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환율·원화 가치 하락, 한국 경제에 무엇을 남기나

핵심 요약
현재의 고환율은 단순한 숫자 문제가 아니라, 유동성 정책·재정·투자·고용·청년 문제까지 연결되는 구조적 이슈다. 특히 미국의 통화정책 변화와 한국의 과도한 유동성 공급이 맞물리며, 원화 약세·내수 위축·청년 고용 악화라는 악순환 위험이 커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 왜 이렇게 높은가
지금 원·달러 환율은 과거 위기 때처럼 '잠깐 치솟고 다시 내려오는' 패턴이 아니라, 1,400원대에서 장기간 머무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와 있다. 역사적으로 평균 환율이 약 1,100원 수준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원화의 '새 평형점'이 더 위쪽으로 옮겨간 셈이다.
환율은 수출·수입·무역수지·금리차·지정학 리스크 등 수십 개 변수가 동시에 작용해 결정된다. 그 가운데 이 강연이 특히 강조하는 핵심 변수는 "유동성 공급 속도", 즉 각 나라가 돈을 얼마나 빨리 찍어내고 풀고 있는가이다.
미국도 팬데믹 이후 M2를 크게 늘렸지만, 최근 증가율은 약 4.5% 수준이다. 반면 같은 시기 한국의 M2 증가율은 9%를 넘나들며, 주요국 중 가장 빠른 편에 속한다. 달러 가치도 떨어지지만, 원화 가치는 그보다 더 빠르게 떨어지니, 자연스럽게 고환율(원화 약세)이 구조화되는 것이다.
미국 통화정책 변화와 '헤셋 리스크'
트럼프 전 대통령이 차기 연준 의장 유력 후보로 거론하는 인물이 케빈 헤셋이다. 그는 백악관 선임 경제 고문이자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출신으로, '성장·고용 중시, 통화 완화 선호' 성향으로 평가된다.
헤셋이 존경하는 인물로 자주 언급되는 아서 번스 전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높은 상황에서도 고용을 위해 금리 인하를 밀어붙였다가 결국 스태그플레이션을 초래한 인물로 유명하다. 지금의 파월 의장이 인플레를 잡기 위해 볼커 전 의장을 롤모델로 삼은 '매파'에 가깝다면, 헤셋은 번스의 계보에 놓인 '초비둘기'로 상상할 수 있는 셈이다.
트럼프가 2026년 초에 차기 의장을 공식 지명하게 되면, 파월 의장의 권한은 약해지고 '그림자 연준 의장'(실질 영향력은 차기 인물에게 있는 상태)이 등장한다. 이미 백악관 경제자문 출신이 연준 위원으로 겸직하고 있어, 연준의 정치적 독립성 약화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미국은
기준금리의 빠른 인하
양적긴축 종료 및 재양적완화 가능성
비트코인·스테이블 코인 등을 활용한 새로운 형태의 유동성 공급 을 통해 강력한 완화 기조로 선회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달러 가치가 떨어지고, 특히 일본 등 주요국 금리 인상과 맞물리면 달러 인덱스가 약세로 돌아서면서 원·달러 환율에도 '대반전' 압력이 생길 수 있다.
일본 금리·달러 인덱스·원화의 관계
미국 재무장관이 "엔화 약세는 과도하다, 일본은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일종의 '변형 플라자 합의'에 가깝다. 이 말의 핵심은 "달러 강세가 과도하니, 일본이 금리 인상을 통해 엔화 강세를 만들고 달러를 약세 쪽으로 돌려 달라"는 요구다.
달러 인덱스는 유로·엔·파운드 등 6대 통화로 구성되는데, 엔화·유로의 강세는 곧 달러 인덱스의 약세를 의미한다. 달러가 약해지면, 원화 자체가 별로 강해지지 않더라도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일정 부분 회복될 여지가 생긴다.
정리하면,
미국: 금리 인하·유동성 확대(달러 약세 요인)
일본·일부국: 금리 인상(자국통화 강세 → 달러 약세 요인) 이 동시에 가동되면, 원·달러 환율이 지금처럼 1,400원대에서 더 치솟기보다는 1,350원 수준을 향해 내려갈 가능성이 커진다.
다만 이는 여러 변수 중 "유동성·금리"에 높은 가중치를 둘 때의 시나리오이며, 지정학 리스크나 한국 재정·성장 여건이 더 나빠질 경우 1,600원 상향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양극화'를 키우는 고환율 구조
고환율은 누구에게는 축복, 누구에게는 재앙이다. 수출 대기업, 특히 반도체·자동차·스마트폰 등 달러로 수익을 올리는 기업들은 환차익 덕을 본다. 같은 1달러를 벌어도, 환율이 1,100원일 때보다 1,450원일 때 훨씬 많은 원화 매출로 잡히기 때문이다.
