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더 기쁠까? 선물의 심리와 증여의 힘
선물이라고 하면 보통 받는 사람만 기분 좋을 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줄 때의 설렘이 훨씬 오래 남을 때가 많습니다.
최근에 지카우치 유타의 책1을 보고, 선물과 증여를 완전히 다르게 보게 됐습니다.
이 글에서는 우리가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지, 선물이 왜 돈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일상에서 증여의 힘을 어떻게 써먹을 수 있는지 제가 느낀 점과 함께 풀어보려 합니다.
개발자든 아니든,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꽤 실용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선물은 왜 돈보다 오래 남는가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이거였습니다.
선물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우리에게 남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선물을 줄 때, 사실 상대에게 건네는 건 물건이 아니라 메시지에 가깝습니다.
너를 생각했다, 너는 이걸 좋아할 것 같았다, 너에게 시간을 썼다
이게 선물 안에 포장돼서 함께 들어갑니다.
반대로 돈은 그 순간에는 유용하지만, 그 사람이 뭘 샀는지 우리는 금방 잊어버립니다.
하지만 누가 나에게 작은 간식 하나 사주며 했던 말, 힘들어 보인다고 커피 한 잔 쥐여주던 그 손, 이런 건 몇 년이 지나도 떠오릅니다.
그래서 선물은 가격보다 스토리가 더 중요하고, 스토리가 있는 선물은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의미를 생성합니다.
저는 이걸 보고 나서, 선물이란 결국 기억을 설계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산타와 증여 속에 살아가고 있다
책에서는 우리가 이미 수많은 산타와 증여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삶에는 보이지 않는 선물이 꽤 많습니다.
길을 묻자 친절하게 알려주는 사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긴 글로 답을 달아주는 사람, 회사에서 내 실수 대신 막아주고 같이 욕먹어주는 동료
이 사람들은 아무 계약도 없이 나에게 시간을 선물한 겁니다.
저도 개발 관련 질문을 받으면, 굳이 길게 설명하고, 그림까지 그려서 답할 때가 있는데, 그게 그냥 좋습니다.
왜냐면 누군가 나 때문에 막혔던 게 풀리는 순간을 상상하면, 그게 작은 기쁨으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산타라고 하면 크리스마스에 선물 주는 사람만 떠올리지만, 사실 매일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에게 산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관점을 알고 나니, 일상에 보이는 풍경이 확 달라졌습니다. 누가 나에게 친절을 베풀면, 이 사람 오늘도 증여 경제를 돌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 진짜 이유
그럼 왜 줄 때가 더 기분 좋을까요? 심리학, 뇌과학, 사회학 등에서 이야기하는 공통된 포인트가 있습니다.
우선, 선물을 줄 때 우리는 내 능력이 남에게 도움이 된다는 경험을 합니다. 이건 인간에게 꽤 강력한 보상입니다.
특히 요즘처럼 내가 사회에 어떤 의미 있는 존재인지 헷갈리기 쉬운 시대에는 누군가에게 기쁨을 준다는 감각이 작은 존재감의 증명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또 하나는 예측의 즐거움입니다. 이 사람은 이걸 받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생각하면서 혼자 시뮬레이션해 보는 그 시간이 은근히 행복합니다.
개발자로 치면, 코드 한 줄 짜고 바로 결과 보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든 기능이 실제로 유저에게 쓰이는 장면을 머릿속으로 미리 돌려보는 느낌과 비슷합니다.
선물은 바로 그 미래의 장면을 상상하게 하는 장치이고, 우리는 그 미래를 선물 포장지에 함께 넣어서 건네는 셈입니다.
그래서 선물을 주는 순간, 실제로는 아직 상대의 반응을 보지도 않았는데 미리 행복 회로가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증여와 거래는 완전히 다른 세계다
우리가 흔히 하는 착각이 있습니다. 선물도 결국 주고받는 거니까 일종의 거래 아니냐. 그런데 증여의 세계와 거래의 세계는 구조적으로 다릅니다.
거래는 등가 교환입니다. 돈을 냈으니 그만큼의 물건이나 서비스를 받는 것. 여기엔 감정이나 관계가 필수 요소는 아닙니다.
반면 증여는 불균형을 전제로 합니다. 더 주기도 하고, 덜 받기도 하고, 아예 안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비대칭성 속에서 관계가 자랍니다.
나는 이만큼 줬는데, 상대는 언제 어떻게 갚을지 모르는 상태. 이 느슨한 부채 관계가 사람 사이를 계속 이어줍니다.
