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eak XV가 보여준 인도 VC의 역전극, 한국 투자자에게 주는 신호

인도 VC를 바꾼 한 글자, DPI가 말해주는 것
IPO 뉴스가 쏟아질수록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합니다. "이 큰 판에서 실제로 돈을 버는 쪽은 누구인가." 인도에서 그 질문에 가장 명확한 답을 내놓은 이름이 바로 피크 XV입니다. 화려한 유니콘 숫자 대신 DPI라는 지표로 성과를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DPI가 높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할까
VC 업계에서 DPI는 "투자자에게 실제로 돌려준 현금"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펀드가 100을 모았다면, DPI 1은 원금 회수, 2는 두 배 회수를 뜻합니다. 인도에서는 오랫동안 1~1.5 수준에서 머물렀습니다. 보여줄 만한 엑시트가 많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피크 XV는 최근 2년 남짓한 기간에만 IPO를 통해 약 40억 달러를 회수했습니다. 그 안에는 3,500만 달러를 넣고 15억 달러 가까이 회수한 Groww 같은 상징적인 사례가 들어 있습니다.
단순히 "성공했다"가 핵심은 아닙니다. 종이상 기업가치가 아니라, LP에게 찍히는 송금액으로 승부를 봤다는 점입니다. 저라면 이런 펀드를 화려한 스토리텔러가 아니라, 숫자로 말하는 운영자에 가깝다고 보겠습니다.
한국 투자자에게 DPI가 던지는 질문
국내에서도 스타트업, 코스닥, 크립토까지 다양한 고위험 자산에 돈이 몰립니다. 그러나 DPI 관점에서 자신의 투자 내역을 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얼마나 올랐냐"가 아니라 "언제, 얼마를 현금으로 회수했냐"를 묻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시선이 바뀝니다. 인도 LP들이 그 전환을 거치며 피크 XV 같은 집단을 선택했다면, 한국에서도 장기적으로는 비슷한 선별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 기준에서는 이게 버블과 체력 있는 자본을 가르는 첫 번째 필터입니다.
트렌드가 아닌 '파이프'에 베팅한다는 것
많은 사람들이 스타트업을 떠올릴 때 화려한 브랜드와 마케팅을 먼저 생각합니다. 피크 XV가 택한 길은 정반대였습니다. 겉에서 잘 보이지 않는 인프라, 이른바 '파이프'에 집요하게 돈과 시간을 넣었습니다.
파이프 비즈니스의 공통점, 느리게 자라다 갑자기 필수가 된다
Groww는 가계 자금을 자본시장으로 흘려 보내는 통로입니다. Pine Labs는 상점과 결제를 잇는 연결선입니다. Meesho는 동네 판매자와 저가 소비자를 붙잡는 유통망이고, Razorpay는 사업자와 온라인 결제를 묶는 결제 레이어입니다. 이런 회사들은 초기에 성장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계좌를 하나씩 열고, 단말기를 조금씩 깔고, 소상공인을 설득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단 파이프가 일정 수준 이상 깔리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사용자는 굳이 다른 길을 찾지 않고, 경쟁사가 따라잡으려면 비슷한 인프라를 새로 까야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언제 이렇게 커졌지"라는 느낌이지만, 실제로는 눈에 잘 띄지 않던 기간의 누적 결과입니다. 저라면, AI나 웹3처럼 화제성이 높은 영역일수록 오히려 그 안에서 인프라 레이어가 어디인지 먼저 찾겠습니다.
인도식 '인내 자본'이 만든 10년짜리 곡선
Pine Labs 투자만 봐도 피크 XV의 태도가 드러납니다. 이 회사는 로열티 카드에서 POS, 머천트 결제까지 몇 차례 큰 방향을 바꿨습니다. 그 과정에서 성장 정체와 느린 구간이 길게 이어졌습니다. 대부분의 VC가 "표면상 수익"을 위해 일정 시점에 지분을 정리했다면, 피크 XV는 17년 가까이 들고 가면서 엑시트 시점과 규모를 극대화했습니다.
이런 전략은 자금 회전이 빨라야 하는 개인 투자자에게는 버겁습니다. 반대로 연금, 공제회, 장기 자산을 운용하는 쪽에는 더 적합합니다. 같은 스타트업이라도 투자 주체의 의무 기간과 현금 흐름 구조에 따라 접근법이 달라져야 한다는 점을, 피크 XV의 사례가 잘 보여줍니다.
