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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천인합덕(天人合德): 하늘과 인간의 덕이 합일되는 지혜

중국 고대 설화 속 용마(龍馬)가 짊어지고 온 하도(河圖)와 신령한 거북(神龜)이 등에 새겨온 낙서(洛書)는 단순히 신비로운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하늘이 드리운 상(天垂象)'으로서, 인류가 자연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도록 이끈 깨달음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정점에는 중화 민족의 독특한 사상인 천인합일(天人合一), 즉 하늘과 인간이 하나 되는 철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대만 사범대학의 쩡스창(曾仕強) 교수는 이 천인합일 사상의 핵심인 '천인합덕(天人合德)'을 통해 역경(易經)의 심오한 지혜를 풀어냅니다.


1.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 왜 신(神)이 아닌 노천(老天)을 경외하는가?

세계의 여러 문명은 신을 숭배했지만, 중화 민족은 특이하게도 인격신(人格神)을 숭배하기보다 '노천(老天)', 즉 자연의 섭리와 운행을 주관하는 거대한 질서로서의 하늘을 경외했습니다. 서양인들은 인간과 하늘이 너무나 달라 하나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중국인들은 일찍이 '하늘과 인간은 하나'라는 천인합일 사상을 발전시켰습니다.

언어가 미성숙하고 문자가 없던 고대 시절, 인류는 외부 세계의 변화에 대한 호기심과 이해의 갈증을 느꼈습니다. 이때 학문을 하는 방법은 단 세 글자로 요약됩니다. 바로 '천수현상(天垂現象)' 혹은 '천수향(天垂象)'입니다. 하늘은 직접 말하지 않지만, 여러 현상(象)을 통해 스스로의 이치를 드러내 보여주었고, 사람들은 이를 각자의 깨달음(悟性)으로 이해했습니다. 역경의 '계사전(繫辭傳)'에 "하늘이 상을 드리우니 길흉이 나타나고, 성인(聖人)이 이를 본받아 그림을 그린다(天垂象現吉凶, 聖人象之)"고 기록된 것처럼, 하늘이 보여준 상징을 인간 중 가장 지혜로운 성인이 모방하고 해석하여 학문으로 발전시킨 것입니다. 이는 하도와 낙서가 하늘에서 내려왔고 성인이 이를 본받았다는 전설과 일맥상통하며, '천인지학(天人之學)'이자 천인합일 사상의 근간이 됩니다.


2. 삼고삼성(三古三聖)의 역경(易經) 계승: 하늘의 도(道)에서 인간의 도(道)로

역경의 지혜는 고대부터 세 분의 위대한 성인, 즉 삼고삼성(三古三聖)에 의해 계승되고 발전되었습니다.

  • 선고지성(仙古之聖) 복희씨(伏羲氏): 천도(天道)의 발견

    복희씨는 "위로는 천상을 관찰하고 아래로는 지리를 살피며, 몸 가까이에서는 자신을 살피고 멀리서는 만물을 살폈다(仰觀天象, 俯察地理, 遠取諸物, 近取諸身)"고 전해집니다. 즉, 자연의 현상과 인간의 신체에서 공통된 질서를 발견하고, 이를 추상화하여 팔괘(八卦)를 그렸습니다. 이는 아직 문자가 없던 시절, 하늘의 도(天道)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으로, 역경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이자 천인합일 사상의 출발점이 됩니다.

  • 중고지성(中古之聖) 주 문왕(周文王): 천도를 인도로 끌어내리다

    복희씨의 팔괘는 하늘의 도리였지만, 주 문왕은 이를 인간 세상의 도리로 확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는 팔괘를 두 개씩 겹쳐 육십사괘(六十四卦)를 만들고, 각 괘에 괘사(卦辭)를, 각 효(爻)에 효사(爻辭)를 부여했습니다. 이는 '천도를 인도(人道)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문왕이 살던 상(商)나라는 귀신과 미신을 숭배하는 풍조가 강했는데, 문왕은 이러한 시대에 역경을 통해 인간 세상의 정치와 도덕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그의 노력으로 역경은 단순히 신비로운 점서(占書)가 아닌, 인간 사회의 통치와 삶의 지혜를 담은 경전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 징고지성(澄古之聖) 공자(孔子): 천인합덕(天人合德)으로 역경을 완성하다

    주 문왕 이후 오랜 시간이 흘러 공자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신(神)과 귀신(鬼神)에 대한 미신적 사고가 점차 약화되었습니다. 공자는 이 시점에서 주 문왕이 인도를 이끌어낸 것을 넘어, 역경을 철저히 인생의 행위 준칙(行事規則)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는 신도설교(神道設教, 신의 뜻을 빌려 가르침을 펴는 것)의 방식을 버리고, 순전히 도리(道理)를 통해 교화(教化)를 펼쳤습니다. "사람이 할 바를 다하면 신명(神明)이 이를 돕는다"는 유교적 사상처럼, 공자는 인간의 도덕적 행위가 곧 하늘의 이치와 부합함을 역설했습니다.

