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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건곤(乾坤)은 역(易)의 문(門)

요약

하늘이 만물을 낳고 인간은 만물의 영장입니다. 수천 년 전, 우리의 선인들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생존之道를 풀이하고자 천지(天地)의 학문, 역경(易經)을 창조했습니다. 유가(儒家)의 성인 공자(孔子)는 "건(乾)은 크게 시(始)하고, 곤(坤)은 만물을 이룬다(乾之大始, 坤作成物)"고 역경을 평했습니다. 천지는 우주의 기초이며, 역경에서 '건곤(乾坤)' 두 괘는 천지를 여는 큰 문과 같습니다. 대만 사범대학의 쩡스창(曾仕強) 교수는 이 건곤의 심오한 이치와 그 안에 담긴 인생의 도리를 명쾌하게 해설합니다.


1. 건곤(乾坤): 하늘과 땅, 음양(陰陽)의 시작

역경을 펼치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괘가 바로 건괘(乾卦)곤괘(坤卦)입니다.

  • 건괘(乾卦, ☰): 여섯 효(爻) 모두 양(陽)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는 '강건(剛健)'하며 '창조(創造)'하는 하늘의 힘을 상징합니다. 초구(初九)부터 상구(上九)까지 여섯 효 모두 양으로 구성됩니다.

  • 곤괘(坤卦, ☷): 여섯 효 모두 음(陰)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는 '유순(柔順)'하며 창조된 것을 받아들이고 '진화(進化)'시키는 땅의 힘을 상징합니다. 육효(六爻) 모두 음으로, 초육(初六)부터 상육(上六)까지 구성됩니다.

건괘는 순수한 양(純陽)을, 곤괘는 순수한 음(純陰)을 대표하며, 이 둘은 '착괘(錯卦)' 관계, 즉 서로 정반대의 성질을 가집니다. 건괘의 모든 양효가 음효로 변하면 곤괘가 되고, 반대로 곤괘의 모든 음효가 양효로 변하면 건괘가 됩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변화는 개천벽지(開天闢地), 즉 천지가 열리는 장대한 과정을 상징하며, 우주가 본래 에너지 덩어리(혼돈, 무극)였다가 '대폭발(빅뱅)'을 통해 분화되어 만물이 시작되었음을 암시합니다.

건괘는 '창조'의 힘을, 곤괘는 '수용'과 '진화'의 힘을 상징하며, 이 둘은 항상 함께 작용하는 '건곤배(乾坤配)'의 관계입니다. 역경의 64괘 중 건괘와 곤괘를 제외한 나머지 62괘는 모두 음과 양이 섞여 있는 형태로, 이 62괘는 건곤 사이에서 발생하는 변화와 조합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역경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 건곤 두 괘의 심오한 의미를 파악해야 하기에, 이 둘을 "건곤은 역(易)의 문(乾坤易之門)"이라 부릅니다.


2. 팔괘(八卦)의 가족 관계: 가정(家庭)과 인간의 본성

중화 민족은 인류 가운데 가장 가족(家庭) 관념이 강합니다. 역경의 팔괘는 이러한 가족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 건괘(乾卦): 아버지(父親)를 상징합니다.

  • 곤괘(坤卦): 어머니(母親)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여섯 괘는 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호작용을 통해 태어난 자녀들을 상징합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성별의 교차입니다.

  • 딸들 (여성 괘):

    • 장녀(長女) - 손괘(巽卦, ☴): 건괘의 맨 아래 양효(初九)가 음효로 변하여 생깁니다. '손(巽)'은 바람을 뜻하며 '화순(和順)'함을 상징합니다. 교수는 집에 첫딸이 태어나면 집안 분위기가 화목해진다고 비유합니다.

    • 중녀(中女) - 리괘(離卦, ☲): 건괘의 가운데 양효(九二)가 음효로 변하여 생깁니다. '리(離)'는 불을 뜻하며 '아름다움(美麗)'과 '분리(分離)'를 상징합니다. 둘째 딸은 가정에 아름다움을 더하지만, 때로는 의견 차이와 갈등이 시작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 소녀(少女) - 태괘(兌卦, ☱): 건괘의 맨 위 양효(上九)가 음효로 변하여 생깁니다. '태(兌)'는 연못을 뜻하며 '기쁨(喜悅)'을 상징합니다. 셋째 딸은 기쁨을 가져다주지만, 자녀가 많아지면서 발생하는 마음속의 고민과 문제도 나타냅니다.

  • 아들들 (남성 괘):

    • 장남(長男) - 진괘(震卦, ☳): 곤괘의 맨 아래 음효(初六)가 양효로 변하여 생깁니다. '진(震)'은 천둥을 뜻하며 '진동(震動)'과 '기세(氣勢)'를 상징합니다. 첫아들이 태어나면 '가문에 대를 이을 아들'이라는 기쁨과 함께 집안에 큰 활력과 진동을 가져옵니다.

