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 사이드 프로젝트와 삶·일에 대한 철학적 에세이

개요
사이드 프로젝트는 많은 개발자에게 단순한 취미를 넘어, 자기 삶을 실험하는 작은 실험실이 된다. 회사에서 정해진 요구사항을 구현하는 것과 달리, 사이드 프로젝트는 무엇을 만들지, 어떻게 만들지, 언제 멈출지까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 자유로운 공간에서 개발자는 자신의 욕망, 한계, 습관, 가치관을 그대로 마주하게 된다.

이 글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어떻게 하면 잘할까?"라는 실용적인 질문보다는 "왜 우리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가?", "그 과정이 삶과 일에 어떤 의미를 남기는가?"라는 질문에 더 초점을 맞춘다. 개발자로서의 일, 인간으로서의 삶, 그리고 그 사이의 틈을 메우는 창작 활동으로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철학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이다.
두세 개의 완성된 서비스보다, 수십 개의 미완성 레포지토리가 오히려 개발자의 진짜 자화상일 수 있다. 이 에세이는 그런 지워지지 않는 커밋과 중단된 브랜치들에 담긴 감정과 생각을 하나씩 꺼내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사이드 프로젝트의 의미: 일과 놀이 사이
사이드 프로젝트는 흔히 "부업"이나 "포트폴리오 만들기"로 설명되지만, 많은 개발자에게 그것은 일과 놀이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독특한 활동이다. 회사 일처럼 책임을 지되, 게임처럼 자발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이 둘의 감각이 섞이면서, 사이드 프로젝트는 돈과 명성보다 "만드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는 활동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사이드 프로젝트가 곧 "일이지만 일이 아닌 것"이라는 모순적 성격을 가진다는 점이다. 마감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사용자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개발자는 여전히 설계하고, 구현하고, 리팩터링하며, 때로는 밤을 새운다. 이 모호한 경계 덕분에 사이드 프로젝트는 삶의 여러 층위가 겹쳐지는 장소가 된다.
또한 사이드 프로젝트는 개발자에게 "주도권"을 되돌려준다. 회사에서는 기획, 마케팅, 경영 등의 여러 이해관계가 코드에 영향을 미치지만, 개인 프로젝트에선 무엇을 우선순위에 둘지 스스로 결정한다. 그 과정에서 개발자는 "나는 어떤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느끼는가?", "나는 어떤 가치를 위해 시간을 쓰고 싶은가?" 같은 질문을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된다.
자유와 제약: 선택이 주는 기쁨과 무게
사이드 프로젝트의 가장 큰 매력은 자유다. 기술 스택을 마음대로 고르고, 디자인도 직접 정하며, 업무에서 시도하기 어려운 실험적 아이디어를 부담 없이 시험해 볼 수 있다. 이 자유 덕분에 개발자는 자신이 평소에 억눌렀던 호기심과 욕구를 마음껏 펼칠 수 있다.
하지만 자유는 동시에 선택의 책임을 가져온다. 상사가 정해주는 요구사항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만들지 결정하는 일"까지 모두 자기 일이라는 뜻이다. 아이디어가 너무 많아서 시작을 못 하거나, 반대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막막함만 커지는 경험도 자주 일어난다. 자유의 양이 많을수록, 선택을 미루는 유혹도 강해진다.
흥미로운 점은, 어느 정도의 제약이 오히려 사이드 프로젝트를 더 잘 굴러가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사용 기술을 일부러 제한하거나, 기능을 최소한으로 줄이거나, 하루 30분만 작업하기처럼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 두면, 무한한 가능성 대신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역설적으로, 스스로 만든 제약이 자기 자유를 실현 가능한 형태로 바꾸는 셈이다.
결국 사이드 프로젝트는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에서 계속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이다. 이 균형 감각은 단지 프로젝트 성공 여부를 넘어, 삶 전체에서 선택과 집착, 포기와 몰입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연습이 되기도 한다.
동기와 의미: '만드는 이유'를 묻는 질문
개발자가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새로운 기술을 익히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이력서를 채우기 위해, 불편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혹은 그저 재미있어 보여서. 시작은 가벼울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왜 이걸 계속해야 하지?"라는 질문이 서서히 고개를 든다.
