용됨. 24 |
나리칼라 요새 | 트빌리시 | 4세기 (페르시아); 7-17세기 확장 | 요새 (아랍, 조지아 양식) | '난공불락의 요새'. 트빌리시의 핵심 방어 시설. 재건된 성 니콜라스 교회 포함. 24 |
타보르 수도원 | 트빌리시 | 역사적 부지 위의 현대 건축 | 전통 조지아 양식 | '주님 변모 수도원'. 트빌리시의 파노라마 전경 제공. 47 |
성 삼위일체 대성당 (사메바) | 트빌리시 | 1995-2004년 | 현대 조지아 교회 건축 |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동방정교회 대성당. 탈소비에트 시대 종교 부흥의 상징. 14 |
제벨리 (구) 트빌리시 | 트빌리시 | 도시 설립 5세기 | 절충주의 (조지아, 페르시아, 러시아) | 유네스코 잠정목록. 다문화적 과거를 반영하는 시나고그, 모스크, 교회들이 공존하는 역사 지구. 45 |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교회 | 카즈베기 | 14세기 | 십자-돔 양식 | 해발 2,170m의 카즈베크 산 아래 위치한 상징적 교회. 국가적 상징이자 전시에 유물을 보관하던 장소. 21 |
아나누리 요새 단지 | 아라그비 강변 | 13-17세기 | 교회를 포함한 요새 | 아라그비 공작의 거점. 봉건 영주 간 전투의 현장. 진발리 저수지를 조망. 유네스코 잠정목록. 17 |
3.1 므츠헤타: 조지아의 고대 영적 심장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생명의 기둥"): 므츠헤타의 심장부에 위치한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은 조지아 정교회의 어머니 교회로 불린다. 최초의 교회는 4세기 미리안 3세에 의해 성녀 니노가 선택한 자리에 세워졌으며 34, 현재의 웅장한 대성당은 11세기 건축가 아르수키제(Arsukisdze)의 걸작이다.34 성당의 이름은 '생명을 주는 기둥'이라는 뜻으로, 그리스도의 성의와 관련된 신비로운 전설에서 유래한다. 1세기 므츠헤타 출신의 유대인 엘리오즈가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의 성의를 가져와 누이 시도니아에게 주자, 그녀가 성의를 끌어안고 감격 속에 숨을 거두었다. 그녀가 성의와 함께 묻힌 무덤에서 거대한 삼나무가 자라났는데, 교회를 짓기 위해 이 나무를 베어 기둥으로 만들려 하자 일곱 번째 기둥이 공중으로 떠올라 움직이지 않았다. 성녀 니노의 밤샘 기도 끝에 기둥은 제자리로 내려와 굳건히 섰고, 이후 병을 치유하는 신성한 수액을 흘려보냈다고 한다.23 이 전설 때문에 스베티츠호벨리는 그리스도의 성의가 안치된 곳으로서 예루살렘의 성묘 교회 다음으로 신성한 장소로 여겨진다.34 이곳은 바흐탕 고르가살리, 에레클레 2세를 비롯한 조지아 왕들의 대관식과 장례가 거행된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34
즈바리 수도원 ("십자가 수도원"): 므츠헤타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맞은편 언덕 정상에 자리한 즈바리 수도원은 6세기에 건립된 조지아 초기 기독교 건축의 정수이다.19 이곳은 미리안 왕의 개종 후 성녀 니노가 거대한 나무 십자가를 세웠던 바로 그 장소로 알려져 있다.19 원래 이교도들의 신전이 있던 자리에 세워져, 기독교가 토착 신앙을 대체하고 승리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36 네 개의 반원형 공간이 중앙을 감싸는 '테트라콘크(Tetraconch)' 양식은 건축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혁신이었으며, 이후 코카서스 전역의 교회 건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19 므츠헤타의 다른 유적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21
3.2 트빌리시: 새로운 수도와 기독교 랜드마크
메테히 마리아 승천 교회: 므츠바리 강이 내려다보이는 험준한 절벽 위에 세워진 메테히 교회는 트빌리시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온몸으로 증언한다. 최초의 교회는 5세기 바흐탕 고르가살리 왕이 수도를 므츠헤타에서 트빌리시로 옮기면서 왕궁과 함께 지은 것에서 시작된다.28 '메테히'라는 이름 자체가 '궁전 주변 지역'을 의미한다.24 1235년 몽골의 침략으로 파괴되었다가 13세기 후반에 재건되었지만 28, 이후에도 수난은 계속되었다. 러시아 제국 시대에는 군용 막사로, 이후에는 악명 높은 감옥으로 사용되었으며, 젊은 시절의 이오시프 주가슈빌리, 즉 스탈린이 이곳에 수감되기도 했다.24 소비에트 시대에는 극장으로 전용되는 모욕을 겪다가 1988년에 이르러서야 다시 교회의 기능을 회복했다.24 이처럼 한 건물의 역사는 왕국의 영광, 외세의 억압, 이데올로기의 탄압, 그리고 마침내 되찾은 신앙의 자유라는 조지아 민족사 전체의 축소판과 같다.
