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째 개발자 백수, 문제는 나일까 시장일까

요즘 개발자 구직이 유난히 잔인하게 느껴지는 이유
요즘 IT 업계 이야기를 들으면 이상한 감정이 동시에 밀려옵니다. 분명 뉴스에서는 여전히 개발자 연봉, 빅테크, AI 호황 같은 단어가 돌아다니는데, 실제 현장에서는 1년 넘게 구직 중인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특히 몇 년 경력 있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수백 건 지원을 넣고도 면접 소식조차 듣기 어려운 상황은 낯설면서도 납득이 됩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경력 3년 정도면 이력서를 20~30군데만 보내도 한두 곳에서 금방 연락이 왔습니다. 당시 기업은 성장을 위해 사람을 먼저 뽑고 일을 나중에 붙였습니다. 지금은 반대입니다. 지금 있는 일을 최소 인원으로 돌리면서, 정말 꼭 필요한 포지션에만 사람을 올립니다. 그래서 구직자 입장에서는 실력이 떨어져서 막힌 느낌이 들지만, 실제로는 지원자 밀도와 기준이 동시에 치솟은 상태입니다.
제 기준에서는 이 상황을 단순한 '침체'보다 '규칙이 바뀐 새 게임'으로 보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예전 규칙에 맞춰 구직 전략을 짜면, 본인은 열심히 뛰었는데도 계속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는 느낌만 남습니다. 문제는 시장이 바뀌었는데, 자기 전략은 그대로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입니다.
숫자로 설명되지 않는 심리적 타격
이 구직난이 더 잔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경제지표 때문이 아니라 자존감 때문입니다. 경력 3년이면 팀에서 실무를 주도할 수 있고, 코드도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길 시기입니다. 그런데 공고 300개, 400개에 지원해도 연락이 거의 오지 않으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내가 못해서 그런가"라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객관적 피드백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서류 탈락 이유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코딩 테스트를 떨어져도 상세한 점수는 전달되지 않습니다. 면접까지 네 번 봤는데도 마지막에 아무 말 없이 연락이 끊기는 경우도 흔합니다. 사람이 버티기 힘든 지점은 실패 자체보다, 무엇을 바꿔야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이 공백이 길어질수록 정신적인 소모가 훨씬 커집니다.
"나는 쓸모없는가"라는 질문이 시작될 때
현실적으로는 시장 구조의 변화가 크지만, 구직자의 마음속에서는 이야기가 다르게 흘러갑니다. 수십 번 탈락한 뒤엔 "이제 개발자로 다시 취업할 수 있을까", "그냥 다른 업종으로 갈까" 같은 질문이 고개를 듭니다. 이미 식당, 판매직, 배달 같은 다른 일을 병행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여기서 많이들 놓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생계를 위해 하는 일과, 경력을 이어가는 일이 완전히 분리되면 시간이 갈수록 개발자로서의 자기 이미지가 빠르게 희미해집니다. 코드도 여전히 짜고 공부도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스스로를 "레스토랑 아르바이트생"으로 먼저 떠올리는 순간이 옵니다. 이 지점부터는 기술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로 번집니다.
이 시장에서 통하는 사람과 밀려나는 사람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오해합니다. 지금 시장에서는 단순히 코딩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노출을 잘하는 사람"이 유리합니다. 예전에는 회사가 사람을 찾기 위해 더 애를 썼고, 이력서만 던져도 어느 정도 공평하게 검토하는 시도라도 했습니다. 지금은 반대로, 회사는 지원자가 넘쳐서 오히려 필터를 어떻게 줄일지 고민합니다.
이력서만 던지는 사람과 관계를 쌓는 사람
실제로 포지션 하나에 수백 명이 몰리는 구조에서, 아무 연고 없이 공고만 보고 지원하는 사람은 확률 게임으로 밀려납니다. 반면 커뮤니티, 디스코드, 오픈소스, 밋업, SNS 등에서 사람과 먼저 연결을 만든 사람은 같은 공고에 지원해도 완전히 다른 처리 경로를 밟습니다. 내부 추천 한 번으로 ATS 같은 자동 필터를 건너뛰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제 기준에서는 이제 "얼마나 많은 회사에 지원했는가"보다 "얼마나 많은 개발자와 연결되어 있는가"가 더 중요한 지표입니다. 페르소나를 나누어 보면, 이미 전 직장이나 사이드 프로젝트에서 인연을 맺은 동료가 많은 중·시니어 개발자는 여전히 이직이 가능합니다. 반면 학원이나 부트캠프 출신으로 실력은 있어도 현직 네트워크가 거의 없는 사람은 같은 실력을 가지고도 훨씬 오래 헤매게 됩니다.
피드백을 끌어내는 사람과 조용히 기다리는 사람
현실 함정은 여기에 하나 더 있습니다. 떨어질 때마다 "회사에서 알아서 평가했겠지"라고 넘기는 사람은 20번 면접을 봐도 성장 속도가 느립니다. 반대로, 면접 막판 5분을 피드백 요청 시간으로 쓰는 사람은 한 번 떨어질 때마다 한 단계씩 올라갑니다.
"제가 이번 면접에서 보완해야 할 점을 한 가지만 짚어주실 수 있을까요" 같은 질문은 상대가 부담 없이 답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HR에서 공식 메일로 주지 않는 피드백을, 실무자 입에서 직접 뽑아내는 것입니다. 이 차이가 5번, 10번 쌓이면 면접 이야기 구조부터 답변 방식까지 완전히 달라집니다. 단순히 운이 없어서 계속 떨어지는 것인지, 매번 같은 이유로 떨어지는 것인지 구분이 되기 시작합니다.