그래서 선물과 증여는 숫자로 정리할 수 없는 관계의 회로를 만드는 장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누군가에게 지식이나 정보를 나눠줄 때 그게 당장의 보상으로 돌아오지 않더라도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이게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언젠가 전혀 예상 못한 곳에서 도움이나 기회로 돌아오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증여는 타이밍과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ROI 같은 느낌입니다. 하지만 그게 바로 인간 관계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선물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선물 이야기를 하면 꼭 나오는 고민이 있습니다.
뭘 줘야 할지 모르겠다.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성의 있어 보이는 걸 찾고 싶다.
여기서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결국 중요한 건 금액이나 크기가 아니라, 상대에 대해 내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떠올려봤느냐 하는 점입니다.
요즘은 선물도 알고리즘 추천에 맡겨 버리기 쉬운데, 사실 제일 좋은 알고리즘은 내가 그 사람을 관찰해온 시간입니다.
그 사람이 평소에 자주 하는 말, 힘들어 보이던 날, 늘 고민하던 패턴
이걸 떠올린 다음 그 한 포인트를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해줄 수 있는 걸 고르면 됩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으로요.
자꾸 허리가 아프다고 말하던 동료에게는 스트레칭 도구 하나, 번아웃 온 것 같던 후배에게는 아무 말 없이 점심시간에 산책 같이 나가자고 하기. 코드를 배우고 싶어 하던 사람에게는 짧게 정리한 미니 가이드 문서 선물하기.
이런 작은 것들이 실제로는 꽤 큰 정서적 효과를 가져옵니다.
저는 예전에 동료가 제 개발 글을 프린트해서 중요한 부분에 형광펜 치고, 진짜 잘 읽었다며 책갈피까지 끼워서 돌려준 적이 있었는데 그 순간 이걸로 충분하다 싶었습니다.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감정이 확 들어오더군요.
디지털 시대, 선물의 형태도 바뀌고 있다
재미있는 건, 요즘 선물의 형태가 점점 비물질 쪽으로 옮겨간다는 점입니다.
좋은 링크를 정리해서 보내주는 것. 상대의 문제를 듣고, 같이 구조를 잡아주는 대화. 피드백 문장을 공들여 쓰는 시간
이런 것들도 모두 선물입니다.
특히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겐 좋아요나 댓글도 작은 증여에 가깝습니다.
그냥 스크롤 내리면 끝나는 것을 잠깐 멈춰서 시간을 써줬다는 흔적이니까요.
저는 요즘, 누가 좋은 글을 쓰면 그냥 혼자만 읽고 넘어가기보다는 정말 좋았던 이유를 한 줄이라도 남기려고 합니다.
그게 그 사람에게 꽤 큰 선물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나니, 댓글 하나도 조금 더 신중해졌습니다.
우리는 디지털 공간에서도 관계의 회로를 계속 만들고 있습니다. 타이핑으로 주고받는 선물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시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물과 증여, 어떻게 내 일상에 적용할까
이제 남는 질문은 이겁니다.
그래, 선물이 좋고 증여가 중요하다는 건 알겠다. 그러면 내 삶에서는 뭘 바꾸면 될까
저는 이 책을 보고 나서 세 가지 정도를 의식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선물을 소비가 아니라 관계 설계로 보기
물건을 사는 행위가 아니라, 이걸 계기로 어떤 감정과 기억이 남을지를 먼저 떠올려 보는 겁니다.
둘째, 반드시 물건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시간, 관심, 정성, 설명, 정리된 정보. 이런 것들도 충분히 강력한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 받은 것을 굳이 정확히 갚으려 하기보다 또 다른 방향으로 흘려보내기.
A에게 받은 도움을 꼭 A에게 갚을 필요는 없습니다. B에게 베풀고, 그게 또 C에게 이어지면서 증여의 네트워크가 커지기도 합니다.
이런 흐름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일상 곳곳에 작은 산타들이 얼마나 많은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나만의 인사이트: 선물을 잘 주는 사람은 결국 관계를 잘 만드는 사람이다
우리가 선물을 줄 때 기뻐지는 이유는 단순히 좋은 일을 해서 뿌듯해서가 아니라, 그 순간 내가 누군가와 더 깊이 연결되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선물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남깁니다. 기억, 신뢰, 관계, 그리고 나라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인상 같은 것들.
개발자든, 기획자든, 학생이든, 부모든. 결국 삶은 사람 사이의 네트워크 위에서 굴러갑니다. 그 네트워크를 튼튼하게 만드는 가장 저비용 고효율의 방법 중 하나가 선물과 증여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글을 다 읽은 김에, 당장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아주 작은 선물 하나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길게 설명해 준 메시지 한 통, 짧은 응원 한마디, 읽고 좋았던 글이나 영상 링크 하나.
생각보다 큰 파장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미 누군가의 산타일지도 모릅니다. 🎅🏻
참고
1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 지카우치 유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