나리칼라 요새: 트빌리시의 스카이라인을 압도하는 고대 성채로, 도시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본 파수꾼이다. 4세기 페르시아인들에 의해 처음 '슈리스치케(부러워할 만한 요새)'라는 이름으로 축성되었고 42, 7세기 우마이야 왕조의 아랍인들에 의해 대대적으로 확장되었다.42 '나리칼라'라는 현재의 이름은 몽골인들이 붙인 '나린 칼라(작은 요새)'에서 유래했다.42 요새 내부의 성 니콜라스 교회는 13세기에 처음 지어졌으나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90년대에 완전히 새로 복원한 것이다.42
타보르 수도원: 구 트빌리시의 언덕에 위치한 이 '주님 변모 수도원'은 고대의 유적이라기보다는 역사적 영성이 깃든 장소에 세워진 현대적 건축물에 가깝다.50 이름 '타보르'는 예수가 영광스럽게 변모한 이스라엘의 타보르 산에서 유래한 것으로 51, 이곳의 주된 매력은 트빌리시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탁 트인 전경이다.50
성 삼위일체 대성당 (사메바): 1995년부터 2004년까지 건설된 이 거대한 성당은 탈소비에트 시대 조지아의 종교적, 국가적 부흥을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다.56 기독교 전래 2000주년과 조지아 정교회 독립 1500주년을 기념하여 국민적 염원을 모아 지어졌으며 56, 전체 면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 건축물 중 하나이자, 높이로는 세 번째로 높은 동방정교회 성당이다.34
제벨리 (구) 트빌리시: 5세기에 수도로 지정된 이래 트빌리시의 역사적 심장부 역할을 해온 지역이다. 구불구불한 골목길, 독특한 목조 발코니가 있는 주택들, 그리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해온 역사를 보여주는 종교 건축물들이 특징이다. 정교회와 아르메니아 교회, 유대교 회당(시나고그), 이슬람 사원(모스크)이 불과 몇백 미터 반경 안에 공존하며 45, 실크로드의 교차로로서 다문화적 성격을 띠었던 도시의 과거를 증언한다.59 이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어 있다.45
3.3 조지아 전역의 신성한 장소들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교회: 대코카서스 산맥의 심장부, 해발 2,170미터 고지에 자리한 14세기 교회로, 조지아의 가장 상징적인 풍경 중 하나를 만들어낸다.62 만년설을 인 카즈베크 산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이 교회의 모습은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신앙심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조지아어로 '츠민다 사메바'는 '성 삼위일체'를 의미한다.63 이처럼 고립되고 험준한 위치 덕분에, 외세의 침략기에는 므츠헤타의 성녀 니노 십자가를 비롯한 국가적 보물들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피난처 역할을 했다.64
아나누리 요새 단지: 군용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진발리 인공호수 기슭에 그림처럼 나타나는 17세기 성채 단지이다.17 이곳은 13세기부터 이 지역을 통치했던 강력한 봉건 영주인 아라그비 공작 가문의 거점이었다.67 견고한 성벽 안에 두 개의 교회가 포함된 이 요새는, 이웃한 크사니 공작 가문과의 치열한 전투를 비롯한 수많은 봉건 전쟁의 무대였다.17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어 있다.67
이러한 성소들의 배치는 '경관의 기독교화'라는 의도적인 신성 지리학(Sacred Geography)을 보여준다. 즈바리 수도원이 이교의 수도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 옛 신전 자리에 세워지고 36, 게르게티 교회가 코카서스의 가장 장엄한 자연 경관의 중심에 자리 잡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기독교 신앙이 토착 신앙과 자연 세계를 정복하고 포용했음을 시각적으로 선포하는 행위이다. 교회는 단순히 풍경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풍경을 지배하고 명령함으로써 조지아의 지리 자체를 신앙의 증거로 탈바꿈시켰다.