이 질문은 단순히 프로젝트 하나의 지속 여부를 넘어,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라는 더 큰 질문과 연결되기 쉽다. 회사에서의 일은 대부분 외부의 목표에 의해 정의되지만, 사이드 프로젝트의 목표는 스스로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목표가 흐릿해지면, 동기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이드 프로젝트가 우리에게 큰 의미를 주는 순간은, "이걸로 뭔가 대단한 결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에서 한 발짝 물러날 때인 경우가 많다. 단 몇 명의 사용자라도 진심 어린 피드백을 줄 때,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코드를 썼을 때, 혹은 예전에 포기했던 문제를 이제는 해결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조용하지만 강한 만족감을 느낀다. 이 작은 의미들이 쌓이면서, 삶 전체의 방향을 조금씩 비틀어 놓는다.
일과 삶의 균형이 아닌, 리듬으로서의 사이드 프로젝트
사이드 프로젝트 이야기를 할 때 종종 "워라밸"과 연결되지만, 실제로는 균형이라기보다 리듬에 더 가깝다. 어떤 시기에는 회사 일이 버거워서 사이드 프로젝트에 신경 쓸 여유가 없고, 또 어떤 시기에는 오히려 회사 일보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시간이 더 생기와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이 양쪽의 비율은 계속해서 흔들린다.
중요한 점은, 이 흔들림을 실패나 죄책감으로만 보지 않는 태도이다. 몇 달 동안 손을 놓았다고 해서 그 프로젝트가 완전히 끝장난 것은 아니며, 삶의 다른 국면에서 다시 이어 쓸 수도 있다. 실제로 많은 개발자가 예전에 만들다 만 아이디어를 다른 기술, 다른 경험과 결합해 새로운 형태로 되살리기도 한다.
일과 삶을 깔끔하게 분리하는 대신, 사이드 프로젝트를 그 둘 사이를 오가는 중간 지대로 보는 관점도 도움이 된다. 회사에서 얻은 경험이 사이드 프로젝트에 녹아들고, 사이드 프로젝트에서 배운 감각이 다시 업무에 영향을 준다. 이렇게 서로의 영역이 교차하면서, 개발자는 단지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을 넘어 "삶 전체를 통해 만들어 가는 사람"으로 변화해 간다.
실패, 중단, 그리고 미완성의 가치
사이드 프로젝트를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감정은 아마도 "미안함"일 것이다.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미안함, 함께 하자고 했던 사람들에게 느끼는 미안함, 깃허브의 마지막 커밋 날짜가 오래전에 멈춘 것을 보는 씁쓸함 같은 것들이다. 우리는 흔히 미완성과 중단을 실패로 간주한다.
하지만 조금 달리 보면, 대부분의 사이드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실험"에 가깝다. 실험은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배웠는가"로 평가해야 하는 활동이다. 어떤 아이디어가 재미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 특정 기술 스택이 생각보다 잘 맞지 않는다는 걸 경험한 것, 혼자 할 때와 함께 할 때 내 성향이 어떻게 다른지 알게 된 것 모두 의미 있는 결과다.
미완의 프로젝트들이 쌓인 레포지토리는 개발자의 시행착오와 성장의 기록이다. 완벽한 제품 하나보다, 수십 개의 시도와 포기가 개발자의 내면을 더 잘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모든 프로젝트를 끝까지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조금 더 이해하고, 다음 선택을 조금 더 현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중단은 끝이 아니라 쉼표에 가깝다. 언젠가 다시 이어 쓸 수도 있고, 그 자체로 하나의 장을 닫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왜 못 지켰나"를 후회하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는 어떤 조건과 방식이라면 더 오래 즐겁게 갈 수 있을까"를 스스로에게 묻는 데 있다.
혼자와 함께: 공동체가 주는 힘
많은 개발자가 사이드 프로젝트를 혼자 시작하지만, 혼자만의 프로젝트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혼자는 빠르고 자유롭지만, 쉽게 지치고 포기하기도 쉽다. 반대로 함께 하는 프로젝트는 의사결정을 더디게 만들지만, 함께 버티게 하는 힘도 준다. 어느 쪽이 더 낫다기보다, 각 방식은 서로 다른 종류의 의미를 제공한다.
혼자 할 때 우리는 자기 안의 목소리를 더 분명히 듣게 된다. 누가 보지 않아도 택하는 선택, 누가 칭찬하지 않아도 묵묵히 구현하게 되는 기능, 아무도 이해 못 해도 집착하게 되는 디테일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그 사람의 진짜 취향과 가치관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1인 프로젝트는 깊은 자기 이해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반면 함께 하는 프로젝트는 우리가 "관계 속에서 어떻게 만드는 사람으로 존재하는지"를 보여준다. 의견 충돌 속에서 어떤 타협을 선택하는지, 책임과 공을 어떻게 나누는지, 동료의 성장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등은 혼자서는 절대 드러나지 않는다. 특히 사이드 프로젝트에서는 직급이나 조직 구조의 영향이 적기 때문에, 평소 직장에서 감춰졌던 진짜 태도가 더 잘 드러나기도 한다.