반면, 많은 중소기업·자영업자는 '수입'을 맡고 있다. 원자재·부품·목재·에너지 등을 달러로 사들인 뒤, 일부 가공하여 국내 대기업이나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역할이다. 문제는 이들이 대체로 6개월~1년짜리 고정 단가 공급계약을 맺고 있어, 환율이 기간 중 1,300원에서 1,450원으로 뛰어도 가격을 곧바로 올리기 어렵다는 점이다.
원자재 가격이 국제적으로 내려가도, 환율이 크게 뛰면 원화 기준 수입단가는 오를 수밖에 없다. 그 차이를 중소기업이 고스란히 떠안으면, 팔면 팔수록 남는 게 없는 구조가 된다.
결과적으로
수출 대기업·대기업 직원: 고환율 → 실적·보너스 호조
수입 중소기업·자영업·하청업체: 고환율 → 원가 부담·이익 압박 이라는 양극화가 심해진다.
이 구조가 지속되면, 임금·복지·고용 안정성에서도 대기업·중소기업 격차가 더 벌어지게 된다.
고환율과 물가, 그리고 저소득층에게 더 잔인한 이유
고환율은 수입 물가를 밀어 올리고, 이는 생산자물가와 소비자물가로 번져간다. 최근 국제 유가·원자재 가격이 내려가는 상황에서도, 높은 원·달러 환율 때문에 국내 휘발유·식료품·생활필수품 가격이 생각보다 잘 안 내려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가 상승은 모두에게 불편하지만, 충격은 계층마다 다르게 작용한다. 한국의 소득 분위별 '소비성향'을 보면,
최하위 계층(1분위)은 소득의 거의 2배 가까이를 소비(빚 포함)
중·상위 계층은 소득의 60~80% 정도만 소비, 나머지는 저축·투자 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같은 10만 원의 기름값 인상이라도,
월 1,000만 원 버는 가구에겐 "짜증 나는 비용 증가"
월 100만 원 버는 가구에겐 "생활이 안 굴러가는 수준의 타격" 이 될 수 있다.
고환율 → 수입물가 상승 → 전체 물가 상승 → 소득 대부분을 필수 소비에 써야 하는 저소득층·취약계층부터 먼저 무너지는 구조다.
따라서 환율 안정은 단순한 거시지표 관리가 아니라, 사실상 '서민 보호·불평등 완화' 정책과 직결된다.
자본 유출·투자 위축·내수 붕괴의 경로
환율이 높게 고착되면, 투자자·기업의 '포지션'도 달라진다. 외국인 투자자는 "어차피 달러 강세가 이어질 것"이라 보고, 원화 자산을 팔아 달러 자산으로 옮기려 한다. 실제로 최근 특정 시점 외국인 주식 순매도 규모는 역대 최대치 수준까지 기록했다.
국내 개인 투자자도 비슷하게 움직인다. 원화가 약세라고 느끼면 "한국 자산을 계속 들고 있어도 되나?"라는 불안이 커지고, 미국 주식·달러 예금 등 해외자산 비중을 늘리는 쪽으로 간다.
수출로 달러를 많이 벌고 있는 대기업 역시 달러를 굳이 원화로 바꿔 들여오지 않고, 해외에 그대로 두는 유인이 커진다. 이 모든 흐름이 "한국으로 들어오는 돈을 줄이고, 나가는 돈을 늘리는" 방향으로 맞물리며, 또다시 고환율을 지지한다.
이렇게 자금이 빠져나가면, 기업의 국내 설비투자 여력은 부족해진다. 실제 성장률 전망을 보면,
수출 기여도는 그나마 버티지만
설비투자·민간소비 기여도는 낮아지고
전체 성장률은 잠재성장률(약 2%)에도 못 미치는 수준 으로 떨어지는 그림이 나온다.
투자가 위축되면 일자리가 줄고, 소득이 정체되며, 소비가 더 줄어든다. 투자와 소비, 두 축이 동시에 약해지는 것이 바로 "내수 붕괴"다.
재정 확대와 유동성, 그리고 '고환율 악순환'
경기가 나빠지고 내수가 위축되면, 정부는 재정으로 '버텨야 한다'는 압력을 받는다. 소비쿠폰·긴급지원금·추경 등으로 단기적으로는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미 한국은 여러 정권을 거치며 2019년 이후 만성적인 적자 재정 상태에 들어가 있다. 세입보다 세출이 많아 국채 발행이 누적되고 있고, 중장기 재정 건전성은 점점 악화되는 중이다.