4. 신앙의 예술: 기독교 유물과 건축 양식의 발전
조지아 기독교의 물질문화는 신성한 유물에 대한 깊은 경외심과 독창적인 교회 건축 양식의 발전을 통해 그 특징이 드러난다. 이 두 요소는 조지아의 신앙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가시적인 형태로 구현하고, 보편적인 기독교 전통 안에서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했는지를 보여준다.
4.1 조지아 교회의 신성한 유물
그리스도의 끊어지지 않은 성의: 조지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성유물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입었던, 솔기 없이 통으로 짜인 성의(Seamless Robe)이다. 이 성의는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에 묻혀 있다고 전해진다.34 전승에 따르면 1세기 므츠헤타 출신의 유대인 엘리오즈가 십자가 처형 현장에서 로마 병사에게서 이 성의를 구입하여 고향으로 가져왔다. 그의 누이 시도니아가 이 성의를 건네받는 순간, 거룩한 유물에 대한 감격으로 심장이 멎어 숨을 거두었고, 성의를 손에서 놓지 않아 함께 묻히게 되었다.37 이 유물은 조지아를 복음서의 역사적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강력한 영적 고리 역할을 한다.
성녀 니노의 포도나무 십자가: 성녀 니노가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포도나무 가지를 엮어 만든 십자가는 조지아 민족과 교회의 최고 보물로 여겨진다. 이 십자가는 조지아 기독교의 토착적이고 겸손한 기원을 상징하며, 현재 진품은 트빌리시의 시오니 대성당에 보관되어 있다.17
기타 유물: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에는 그리스도의 성의 외에도 구약의 예언자 엘리야의 망토와 사도 안드레아의 유물 일부가 함께 보관되어 있다고 전해져 그 신성함을 더한다.37
이러한 유물, 특히 그리스도의 성의에 대한 믿음은 조지아의 신성 지리학과 영적 위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기독교 세계에서 성스러움과의 물리적 근접성은 곧 권위를 의미한다. 예루살렘이 그리스도의 생애와 수난, 부활의 현장이기에 최고의 성지가 된 것처럼, 그리스도의 성의가 므츠헤타에 있다는 전승은 조지아를 사실상의 '제2의 예루살렘'으로 격상시킨다. 이는 조지아를 단순히 복음을 수용한 땅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수난을 물리적으로 품고 있는 땅으로 만든다. 이로 인해 조지아 교회와 국가는 정교회 세계 내에서 독보적인 영적 자부심을 갖게 되었고, 므츠헤타는 국가적 순례의 중심지가 되었다. '생명의 기둥' 전설은 성유물의 존재에 땅 자체가 기적적으로 반응했음을 보여줌으로써, 조지아의 영토 자체를 신성한 공간으로 만드는 역할을 했다.
