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간호를 하며
2023년 09월에 할아버지 간병을 마치고 작성한 글이다.
당시 인상 깊었던 기억 두 가지가 있다.
식당의 된장찌게가 더럽게 맛없었다는 것. 그리고 할머니와의 대화에서 비폭력대화를 적용할 수 있었다는 것.
이 글의 마지막에는 비폭력대화를 적용한 상황이 담겼다.
이 때를 다시 떠올리며 지금을 반성해본다.
할아버지께서 아프셔서 대학병원에 입원하고 계신다. 현재는 삼촌이 함께 계시는데 출근을 하셔야 해서 간호할 다른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내가 할아버지를 간호하기로 했다. 나는 병원에 하루 동안 머물러야 했기에 여분의 옷 한 벌과 노트북을 챙겼다.
병원에 도착해서 삼촌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설명들었다. 내가 해야 할 것은 혈뇨 팩에 혈뇨가 가득 차면, 혈뇨를 통으로 옮겨서 버리는 것이다. 30분에서 1시간 정도면 혈뇨 팩이 가득 찼기에 할아버지 옆에 있으며 수시로 처리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기에 나는 딱히 귀찮음이나 불편은 없었다.
그런데 조금 난감한 일이 생겼다. 잠잘 때는 안 해도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30분에서 한 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서 비워줘야 했기에 나는 잠을 제대로 못 잤다.
게다가 그날 샤워도 못했다. 수건을 깜빡하고 안 챙겨왔고, 샴푸나 바디워시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나는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피곤하고, 씻지 못해서 몸이 찝찝했다.
오늘 밤에도 잠을 제대로 못 잘 수 있겠다 생각해서 틈이 날 때마다 잤다. 할아버지 혈뇨팩을 비우고 자다가, 다시 차면 일어나서 비우고 잤다. 그러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밥 먹고 와서 비우고 잠들고, 다시 일어나서 비우고...
나는 이 일이 크게 힘들거나 싫지만은 않았다. 요즘 머리를 쓰는 일이 많아서 조금 지쳤었는데 단순한 노동을 하니 조금 쉬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할아버지의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래서 나는 이 시간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사우나
하지만 불만이라면 씻지 못한 것이다. 머리에서 냄새가 나고 몸이 찝찝해서 불쾌했다. 그래서 빨리 사우나에 가서 씻고 싶었다. 사우나에 가기 위해서는 차를 타고 시내로 가야했다.
그런데 진료 마감하는 시간인 오후 5시까지는 사우나에 가기 어려웠다. 나는 할아버지 간호를 위해 1시간 내에는 병원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런데 일반 진료 시간에는 병원에 사람이 많이 와서 주차장에 자리가 잘 없다. 내가 사우나를 다녀와서 주차 자리를 찾느라 실랑이를 벌인다면 1시간이 넘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찝찝함을 5시까지 참았다.
자고, 혈뇨팩 비우고, 다시자고, 또는 할아버지와 대화를 했다. 이를 반복하다 보니 금방 5시가 찾아왔다. 할아버지께 사우나에 다녀오겠다고 말씀드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병원을 나섰다.
사우나는 차를 타고 5분 거리에 있었다. 감사하게도 사우나 건너편에는 공용 주차장 건물이 있어서 편하게 주차할 수 있었다. 사우나 비 7,000원, 샴푸와 바디워시 각각 500원씩 해서 총 8,000원을 지불했다.
나는 후딱 옷을 벗고 사우나에 들어갔다. 시원한 물로 머리를 감고 따뜻한 물로 샤워했다. 매일 샤워를 하는 것이 내게는 너무 익숙한 것이었다. 그런데 샤워를 이틀 만에 하니 너무 감사하더라. 내가 일상에 쉽게 얻던 혜택을 떠올려보았다. 배부르게 먹고, 추워서 잠에서 깰 일 없고, 두 발로 걸을 수 있고... 이런 생각들에 감사함은 배가 됐다.
나는 다 씻고 나와서 수건으로 몸을 닦고 있었다. 그때 남탕에 상주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저씨께서 여기 처음 오냐고 내게 말을 거셨다. 나는 할아버지 간호하러 순천에서 왔다고 말씀드렸다. "이틀 만에 씻으니 참 좋네요", "사우나를 3~4년 만에 와보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가볍게 대화를 나눴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아저씨에게 인사를 드리고 남탕을 나왔다. 아저씨와 대화를 하고 환영받는 기분이 들어 뿌듯했다. 나도 앞으론 누군가를 환영하며 맞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사우나에서 나와 스마트폰에 시간을 보니 병원에서 나온 지 20분 정도 됐다. 그리고 할머니께 부재중 전화가 온 것을 확인했다. 나는 할머니께 다시 전화를 걸었다.
나: 할머니 전화하셨어요?
할머니: 응, 니 할아버지가 전화를 안 받아서. 어디냐?
나: 저 씻으러 사우나 왔어요.
할머니: 할아버지 봐야지 뭐 한다고 사우나를 가! 너 없는 동안 할아버지께 무슨 일이 있으면 어떡할래?
나는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도 그 크기는 아주 미세했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의 말씀에 담긴 마음에 공감하고 대답할 수 있었다.
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이 걱정되세요?
할머니: 어...너무 걱정된다.
나: 네, 저 지금 돌아가는데 5분이면 가요. 어제부터 못 씻었는데 너무 찝찝해서 씻으러 잠깐 나온 거에요.
할머니: 아이고 내 사람이 고생이 많네. 알겠네 고마워~
나는 전화를 끊고 나의 억울함을 말하기 이전에 할머니의 걱정을 공감해줬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꼈다. 기존에 내가 가진 대화 습관으로는 이러기 어려웠을 것이다. 비폭력대화에 대해 머리로 깊이 고민하고, 몸으로 실천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내가 변화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
어제와 오늘은 평소와 다른 날들이었다. 일상의 감사함과 나의 변화를 깨닫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