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AI가 다시 짜는 '월드클래스 GTM'의 얼굴

2026년, 세일즈 조직보다 '세일즈 경험'이 승부를 가른다
요즘 서비스 하나만 써보면 금방 느껴집니다. 기능은 비슷한데, 어디와 일하느냐에 따라 기분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같은 AI, 같은 클라우드라도 어떤 회사는 처음 문의 순간부터 끝까지 매끄럽고, 어떤 회사는 연락 한 번 받는 것조차 피곤합니다.
제품 차이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앞에 서 있는 것은 세일즈 경험 그 자체입니다. 예전에는 기능표, 가격표, 레퍼런스만으로도 승부가 났습니다. 이제는 "이 회사를 선택하면 내가 경쟁사보다 얼마나 유리해지는가"를 구체적으로 체감하게 해주는 팀이 이깁니다. 특히 AI 시장처럼 플레이어가 10명 이상 한 기회를 동시에 쫓는 구간에서는, 누가 더 잘 팔았느냐보다 누가 더 잘 사게 만들어줬느냐가 핵심이 됩니다.
제품을 잘 만드는 팀일수록 세일즈를 단순한 영업 활동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능 설명, 데모, 견적, 이 정도의 흐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팀들은 세일즈 프로세스를 아예 하나의 제품으로 취급합니다. 고객 여정을 설계하고, 각 터치포인트를 프로덕트 화면처럼 세밀하게 디자인합니다. 제 기준에서는 이 관점 전환이 앞으로 2년 안에 GTM 수준을 가르는 가장 큰 분기점이 될 것 같습니다.
제품이 비슷해질수록 경험이 브랜드가 된다
고객은 구매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움직입니다. 특히 B2B라도 사람은 결국 "함께 일하고 싶은 팀인가"를 따집니다. 이때 차이를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이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입니다. 첫 미팅에서 백지에 현재 아키텍처를 함께 그려주는지, 내 상황에 맞는 벤치마크 데이터를 가져오는지, 실패했을 때 어떤 리스크를 줄여줄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이 브랜드를 만듭니다.
잘하는 팀은 첫 통화에서부터 '질문 리스트'를 들이밀지 않습니다. 상대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정리하게 돕습니다. 예를 들어 기존 결제 구조를 함께 화이트보딩하면서, 어디에 숨은 비용이 있는지, 어떤 부분이 확장성을 막고 있는지 함께 발견하게 만듭니다. 고객 입장에서는 단순한 영업 미팅이 아니라 컨설팅 세션에 참여한 느낌이 됩니다. 이런 경험은 당장 계약이 안 돼도 몇 년 뒤 다시 연락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고객 여정을 '제품처럼' 설계하는 회사들
GTM을 제품처럼 보는 팀은 고객 여정을 구글 애널리틱스 화면이 아니라 제품 플로우 차트처럼 다룹니다. 인지 단계에서 무엇을 보여줄지, 첫 문의 이후에는 어떤 가치를 선물할지, 파일럿이 시작되면 어떤 인사이트를 언제 제공할지까지 하나의 스토리로 엮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접촉할 때마다 무언가를 더 파는가"가 아니라 "접촉할 때마다 고객이 하나씩 뭔가를 배워가는가"입니다. 예를 들어 웹 성능을 개선하는 회사라면, 첫 아웃바운드 메일에서부터 그 회사 사이트의 코어 웹 바이탈 점수와 경쟁사 대비 지표를 함께 보여줍니다. 연락을 받는 사람이 당장 계약 의사가 없어도, "아, 우리 사이트가 이 정도로 느리구나"를 깨닫게 됩니다. 한국처럼 개발자와 마케터가 분절되어 있는 조직이라면 이런 데이터 한 장이 내부 설득의 시작점이 되기도 합니다.
AI가 열어젖힌 새로운 직군, 'GTM 엔지니어'의 탄생
AI 붐과 함께 조용히 등장한 역할이 있습니다. 바로 'GTM 엔지니어'입니다. 예전 같으면 영업 운영팀이 엑셀과 CRM으로 하던 일을, 이제는 코드와 에이전트로 다시 짜는 사람들입니다. 영업도 이해하고, 제품도 어느 정도 만들 줄 아는 이 하이브리드 포지션이 2026년 GTM의 핵심 축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도구를 세팅하는 운영 인력이 아닙니다. 세일즈 조직의 실제 행동을 관찰해, 그중 반복 가능한 패턴을 뽑아내고, 그것을 AI 에이전트로 구현합니다. 세일즈 플레이북을 문서로 쓰는 것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코드로 컴파일하는 셈입니다. 솔직히, 이 역할이 없는 조직은 앞으로 AI를 쓴다고 말하기가 민망해질 것 같습니다.