4.2 조지아 교회 건축 양식의 발전
조지아의 교회 건축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독자적인 양식을 발전시켜왔다. 이는 보편적인 기독교 건축의 원리를 수용하면서도, 지역의 독특한 미학과 기술을 결합한 창조적 종합의 결과물이다.
초기 바실리카에서 십자-돔 양식으로: 조지아의 초기 교회들은 로마 제국에서 보편적이었던 장방형의 바실리카 양식을 따랐다.71 그러나 6세기에 이르러 즈바리 수도원에서 볼 수 있는 '테트라콘크'(4개의 앱스가 중앙 공간을 감싸는 구조) 양식이 등장하며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했다.19 이는 중앙 집중식 구조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형태로, 11세기에서 13세기에 이르는 조지아의 '황금시대'에 표준 양식으로 자리 잡은 '십자-돔(Cross-Dome)' 양식의 전조가 되었다.35 이 양식은 높은 원통형 돔(drum)을 중앙의 기둥이나 벽이 지지하며, 내부 공간이 십자가 형태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독특한 특징: 외벽 장식과 석조 조각: 평면 구조는 비잔틴 건축의 영향을 받았지만, 외관의 처리 방식은 매우 독창적이다. 조지아 건축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창문과 출입구 주변을 장식하는 풍부하고 정교한 석조 조각이다.73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모티프는 포도나무 덩굴과 포도송이로, 이는 조지아의 문화적, 종교적 중요성을 반영한다.74 그 외에도 동물, 성인들의 부조, 기하학적 문양 등이 외벽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전통의 종합: 조지아 건축은 비잔틴의 구조적 개념, 코카서스 지역의 토착적 건축 전통, 그리고 근동 지역의 예술적 영향을 창조적으로 융합한 결과물이다.73 그 결과 동방정교회 세계의 일부이면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독특한 양식이 탄생했다.
이 독창적인 건축 양식의 발전은 문화적, 국가적 자기표현의 행위였다. 강력한 제국은 종종 자국의 건축 양식을 문화적 지배의 도구로 사용한다. 조지아는 비잔틴 세계로부터 십자-돔이라는 기능적 구조를 받아들였지만, 그 미학을 단순히 모방하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73 대신, 조지아의 건축가들은 포도나무와 같은 토착적 모티프와 전통적인 석조 기술에 기반한 독자적인 외관 장식 '언어'를 개발했다.74 이 건축적 '악센트'는 "우리는 보편적인 정교회 기독교 가족의 일원이지만, 동시에 우리만의 고유한 문화와 예술적 목소리를 지닌 조지아인이다"라는 선언과도 같다. 따라서 조지아의 교회 건축 그 자체가 문화적 동화에 대한 저항이자, 더 넓은 기독교 세계 내에서 뚜렷한 민족적 정체성을 주장하는 가시적인 증거이다.
5. 사도적 전통의 실천: 선교적, 전례적 고찰
조지아 정교회의 사도적 전통은 과거의 유물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날 교회의 살아있는 전례와 독특한 찬양, 그리고 선교에 대한 이해 속에서 역동적으로 실천되고 있다. 조지아 교회의 예배와 음악, 그리고 세상 속에서의 역할은 수 세기 동안 형성된 역사적, 문화적 맥락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5.1 성찬예배: 조지아 정교회 예배의 심장
예배의 구조: 조지아 정교회의 성찬예배(Divine Liturgy)는 모든 동방정교회가 공유하는 비잔틴 전례를 따른다. 예배의 중심에는 성체성혈성사, 즉 성찬식이 있다.76 전례는 하늘과 땅이 만나는 '신비'(그리스어:
mysterion)로 이해되며, 신자들은 예배를 통해 가시적인 세계를 넘어 천상의 실재에 참여하게 된다.77 예배의 모든 기도와 찬양은 성부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는 삼위일체적 구조를 가진다.77 주요 요소로는 온 세상을 위한 기도, 성경 봉독, 설교, 그리고 이콘(성화상) 경배 등이 포함된다.
