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핀란드 데이터센터 폐열 난방 모델, 전 세계로 확대될 수 있을까?


핀란드는 인구 550만, 사우나 300만 개를 가진 나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추위를 이기는 기술과 문화가 일상에 녹아 있는 곳에서 이제는 데이터센터에서 버려지는 열로 도시를 데우는 실험이 진행 중입니다. 이 글에서는 헬싱키의 사례를 중심으로, 데이터센터 폐열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구조, 사업 모델, 한계와 가능성을 차례로 살펴보고 마지막에는 다른 지역에 적용할 때 고려해야 할 지점을 정리합니다.
디지털 인프라와 난방 인프라를 연결하는 이 모델은 단순한 친환경 프로젝트가 아니라, 에너지 비용, 전력망 안정성, 데이터센터 사업 전략까지 한 번에 얽혀 있는 구조입니다.
헬싱키 지하 50m에서 벌어지는 일: 데이터센터 열이 난방이 되는 과정
헬싱키 도심 지하 약 50m에는 수많은 터널과 기계가 돌아가는 공간이 있습니다. 이곳은 핀란드 에너지 기업 헬렌(Helen)의 대형 히트펌프 스테이션으로, 도시 전체 난방망과 데이터센터가 연결되는 핵심 지점입니다.
지상에서는 Equinix, Microsoft, Telia 같은 기업의 데이터센터가 24시간 가동되며 서버가 소비한 전기 대부분을 열로 바꾸어 배출합니다. 일반적으로 이 열은 단지 '없애야 할 것'에 가깝습니다. 온도를 낮추지 못하면 서버가 과열되고, 장애 및 서비스 중단 위험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헬싱키에서는 이 지점을 정반대로 설계했습니다. 데이터센터에서 나오는 따뜻한 물이나 공기를 배관으로 헬렌의 시스템으로 보내고, 여기서 대형 히트펌프가 온도를 더 끌어올립니다. 온도가 충분히 높아지면 그 열은 도시 지역난방망으로 전달되어 주거용 건물과 사무실을 덥히는 데 사용됩니다.
난방에 사용된 뒤 상대적으로 차가워진 물은 다시 데이터센터로 되돌아갑니다. 이 순환 구조를 통해 데이터센터는 냉각 비용 부담을 덜고, 도시는 난방 에너지원 하나를 추가로 확보하는 셈입니다.
"문제"를 "상품"으로: 데이터센터 폐열 비즈니스 모델 구조
데이터센터 입장에서 열은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100메가와트 규모 데이터센터를 지으면, 투입된 전력의 거의 전부가 열로 바뀌며, 이를 바깥으로 빼내고 식히기 위해 막대한 냉각 설비 투자가 필요합니다.
헬렌의 모델은 이 지점을 비즈니스 기회로 삼습니다. 데이터센터 사업자는 원래라면 직접 부담해야 할 히트펌프, 냉각 장비 등 설비 투자(CapEx)를 줄입니다. 대신 헬렌이 필요한 설비를 구축하고,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한 열을 가져와 지역난방용 열에너지로 판매합니다.
정리하면 구조는 매우 단순합니다. 데이터센터는 폐열을 헬렌에 넘기고, 냉각 설비 투자와 운영 비용을 절감합니다. 헬렌은 이 열을 모아 도시로 공급하며, 열 판매 수익으로 설비 투자 비용을 회수합니다.
헬렌은 이 모델을 통해 수익을 늘리는 동시에 최근 2년 동안 난방 가격을 두 차례 인하했다고 공개했습니다. 폐열 활용이 단지 친환경 이미지용 프로젝트가 아니라, 실제로 사업성과 요금 체계에 영향을 미치는 수단이라는 점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또한 최신 프로젝트 하나만 기준으로 봐도, 약 1,500가구의 난방을 공급할 수 있을 정도의 열이 데이터센터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에너지 인프라 사업자 입장에서는 새로운 발전소를 짓지 않고도 유효 수요를 충족시키는 효과가 있는 구조입니다.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 급증, 왜 폐열 활용이 이슈가 되었나
이 모델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지 기술이 흥미로워서가 아니라,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급격히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BloombergNEF 연구에 따르면 2035년까지 데이터센터가 전 세계 전력 소비의 약 4.4%를 차지할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 이렇게 될 경우, 하나의 국가로 가정했을 때 중국, 미국, 인도에 이어 전력 사용량 4위에 해당하는 수준입니다.