    • 중남(中男) - 감괘(坎卦, ☵): 곤괘의 가운데 음효(六二)가 양효로 변하여 생깁니다. '감(坎)'은 물을 뜻하며 '위험(危險)'과 '함정(陷穽)'을 상징합니다. 둘째 아들은 때때로 형(장남)과 의견 충돌을 일으키고, 집안에 갈등을 유발할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 소남(少男) - 간괘(艮卦, ☶): 곤괘의 맨 위 음효(上六)가 양효로 변하여 생깁니다. '간(艮)'은 산을 뜻하며 '멈춤(停止)'을 상징합니다. 셋째 아들은 이제 그만 자녀를 낳고 멈춰야 한다는 의미와 함께, 집안의 안정과 조화를 위해 새로운 계획이 필요함을 암시합니다.

공자가 "생생지위역(生生之謂易)"이라 한 것처럼, 음양의 상호작용과 변화는 만물을 끊임없이 생성하고 진화시킵니다. 이처럼 팔괘의 가족 관계는 자연의 법칙이 인간 사회, 특히 가정의 생성과 발전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생동감 있게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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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육효(六爻)의 의미: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도(道)

하나의 중괘(重卦, 육효로 이루어진 괘)는 위아래 세 개의 효로 이루어진 두 개의 단괘(單卦)가 합쳐진 형태입니다. 이는 인간의 삶을 여섯 단계로 나누어 시간의 흐름과 공간적 위치를 설명하는 동시에, 우주의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 사상을 반영합니다.

  • 지리(地理) - 하효(下爻), 초효(初爻)와 이효(二爻): 가장 아래 두 효는 땅의 도(地道)를 상징합니다. 땅은 아래로 갈수록 단단해지는 속성이 있습니다. 건물을 지을 때 지반을 깊이 파서 견고한 기초를 다지는 것처럼, 모든 일의 시작은 굳건해야 합니다.

  • 인도(人道) - 중효(中爻), 삼효(三爻)와 사효(四爻): 중간 두 효는 인간의 도(人道)를 상징합니다. 사람은 '의(義)'를 바탕으로 '인(仁)'을 실천해야 합니다. 말이 합리적이고 행동이 의로우면, 그것이 곧 인자한 마음에서 비롯됨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 천도(天道) - 상효(上爻), 오효(五爻)와 육효(六爻): 가장 위 두 효는 하늘의 도(天道)를 상징합니다. 하늘의 기운은 음(陰)이 아래로, 양(陽)이 위로 움직이며 서로 교류합니다. 인간의 몸도 머리는 차갑게(陰), 발은 따뜻하게(陽) 유지해야 건강하듯이, 음양의 조화가 중요합니다.

이 육효의 각 위치는 '시(時, 시간)', '위(位, 공간)', '성(性, 성질)' 세 가지 요소를 담고 있으며, 각 위치와 효의 성질이 조화를 이루는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바로 '당위(當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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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 2: 물질(物質)과 에너지(Energy)의 상호작용

육효괘를 해석하는 또 다른 매우 중요한 관점은, 괘를 상하 두 개의 삼효괘(三爻卦)로 나누어 그 관계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 하괘(下卦 - 아래 세 개의 효): 이는 '물질(物質)', '신체(身體)', '내면(內面)', '현실 기반' 등을 상징합니다. 현재 상황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토대, 즉 눈에 보이는 유형(有形)의 세계를 나타냅니다. '나 자신'의 상태나 '사건의 현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 상괘(上卦 - 위 세 개의 효): 이는 '에너지(Energy)', '정신(精神)', '외부(外部)', '미래 가능성' 등을 상징합니다. 물질적 기반 위에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무형(無形)의 힘, 즉 정신적 동향이나 외부 환경의 변화,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을 나타냅니다. '내가 처한 외부 환경'이나 '사건의 미래'를 암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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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하나의 괘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하괘(물질/현실)를 기반으로 상괘(에너지/가능성)가 어떻게 작용하고 관계 맺는지를 통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앞서 설명드린 기제괘(旣濟卦, ☵☲)를 이 관점으로 보면, 하괘는 '불(火, ☲)'이고 상괘는 '물(水, ☵)'입니다. 이는 '불'이라는 물질적/현실적 작용(아래) 위에 '물'이라는 에너지/환경(위)이 놓여, 불의 기운을 물이 적절하게 제어하고 조화를 이루어 '완성'에 이른 상태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미제괘(未濟卦, ☲☵)는 하괘가 '물'이고 상괘가 '불'이니, 물(아래) 위에 불(위)이 놓여 서로 섞이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미완성'의 상태를 그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래 삼효는 물질, 위 삼효는 에너지"라는 관점은 괘를 정지된 그림이 아닌, 두 힘이 상호작용하는 동태적인 드라마로 해석하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열쇠입니다. 이 관점을 통해 우리는 현재 상황(하괘)을 진단하고, 앞으로의 변화(상괘)를 예측하며 지혜로운 대응 방안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4. 당위(當位)와 기제괘(旣濟卦): 완전한 조화와 그 이면의 경고

