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의 힘: 후각 마케팅과 브랜드 경험의 비밀
우리는 하루 종일 수많은 냄새 속에서 살아갑니다. 출근길 엘리베이터 안의 방향제 냄새,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스치는 커피 향, 마트 세제 코너의 인공적인 향까지 모두 포함해서요.
그런데 정작 이 향기들이 우리의 기분과 행동, 심지어 소비 결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잘 의식하지 못합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공기처럼 여길 뿐이죠.
『향기의 힘』이라는 책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듭니다. 인간의 후각이 어떻게 감정을 움직이고, 그 감정의 변화가 브랜드와 비즈니스에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흥미롭게 풀어내는 책입니다.1
이 글에서는 책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향기가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후각 마케팅이 실제 비즈니스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게 정리해보려 합니다.
향수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브랜드를 고민하는 마케터나 기획자에게도 꽤 실질적인 힌트가 될 수 있을 거예요.

향기의 힘, 왜 지금 주목해야 할까
지금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감각은 단연 시각과 청각입니다. 스마트폰 화면, 유튜브 영상, 광고판, 배너, 알림음, 배경음악까지 쉴 새 없이 눈과 귀를 자극하죠.
문제는, 우리가 이미 너무 많은 시각·청각 정보에 노출되어 있어서 웬만한 자극에는 잘 반응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조금 예쁜 이미지는 그냥 스크롤로 넘기고, 음악도 몇 초 듣다가 취향이 아니면 바로 끕니다. 이 영역은 이미 과잉 경쟁 상태입니다.
여기서 후각은 조금 다른 위치에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덜 쓰였고, 아직 '브랜드 전쟁'이 본격적으로 벌어지지 않은 감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덜 개척된 감각 채널인 셈이죠.
향기가 특별한 이유는, 우리가 냄새를 맡는 순간 의식보다 먼저 감정이 반응한다는 데 있습니다. 비 오는 날 아스팔트 냄새를 맡으면 괜히 센치해지거나, 빵집 앞을 지나가다 고소한 냄새에 발길을 멈추는 것처럼요. 이때 "아, 이 냄새 때문에 내가 이런 기분이구나"라고 논리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기분이 먼저 바뀝니다.
『향기의 힘』이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향기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막거나 통제하기 어려운 통로를 통해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동시에 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브랜드가 이 통로를 이해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면, 그 공간과 제품은 '눈에 보이는 물건'을 넘어 '몸으로 기억되는 경험'이 됩니다. 어떤 브랜드는 로고보다 향기부터 떠오르게 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인간에게 향기란 무엇인가: 후각의 숨은 권력
시각은 정보를 정확히 구분하는 데 탁월합니다. 글자를 읽고, 숫자를 확인하고, 형태를 인식하는 데 최적화된 감각이죠. 반면 후각은 조금 다릅니다. 이 감각은 생각보다 훨씬 감정에 밀착되어 있습니다.
냄새 정보는 뇌의 변연계, 특히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영역으로 거의 곧장 전달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향기는 “이게 무엇인지”를 분석하기 전에 “지금 어떤 기분인지”를 먼저 바꿔버립니다. 논리보다 감정이 앞서는 드문 감각입니다.
어떤 사람 옆에 있으면 이유 없이 편안하고, 또 어떤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썩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말투나 표정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배경에는 아주 미세한 체취나 향수, 공간의 냄새가 작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는 보통 그걸 거의 인식하지 못한 채 '느낌' 정도로만 기억합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냄새를 말로 설명하는 데 서툴다는 사실입니다. 맛은 꽤 세밀하게 표현하면서도, 향기는 "상큼한", "달달한", "시원한" 같은 모호한 단어에 기대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향인지 분명히 구분은 되는데, 막상 입 밖으로 꺼내려면 표현이 막히는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 해보았을 겁니다.
이건 곧 향기가 이성적인 분석보다 몸의 감각과 감정에 더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언어로 붙잡히지 않으니까 더 직접적으로, 더 깊숙이 스며드는 거죠.
『향기의 힘』은 후각의 이런 특성을 이해하는 일이 사람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열쇠라고 말합니다. 누군가의 취향과 기억, 안락함과 불편함의 기준을 파악하려면, 그 사람이 어떤 향기에 끌리고 어떤 향기에 예민한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향기와 기억: 한 번 맡은 냄새는 거의 잊히지 않는다
비 오는 날 문득 스치는 젖은 흙 냄새가 어린 시절 운동장에서 뛰놀던 장면을 떠올리게 할 때가 있습니다. 오래전에 묵었던 호텔 로비의 향 때문에 그 도시의 공기까지 함께 떠오르기도 하고요. 첫사랑이 쓰던 향수를 우연히 맡으면, 그 사람의 얼굴뿐 아니라 그때의 설렘과 어색함까지 함께 되살아날 때도 있습니다.