결국 사이드 프로젝트의 공동체적 가치는, 결과물을 같이 만든다는 점보다 "같이 고민하고, 같이 포기하고, 같이 다시 시작해 보는 경험" 자체에 있다. 이 경험은 기술보다 오래 남아, 인간관계와 협업에 대한 우리의 철학을 천천히 바꾸어 간다.
도구와 기술을 넘어: 자기 정체성의 재구성
개발자의 삶에서 기술 스택은 중요한 요소다. 사이드 프로젝트는 새로운 언어와 프레임워크, 도구를 탐색하는 시험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개발자는 "어떤 기술을 쓸 줄 아는가?"보다 "어떤 문제를 좋아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사용자 경험과 인터페이스에 집착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인프라와 성능 최적화에 끝없는 흥미를 느낀다. 누구는 소규모 개인 도구를 꾸준히 만드는 데서 만족감을 느끼고, 누구는 사람과 팀이 늘어나는 구조를 설계하는 걸 좋아한다. 사이드 프로젝트는 이런 기질과 취향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공간이다.
이 과정은 개발자의 정체성을 재구성하게 만든다. 처음엔 "자바스크립트 개발자", "백엔드 엔지니어"처럼 기술 중심으로 자신을 설명하다가, 점점 "복잡한 걸 단순하게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 "사람들의 반복 작업을 줄여주는 도구를 만드는 사람"처럼 문제와 가치 중심으로 자신을 설명하게 된다. 이는 결국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인가?"라는 질문과도 연결된다.
사이드 프로젝트는 답을 주기보다는 질문을 선명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특정 프로젝트를 통해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다"라고 느끼는 순간도 소중하다. 그 부정의 경험 덕분에 오히려 "그렇다면 나는 무엇에 끌리는가?"라는 질문이 더 또렷해진다.
시간을 대하는 태도: 속도와 지속 가능성
사이드 프로젝트에서 가장 흔한 함정은 "단기 폭발, 장기 소멸"이다. 처음 몇 주 동안은 새벽까지 코딩하며 엄청난 속도로 기능을 붙이다가, 어느 순간 동력이 끊기며 그대로 멈춰버리는 패턴이다. 이 경험을 반복하면서 많은 개발자가 "나는 꾸준히 못 하는 사람인가?"라는 자책에 빠지곤 한다.
여기서 중요한 관점 전환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마라톤"보다는 "시즌제 활동"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어떤 시즌에는 집중해서 달리고, 어떤 시즌에는 거의 쉬어가기도 하며, 시간이 지나면 다른 형태의 시즌으로 돌아올 수 있다. 삶의 다른 영역들--가족, 건강, 직장 변화--역시 시간이 지나며 다른 우선순위를 요구한다.
이렇게 보면, 진짜 질문은 "얼마나 빨리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방식이면 1년 뒤에도, 3년 뒤에도 이 활동을 여전히 좋아할 수 있을까?"에 가깝다. 사이드 프로젝트는 성과를 빨리 내는 도구가 아니라, 만들고 배우는 삶을 오래 지속하기 위한 하나의 습관이 될 수도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한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보다 "만드는 삶을 계속 이어갈 힘을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그래서 때로는 과감히 줄이고, 단순하게 만들고, 천천히 가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선택이 된다. 이 태도는 결국 자기 자신을 소모품이 아닌 장기 프로젝트로 대하는 철학과 연결된다.
맺으며: 만드는 삶에 대한 작은 선언
개발자의 사이드 프로젝트는 코드와 기능, 깃 로그와 이슈 리스트로 구성되어 보이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욕망, 두려움, 호기심, 회의감 같은 인간적인 감정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에세이에서 다룬 것처럼, 사이드 프로젝트는 단순한 부업도, 단순한 취미도 아니다. 그것은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를 기술이라는 언어로 고민하는 과정이다.
모든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필요는 없다. 수많은 미완성과 중단, 재시작 속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조금 더 솔직해지고, 일과 삶에 대한 기준을 조금씩 조정해 간다. 중요한 것은 외부의 평가가 아니라, "이 시간을 나는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가?"라는 자기만의 질문에 어떤 답을 할 수 있는지이다.
결국 사이드 프로젝트는 거창한 목표보다 "나는 오늘도 무언가를 만들어 보겠다"는 작은 선언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이 작은 선언을 꾸준히 이어가는 사람들이, 언젠가 뒤돌아봤을 때 "나는 만드는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삶은,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