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시대 글쓰기, '순서' 하나로 퀄리티가 바뀐다? 행렬 곱셈에서 배우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AI한테 분명히 시켰는데, 왜 자꾸 엉뚱한 답변만 할까요?"
ChatGPT, Gemini와 같은 생성형 AI를 사용하며 이런 고민 한 번쯤 해보셨을 겁니다.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 질문을 바꿔보고, 더 자세히 설명도 해보지만 어딘가 모르게 2% 부족한 결과에 실망하곤 하죠.
많은 사람들이 AI에게 '무엇을(What)' 요구할지에만 집중합니다. 하지만 AI 성능을 극적으로 끌어올리는 비밀은 '어떤 순서로(How)' 정보를 제공하느냐에 숨어있을지 모릅니다. 놀랍게도 그 힌트는 우리가 학창 시절 머리 아파했던 '행렬 곱셈'에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행렬 곱셈의 단순한 원리가 어떻게 인공지능의 핵심 작동 방식이 되었는지, 그리고 이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어떻게 우리의 AI 프롬프트 작성 능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지 쉽고 명쾌하게 파헤쳐 봅니다. 수학에 자신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기차 연결 놀이' 비유만 기억한다면, 당신도 AI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AI 조련사'가 될 수 있습니다.
1. 수학 시간으로의 짧은 여행: 행렬 곱셈과 '기차 연결'의 비밀
겁먹지 마세요! 복잡한 수식은 모두 잊고, '기차'라는 단어에만 집중해 주세요.
행렬 곱셈의 세계를 '기차 연결 시스템'에 비유해 보겠습니다.
행렬(Matrix) = 하나의 기차 🚂
행렬의 행(가로줄) 개수 = 기차의 높이(층수)
행렬의 열(세로줄) 개수 = 기차의 길이(칸수)
두 행렬을 곱한다 (AB) = A 기차 뒤에 B 기차를 연결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절대 어길 수 없는 '황금 연결 규칙'이 있습니다.
"앞 기차(A)의 길이(열)와 뒷 기차(B)의 높이(행)가 정확히 같아야만 연결할 수 있다!"
이 간단한 규칙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두 가지 흥미로운 상황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상황 1: AB는 되는데, BA는 안 돼요! (연결의 방향성)
A 기차 뒤에 B 기차는 붙일 수 있지만, 순서를 바꿔 B 기차 뒤에 A 기차는 붙일 수 없는 신기한 경우입니다.
A 기차: 2층 높이, 3칸 길이의 기차 (2x3 행렬)
B 기차: 3층 높이, 1칸 길이의 기차 (3x1 행렬)
✅ A 기차 + B 기차 (AB) 연결 시도
앞 기차(A)의 길이는 3칸, 뒷 기차(B)의 높이는 3층. '3'으로 숫자가 똑같습니다! 황금 규칙에 따라 안전하게 연결할 수 있습니다. (AB 곱셈 가능)
❌ B 기차 + A 기차 (BA) 연결 시도
이제 순서를 바꿔봅시다. 앞 기차(B)의 길이는 1칸, 뒷 기차(A)의 높이는 2층. '1'과 '2'는 다른 숫자입니다. 이 두 기차는 규격이 맞지 않아 절대로 연결할 수 없습니다. (BA 곱셈 불가능)
핵심 인사이트: 행렬 곱셈에서는 '순서'가 절대적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3 x 5
와5 x 3
이 같다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행렬의 세계에서는AB
와BA
가 완전히 다른, 심지어 한쪽은 존재조차 할 수 없는 개념이 됩니다.
상황 2: 둘 다 되는데, 결과물의 모양이 달라요! (결과의 비대칭성)
이번엔 양방향 연결이 모두 가능하지만, 완성된 결과물의 모양(크기)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입니다.
A 기차: 2층 높이, 3칸 길이의 기차 (2x3 행렬)
B 기차: 3층 높이, 2칸 길이의 기차 (3x2 행렬)
✅ A 기차 + B 기차 (AB) 연결 결과
연결 조건: A의 길이(3칸)와 B의 높이(3층)가 같아 연결 성공!
결과물 모양: 연결된 새로운 기차는 앞 기차(A)의 높이와 뒷 기차(B)의 길이를 따릅니다. 즉, 2층 높이, 2칸 길이의 새로운 기차 (2x2 행렬)가 탄생합니다.