얼굴이나 구체적인 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흐릿해지는데, 향기는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향을 다시 맡는 순간, 그때의 공기와 온도, 주변 소음, 감정까지 한꺼번에 소환되는 느낌이 들죠.
이건 후각 기억의 구조 때문입니다. 향기는 냄새만 따로 저장되는 게 아니라, 그때의 상황·공간·사람·감정과 함께 하나의 패키지로 기억에 저장됩니다. 그래서 향기를 매개로 기억이 통째로 재생되는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이 특성은 브랜드에게 엄청난 기회가 됩니다. 좋은 경험과 함께 학습된 향기는 그 브랜드에 대한 기억을 강력하게 고정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호텔에 갔는데 로비에서 맡았던 향이 너무 좋았고 서비스도 만족스러웠다면, 나중에 비슷한 향을 어디선가 다시 맡았을 때 자연스럽게 그 호텔과 좋은 기억이 떠오르기 쉽습니다.
한 번 긍정적인 경험과 결합된 향기는, 그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그 브랜드에 대한 호감과 신뢰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합니다. 광고 문구를 다시 보여주지 않아도, 향기 하나만으로도 ‘좋았던 그때’를 떠올리게 만드는 셈입니다.
향수와 향기 마케팅: 제품을 넘어 경험을 파는 시대
향수 시장을 떠올려 보면, 이미 '향기 비즈니스'가 얼마나 고도화되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향수는 더 이상 단순히 "좋은 냄새"를 파는 제품이 아닙니다. 특정 이미지와 라이프스타일, 태도와 정체성을 함께 파는 상징적인 상품입니다.
같은 플로럴 계열 향수라고 해도, 어떤 브랜드는 세련된 도시 여성의 이미지를 내세우고, 또 다른 브랜드는 자유로운 아티스트의 감성을 강조합니다. 향 자체의 미묘한 차이도 중요하지만, 결국 "이 향수를 쓰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이야기가 소비를 이끌어냅니다. 우리는 향을 고르는 동시에 '나라는 캐릭터'를 선택하는 셈이죠.
이 흐름은 이미 향수 카운터를 넘어 다양한 산업의 향기 마케팅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호텔, 백화점, 카페, 편집숍, 자동차 쇼룸, 심지어 병원과 은행까지도 자신들만의 '공간의 향'을 설계하기 시작했습니다.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은은하게 떠도는 일관된 향은, 그 자체로 브랜드의 또 다른 로고가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로고 말이죠. 호텔 로비에 스며든 차분한 향, 자동차 매장에서 나는 새 차 특유의 향, 특정 카페 체인에서 매장마다 비슷하게 나는 커피와 베이커리 냄새는 이미 브랜드 경험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향기의 힘』이 강조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이제 향기는 단지 “좋은 냄새가 나는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브랜드 경험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조명과 인테리어, 음악을 신경 쓰듯이, 향 역시 하나의 전략적 자산으로 다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잘 설계된 향기 마케팅은 제품을 넘어 '머무르고 싶은 공간’, ‘다시 찾고 싶은 경험’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시간이 지나도 기억 속에 오래 남습니다. 결국 향기는 브랜드가 사람의 마음속에 자신을 각인시키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감각적이고도 은밀한 언어인지도 모릅니다.
느낀 점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지점은, 향기를 다루는 일이 단순히 '좋은 냄새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결국 사람의 감정과 기억을 설계하는 작업이라는 걸 깨닫게 되니, 향에 대한 태도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그냥 스쳐 지나가던 향들도 이전보다 더 의식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또 하나 느낀 점은, 내가 타인의 기억 속에 어떻게 남고 싶은지 생각해 볼 새로운 기준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동안은 말투, 표정, 옷차림 같은 '보이는 것'에만 신경을 많이 썼다면, 이제는 "나와 함께 있을 때 어떤 공기가 느껴지길 원하는가"라는, 조금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을 향으로 표현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후각’이라는 감각을 브랜드와 관계의 언어로 재해석해 준 점이 좋았습니다. 마케터나 기획자가 아니더라도, 집과 일터, 인간관계에서 내가 만들어 내는 분위기를 스스로 디자인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고 난 뒤에는, 향을 선택하는 작은 행동 하나에도 나름의 전략과 의도를 담아 보고 싶어졌습니다.
참고
1마음을 움직이는 향기의 힘 | 로베르트 뮐러-그뤼노브 | 아날로그(글담)-교보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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