SDR 열 명 일을 대신하는 에이전트
대표적인 케이스가 '리드 에이전트'입니다. 그동안 인바운드 문의를 처리하던 SDR 열 명의 행동을, 한 명의 GTM 엔지니어가 에이전트로 옮깁니다. 에이전트는 들어온 리드를 자동으로 분류합니다. 회사 정보를 검색하고, 웹사이트를 살펴보고, 내부 데이터와 대조해 이 리드가 실제로 우리 고객이 될 수 있는지 판단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맞춰 첫 메일 초안을 작성합니다.
중요한 포인트는 여전히 사람이 마지막에 개입한다는 점입니다. 에이전트가 쓴 메일을 SDR이 검토하고, 필요하면 수정한 뒤 발송합니다. 그 과정에서 에이전트는 어떤 메일이 승인됐고, 어떤 표현이 자주 고쳐지는지 학습합니다. 이렇게 6주 정도만 굴려도, 인바운드 리드를 처리하던 10명의 일을 한 명이 커버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갑니다. 연간 1천 달러 수준의 인프라 비용으로 이런 에이전트를 굴릴 수 있다면, 굳이 인원만 늘리는 방식의 GTM 확장은 더 이상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세일즈 파이프라인 전체를 다시 그리는 사람들
GTM 엔지니어의 역할은 인바운드 자동화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설치 기반 고객에게 어떤 기능을 추가로 제안해야 할지, 어느 타이밍에 누가 연락해야 할지, 이런 것들도 에이전트가 먼저 계산합니다. 파이프라인 상에서 "다음으로 해야 할 가장 좋은 행동"을 제안하는 셈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작업을 하려면 세일즈 프로세스가 어느 정도 정제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창업자가 제각각 다른 방식으로만 팔고 있으면, 에이전트가 배울 패턴이 없습니다. 그래서 AI를 진지하게 쓰려면 오히려 더 빨리 프로세스를 명문화해야 합니다. 제 기준에서는 "우리 세일즈 프로세스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가"가 GTM 엔지니어를 뽑을 준비가 되었는지를 가르는 첫 질문이라고 봅니다. 프로세스 없이 사람부터 뽑으면, 결국 AI는 멋진 장식품에 그치기 쉽습니다.
콜 한 통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 조직, 데이터와 에이전트의 결합
많은 회사가 콜을 녹음하고, 미팅 노트를 쌓습니다. 하지만 그 데이터가 실제 전략에 영향을 주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영업 리더가 시간 날 때 몇 개 들어보고, 감으로 피드백을 하는 정도에서 끝납니다. AI 에이전트가 이 지점을 완전히 바꾸고 있습니다. 한 통 한 통의 콜이 실시간으로 분석되고, 그 결과가 조직적 학습으로 이어지기 시작합니다.
공짜로 쌓인 콜 로그가 전략 자산이 되는 순간
통화 내용과 이메일, 슬랙 대화를 모두 텍스트로 모아 놓으면, AI가 할 수 있는 일이 갑자기 많아집니다. 예를 들어 한 분기 동안 잃어버린 대형 딜의 대화 로그를 모두 모아, 왜 졌는지 에이전트에게 분석을 맡길 수 있습니다. 사람 눈에는 "가격 때문에 졌다"로 보이던 딜이, 사실은 "경제적 의사결정권자에게 제대로 가치 설명을 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는 식입니다.
이렇게 이유를 재분류하면 대응도 달라집니다. 단순히 가격 정책을 만지는 것이 아니라, ROI 계산 템플릿을 만들고, 총소유비용을 설명하는 슬라이드를 표준화하고, 후반부 콜에는 반드시 파이낸스 담당자가 참여하도록 플로우를 바꾸게 됩니다. 한국 B2B 세일즈에서도 이런 식의 구조적 리트로스펙티브가 가능해지면, "영업 베테랑의 감"에만 의존하는 문화가 꽤 빠르게 바뀔 수 있습니다.
