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낙서(洛書): 신비로운 거북이가 전한 변화와 조화의 비밀
옛 중국 민간 설화에 따르면, 황하에서 용마(龍馬)가 하도(河圖)를 짊어지고 나온 데 이어, 낙수(洛水)에서는 신령스러운 거북(神龜)이 등에 낙서(洛書)를 새기고 나타났다고 전해집니다. 이 두 천상의 그림은 역경(易經)의 근원이 되었으며, 특히 낙서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불변의 원칙을 지키는 지혜, 즉 '지경달변(持經達變)'의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쩡스창(曾仕強) 교수는 이 신비로운 낙서가 담고 있는 깊은 의미를 파헤치며, 우리 삶에 적용될 수 있는 심오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1. 신귀재서(神龜載書): 왜 황하가 아닌 낙수이며, 그림이 아닌 '글'인가?
용마가 황하에서 하도를 가져왔듯, 신령스러운 거북은 낙수에서 낙서를 가지고 나타났습니다. 왜 똑같이 황하에서 나타나지 않았을까요? 교수는 이것이 '불변(不變)' 속의 '변화(變化)'를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합니다. 모든 것이 고정되어 있다면 변화는 없을 것이고, 모든 것이 변한다면 원칙이 사라질 것입니다. 하도와 낙서를 분리하여 제시함으로써, '변하는 것 속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고, 변하지 않는 것 속에 변하는 것이 있다'는 역경의 핵심 사상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도(河圖)는 '그림(圖)'이라 불리지만, 낙서(洛書)는 '글(書)'이라 불립니다. 이는 낙서가 단순히 형상에 그치지 않고, 더 깊은 '서문(書文)'의 의미, 즉 상징적인 질서와 규칙을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구분은 후대 '도서(圖書) 문화'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교수는 하도를 '경(經)'이자 '선천(先天)'의 '체(體)'로, 낙서를 '권(權)'이자 '후천(後天)'의 '용(用)'으로 비유하며, 둘의 관계가 단순한 병치가 아니라 상보적임을 강조합니다. 하도가 우주의 본질적인 이치를 담고 있다면, 낙서는 그 이치가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운용되고 변화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2. 낙서(洛書)의 구성과 하도(河圖)와의 결정적 차이: '십(十)'의 부재
낙서는 다음과 같은 노래로 그 배열을 설명합니다.
戴九履一 (아홉을 이고 하나를 밟으니)
左三右七 (왼쪽엔 셋, 오른쪽엔 일곱)
二四爲肩 (둘과 넷이 어깨를 이루고)
六八爲足 (여섯과 여덟이 발을 이루니)
五居中央 (다섯이 중앙에 거하네)
낙서의 숫자들은 1부터 9까지의 백점(白點, 양수)과 흑점(黑點, 음수)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앙에는 하도와 마찬가지로 '5'가 위치합니다. 이는 하도와 낙서가 음양의 이치를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낙서에는 '10'이라는 숫자가 없습니다. 하도에는 1부터 10까지의 숫자가 모두 존재하지만, 낙서에서는 10이 사라지고 9개의 숫자만 나타납니다.
이 '10'의 부재는 낙서가 하도와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자, 심오한 의미를 내포합니다. 교수는 이를 '견물불견십(見物不見十)'이라고 표현합니다. 즉, 겉으로는 10이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모든 곳에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낙서의 숫자 배열은 대각선, 가로, 세로 어떤 방향으로 합산해도 모두 '15'가 됩니다. 이는 5가 중앙에 자리 잡고 10이 주변에 감추어져 있음을 암시합니다. '10'은 '변화'와 '용(用)'을 상징하며, '5'는 '불변'의 '체(體)'이자 '경(經)'을 상징합니다.
3. 낙서(洛書)에 담긴 이치: 변화 속 불변의 원칙
낙서의 배열은 역경의 핵심인 '변(變)과 불변(不變)'의 이치를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중앙의 '5' - 불변의 핵심: 낙서에서도 중앙의 '5'는 움직이지 않는 축입니다. 이는 모든 변화의 근간이 되는 '경(經)', 즉 원칙과 근본을 상징합니다. 교수는 이를 국가의 '영도 중심(領導中心)'에 비유하며, 중심이 흔들리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고 강조합니다. '5'는 또한 오행 중 '토(土)'를 상징하며, 토는 만물이 뿌리를 내리고 생존하는 근간이기에 가장 중요하며 변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10'의 숨겨진 의미 - 변화와 응변: '10'이 낙서에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은, 5라는 불변의 원칙을 기반으로 무궁무진한 변화(變)를 펼쳐나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즉, '지경달변(持經達變)'은 단순히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을 굳건히 지키면서도 시대와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변화하는 능력입니다.
