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왜 자꾸 틀리게 기억할까? 『기억한다는 착각』에서 건진 인사이트
어제 점심 메뉴, 정확히 기억 나시나요? "김치찌개였던 것 같은데… 아, 그건 그제였나?" 하면서 살짝 헷갈리셨다면, 이 글 끝까지 보셔도 좋습니다.
『기억한다는 착각』은 우리가 믿고 있는 내 기억이 사실은 꽤 부정확하고, 때로는 조작에 가까울 만큼 왜곡된 결과물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1
이걸 그냥 심리학 이론이 아니라, 일·관계·학습에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관점으로 정리해보려고 해요.
저도 개발자로서 "컴퓨터 메모리는 정확한데, 사람 메모리는 왜 이렇게 부정확하지?"라는 고민을 자주 했는데, 이 책을 보니 아예 설계 철학이 다르더라고요.
그 관점에서 제가 느낀 점과 실전 팁까지 묶어서 정리해봤습니다.

우리의 기억, '사진 저장'이 아니라 '실시간 렌더링'이다
우리는 보통 기억을 옛날에 찍어둔 사진을 꺼내 보는 것처럼 상상합니다. 하지만 뇌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과거 장면의 모든 디테일을 저장해두는 건 비용이 너무 큰 작업이라, 뇌는 중요한 정보만 압축해서 저장하고, 나중에 꺼내 쓸 때 빈 부분을 추론으로 채웁니다. 그러니까 과거를 떠올릴 때, 우리는 저장된 걸 그대로 재생한다기보다, 그때그때 재구성해서 보는 셈입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나는 분명 이렇게 기억해"라는 확신이, 사실은 꽤 위험한 착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회의에서 누가 뭐라고 말했는지, 프로젝트에서 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갈등 상황에서 누가 먼저 뭐라 했는지 같은 것들 말이죠.
저는 예전에 어떤 회의에서 A안이 내가 낸 아이디어라고 100% 확신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정리 노트를 보니 다른 동료가 먼저 제안했더라고요. 그때 좀 소름이었어요. "아, 내 뇌가 내 자존심에 맞게 과거를 재편집했구나" 싶었습니다.
왜 어떤 건 생생하고, 어떤 건 흔적도 없이 사라질까
책에서는 우리가 어떤 건 잘 기억하고, 어떤 건 허무하게 잊어버리는 이유를 크게 몇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감정이 실린 경험은 강하게 남습니다. 즐거움, 분노, 수치심, 공포 같은 감정이 섞인 순간은 뇌에 "이건 중요하다"라는 표시가 붙어요.
둘째, 맥락과 연결된 정보가 오래 갑니다. 단편적인 사실 하나만 외웠을 때보다, "이건 왜 이런지 / 어디에 쓰는지 / 뭐랑 연결되는지"까지 이해한 정보가 훨씬 오래 유지됩니다.
셋째, 반복과 사용 여부입니다. 한 번 듣고 끝난 정보는 사라지고, 여러 번 꺼내 쓰는 정보는 점점 길게 유지됩니다.
이걸 일상에 대입하면, 회의 내용이 기억 안 나는 건 내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 뇌 입장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분류한 것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사소한 상처나 부끄러운 순간이 오래 남는 건, 감정 때문에 우선순위가 높게 찍힌 거고요.
개발 관점으로 보면, CPU 캐시 정책이랑 비슷합니다. 자주 쓰는 데이터, 중요한 데이터는 캐시에 남기고, 나머지는 과감히 버리는 것처럼, 뇌도 생존과 효율 위주로 메모리 관리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기억은 사실, 감정, 상상력이 뒤섞인 결과물이다
이 책이 가장 인상 깊었던 포인트는, 기억이 "사실 + 감정 + 상상 + 편집"이 섞인 결과물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겪은 직후에도 이미 해석을 덧씌웁니다. "쟤가 나를 일부러 무시한 것 같아" 같은 생각이 끼어들면, 나중에 떠올릴 때는 그 해석이 거의 사실처럼 묶여서 저장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편집이 들어옵니다. 지금의 내 가치관, 관계 상태, 이해 수준에 맞게 과거를 다시 해석하죠. 그래서 같은 과거를 두고도 "그땐 최악이었어"라고 말하다가, 몇 년 후에는 "돌이켜보면 그게 전환점이었어"라고 달라지기도 합니다.
저도 예전에 정말 최악이라고 느꼈던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삽질한 경험이 모델링할 때나 시스템 설계할 때 꽤 큰 자산이 됐더라고요. 그러고 나니까, 그 당시의 기억 자체가 고마운 경험 쪽으로 다시 칠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걸 알면, 중요한 시사점이 하나 생깁니다. 우리는 기억 자체보다, "지금 이 기억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를 더 주의 깊게 봐야 한다는 거죠.
잘 기억하려면: '외우기'보다 '구조 잡기'를 먼저
"그럼 어떻게 해야 제대로 기억할 수 있냐"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오는데, 이 책과 관련 연구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핵심은 "외우기 전에 구조를 잡아라"입니다.
