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리오 아모데이 인터뷰로 읽는 AI 버블, 진짜 위험은 다른 곳에 있다

AI 버블 논쟁보다 중요한 것, '타이밍 리스크'
대기업이 데이터센터에 10조, 20조 원씩 붓는다는 뉴스가 반복되면, 다들 마음이 흔들립니다. 따라가야 할지, 거리를 둬야 할지 기준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다리오 아모데이는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기준선을 제시합니다. 기술 자체에는 매우 낙관적이지만, 경제적 수익과 투자 타이밍에는 분명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지금의 AI 논쟁은 "버블이냐 아니냐"라는 감정적 프레임보다 "언제 얼마를 베팅할 것인가"라는 타이밍 문제에 더 가깝습니다.
스케일링 법칙과 '버블이 아닌' 기술적 확신
아모데이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더 많은 연산 자원과 데이터가 투입되면, 언어모델은 거의 모든 지적 작업에서 꾸준히 좋아진다는 경험 법칙입니다. 코드 작성, 수학, 생물 의학, 금융, 법률, 재료 연구까지 범위가 넓습니다. 이른바 스케일링 법칙입니다.
이 법칙이 지난 10년 동안 꽤 정확하게 들어맞았고, 엔트로픽 자체 매출 증가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연 매출이 0에서 1억 달러, 10억 달러를 지나 80억 달러 수준까지 매년 10배씩 증가하는 구간을 통과했습니다. 이런 데이터는 적어도 "AI는 금방 식을 일시적 유행"이라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무너뜨립니다. 기술이 만들어 내는 총가치는 결국 투자 규모를 따라잡는다는 확신이 깔려 있습니다.
'불확실성의 원뿔'과 파산 리스크
문제는 속도입니다. 1년 뒤 매출이 200억 달러일지 500억 달러일지 예측이 안 되는 상태에서, 2년 뒤에 쓸 연산 자원을 지금 계약해야 합니다. 아모데이는 이 상황을 "불확실성의 원뿔"이라고 부릅니다. 미래 매출이 뻗어나갈 수 있는 범위가 너무 넓다는 뜻입니다.
연산 자원을 조금만 사면 성장 기회를 경쟁사에 넘겨줍니다. 너무 많이 사면 매출이 기대에 못 미칠 때 바로 적자가 납니다. 그 극단에는 파산도 있습니다. 기술이 충분히 강력한데도, 사업 구조와 타이밍을 잘못 잡아서 쓰러지는 플레이어가 나올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실무에서 중요한 질문은 "AI가 뜨느냐 식느냐"가 아니라 "우리 조직이 감당할 수 있는 원뿔의 폭이 어디까지인지"입니다.
데이터센터, 칩, 안보: AI를 인터넷과 같다고 보면 생기는 오해
한국에서 AI 투자를 이야기하면 여전히 인터넷, 5G, 클라우드와 유사한 인프라 투자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모데이는 이 비유 자체가 잘못된 출발점이라고 지적합니다.
'천재 국가 한 개를 데이터센터에 넣는다'는 관점
아모데이가 쓰는 비유는 강렬합니다. 언젠가 데이터센터 안의 AI 시스템이 "천재들로 이루어진 한 국가" 수준의 지적 생산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전망입니다. 그 시점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몰라도, 방향성 자체는 이미 눈앞에 와 있다는 말입니다.
이 비유를 받아들이면 칩 규제와 데이터센터 투자는 단순한 산업정책이 아니라 안보 전략이 됩니다. 특정 국가가 이런 수준의 AI 스택을 먼저 갖추면, 정보 수집, 무기 설계, 경제 전략, 사이버 공격, 선전 및 여론 조작까지 거의 모든 영역에서 상대 국가를 압도할 수 있습니다. 아모데이가 중국에 대한 첨단 칩 수출 제한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도 이 맥락입니다. 통신장비 점유율 경쟁과는 차원이 다른 게임이라는 인식입니다.
규제 논쟁의 핵심, '시장에 맡기자'와 '조기 가드레일'의 충돌
미국 안에서도 규제를 둘러싼 균열이 분명합니다. 실리콘밸리 일부는 AI를 또 하나의 인터넷 혁신으로 보고, 과도한 규제가 스타트업 생태계를 망가뜨린다고 주장합니다. 아모데이는 이 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실제 모델을 만드는 연구자들은 투자자나 논객보다 훨씬 더 위험을 체감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가 지지한 법안들은 대체로 일정 규모 이상의 회사와 거대 모델에만 적용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작은 팀과 스타트업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려는 방향입니다. 하지만 "10년간 아무 규제도 하지 말자"와 같은 제안에는 매우 비판적입니다. 빠른 속도의 기술일수록 초기 가드레일을 치는 데 실패하면, 뒤늦은 규제가 더 큰 비용과 반작용을 불러온다는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한국도 지금처럼 원론적 토론만 하다 보면, 실제로 문제가 터진 뒤 정치적 반작용 속에서 급박한 규제가 쏟아지는 시나리오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일자리 절반이 위험해도, 생산성 2배가 함께 온다면
국내에서도 "엔트리 레벨 직군의 절반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자주 인용되지만, 실제 전략을 세울 때는 이 문장을 절반만 믿는 것이 안전합니다. 나머지 절반에는 생산성 폭증이라는 다른 진실이 들어 있습니다.