음양의 순행(順行)과 역행(逆行): 낙서의 오행 방향을 보면 하도와는 다른 점이 나타납니다. 양(陽)의 기운은 1, 3에서 시계 방향(순행)으로 나아가지만, 7, 9에서는 반시계 방향(역행)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음(陰)의 기운 역시 2, 4, 6, 8의 배열에서 하도와는 다른 흐름을 보여줍니다. 이는 인생에서 항상 순조로운 길만 갈 수는 없으며, 때로는 역경과 비정상적인 경로를 겪을 수도 있음을 시사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길을 가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정상(正向)'으로 회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양의생사상(兩儀生四象): 낙서의 배열은 음양 아래에서 네 가지 시스템(사상)이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양의 순행, 양의 역행, 음의 순행, 음의 역행이 그것입니다. 이는 세상의 변화가 더욱 복잡하고 다양하게 전개될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역경은 이러한 복잡한 변화를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 변화 속에서 원칙을 잃지 않는 지혜를 강조합니다. '난변(亂變)'은 경(經)을 버리고 제멋대로 변하는 것이지만, '변(變)'은 경(經)을 붙들고 응변하는 것입니다.
4. 역경(易經)의 지혜와 현대 사회에 대한 통찰
쩡스창 교수는 낙서의 원리를 통해 현대인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전합니다.
'경(經)'의 의미: 1, 3, 5는 낙서에서 위치가 변하지 않는 핵심 숫자들입니다. 1은 생존의 근원인 '물(水)'이자 태극의 '양기(陽氣)', 3은 만물의 성장을 돕는 '나무(木)'이자 '생기(生氣)'를, 5는 만물의 근간이자 기반인 '흙(土)'을 상징합니다. 이들은 인간이 어떤 상황에서도 변할 수 없는 '생존의 원칙', 즉 '경(經)'입니다. 물 없이 살 수 없고, 생존의 환경이 없으면 안 되며, 삶의 근간(흙)을 잃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지경달변(持經達變)과 이경판도(離經叛道):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지만, 교수는 '원칙 없는 변화'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지경달변'은 변하지 않는 원칙(경)을 굳건히 지키면서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하는(변) 지혜를 말합니다. 반대로 '이경판도(離經叛道)'는 원칙을 버리고 제멋대로 변하는 것으로, 결국 길을 잃고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이는 '생활의 원칙'은 변할 수 없지만, '생활의 방식'은 변할 수 있다는 비유로 설명됩니다.
중국인의 삶의 원칙: 교수는 중국인이 지켜야 할 변치 않는 원칙으로 근면(勤勞), 검소(節儉), 책임(負責), 충성(忠誠)을 꼽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가치들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돈과 명예만을 좇아 사치를 공개적으로 자랑하는 세태에 대해 강하게 비판합니다. 검소는 단순히 돈을 아끼는 것을 넘어 사회 전체의 풍기를 해치지 않고 다른 이들의 원망을 사지 않는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5. 낙서가 주는 세 가지 핵심 깨달음
쩡스창 교수는 낙서의 지혜를 통해 현대인들에게 세 가지 중요한 깨달음을 다시금 강조합니다.
변화의 필요성과 원칙의 확립: 인간은 반드시 변해야 하지만, 변화를 추구하기 전에 '원칙'을 확고히 해야 합니다. '변'과 '불변'은 동시에 이야기되어야 하며, 무조건적인 '구신구변(求新求變, 새로움과 변화를 추구함)'은 위험합니다.
'토(土)'의 근본적 중요성: '경(經)'의 핵심은 '토(土)'입니다. 만약 농사지을 땅을 모두 없애고 건축에만 몰두한다면, 식량 위기에 직면할 것입니다. 이는 '근본'을 잃지 않는 지혜를 의미합니다. 교수는 극한 상황에서는 가죽 허리띠마저 식량이 될 수 있다고 비유하며, 물질주의에 빠져 근본을 잊지 말라고 역설합니다.
자녀 교육의 방향: 서구 사회에서는 어려서부터 '새로움과 변화'를 가르치지만, 중국 문화권에서는 자칫 '난변(亂變)'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중국인의 혈액 속에는 이미 변화의 기질이 충만하므로, 어릴 때부터 무조건적인 변화를 강조하기보다는 '원칙 속의 변화'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녀들이 부모의 통제를 벗어나고, 학교와 정부조차도 백성을 다스릴 수 없는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결론적으로 낙서의 지혜는 '변할 수 없는 것'과 '변해야 하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고, 그 균형 속에서 올바른 삶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변하되 원칙을 잃지 않고, 원칙을 지키되 변화에 응하는' 지경달변(持經達變)이야말로 혼란스러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낙서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가르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