'당위(當位)'란 '마땅한 자리에 있다'는 의미로, 각 효의 위치와 그 효의 음양(陰陽) 성질이 조화를 이루었는지를 나타내는 핵심 개념입니다. 그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 홀수 자리 (1, 3, 5효): 양(陽)의 자리이므로, 양효(⚊)가 오면 '당위'라고 합니다.

  • 짝수 자리 (2, 4, 6효): 음(陰)의 자리이므로, 음효(⚋)가 오면 '당위'라고 합니다.

만약 이 원칙에 어긋나면 '부당위(不當位)'라고 하며, 이는 마치 자신의 능력이나 성품에 맞지 않는 역할을 맡아 어려움을 겪는 상황과 같습니다. '당위'는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어 순조롭고 안정된 상태를, '부당위'는 불일치와 불안정, 갈등의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역경의 64괘 중, 이 '당위'의 원칙이 완벽하게 구현된 유일한 괘가 바로 63번째 괘인 기제괘(旣濟卦,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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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제괘(旣濟卦)의 구조:

    • 상괘(上卦): 감(坎, ☵) - 물(水)

    • 하괘(下卦): 리(離, ☲) - 불(火)

    • 효의 구성:

      • 상육(上六): ⚋ (짝수 자리 - 음효) -> 당위

      • 구오(九五): ⚊ (홀수 자리 - 양효) -> 당위

      • 육사(六四): ⚋ (짝수 자리 - 음효) -> 당위

      • 구삼(九三): ⚊ (홀수 자리 - 양효) -> 당위

      • 육이(六二): ⚋ (짝수 자리 - 음효) -> 당위

      • 초구(初九): ⚊ (홀수 자리 - 양효) -> 당위

'기제(旣濟)'란 '이미 강을 건넜다' 또는 '이미 완성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름 그대로, 기제괘는 여섯 효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 마땅하게 위치하여 완벽한 조화와 질서, 그리고 성공을 상징하는 괘입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안정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역경의 지혜는 바로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합니다. 역경은 '변화(變化)'의 철학이며, 고정된 상태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완성과 성공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의 시작점입니다. 정상에 올랐다는 것은,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기제괘는 성공의 기쁨을 노래하면서도, 그 이면에 매우 강력한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완성된 때일수록 더욱 조심하고, 안정 속에서 위기를 대비하라'는 것입니다. 성공에 도취하여 자만하면, 완벽했던 질서는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와 정반대의 괘가 바로 역경의 마지막 64번째 괘인 미제괘(未濟卦, ☲☵)입니다. 미제괘는 기제괘와 반대로 여섯 효 모두가 '부당위'인 괘로, '아직 완성되지 않음'과 혼돈, 미완의 상태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역경이 미제괘로 끝나는 것은, 모든 혼돈과 실패 속에서도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이 무한히 열려 있음을 암시합니다.

결국 기제괘와 미제괘는 성공과 실패, 질서와 혼돈이 영원히 순환하는 우주의 이치를 보여주는 한 쌍의 거울과 같습니다. 역경은 우리에게 성공했을 때는 겸손과 신중함을, 실패했을 때는 희망과 새로운 도전의 용기를 가지라고 가르칩니다.


4. 역경(易經)의 지혜: 끝없는 변화와 성찰

역경은 결코 '좋고 나쁨'을 절대적으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좋은 것 속에는 나쁜 요소가 잠재하고, 나쁜 것 속에는 좋은 요소가 숨어있어 언제든 서로 뒤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신진대사가 끊임없이 세포를 바꾸며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처럼, 우리의 운명 또한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우리는 언제든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역경은 우리에게 눈앞의 현실에만 매달리지 말고, 미래의 변화를 통찰하고 대비하라고 가르칩니다. 현재의 상황이 아무리 좋지 않더라도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상황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꿀 수 있을지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이처럼 건괘와 곤괘를 시작으로 펼쳐지는 역경의 육효는 천지 만물의 변화 원리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에서 마주하는 모든 상황과 그에 대한 대처 방안, 그리고 바람직한 삶의 태도를 심오하게 가르쳐줍니다. 이는 인간이 천지인의 조화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발전시켜나가야 함을 역설하는 영원한 지혜인 것입니다.

영상 URL: https://www.youtube.com/watch?v=YoQW27QsP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