✅ B 기차 + A 기차 (BA) 연결 결과
연결 조건: B의 길이(2칸)와 A의 높이(2층)가 같아 역시 연결 성공!
결과물 모양: 이번엔 B의 높이와 A의 길이를 따릅니다. 즉, 3층 높이, 3칸 길이의 새로운 기차 (3x3 행렬)가 탄생합니다.
핵심 인사이트:
AB
와BA
계산이 모두 가능하더라도, 그 결과물의 크기와 형태는 완전히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순서로 정보를 결합하느냐에 따라 결과의 차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2. 기차는 어떻게 AI가 되었나: 신경망의 작동 원리
자, 이제 이 '기차 연결 놀이'가 인공지능과 무슨 상관인지 알아볼 시간입니다. 놀랍게도 인공지능 신경망(Neural Network)은 이 기차 연결 시스템의 매우 정교하고 거대한 버전입니다.
입력 데이터 (글, 이미지 등) = 우리가 출발시키는 첫 번째 기차
신경망의 각 층 (Layer) = 데이터를 가공하고 변환하는 '연결 스테이션' 이자, 다음 단계로 보낼 새로운 기차(행렬)
데이터 처리 과정 = 수많은 기차(행렬)들이 황금 규칙에 따라 순서대로 착착 연결되는 과정 (행렬 곱셈)
AI에게 '순서'가 중요한 이유 (AB ≠ BA의 원리)
AI가 고양이 사진을 판별하는 과정을 '기차 연결'에 비유해 봅시다.
(입력) 고양이 사진의 수만 개 픽셀 정보가 담긴 거대한 '픽셀 기차(A)'가 출발합니다.
(1층) '픽셀 기차'는 '선, 모서리, 색상' 같은 기초 특징을 찾아내는 '특징 추출 기차(B)'와 연결됩니다.
A x B
가 일어나, 사진의 기초적인 윤곽 정보가 담긴 새로운 기차가 만들어집니다.(2층) 이 기차는 다시 '눈, 코, 귀' 같은 복합적인 형태를 인식하는 '형태 인식 기차(C)'와 연결됩니다.
(AB) x C
가 일어나, 고양이의 얼굴 부위 정보가 담긴 기차가 만들어집니다.(최종 출력) 이 과정이 수십, 수백 번 반복되어 최종적으로 "이것은 고양이일 확률 98%"라는 정보가 담긴 아주 작고 단순한 '결과 기차'가 도착합니다.
만약 이 순서를 무시하고 '픽셀 기차(A)'를 '형태 인식 기차(C)'와 연결하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선과 모서리 정보도 없는데 눈, 코, 귀를 찾으라는 것과 같습니다. 수학적으로도 기차의 길이(열)와 높이(행)가 맞지 않아 연결 자체가 실패합니다.
AI에서 데이터 처리 순서는 절대적입니다. 정보는 반드시 입력층 → 중간층 → 출력층의 정해진 방향으로, 논리적인 단계를 거쳐 흘러가야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습니다.
AI가 '요약'하고 '추상화'하는 법 (크기 변화의 원리)
AI가 방대한 정보 속에서 핵심을 찾아내는 능력은 행렬 곱셈 후 결과물의 크기가 변하는 원리 덕분입니다.
처음 입력된 '픽셀 기차'는 매우 크고 복잡합니다 (예: 1024x768 크기). 하지만 '특징 추출 기차'와 연결되면서 불필요한 정보는 버려지고 핵심적인 특징만 남아 더 작은 크기의 기차로 변합니다 (예: 200x200 크기).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정보는 점점 '추상화'되고 '요약'됩니다.
마지막에는 "고양이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정보, "98% 확률"이라는 아주 작은 크기(1x1)의 '결과 기차'만 남게 됩니다. 이처럼 행렬의 크기를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는 과정이 바로 AI가 복잡한 세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방법입니다.
3. 그래서, 내 프롬프트는 어떻게 써야 할까? 'AI 조련'을 위한 3가지 순서의 법칙
이제 대망의 실전 팁입니다. 행렬 곱셈의 '순서'와 '크기 변화' 원리는 우리가 AI에게 말을 거는 방식, 즉 프롬프트 작성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AI는 우리가 입력한 텍스트를 순서대로 처리하며 생각의 흐름을 만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정표'를 먼저 보여주느냐에 따라 AI라는 여행자의 목적지가 달라집니다.