하나의 정보만 따로 떼어 외우는 건 비효율적입니다. 대신, 그 정보를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과 연결해서 구조화하면 훨씬 잘 남습니다.
저는 기술서나 논문을 읽을 때 이런 식으로 합니다.
새 개념을 보면, 이게 기존에 알던 개념의 확장판인지, 대체재인지, 하위 개념인지 먼저 위치를 정해봅니다. 그리고 나만의 말로 한 줄 요약을 만든 뒤, 실제로 써먹을 수 있는 상황을 한두 개 떠올립니다.
그러면 나중에 디테일이 조금 흐려져도, 그 개념의 뼈대와 감각은 꽤 오래 남습니다. 완벽히 기억하려 하기보다, "언제, 왜 꺼내 써야 할 도구인지"를 기억하는 쪽이 더 실용적이더라고요.
일반적인 공부나 독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책 전부를 세세하게 기억하려 하기보다, 이 책이 내 생각을 어디서 어떻게 바꿨는지, 앞으로 무엇을 다르게 해 보고 싶은지만 명확히 해두면, 그 책은 내 안에 꽤 오래 남습니다.
관계와 일에서 '기억' 때문에 생기는 오해 줄이기
기억이 완벽하지 않다는 걸 이해하면,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조금 달라집니다.
갈등이 생길 때 "나는 분명 이렇게 들었어"라는 말은 사실, "내 뇌가 이렇게 저장해놨을 가능성이 높아"에 가깝습니다. 이걸 인정하면, 상대의 기억이 나와 다를 때 바로 "거짓말하네?"로 치닫지 않게 됩니다.
실무에서 가장 크게 느낀 건, 말로만 한 약속은 정말 위험하다는 점입니다. 각자 다르게 기억하기가 너무 쉽거든요.
저는 그래서 중요한 논의가 오가면, 회의 끝나고 5분 투자해서 이렇게 정리합니다. "내가 이해한 내용이 이렇다" 그리고 그걸 팀 채팅방이나 문서로 남깁니다.
이 과정이 사실 기억을 보조하는 '외부 뇌' 역할을 해 줍니다. 나중에 누가 뭐라 했는지 기억 싸움을 하는 대신, 같이 기록을 보고 조정하면 되니까요.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의 과거 말 한마디를 내 기억대로만 붙잡고 있으면, 서로 끝없이 억울해질 수 있습니다. "내가 그때는 그렇게 느꼈어"와 "네가 실제로 그렇게 말했는지는 잘 모르겠다"를 구분할 수 있으면, 싸움의 온도 자체가 낮아집니다.
개발자 입장에서 본 인간 뇌 메모리
개발자 관점에서 사람의 기억을 보면, 성능은 엉망인데 설계 철학은 탁월합니다.
컴퓨터 메모리는 정확함을 목표로 합니다. 비트 하나라도 틀리면 버그니까요.
하지만 인간 뇌는 정확함보다 생존과 효율이 목표입니다. 디테일을 다 저장하기보다는, 중요한 패턴만 남기고, 나머지는 필요할 때 추론으로 메우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디자이너처럼 기억을 창조적 재구성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경험을 그대로 저장하는 대신, 그 경험에서 패턴과 교훈을 뽑아 인사이트로 바꾸는 데 최적화된 구조인 거죠.
저는 이걸 깨닫고 나서, "기억력이 나쁘다"는 자책이 좀 줄었습니다. 대신, 중요한 건 바로 기록하거나, 구조화해서 정리해 두고, 정확함이 필요 없는 것들은 과감히 대충 기억해도 되는 것으로 분류하기로 했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머리가 조금 더 가벼워졌고, 꼭 필요한 기억에 집중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시사점: 내 기억을 덜 믿을수록, 내가 조금 더 자유로워진다
『기억한다는 착각』이 던지는 메시지를 한 줄로 요약하면, "네 뇌는 생각보다 훨씬 덜 정확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유능하다"쯤인 것 같습니다.
내 기억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몇 가지 좋은 변화가 따라옵니다.
실수와 오해에 대해 스스로를 덜 몰아붙이게 됩니다. 갈등 상황에서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라는 여지를 남길 수 있습니다. 학습과 일에서는 "머리로만 들고 있으려 하지 말고, 구조화·기록·반복에 투자하자"는 쪽으로 전략을 바꾸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느낀 건 이거였습니다. 기억을 '증거'가 아니라 '재료'로 보기 시작하면, 과거에 덜 끌려 다니게 된다는 것.
우리는 어차피 과거를 정확히 보관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지금의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기억을 해석하고, 앞으로의 선택에 더 힘을 쓰는 편이 훨씬 이득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있었던 일 하나만 골라서, "그때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나?"보다 "그 경험에서 내가 가져갈 수 있는 패턴은 뭘까?"를 한 번 정리해 보세요.
『기억한다는 착각』을 덮고 난 뒤, 저는 그 작업이야말로 뇌가 정말 잘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를 정확히 저장하는 건 기계에게 맡기고, 우리는 그 과거로부터 의미를 뽑아내는 일에 더 집중하는 것. 그게 인간 뇌답게 사는 방식 아닐까 싶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인사이트 넘치는 리뷰로 찾아뵙겠습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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