'로스트 리뷰'에서 '딜봇'으로, 세일즈의 스프린트화
더 흥미로운 변화는 이 분석을 사후가 아니라 실시간으로 가져오는 방식입니다. 일명 '딜봇' 같은 에이전트가 현재 진행 중인 모든 딜을 지켜보면서, 중요한 신호를 슬랙 채널 등에 계속 던져줍니다. 경제적 의사결정권자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면 경고를 보내고, 방금 끝난 콜에서 고객이 반복적으로 걱정한 포인트를 요약해 후속 메일에 넣으라고 알려줍니다.
이런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면, 세일즈 조직은 개발팀처럼 '스프린트'를 돌릴 수 있습니다. 한 주 동안 쌓인 모든 딜봇의 피드백을 모아, 어떤 질문에서 자꾸 막히는지, 어떤 경쟁사와 비교될 때 자료가 부족한지, 어떤 업종에서는 데모 시나리오를 바꿔야 하는지 정리합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주에 objection handling 문서, 데모 스크립트, FAQ를 업데이트합니다. 많은 국내 조직이 "세일즈도 애자일하게 가야 한다"는 말을 오래 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제야 도구와 데이터가 그 말을 현실로 만들기 시작한 셈입니다.
AI 기반 GTM 전략, 누구에게 기회이고 누구에게 독인가
AI 덕분에 세일즈 생산성을 10배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이야기는 매력적으로 들립니다. 하지만 모든 조직에게 같은 의미는 아닙니다. 어떤 회사에는 확실한 레버리지가 되고, 어떤 회사에는 소음과 혼란만 남깁니다. 시작하기 전에 냉정하게 따져볼 지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시작 전 체크해야 할 현실적인 조건
첫째, 최소한의 세일즈 프로세스가 정의되어 있어야 합니다. 누가 언제 어떤 역할을 맡는지, 어떤 단계를 거쳐 계약에 이르는지, 말로라도 설명이 되어야 에이전트가 그 흐름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시리즈 A 이후인데도 "그냥 잘 파는 사람이 알아서 판다"는 문화라면, GTM 엔지니어를 뽑기보다 먼저 플레이북부터 정리하는 편이 낫습니다.
둘째, 데이터를 모으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콜을 녹음하지 않거나, 이메일과 미팅 노트를 한 곳에 모으지 않는 조직은 AI에게 먹일 재료가 없습니다. 국내에서 종종 보는 "보안 걱정 때문에 콜 녹음은 안 한다"는 문화는, 장기적으로 GTM 학습능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규제와 컴플라이언스는 지켜야 하지만, 가능한 범위 안에서라도 텍스트 기록을 축적하는 방향으로 전환이 필요합니다.
셋째, 세일즈와 엔지니어링 사이를 오갈 수 있는 사람이 조직 안에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GTM 엔지니어를 외부에서 채우더라도, 이 역할을 이해하고 같이 일할 수 있는 리더가 없으면 금방 단절이 생깁니다. 제 기준에서는 기술 세일즈나 솔루션 엔지니어 출신이 있는 회사가 AI GTM 전환을 가장 빠르게 가져갈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 당장 해볼 수 있는 첫 번째 실험
모든 회사를 위한 만능 처방은 없습니다. 다만 부담 없이 시작해 볼 수 있는 실험은 있습니다. 하나만 고른다면, 콜 기록과 메일 스레드를 AI로 분석해 "진짜로 지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재정의해 보는 작업을 권하고 싶습니다. 사람 손으로 태깅해놓은 것과 AI가 대화 전체를 읽고 뽑아낸 패턴이 얼마나 다른지 비교해 보는 것만으로도 조직이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다음 단계로는 인바운드 리드 처리 흐름을 정리해, 어디까지를 에이전트가 할 수 있을지 상상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한국 스타트업이라면 SDR 한두 명이 하는 일을 부분적으로라도 자동화해 보고, 그 인력을 더 고난도 아웃바운드나 상위 세그먼트로 올리는 실험을 충분히 해볼 만합니다. 결국 AI GTM의 핵심은 사람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더 사람다운 일에 집중시키는 데 있습니다. 이 원칙을 잊지 않는다면, AI는 세일즈 조직에게 위협이 아니라 레버리지가 될 가능성이 더 큽니다.
출처 및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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