법칙 1: '맥락'을 먼저, '명령'은 나중에 (Context First, Instruction Last)
AI가 충분히 상황을 이해하고 준비할 시간을 줘야 합니다. 배경 정보를 먼저 제공하고, 해야 할 일을 나중에 제시하세요.
🥈 아쉬운 프롬프트:
"아래 내용을 초등학생도 이해하게 세 줄로 요약해줘. [아주 복잡하고 긴 인공지능 논문 텍스트]"
AI의 사고: '세 줄 요약'과 '초등학생'이라는 틀에 갇힌 채로 글을 읽기 시작합니다. 내용을 깊이 이해하기보다 요약의 형식에만 치중하여 피상적인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 훌륭한 프롬프트:
"[아주 복잡하고 긴 인공지능 논문 텍스트] 위 내용을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핵심만 뽑아서 세 줄로 요약해줘."
AI의 사고: 먼저 논문 내용을 충분히 소화하며 맥락을 파악합니다. 모든 정보를 이해한 뒤 "이것을 초등학생 눈높이로 요약하라"는 명확한 과업을 받아, 훨씬 정확하고 본질적인 요약을 해냅니다.
법칙 2: '역할'을 먼저, '과업'은 나중에 (Persona First, Task Last)
AI에게 특정 전문가의 역할을 부여하고 싶다면, 정체성을 먼저 심어주고 그 역할로서 할 일을 부여하세요.
🥈 아쉬운 프롬프트:
"신제품 'AI 스마트워치'의 광고 카피를 5개 써줘. 참고로 너는 애플의 마케팅 수석 카피라이터야."
AI의 사고: 일단 평범한 광고 카피 5개를 생성합니다. 그 후에 '아, 내가 애플 마케터였지'라며 뒤늦게 스타일을 흉내 내려고 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결과물에 톤을 덧씌우는 느낌이라 어색할 수 있습니다.
🥇 훌륭한 프롬프트:
"당신은 애플의 신제품 발표를 총괄하는 수석 마케팅 카피라이터입니다. 감성을 자극하고, 혁신을 강조하는 당신의 스타일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이제 곧 출시될 신제품 'AI 스마트워치'의 핵심 기능을 어필하는 광고 카피를 5개 작성해주세요."
AI의 사고: "나는 애플의 최고 마케터다"라는 페르소나를 먼저 완벽하게 장착합니다. 그 관점과 사고방식으로 과업에 접근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 있고 창의적인 결과물을 내놓습니다.
법칙 3: '긍정' 지시를 먼저, '부정' 지시는 나중에 (혹은 지양)
AI는 '~하지 마'라는 제약 조건보다 '~해줘'라는 목표를 훨씬 잘 이해합니다. AI가 나아가야 할 긍정적인 방향을 먼저 제시해주세요.
🥈 아쉬운 프롬프트:
"프로젝트 성과 보고서를 써줘. 너무 길게 쓰지 말고, 전문 용어도 너무 많이 쓰지 마. 딱딱한 말투는 피해야 해."
AI의 사고: '길다', '전문 용어', '딱딱함' 같은 부정적인 키워드에 먼저 꽂힙니다. 이것들을 피하는 데 급급하다 보면 오히려 글이 어색해지거나 소극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 있습니다.
🥇 훌륭한 프롬프트:
"프로젝트 성과 보고서를 작성해줘. 핵심 성과 위주로 간결하게, 비전문가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해서, 친근하고 명료한 어조로 작성해줘."
AI의 사고: '간결함', '쉬운 단어', '친근한 어조'라는 명확하고 긍정적인 목표를 향해 곧바로 나아갑니다.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요소들은 배제되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에 훨씬 가깝게 도달합니다.
마치며: 단순한 '순서'가 만드는 전문가 수준의 결과
행렬 곱셈에서 AB
와 BA
의 순서가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 것처럼, 우리가 AI에게 건네는 말의 순서 또한 결과물의 수준을 결정합니다.
맥락 → 명령, 역할 → 과업, 긍정 → 부정.
이 단순한 '순서의 법칙'은 AI를 단순한 검색 도구가 아닌, 나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실행하는 강력한 파트너로 만드는 열쇠입니다.
오늘 당장 당신의 다음 프롬프트에 이 '순서의 마법'을 적용해 보세요. 아마 AI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놀랍도록 똑똑한 답변을 내놓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