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영어 콘텐츠 요약 #45] 통증과 감정은 어떤 관계일까
통증과 감정은 어떤 관계일까
Reign of Pain / Howard Schubiner | Coursera
The BEST WAYS To Heal Chronic Pain & Trauma WITHOUT Medication | Howard Schubiner - YouTube
만성 요통과 식도염을 안고 살기에 통증을 완화하는 방법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위 영상들을 보면 그에 대한 답이 어느 정도 있습니다.
23회차 뉴스레터에서도 통증 완화에 대해 언급한 바 있습니다. 핵심은 대부분의 통증은 신체적인 손상에 연관되기보다 예측하려는 뇌의 특성에 따른 신경학적 회로(neural circuits)의 문제이며(요통의 경우 85% 이상),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학습되거나 탈학습(unlearn)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주장의 선봉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웨인 주립대 의과대학 Howard Schubiner 교수입니다.
Schubiner는 중추신경계가 과민해져서 통증을 느끼는 역치가 낮아진 상태가 지속될 때 만성 통증을 경험하게 된다고 봅니다. 신체적 데미지를 입은 부위는 시간이 지나면 회복이 되는데, 그 이후에도 통증이 완화되지 않는 상태가 됩니다. 좋아지는 것 같다가도 다시 안 좋아지거나, 나아짐 없이 안 좋은 상태가 지속되어 일상생활을 현저히 저해합니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는 통증 역치가 낮아지는 데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트라우마를 지니지 않았다 하더라도 상황적 스트레스 요인이나 억압된 정서 등 사회심리적 요인에 따라 중추신경계가 과민해지고, 통증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에 따라 과도하게 통증에 초점을 맞추게 될 때, 뇌는 실제 신체적 위험이 없는 상황에서도 통증 신호를 보내며, 시간이 지날수록 이 패턴이 강화되면 만성 통증이 됩니다.
통증을 느끼는 것은 신체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며 생존 확률을 높입니다. 하지만 신체적 데미지가 없는 상황에서 경험하는 이 같은 통증은 일종의 오경보입니다. 오경보라 하더라도 그 안에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는 것이 Schubiner의 견해입니다. 즉, 억압된 감정, 해소되지 못한 과도한 스트레스나 갈등, 중요한 인간관계에서의 어려움 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가 켜졌다는 의미인 동시에 대처가 필요하다는 신호인 것이죠.
통증 치료는 이런 논리의 흐름대로 통증이 전달하려는 감정적 메시지를 인식하고 표현하는 식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감정 인식 및 표현 치료(EAET, Emotional Awareness and Expression Therapy)라고 부르는데,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지만 8-9회기 정도의 집단상담이나 개인상담에서 빈 의자 기법이나 역할극, 표현적 글쓰기 같은 기존 심리치료 기법을 활용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들 고유의 이론적 기반은 없는 것 같습니다. 덧붙여, 유튜브 영상에서 수용전념치료와의 차이를 물어보는 질문도 두 번 정도 나오는데, ACT는 통증을 없애려고 하지 않지만 EAET는 통증 완화뿐만 아니라 통증을 없애는 데 주안점을 둔다고 답하네요.
통증을 경험하는 모든 이가 EAET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며, 통증 재처리 치료(PRT: Pain Reprocessing Therapy) 과정에서 통증 경험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취사선택하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PRT는 통증에 대한 심리교육과 단계적 노출을 결합한 치료로 보입니다.
EAET에 대한 RCT 연구도 서너 편 확인됩니다. 주로 CBT보다 우리가 낫다는 것을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이런 학술적인 내용보다는 통증과 정서적인 부분이 밀접하게 관련이 있고, 특히 억압된 정서가 통증을 유발하는 핵심 요인 중 하나일 수 있기 때문에 내담자/환자가 이 정서를 경험하여 표현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에 공감이 됩니다.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에서 감정에 신경 쓸 겨를 없이 일에 몰두하다 보면 꼭 요통이나 식도염, IBS 중 일부를 경험한다는 것을 압니다. 단순히 수면의 부족이나 식사 패턴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죠. Schubiner도 설사, 요통, 목디스크 등을 두루 경험한 환자인데, 특히 의대 졸업 후 첫 병원 근무 시기에 IBS 증상 중 하나인 설사에 시달렸음을 말하는 대목에 공감이 많이 됐습니다.😢
이런 주장의 프론티어는 존 사노입니다. 존 사노는 특히 억압된 분노가 통증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이 분노를 의식화하는 것이 통증 완화에 중요하다고 말한 재활의학과 교수입니다. 그가 치료한 환자들의 간증이 담긴 듯한 다큐멘터리의 트레일러도 있네요. 영상에 Schubiner도 잠깐 등장합니다.
존 사노 책 중에 통증혁명이 번역돼 있습니다. 통증 회로를 재배선, 즉 탈학습하는 데 심리교육은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합니다. PRT의 핵심적인 구성 요인이기도 하고요. 통증혁명을 읽었을 뿐인데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는 해외 독자의 리뷰도 몇몇 본 것 같습니다. 요통에 시달리는 분들은 꼭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존 사노는 통증이 억압된 마음 속 무언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있게 돕는 주의분산 전략이라고 봅니다. 상대적으로 감당하기 쉬운 게 무의식적인 내용보다는 통증이기 때문에 이 쪽으로 방향을 튼다는 것이죠. 하지만 Schubiner는 통증을 뇌의 보호적 경보 시스템으로 해석합니다. 통증은 단순히 불편한 감정을 회피하는 방법이 아니라, 해결되지 않은 감정적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신호입니다. 이 신호를 무시하거나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가리키는 감정적 내용을 인식하고 표현함으로써 신경 회로를 재배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존 사노보다 심리치료에 적극적이라는 차이가 있는 듯합니다. EAET가 ISTDP(Intensive Short-Term Dynamic Psychotherapy)에 영향 받았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도 하고요.
통증을 전문으로 하는 심리치료자가 국내에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주변에 아는 분 계시면 소개 바랍니다. 배우고 싶습니다.) 통증 전문 심리치료자가 국내에도 분명 있을 테지만, 누구나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간적/경제적 여건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감정 인식 및 표현에 도움이 되는 책을 한 권 소개합니다. 마크 브래킷이 쓴 감정의 발견입니다. 이론에 근거하고 짜임새 있으면서도 대중 눈높이에 맞춰져 있어 읽기 편하다고 느꼈습니다. 마크 브래킷이 개발한 무료 감정 앱도 좋습니다. 한 달째 사용 중인데 자신이 평소 느끼는 감정을 체계적으로 기록하여 두드러지는 패턴을 파악하기 용이합니다. 기능적인 면이나 디자인 모두에서 만족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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