성체성혈성사(성찬식): 모든 정교회와 마찬가지로 성찬식은 예배의 정점이다. 신자들은 축성된 빵(성체)과 포도주(성혈)를 모두 받아 모시는데(양형 영성체), 이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실제로 참여하는 행위로 믿어진다.76 성찬을 통해 신자들은 그리스도와 깊이 연합하며, 죄의 용서와 치유, 그리고 거룩한 삶을 살아갈 은총을 받는다고 고백한다.77
기도와 경배: 예배에는 보편적인 비잔틴 전례 기도문과 더불어, 조지아의 고유한 성인들, 특히 성녀 니노와 성 게오르기우스를 기리는 찬미가와 기도가 포함된다. 이를 통해 국가의 신성한 역사가 보편적인 교회의 전례 속에 자연스럽게 통합된다.
5.2 하늘의 소리: 조지아 다성음악 찬양
유네스코 걸작: 조지아의 전통 음악, 특히 그 다성음악(Polyphony) 창법은 2001년 유네스코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지정될 만큼 독보적인 가치를 인정받는다.80 이 전통은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다성음악 전통으로 여겨진다.81
음악적, 신학적 특징: 조지아 다성음악은 최소 3개의 독립적인 성부로 구성된다. 지역마다 독특한 스타일이 있는데, 예를 들어 동부 조지아의 카케티(Kakhetian) 스타일은 낮은 지속음(드론) 위에서 높은 음역의 독창자가 노래하는 것이 특징이다.81 이 음악은 서양의 평균율과는 다른 독특한 음계 체계와 5음 음계를 기반으로 하며, 특히 서부 조지아의 셰모크메디(Shemokmedi) 학파에서는 날카롭고 강렬한 불협화음을 대위법적으로 사용하여 극적인 효과를 낸다.81
이러한 정교한 다성음악은 단순한 음악을 넘어, 소리를 통한 신학적 표현으로 해석된다. 기독교의 핵심 교리인 삼위일체, 즉 세 위격(성부, 성자, 성령)이 한 분의 하느님 안에 존재한다는 신비는 설명하기 어려운 역설이다. 조지아의 다성음악은 최소 세 개의 독립적인 성부가 각자의 선율을 노래하면서도 하나의 통일된 화성을 이루는 구조를 통해, 이 삼위일체의 신비를 청각적으로 구현하는 '소리의 이콘(Aural Icon)' 역할을 한다. 듣는 이는 각 성부의 개별성을 인지하는 동시에, 그들이 만들어내는 분리될 수 없는 조화를 체험하게 된다. 때때로 사용되는 날카로운 불협화음은 인간과 신, 유한과 무한 사이의 신비로운 긴장감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조지아의 찬양은 예배의 반주가 아니라, 그 자체로 복잡한 교리를 소리로 묵상하는 신학적 행위이다.
차크룰로(Chakrulo): 우주를 향한 메시지: 조지아의 민속 다성음악 '차크룰로'는 1977년 외계 지적 생명체에게 보내는 인류의 메시지를 담아 발사된 보이저 우주선의 '골든 레코드'에 수록된 27곡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81 이 복잡하고 아름다운 노래는 인류의 예술적, 지성적 유산을 대표하는 상징으로서 우주 공간을 항해하고 있으며, 이는 조지아 고유의 문화가 지닌 보편적 가치를 세계가 인정한 사건이었다.
