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를 한다. 메모를 알고 싶어서.
메모를 하고 있다.
메모를 알고 싶어서. 사실 메모를 알고 싶다는 게 정작 나를 알고 싶은 거다. 또한 세상을 알고 싶은 거다. 어떻게 해야 알 수 있는지 모르기에 글을 쓰면서 그 생각의 흔적과 행동의 흔적을 찾아 다닌다. 알고 싶어서.
메모란?
메모란 무엇인가? 각자의 정의가 있을 수 있다. 이래도 메모라 할 수 있나? 이것도 메모라 할 수 있나? 한 발 더 들어간 질문들로 채를 치면, 걸리는 것은 버리고 채를 통과한 고운 답들을 모으면 메모가 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메모는 손으로만 써야 하는가?
요즘은 손으로 쓰지 않고 대부분 타이핑을 한다. 나도 지금 타이핑을 하고 있다. 메모에 관한ㅍ 책을 읽다 보니 억수 같은 비를 뚫고 산에서 내가 가던 판사의 사례가 생각난다. 번개가 치듯이 머리에 엄청난 판결문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모양이다. 평상시 같았으면 종이를 꺼내고 적고 할 텐데 사정이 허락하지 않았다. 휴대폰을 열고 음성인식 기능으로 휴대폰이 '대필'을 한 셈이었다. 약 80%의 완성도를 보였다고 한다. 꼭 손으로만 메모하는 게 아니라는 첫 번째다.
메모는 목적이 없어도 가능한가?
목적이 있는 메모, 투두 리스트 또 그래! 요리 레시피를 적는 것도 목적이 있는 메모의 결과물일 것이다. 반대의 경우가 있을까? 낙서가 생각났다. 공공 화장실, 터미널에 있는 화장실로 기억한다. 수많은 그림과 낙서가 펼쳐진다. 난 이런 메모를 배설의 메모라 부른다. 나도 모르게 그림을 그리거나 뭔가를 쓰는 적는 메모 말이다. 일기는 어떠한가? 누가 읽지 않는다는 점을 담보로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고 마음도 담고 생각도 펼치는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시간의 누적인 거다.
나의 메모
변화의 메모다. 생각이 변하고 행동이 변하는 메모를 의미한다. 독일에서 아이를 키웠다. 아니 내가 키운 게 아니라 독일이 키웠다고 해도 무방하다. 독일의 돈과 시스템 그리고 이웃들이 아이를 키웠다. 이들은 모든 약속을 종이에 적는다. 아이의 학업 문제로 3가정이 함께 모여 난상 토론을 한 적이 있다. 모두가 노트를 꺼내고 적으면서 논의했다. 심지어 대략 개요를 프린터로 나눠 주며 논의하고 마쳤다. 과거의 내와 독일에 온 후 나는 뭐가 달라졌을까? 나의 메모를 통해 알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