이미 지금도 냉각을 포함한 데이터센터 운영 구조는 에너지 집약적입니다. 세계경제포럼 자료에 따르면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의 약 3분의 1이 냉각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서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입니다.
AI 서비스 확산이 더해지면서 전력 수요는 추가로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미국 도매 전력 가격을 분석한 한 조사에서는 데이터센터가 집중된 일부 지역에서 특정 달 전력 도매 가격이 5년 전보다 최대 267%까지 오른 사례도 확인되었습니다. 전력망에 부담이 쌓이고, 그 결과 가격 변동성이 커진 상황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데이터센터 폐열을 재활용하는 모델은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노립니다. 하나는 데이터센터 냉각에 쓰이는 에너지와 비용을 줄이는 효과, 또 하나는 도시 난방에 필요한 별도의 열 생산(예: 가스, 석탄, 일부 전기 난방)을 줄이는 효과입니다.
즉, 같은 전력 소비로 디지털 인프라 운영 + 도시 난방 두 가지를 달성하게 만드는 구조입니다.
데이터센터와 도시가 서로 얽히는 구조: Equinix와 헬렌의 역할
헬싱키 사례에서 데이터센터의 물리적 운영은 Equinix가 담당합니다. Equinix는 전 세계적으로 270개 이상의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며, 고객 기업의 서버와 네트워크 장비를 코로케이션 형태로 수용하고 있습니다. Equinix 데이터센터에서는 49만 개 이상의 네트워크 연결이 형성되어 있고, 이 연결과 서버 작업이 모두 열을 발생시키는 요소입니다.
데이터센터 운영 비용에서 열 관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운영 효율을 나타내는 지표에는 단순 전력 사용량뿐 아니라, 면적당 효율, 냉각 효율 등이 포함됩니다. 이러한 효율 지표는 비용과도 연결되고, 고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 품질의 간접적인 증거로도 작용합니다.
Equinix 입장에서 헬렌과의 협력은 새로운 대규모 매출원이라기보다, 고객사의 지속가능성 목표 달성과 보고에 도움이 되는 장치로 설명됩니다. 폐열 수출 자체는 전체 데이터센터 매출 규모에 비해 크지 않지만, 탄소 배출 감소, 에너지 독립성 강화와 같은 효과가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요소로 작동합니다.
이 구조를 통해 도시 입장에서는 외부에서 추가 연료를 수입하지 않고도 일부 난방 수요를 충당하게 되고, 데이터센터 입장에서는 냉각 비용을 줄이면서 ESG 관점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그림이 그려집니다.
핀란드 모델, 전 세계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이유
핀란드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이미 잘 구축된 지역난방망과 열 공급 인프라를 가지고 있습니다. 헬싱키 모델이 비교적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던 핵심 배경 중 하나입니다.
반면 많은 국가에서는 도시 전체를 잇는 열 네트워크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 경우, 데이터센터에서 나오는 열을 활용하려면 먼저 열 배관망을 구축해야 하고, 이는 막대한 초기 투자와 복잡한 도시 계획 조정을 필요로 합니다.
또한 기후 조건도 중요합니다. 데이터센터 폐열을 난방에 활용하는 모델은 난방 수요가 뚜렷한 지역에서만 의미 있는 효과를 냅니다. 분석에서는 두바이, 남아프리카공화국처럼 고온 기후 지역에서는 이 모델이 구조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짚습니다. 활용 가능성이 높은 곳은 북유럽, 북미 북부 등 난방 수요가 큰 온대·냉대 지역으로 제한됩니다.
실제 적용에서 가장 큰 제약은 기술보다도 협력할 파트너와 투자 의지입니다. 데이터센터와 도시를 잇는 열 네트워크를 만들려면, 에너지 기업·지자체·데이터센터 운영사가 장기 계약을 전제로 자본을 투입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수익 배분 구조, 규제, 토지 이용 문제 등 여러 변수로 인해 사업이 지연되거나 축소될 수 있습니다.