    공자는 "군자유삼외(君子有三畏): 외천명(畏天命), 외대인(畏大人), 외성인지언(畏聖人之言)"이라 하여 군자가 두려워해야 할 세 가지로 천명, 대인, 성인의 말을 꼽았습니다. 이때 그가 말한 '성인'은 자신을 포함하지 않으며, 복희씨와 주 문왕 같은 옛 성인들이 하늘의 이치를 깨달아 전한 '말'을 경외하라는 뜻입니다.

    공자의 가장 위대한 공헌은 천도(天道)와 인도(人道)를 '덕(德)'으로 합일시킨 것입니다. 그는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수덕(修德), 즉 자신의 덕성을 수양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는 자신의 덕성을 갈고닦아 하늘의 도리에 부합하도록 만드는 과정이며, 인간으로서 달성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입니다. 우리가 돈을 벌고 관계를 맺는 모든 행위는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수덕의 과정과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덕(德)은 '얻다(得)'와 어원이 같듯이, 도리를 행하여 얻는 것을 의미하며, 올바른 품덕을 통해 세상으로부터 얻는 것을 모두 포괄합니다.

    공자는 수덕을 통해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극치의 경지를 "선천이천불위(先天而天弗違), 후천이봉천시(後天而奉天時)"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이는 "하늘보다 먼저 말하더라도 하늘이 어기지 않고, 하늘보다 늦게 말하면 하늘의 때를 받들어 따른다"는 의미입니다. 덕성이 높은 사람은 하늘의 이치를 미리 깨달아 예언하더라도 하늘이 그 말을 따르고, 만약 이미 하늘이 현상으로 보여준 후라면 그 뜻을 겸손히 받들어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덕성이 지극해지면 자연의 이치와 완벽하게 합일되어 예측을 넘어선 '예지(豫知)'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3. 현대 사회에서의 역경(易經)의 오해와 계시

공자의 이러한 위대한 사상적 전환에도 불구하고, 역경은 한(漢)나라 시대부터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진시황(秦始皇)이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단행할 때 역경만은 남겨두었는데, 이는 백성들이 점을 치는 데 사용하는 실용적인 책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역경은 점차 '도덕적 가르침'이 아닌 '지식적 점술'로 변질되었습니다. 길흉화복을 예측하는 데 집중하고, 자신에게 이로운 것만을 선택하려는 '투기적 기교(投機奇巧)'로 전락해버린 것입니다.

교수는 이러한 경향을 비판하며, "길흉은 덕(德)에 달려있다"고 강조합니다. 진정으로 덕성이 높은 사람은 흉(凶)도 길(吉)로 변화시키고, 길(吉)도 자만하면 흉(凶)이 될 수 있다는 역경의 본래 가르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즉, '나는 평범한 사람이니 점을 믿겠다'는 태도는 자신의 덕성을 수양할 기회를 놓치는 것이며, 예측의 정확도가 70~80%라 할지라도 나머지 20~30%의 불확실성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4. 천인합덕(天人合德)의 현대적 의미: 변치 않는 삶의 원칙

공자가 제시한 '천인합덕'의 이념은 현대 사회에 다음과 같은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 지경달변(持經達變)의 지혜: 현대 중국인들은 '변수무상(變數無常)'의 시대를 살아가며 변화를 갈망하지만, 원칙 없는 변화는 '이경판도(離經叛道)'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지경달변'은 '변치 않는 삶의 원칙(經)'을 확고히 하면서 '변화하는 삶의 방식(變)'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지혜입니다.

  • 변치 않는 중국인의 덕목: 교수는 현대 중국인이 지켜야 할 변치 않는 덕목으로 근면(勤勞), 검소(節儉), 책임(負責), 충성(忠誠)을 꼽습니다. 물질적 풍요만을 좇아 사치를 공개적으로 자랑하는 세태는 사회의 풍기를 문란케 하고 대중의 원망을 살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주문호육(朱門酒肉)'의 시대에도 부자들은 담장을 높여 자신들의 부를 숨겼던 것은 이러한 사회적 도리를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 근본(根本)의 중요성: 모든 것의 근본이자 변해서는 안 될 '경(經)'은 바로 '토(土)'입니다. 식량 생산의 근간인 경작지를 함부로 훼손하고 개발에만 몰두한다면, 결국 인류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현실적인 경고는 역경의 지혜가 단순히 철학에 머무르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 자녀 교육의 방향성: 서양에서는 어릴 때부터 '구신구변(求新求變)'을 강조하지만, 이는 중국인의 '변화'를 추구하는 기질과 결합될 경우 '난변(亂變)'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중국인 자녀들에게는 무조건적인 변화보다는 '원칙 속의 변화', 즉 '변할 수 없는 근본'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와 교사는 물론, 정부조차도 통제할 수 없는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하도와 낙서에서 출발하여 복희씨, 주 문왕, 공자에 이르러 '천인합덕'의 지혜로 완성된 역경은 단순히 길흉을 점치는 책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늘과 인간의 관계, 변화와 불변의 원칙, 그리고 인간이 삶에서 지켜야 할 도덕적 근본을 가르치는 심오한 인생 철학입니다. '변할 수 없지만 변해야 하고, 변할 수 있지만 변해서는 안 되는' 이 역설적인 지혜야말로 혼란스러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역경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계시일 것입니다.

영상 URL: https://www.youtube.com/watch?v=EWdeGDU6oz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