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주택 공급, 왜 계획대로 안 풀리는가

핵심 요약
지금 한국의 주택 공급 문제는 땅이나 규제가 아니라, 실제로 집을 지어야 하는 건설사들이 공급을 감당할 체력이 없다는 데 핵심이 있습니다. 숫자로 발표되는 '몇 만 호 공급 계획'보다, 그 물량을 누가 어떤 구조로 지을 수 있는지가 훨씬 중요한 질문입니다.
공급 대책에 대한 시장의 불신
최근 몇 년간 정부는 여러 차례 공급 대책을 발표했지만, 시장의 신뢰는 크게 떨어져 있습니다.
과거에 서울 도심 공공청사 부지를 활용해 수십만 호를 공급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실행 단계에서는 물량이 대폭 줄어드는 식의 경험이 반복됐습니다. 말할 때는 "수십만 호"였지만, 최종 정책에서는 몇 만 호 수준으로 축소되는 패턴이 굳어지면서, 숫자 공약 자체에 대한 피로감이 쌓였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번에 몇 만 호 공급한다더라"라는 발표가 나와도, 시장은 '과연 저게 실제로 지어질까?'라는 의심부터 먼저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정책의 방향보다 "실행 가능성"이 핵심 이슈가 된 것입니다.
부동산 정책의 4축과 지금 남은 카드
부동산 정책은 크게 네 가지 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대출·규제 등을 통한 수요 관리, 둘째는 주택 공급 확대, 셋째는 보유·양도세 등 세금 정책, 넷째는 전매 제한·청약 규정 등 거래 관련 정책입니다. 최근 몇 년은 대출 규제와 같은 수요 억제 정책, 그리고 일부 거래 규제에 치중해 왔습니다.
반면 공급 정책은 큰 틀의 계획만 있었을 뿐 실행력이 부족했고, 세금 정책은 선거 일정과 정치적 부담 때문에 손대기 어려운 영역이 됐습니다. 결국 앞으로 정부가 꺼낼 수 있는 실질적인 카드로는 '공급 보완 대책'이 가장 현실적인 수단으로 남아 있다는 인식이 강해졌습니다.
문제는 그 공급을 실제로 지을 주체가 이미 심각하게 약해져 있다는 점입니다.
숫자로 보면 좋아 보이는 건설 수주, 그러나 내부는 위기
겉으로 보면 건설업은 호황처럼 보입니다. 최근 몇 년간 건설 수주액은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지금도 연간 200조 원이 넘는 수주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주가 많다고 해서 건설사가 건강한 것은 아닙니다. 수주는 "일감을 따온 계약서 더미"일 뿐, 그걸 실제로 공사해 돈을 벌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현재 문제는 수주 이후 공사 착공·진행·정산 단계에서 수익성이 거의 남지 않고, 현금 회수가 잘 안 된다는 데 있습니다.
대형사들조차 영업이익률이 한 자릿수 초반에 그치고, 금융비용까지 고려하면 사실상 버텨가는 수준입니다. 순현금이 아니라 순차입 상태인 회사가 대부분이라, "통장에 있는 돈보다 갚아야 할 돈이 훨씬 많은" 구조가 고착화됐습니다. 우리나라 건설업 역사상 순차입금이 가장 높은 구간이라는 점이 상징적입니다.
수주만 많고 돈은 안 남는 산업이 된 것이죠.
분양 감소와 지방 수요 붕괴의 후폭풍
전국 분양 물량은 과거 연간 평균 30만 호 수준에서 최근 3년은 20만 호 초반대로 떨어졌습니다. 숫자로 보면 약 30% 축소입니다.
이 변화의 배경에는 초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구조 변화와 지방 선호도 급락이 있습니다. 지방의 주택 수요가 눈에 띄게 줄어들면서 지방 분양 사업들이 줄줄이 어려워졌고, 미분양이 쌓이면서 건설사의 현금 흐름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습니다.
대형 건설사들이라고 수도권만 하는 게 아니라 전국에서 사업을 하기 때문에, 지방 프로젝트 부실은 곧 전체 재무 상태 악화로 연결됩니다. 공사는 했는데 분양·회수가 안 되니,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여러 해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분양·착공·기성(공사 진행분 지불)이 줄어들다 보니, 건설투자가 국내 총생산(GDP)을 끌어내리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하자 소송과 현장 리스크 증가
최근 건설사들을 더 옥죄는 요소 중 하나가 하자 소송입니다.
과거에는 설계도와 실제 시공 사이에 어느 정도의 관행적인 차이가 있었지만, 이제는 설계도와 다르면 거의 자동으로 하자로 인정되는 분위기가 강해졌습니다. 하자 전문 변호사, 소비자 인식 변화 등으로 인해, 작은 설계 변경조차 법적 분쟁으로 번지곤 합니다.
이로 인해 건설사들은 공사비 일부를 하자보수 충당금으로 묶어둬야 하고, 실제 사업에서 가져갈 수 있는 이익은 더욱 줄어듭니다. 특히 중견·중소 건설사에게 이런 소송 비용과 리스크는 치명적이라, 이미 상당수가 재무적으로 한계 상황에 몰려 있습니다.
즉, 공사를 많이 따와도 "미분양 리스크 + 하자 리스크" 때문에 사업 전체가 쉽게 마이너스로 기울어지는 구조가 된 것입니다.
건설 인력 축소와 주택 공급 능력의 구조적 감소
주택 사업의 수익성이 떨어지자, 건설사들은 주택 사업 인력을 줄이고 다른 분야로 옮기거나 아예 축소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시장이 여전히 1군 대형사에게 수주를 몰아준다는 점입니다. 재건축·재개발 조합은 브랜드와 안전성을 이유로 대형사를 선호하기 때문에, 이들 회사에는 정비사업 수주가 눈덩이처럼 쌓여 갑니다.