5.3 조지아 교회의 통전적 선교 방식
신앙, 문화, 국가 정체성의 통합: 조지아 교회의 선교 방식을 이해하는 핵심 개념은 '통전적 선교(Holistic Mission)'이다.82 선교는 단순히 복음을 전파하는 개별 활동이 아니라, 교회의 모든 삶이 민족의 삶과 통합되는 총체적인 과정으로 이해된다. 여기에는 복음 전도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 언어와 예술 같은 문화유산의 보존, 그리고 국가 주권의 수호까지 포함된다.6 조지아 교회는 개인을 개종시키는 것을 넘어, 조지아라는 국가 자체를 형성하고 지켜내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탈소비에트 시대의 부흥과 도전: 수십 년간의 소비에트 무신론 정권의 억압 이후, 조지아 정교회는 1990년대 독립과 함께 폭발적인 부흥을 경험했다.56 현재 교회는 조지아의 공적, 정치적 삶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심 기관이 되었다.85 그러나 이러한 교회와 국가의 깊은 융합은 양날의 검과 같다. 한편으로 이는 외세의 침략과 이데올로기적 공격 속에서 조지아의 정체성을 보존하는 놀라운 회복탄력성의 원천이 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조지아인임은 곧 정교회 신자임'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면서, 신앙이 개인적 회심과 결단보다는 문화적 유산이나 출생의 권리로 여겨지는 경향을 낳았다.86 이는 전통과 의식은 강하지만, 복음에 대한 깊은 이해나 개인적 영적 변화가 부족한 '생활 신앙' 또는 '명목상 신자' 문제를 야기한다.86 더 나아가, 이러한 강력한 민족-종교적 정체성은 다른 개신교 교파들을 신학적 차이를 넘어 국가 정체성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이단'이나 '분파'로 배척하는 배타적인 태도로 이어지기도 한다.86 과거 조지아의 생존을 보장했던 바로 그 통전적 모델이, 오늘날 다원화된 세계 속에서 어떻게 역동적이고 개인적인 신앙을 키워나갈 것인가라는 새로운 도전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6. 결론: 꺾이지 않는 포도나무
본 연구 보고서는 조지아의 기독교 전래 과정과 그 왕국들의 역사를 사도적 기원, 국가적 개종, 순교를 통한 신앙의 단련, 그리고 독특한 문화적 발현이라는 네 가지 축을 중심으로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1세기 사도 안드레아와 시몬의 발자취에서 시작된 신앙의 씨앗은 4세기 성녀 니노의 포도나무 십자가를 통해 조지아의 땅과 문화에 깊이 뿌리내렸다. 미리안 3세의 개종은 기독교를 국가의 운명과 결합시켰고, 이후 몽골과 페르시아, 오스만 제국에 맞선 수많은 순교의 역사는 신앙을 민족 생존의 보루로 만들었다.
이러한 역사는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의 '생명의 기둥' 전설과 그리스도의 성의 유물, 즈바리 수도원의 장엄한 건축, 그리고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교회의 고고한 자태 속에 돌로 새겨졌다. 메테히 교회의 파란만장한 역사는 조지아 민족이 겪은 영광과 수난의 연대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신앙은 또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다성음악 찬양이라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소리로 구현하는 독창적인 예술을 낳았다.
조지아 기독교의 역사는 '꺾이지 않는 포도나무'라는 상징으로 요약될 수 있다. 포도나무는 성녀 니노의 십자가를 통해 조지아 신앙의 토착적 기원을 상징하며, 성찬례의 포도주를 통해 그리스도와의 신비로운 연합을 의미한다. 동시에, 수많은 침략과 억압 속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고 살아남아 풍성한 열매(문화, 예술, 국가 정체성)를 맺어온 조지아 민족의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결론적으로, 조지아의 기독교 여정은 하나의 신앙이 한 민족의 정체성과 너무나 깊이 얽혀, 둘을 분리할 수 없게 된 역사의 강력한 증언이다. 신앙은 민족을 지켰고, 민족은 신앙을 지켰다. 이 강력한 통전적 결합은 조지아가 압도적인 역사적 역경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 독특한 종합이야말로, 탈소비에트 시대의 부흥 속에서 조지아 정교회가 마주한 현대적 도전과 기회의 틀을 규정하고 있다. 과거의 영광스러운 유산을 바탕으로 미래의 다원적 사회 속에서 어떻게 생명력 있는 신앙 공동체를 가꾸어 나갈 것인가 하는 질문은, 꺾이지 않는 포도나무가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던지고 있는 신학적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