자동화 vs 확장, 기업이 항상 택하는 쪽은 다르다
아모데이는 기업이 AI를 쓰는 방식이 크게 두 가지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는 보험 청구, KYC 심사처럼 이미 존재하는 업무를 AI에게 넘기고 인건비를 줄이는 방식입니다. 다른 하나는 AI가 90퍼센트까지 처리한 작업을 사람이 마무리하면서, 이전보다 10배 많은 업무를 소화하고 그만큼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 내는 방식입니다.
기업은 당연히 비용 절감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경쟁 압력 때문에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 내는 쪽도 밀어붙이게 됩니다. 이 균형에 따라 순고용이 줄어들지, 재편되면서 늘어날지가 결정됩니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몇 명을 자를 수 있나"보다 "같은 인원으로 10배 많은 일을 처리하면 어떤 비즈니스가 새로 가능해지는가"라는 질문으로 내부 논의를 바꾸는 편이 장기적으로 유리합니다.
세제, 재훈련, 노동시간: 사회 시스템의 재설계
생산성이 연 5퍼센트, 10퍼센트씩 붙는 상황이 오면, 경제 전체 파이는 크게 늘어나지만 분배 문제는 더 복잡해집니다. 아모데이는 세제 조정, 재훈련, 노동시간 구조까지 함께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케인즈가 예측했던 "주당 15~20시간만 일하는 사회"가 현실 옵션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에서는 이 논의가 아직 너무 정치화되어 있습니다. 기본소득, 주 4일제 같은 키워드로만 소모적인 싸움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AI가 실제로 코드와 문서를 쓰고, 고객 응대를 처리하는 모습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지금의 고용·복지·교육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제도는 언제나 기술보다 늦게 움직이지만, 늦게 움직인 만큼 더 급격하게 흔들리곤 합니다.
한국 기업과 개인이 체크해야 할 현실 조건
AI에 대한 거시 담론은 거대합니다. 그러나 회의실 안에서 내려야 하는 결정은 항상 구체적입니다. 우리 조직이 지금 어떤 스텝을 먼저 밟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투자 여력보다 '불확실성의 원뿔'부터 그려야 한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연산 자원 구매나 AI 인력 채용이 아닙니다. 우리 비즈니스에서 AI를 적용했을 때 매출이 증가할 수 있는 구간의 폭, 즉 자체적인 불확실성의 원뿔을 그려보는 일입니다. 어떤 업무는 바로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지만 매출 증가는 미미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당장은 수익이 안 나도 장기적으로 경쟁사의 고객을 통째로 가져올 수 있는 영역도 존재합니다.
이 폭이 너무 좁으면 과감한 투자가 의미 없고, 너무 넓으면 빚을 내서라도 앞당길 이유가 생깁니다. 국내에서는 여전히 "남들이 하니까 우리도 해야 한다"는 식의 모호한 압력이 강합니다. 그러나 AI 투자 의사결정은 결국 캐시플로 기반의 확률 게임입니다. 아모데이가 말한 것처럼, 과소투자도, 과잉투자도 모두 치명적입니다.
개인에게 남는 것은 'AI를 쓰는 습관'뿐이다
엔트리 레벨 일자리 축소와 생산성 폭증이 동시에 온다면,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은 오래된 직무 경험이 아니라 AI를 다루는 습관입니다. 이미 미국에서는 개발자들이 "이제는 코드를 직접 치지 않는다"는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한국에서도 개발자, 마케터, 디자이너, 기획자 순으로 비슷한 변화가 진행 중입니다.
지금 시점에서 합리적인 첫 행동은 거창한 이직이나 커리어 전환이 아닙니다. 현재 업무의 10퍼센트를 AI에게 위임해 보고, 그 결과를 검수하는 루틴을 몸에 익히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업무는 완전히 넘겨도 되지만, 어떤 업무는 사람이 끝까지 잡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기준이 생깁니다. 이 기준이 쌓일수록, 조직 안에서 AI 도입 방향을 제안하는 쪽에 서게 됩니다.
AI 시대를 둘러싼 말은 많습니다. 버블 논쟁, 칩 전쟁, 규제 공방, 일자리 공포까지 온갖 프레임이 겹쳐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실제로 겪게 될 변화는 훨씬 더 미시적입니다. 우리 회사의 서버 계약서, 팀의 KPI, 개인의 한 주 업무 루틴부터 차례로 바뀝니다. 거대한 미래 담론을 읽을 때마다, 동시에 손에 쥘 수 있는 한 가지 질문을 함께 붙여 보아야 합니다. "이 이야기 중 오늘 내 업무와 연결되는 지점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입니다. 그 지점이 보이면, 이미 남들보다 반 발 앞서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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