올라 일렉트릭과 인도 핀테크에서 드러난 함정
성장 스토리만 보면 인도 시장은 끝없이 확장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올라 일렉트릭의 추락과, 각종 핀테크 라이선스 이슈는 다른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스케일과 하이프가 품질을 대신할 수 없다는 증거
올라 일렉트릭은 한때 인도 전기 이륜차 시장의 절반을 쥐었습니다. 월 5만 대 넘게 팔리던 시점에는 "이제 게임이 끝났다"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하지만 빠른 판매 뒤에 남겨둔 서비스 공백이 결국 발목을 잡았습니다. 수리 지연, 부품 부족, 쌓여 가는 민원 속에서 고객 신뢰가 무너졌고, 그 사이 TVS, 바자즈 같은 전통 강자가 자신들의 생산·서비스 역량을 앞세워 시장을 되찾았습니다.
한국 전기차·모빌리티 시장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초기에는 보조금과 디자인이 모든 것을 덮지만, 어느 순간부터 서비스 네트워크와 부품 조달 능력이 승부를 갈라 버립니다. 겉으로는 혁신 기업처럼 보여도 실제 하드웨어 비즈니스를 돌릴 체력이 없을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의심해야 합니다.
규제와 인프라를 장악하는 자가 남는다
핀테크 영역에서는 Razorpay가 단적인 예입니다. 최근 인도 중앙은행으로부터 크로스보더 결제 집계 사업자 자격을 확보했습니다. 단순히 해외 결제를 처리하는 기술을 넘어서, 규제의 문턱을 통과하고 인프라 사업자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Airbnb, Shopify 같은 글로벌 플레이어와의 협업도 이 기반 위에서 빠르게 확장됩니다.
반대로 규제 변화 속도를 읽지 못하는 회사는 어느 날 갑자기 핵심 기능을 중단해야 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마이데이터, 전자지급결제대행(PG), 계좌통합 서비스 등 규제에 민감한 비즈니스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제 기준에서는, 기술력만큼이나 규제·인프라에 대한 이해와 로비 능력을 확인하지 않으면 핀테크 투자라고 부르기 어렵습니다.
이 전략이 맞는 사람, 시작 전 점검할 것들
누구에게 유리한 시각인가
피크 XV식 관점은 모든 투자자에게 통하지 않습니다. 장기 확정을 견딜 수 있는 자금, 즉 최소 7년 이상 묶어 둘 수 있는 여유 자산이 있는 사람에게 적합합니다. 이들에게는 파이프 비즈니스와 인내 자본이라는 키워드가 유효한 기준이 됩니다. 반대로 주식 단타, 레버리지, 코인처럼 빠른 손익을 목표로 하는 사람에게는 이 사고방식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 수 있습니다. 몇 년간 눈에 띄는 수익이 안 나면 전략 자체를 의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분기점은 업에 대한 이해 수준입니다. 업의 구조와 규제, 인프라의 위치를 읽을 수 있어야 파이프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화려한 IPO 기사 속에서 단지 가장 큰 숫자를 좇는 선택만 반복하게 됩니다. 저라면 업의 구조를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는 애초에 장기 자금을 넣지 않겠습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첫 행동
현실적으로 시작점은 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보유한 투자 자산 목록을 펼쳐 놓고, 각 자산이 "파이프인가, 트렌드 소비재인가"를 먼저 구분하는 일부터가 좋습니다. 그리고 각 항목 옆에 "실제 현금 회수 비율", 즉 자신만의 DPI를 간단히 적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언제 얼마에 샀고, 지금까지 얼마를 현금으로 되팔았는지 적는 것만으로도 시야가 크게 달라집니다.
그 다음 단계로는 관심 있는 산업 하나를 정해, 그 안의 파이프 플레이어를 한두 개씩 찾아보는 방식이 자연스럽습니다. 결제, 물류, 데이터 인프라처럼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남들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길목을 중심으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 과정을 거치다 보면, 인도에서 피크 XV가 보여준 전략이 단순히 남의 성공담이 아니라, 한국 투자자에게도 적용 가능한 사고 도구라는 점을 체감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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