하지만 인력과 조직은 늘리지 않은 채 수주만 쌓으면 현실적으로 소화 가능한 공사지역과 물량에는 한계가 생깁니다. 조선업으로 비유하면, 조선소의 도크(배를 만드는 자리)는 줄었는데 배 주문은 더 많이 받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계약서는 산더미인데 실물 생산 능력은 오히려 감소하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결국 "수주 잔고는 많지만 실제 공급 속도는 느려지는" 허수 잔고가 쌓이는 구조가 됩니다.
계획 물량과 실제 준공 물량의 차이
정부는 "수도권 135만 호 공급"처럼 목표 물량을 제시하지만, 이 숫자와 실제 입주 가능한 집 수는 크게 다를 수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집은 정부가 직접 짓는 것이 아니라, 민간 건설사가 복잡한 인허가·분양·공사·준공 과정을 거쳐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계획은 종이 위의 숫자지만, 공사는 사람과 자본, 기술이 동시에 투입되어야 가능한 실물 작업입니다.
더구나 최근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공사기간이 과거 3년 안팎에서 5년 이상으로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공사 슬롯이 한정되어 있으니, 대형 프로젝트부터 진행하고 소규모 사업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수주한 사업이 실제 입주까지 10년 가까이 걸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135만 호 계획 = 135만 호 공급"이라는 단순한 등식은 현실과 맞지 않습니다. 핵심은 '그 숫자를 처리할 수 있는 건설 역량이 있느냐'입니다.
대형 단지·대형 건설사 편중 구조의 함정
한국의 주택 공급은 대형 단지 아파트와 소수 대형 건설사 중심으로 재편되어 왔습니다.
과거에는 개별 필지 개발, 소규모 빌라·다세대, 중소 디벨로퍼들이 지역 단위에서 공급을 뒷받침했습니다. 하지만 각종 사기 사건, 규제 강화, 자금 조달 어려움 등으로 이런 풀뿌리 공급 주체가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덕분에 대형 단지 아파트가 한 번 공급될 때 외에는, 일상적인 '잔잔한 공급'이 거의 사라진 상태입니다. 공급 구조가 굵직굵직한 프로젝트에만 의존하다 보니, 한두 개 사업이 지연되거나 막히면 체감 공급 부족이 바로 심화됩니다.
선진국처럼 다양한 규모·형태의 디벨로퍼가 롱테일 구조로 존재해야 전체적인 공급이 안정되는데, 한국은 그 중간층이 무너져 버린 겁니다.
건설 산업 위축이 주택 가격과 물가에 미칠 파장
지금처럼 건설사들이 줄줄이 위기에 빠지고, 주택 사업에서 손을 떼기 시작하면 중장기적으로는 건축비 상승 압력이 커질 수 있습니다.
공급 측면에서 경쟁자가 줄고, 살아남은 소수만 남게 되면 가격 협상력이 건설사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에서 서비스업 물가가 높은 것처럼, 한국에서는 토지비뿐 아니라 건축비 자체가 크게 오르는 구조로 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극단적으로는 국내 건설사가 붕괴하고 외국 건설사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도 우려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업종 문제가 아니라, 국가 인프라와 주거 안정성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리스크입니다.
앞으로 필요한 공급 정책의 방향
앞으로 나올 공급 대책은 더 이상 "몇 만 호 공급"이라는 숫자 나열로는 의미가 없습니다.
첫째, 실제로 공급을 수행할 다양한 주체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가 핵심입니다. 대형사 중심 구조에 더해, 중소·지역 디벨로퍼, 리모델링·수직증축 전문 업체, 기술 기반 모듈러 건설 등 다양한 플레이어가 활동할 수 있는 제도와 금융 환경을 설계해야 합니다.
둘째, 건설사들이 주택 사업을 아예 포기하지 않도록 수익 구조와 리스크를 조정할 장치가 필요합니다. 하자 책임 분배, 미분양 리스크 분담, 공사비 현실화, 금융비용 부담 완화 등 세부적인 제도 보완이 따라야 합니다.
셋째, 단지 하나, 신도시 하나씩 찍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도시 기능과 생활 인프라를 함께 개선하는 방향으로 공급을 설계해야 합니다. 주거·일자리·교육·문화·상업·의료·자연환경 등이 함께 고려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계속 "더 좋은 곳"을 찾아 이사를 반복해야 하고, 이는 곧 특정 지역 과열과 다른 지역 침체를 반복시키는 구조를 강화합니다.
말하자면, 이제는 "얼마나 많이 짓겠다"보다 "누가, 어떻게, 어떤 구조로 지을 수 있게 만들 것인가"가 정책의 중심 질문이 되어야 합니다.
인사이트
지금 한국 주택 시장의 핵심 문제는 공급 계획의 부족이 아니라, 공급을 실행할 수 있는 산업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건설업이 돈이 안 되고 리스크만 큰 구조이면, 민간은 자연스럽게 주택 사업에서 발을 빼게 됩니다.
집값을 안정시키고 싶다면, 대출·세금만 손볼 것이 아니라 "건설사가 다시 주택을 지을 만하다고 느끼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동시에 대형사 몇 곳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규모의 공급 주체가 활동할 수 있는 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인 입장에서는 "공급 대책이 나왔다"는 뉴스만 보지 말고, 실제로 그 물량을 담당할 건설사들의 재무 상태, 현장 인력, 공사 기간, 지역 수요 등을 함께 보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발표된 숫자와 실제 시장에 등장할 집 사이의 간극을 조금 더 현실적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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