이직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다
많은 개발자가 아직도 "좋은 회사 공고를 빨리 찾아서, 깔끔한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보내는 것"을 구직의 전부로 생각합니다. 지금 시장에서는 이 전략이 절반만 맞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전혀 다른 영역에서 승부가 납니다. 특히 한국처럼 학벌, 경력 타이틀, 유명 회사 로고가 여전히 크게 작동하는 시장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노출'과 '구체성'이 새로운 스펙
이력서를 열어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짧은 시간 안에 "이 사람은 실제로 뭘 만들 수 있는지", "어디까지 맡겨도 되는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그래서 요즘 강하게 먹히는 것은 화려한 기술 스택 나열이 아니라, 구체적인 산출물과 그 과정을 공개한 기록입니다. 예를 들어 개인 프로젝트를 단순히 링크만 주는 대신, X나 블로그에 기능 하나를 추가할 때마다 짧게라도 과정을 기록하고, 어려웠던 부분과 해결 방식을 남기는 방식입니다.
이런 기록은 세 가지 역할을 합니다. 하나는 실력을 증명하는 포트폴리오, 둘째는 커뮤니티에서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레이더, 셋째는 면접에서 이야기할 소재입니다. 같은 프로젝트도 조용히 혼자 만든 사람과, 과정을 공개하면서 만든 사람의 시장 가치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보여주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충분히 이해되지만, 그 선택에는 "발견될 기회를 스스로 줄인다"라는 대가가 붙습니다.
기술 스택과 자존심 사이에서의 선택
또 하나 미묘한 지점이 있습니다.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일만 하겠다"라는 생각이 지나치게 좁게 작동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요즘 트렌드가 아니라는 이유로 자바, 코볼, 레거시 시스템을 무조건 기피하는 패턴입니다. 단기적으로는 멋있어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선택지가 급격히 줄어듭니다.
국내 대기업, 금융, 제조, 통신 계열 시스템 상당수는 여전히 자바와 오래된 기술 위에서 돌아갑니다. 이 영역을 통째로 제외하면, 이미 좁은 문을 더 좁게 만드는 셈입니다. 제 기준에서는 "단기적으로 덜 멋져 보여도, 지금 당장 개발자로 다시 들어갈 수 있는 문"을 먼저 통과하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그 안에서 스택과 역할을 점진적으로 바꾸는 편이, 바깥에서 이상적인 첫 직장을 기다리는 것보다 성공 확률이 높습니다.
이 전략이 맞지 않는 사람, 그리고 첫 번째 행동
구직 전략에는 항상 전제가 붙습니다. 네트워킹, 공개 프로젝트, 적극적인 피드백 요청 같은 조언이 모두에게 같은 무게로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내성적인 성격, 돌봐야 할 가족, 이미 한계까지 찬 육체노동이나 서비스직 파트타임까지 고려하면, 저녁과 주말마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한다는 말이 공허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현실적 제약을 먼저 인정해야 하는 사람들
예를 들어 이미 하루 10시간 이상 다른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에게 "커뮤니티 활동과 공개 프로젝트를 더 하라"라는 말은 사실상 "잠을 줄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지방 소도시에 거주해 대면 네트워킹이 어렵고, 원격 포지션 경쟁률은 과하게 높은 상황이라면, 전략의 우선순위가 달라집니다. 이런 경우에는 당장 이상적인 회사보다는, 현재 거주지 기준에서 가장 개발과 가까운 일을 찾는 방향이 현실적입니다. 사내 자동화, 내부 도구 유지보수, IT 지원 직무 같은 회색 지대도 장기적으로는 개발 직무로 옮겨갈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아직 부모 집에 살고 생활비 부담이 크지 않은 취준생이나, 경력 단절 뒤 재도전을 시작한 사람이라면 상황이 다릅니다. 이들은 당장의 시급보다도, 하루 두세 시간이라도 개발자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시간에 투자를 크게 할 수 있습니다. 공개 프로젝트와 네트워킹에 공격적으로 시간을 쓰기 좋은 시기입니다.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한 걸음
추상적인 조언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오늘 무엇을 바꾸느냐입니다. 제 기준에서는 첫 행동을 세 가지 중 하나로 좁히는 편이 좋습니다. 당장 이력서를 고치지 말고, 지난 한 달간 구직 활동을 시간 단위로 적어보는 것, 지금 쓰는 기술과 가장 가까운 온라인 커뮤니티 하나에 가입해, 오늘 안에 최소 한 번은 댓글이나 질문을 남기는 것, 다음 면접이 잡혀 있든 말든, 가상의 면접을 가정하고 "이 회사에서 같이 일하고 싶은 이유"를 1분 안에 말로 정리해 녹음해 보는 것, 셋 중 하나면 충분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시장이 나빠졌다는 사실은 개인이 바꿀 수 없지만, 그 시장을 통과하는 전략은 각자 설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글에서 다룬 내용은 결국 "이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다"라는 전제 위에서 나온 제안들입니다. 스스로를 탓하기 전에, 지금 쓰는 전략이 과거의 호황기에 멈춰 있는 것은 아닌지 먼저 점검하는 편이, 냉정하지만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입니다.
출처 및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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