이 상황에서 재정을 더 쓰면,
국채 발행 확대 → 국채금리 상승
국채금리 상승 → 민간 기업의 채권 발행 비용 증가(구축 효과) 가 발생해, 오히려 민간투자를 더 위축시킬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재정 확대는 곧 "유동성 공급 확대"라는 뜻이다. 앞서 본 것처럼 유동성 공급 속도가 이미 미국보다 빠른 한국이, 내수 부양을 명분으로 더 많은 돈을 풀면 → 원화 가치 추가 하락 → 환율 상승 → 수입물가·물가 상승 → 내수 추가 악화 → 다시 재정 확대 필요 라는 나선형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강연자는 "고환율의 뿌리가 유동성 공급 속도에 있다면, 해결도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환율과 청년 고용: '쉬었음'의 급증
고환율이 내수·투자·성장에 충격을 주면,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신규 채용, 특히 청년 일자리다.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면 당장 신규 채용 규모를 줄이고, 인턴·수습·계약직을 축소하기 때문이다.
통계를 보면, 청년 인구(만 15~29세) 자체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청년 인구 감소 속도보다
'청년 취업자' 감소 속도가 더 빠르다는 점이다.
즉 단순히 "청년이 줄어서 청년 취업이 줄었다"가 아니라, "남아 있는 청년 중에서도 일을 하고 있는 비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지표가 '청년 비경제활동인구' 증가다. 청년이
취업 상태도 아니고
적극적으로 구직 중인 실업자도 아닌 상태로 빠져나가고 있다.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이들은 보통 '구직 단념자'나 '그냥 쉬었음'으로 분류된다. 그냥 쉬고 있다, 포기했다, 시도하지 않는다 — 이 비율이 역대 최고 수준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것은 사회 전체에 매우 위험한 신호다.
한 번 노동시장 진입이 지연된 청년은,
경력을 쌓을 기회를 놓치고
이후 기업 채용에서 "경력자를 선호"하는 흐름 속에서 반복적으로 밀려나며
30대 중반 이후에도 "쉬었음" 상태가 길어질 위험이 커진다.
고환율로 인한 국내투자 위축·내수 침체가 이 흐름을 더 가속화시키고 있다.
AI 확산과 청년 일자리의 이중 압박
여기에 구조적 변수 하나가 더 얹힌다. 바로 AI·자동화다. 이미 미국·한국 모두에서,
리서치 어시스턴트
단순 사무 지원
기초 분석·리포트 작성 같은 '입문형·초급' 역할이 AI로 대체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전통적으로 청년들은 이런 보조 업무를 통해 사회에 첫 발을 들이고, 경력을 쌓으며 점차 숙련된 전문가로 성장해 왔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이미 경험·지식이 있는 기성 인력에게 AI 도구를 쥐여주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새내기 청년을 뽑아 기초부터 가르치는 것보다, 숙련자 1명에게 AI를 붙이는 게 더 싸고 빠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AI는
기존 인력을 대량 해고하는 것보다
"새로 뽑을 청년"의 자리를 줄이는 방식으로 고용 구조를 바꾸는 경향이 커진다.
고환율로 내수가 위축된 상황에서, AI까지 겹치면 청년 고용시장에는 이중의 압력이 발생한다. 경제가 성장할 여력도 적고, 남은 성장의 과실마저 '기성 인력 + AI'가 대부분 가져가는 구조로 흘러갈 위험이 있는 것이다.
인사이트
현재의 고환율은 단순한 환율 숫자 문제가 아니라,
미국 통화정책 전환과 달러 약세 가능성
한국의 과도한 유동성 공급
수출·수입 구조에 따른 대기업·중소기업 양극화
물가와 저소득층 생활 압박
자본유출·투자 위축·내수 붕괴
청년 고용 악화와 AI에 의한 구조적 일자리 축소 가 서로 얽혀 있는 복합적인 구조 문제다.
실천적인 관점에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개인 투자자는 환율을 "거시경제의 체온계"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단기 환차익보다, 장기적으로 어떤 구조가 내수·고용·자산시장에 영향을 줄지 보는 시야를 가져야 한다.
둘째, 정책 측면에서는
유동성 공급 속도를 조절해 원화 가치 붕괴를 막고
재정은 '무차별 지원'이 아니라 내수 기반·생산성 향상·중소기업 경쟁력 강화에 우선순위를 두며
청년 정책은 "쉬는 것을 보상"하기보다 "일하는 것을 보상"하는 방향으로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청년 개인에게는 냉정한 현실 인식이 요구된다. AI와 고환율, 저성장 환경에서 "좋은 자리만 기다리며 쉬고 있기"는 점점 더 위험한 선택이 된다. 현실적인 출발점에서 경력을 쌓고, AI 활용 역량을 포함한 '업그레이드 가능성'을 확보하는 전략이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결국 환율을 이해한다는 것은, 돈의 값뿐 아니라 "우리 삶과 일자리의 구조"를 함께 읽는 일에 가깝다. 숫자 뒤에 숨은 구조를 보는 눈이 있어야, 변화에 휘둘리지 않고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출처 및 참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