결국 헬싱키의 구조는 '기술적 가능성의 증명'뿐 아니라, 에너지 기업이 먼저 CapEx를 부담하고 수익 모델을 설계하는 방식이 실제로 작동한다는 사례로 보는 편이 더 타당합니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의 대응: 마이크로소프트의 핀란드 프로젝트
이 흐름 속에서 클라우드 대형 사업자들도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핀란드에서 데이터센터 폐열을 활용해 지역 난방 시스템을 탈탄소화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입니다. 파트너는 에너지 기업 Fortum이며, 이 프로젝트가 목표로 하는 규모는 25만 가구 이상에 난방을 공급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이는 헬렌-Equinix 모델보다 규모 면에서 훨씬 크고, 글로벌 클라우드 사업자가 폐열 활용을 핵심 인프라 전략의 일부로 편입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볼 수 있습니다. 클라우드, 특히 AI 워크로드 확대로 전력 사용량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재생에너지 계약 확대, 효율 개선, 폐열 활용 같은 복합 전략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효율이 곧 경쟁력이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AI 데이터센터 경쟁에서는 '어디가 더 빨리, 더 크게 짓는가' 못지않게 '어디가 더 적은 에너지로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는가'가 핵심 변수가 되고 있습니다. 대형 클라우드 사업자들도 전력망과 사회적 수용성의 제약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데이터센터 폐열 활용 모델에 대한 분석과 한계
핀란드 사례는 디지털 인프라의 에너지 문제를 물리 인프라와 연결해 풀어가는 하나의 구조적 해법을 보여준다는데 의미가 큽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확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 현실적 제약이 예상됩니다.
첫째, 기후와 인프라의 의존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난방 수요가 크고, 이미 지역난방 인프라가 있는 북유럽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닙니다. 기존 배관망이 없는 도시에서 동일한 구조를 도입하려면, 초기 투자 수준이 크게 올라가고 회수 기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전력 믹스와의 관계입니다. 미국의 경우 데이터센터 전력의 상당 부분이 여전히 가스와 석탄 발전에 의존하고 있으며, 향후 전력 수요 증가분도 상당 부분이 화석연료 기반에서 공급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 폐열 활용만 확대할 경우, 도시 난방의 효율성은 개선되지만 전력 생산 측면의 탈탄소는 제한적일 수 있습니다. 전력 생산과 소비 효율 개선을 동시에 보지 않으면, 탄소 감소 효과가 과대평가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셋째, 경제적 유인 설계가 핵심입니다. 헬렌 CEO 발언처럼, 규제만으로는 장기적인 탈탄소 투자를 끌어내기 어렵고, CO₂를 줄이면서도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가 설계되어야 합니다. 이 관점에서 핀란드 모델은 에너지 기업이 CapEx를 부담하고, 난방 요금과 데이터센터 냉각 비용 절감 효과를 함께 활용해 수익을 만드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국가에서 동일한 수익 구조가 성립하려면, 난방 단가, 전력 가격, 이자율, 규제 환경 등 다양한 요소가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넷째, AI 확대 속도의 변수입니다.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기존 예측보다 더 가파르게 증가할 경우, 폐열 활용과 같은 효율 개선 방안이 도입되더라도 총량 효과가 희석될 가능성이 큽니다. 즉, 효율이 올라가도 워크로드 증가 속도가 더 빠르면 절대적인 전력·열 수요는 오히려 늘어날 수 있는 구조입니다.
마지막으로, 데이터센터 사업자 입장에서 폐열 활용은 핵심 매출원이 아니라, 비용 절감과 ESG 측면에서의 전략적 선택에 가깝습니다. Equinix 사례에서도 폐열 수출이 전체 수익 구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고 명시됩니다. 이 점은 폐열 활용 모델이 단독 비즈니스라기보다는, 에너지 기업·지자체·데이터센터가 함께 설계해야 하는 복합 인프라 전략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핀란드의 실험은 그 자체로 "데이터센터는 전력만 소비하는 시설"이라는 전제를 흔드는 사례입니다. 다만 이 모델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보다, 각 국가와 도시의 기후, 전력 믹스, 열 인프라, 정책 환경을 고려한 변형 모델이 필요해 보입니다. 폐열 활용은 AI 시대 데이터센터 인프라 설계에서 점점 더 자주 거론될 가능성이 높지만, 모든 지역에서 만능 해법으로 기능하기에는 구조적 제약이 분명하게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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