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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8월 라스베이거스 인터내셔널 호텔 공연소개

JH.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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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13
요약

1969.08 인터내셔널 호텔(International Hotel) 공연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당시 34세 )의 1969년 8월 라스베이거스 인터내셔널 호텔(International Hotel) 공연은 그의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을 이룬 역사적인 사건으로, '킹 오브 로큰롤'로서의 부활을 알린 시기였습니다. 이 공연은 엘비스가 8년 만에 라이브 무대로 복귀한 첫 공연으로, 그의 음악적 재능과 카리스마를 다시 전 세계에 각인시킨 순간이었습니다.

1. 배경: 엘비스의 부활과 라스베이거스 복귀

1960년대 후반, 엘비스는 영화 제작과 사운드트랙 녹음에 집중하느라 라이브 공연에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이 시기 그의 영화들은 점점 질이 떨어졌고, 음반 판매도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1968년 12월 3일 방송된 NBC TV 스페셜 'Singer Presents … Elvis'(일명 '68 Comeback Special')는 그의 경력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방송은 엘비스의 강렬한 퍼포먼스와 원초적인 에너지를 보여주며 전 세계 팬들과 비평가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 성공을 바탕으로 엘비스는 1969년 7월 31일부터 8월 28일까지 인터내셔널 호텔에서 4주간 총 57회의 공연을 펼쳤습니다. 이 공연은 모두 매진되었으며, 엘비스의 새로운 음악적 여정을 상징하는 무대였습니다. 특히, 1956년 라스베이거스 뉴 프론티어 호텔(New Frontier Hotel)에서 실패했던 공연의 아픔을 딛고 다시 라스베이거스 무대에 도전한 것이었기에, 엘비스는 큰 부담과 긴장감을 느꼈습니다. 그는 공연 전 백스테이지에서 "팬더처럼 서성였다"고 전해질 정도로 긴장했지만, 무대에 오르자마자 그만의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관객을 사로잡았습니다.

2. 공연 개요

기간: 1969년 7월 31일 ~ 8월 28일

장소: 라스베이거스 인터내셔널 호텔 쇼룸(Showroom Internationale, 당시 라스베이거스 최대 규모, 2,000명 수용)

공연 횟수: 총 57회, 하루 2회(디너 쇼 8:15pm, 미드나잇 쇼)

밴드 및 백업: TCB 밴드(초기 형태), 보컬 그룹 The Sweet Inspirations, The Imperials, Bobby Morris 오케스트라

세트리스트: 로큰롤 클래식, 컨트리, 발라드, 가스펠, R&B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엘비스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줌

특이사항: 엘비스의 대표곡 "Suspicious Minds"가 이 공연에서 라이브 초연되었으며, 8월 26일 공연에서 싱글로 발매되었습니다.

ㅇ 대표적인 세트 리스트 (1969년 8월 26일 미드나잇 쇼 기준)

  1. Blue Suede Shoes

  2. I Got A Woman

  3. All Shook Up

  4. Love Me Tender

  5. Jailhouse Rock / Don’t Be Cruel

  6. Heartbreak Hotel

  7. Hound Dog

  8. I Can’t Stop Loving You

  9. Mystery Train / Tiger Man

  10. Monologue (엘비스가 자신의 경력을 유머러스하게 회고하는 10분가량의 이야기)

  11. Baby, What You Want Me To Do

  12. Runaway

  13. Are You Lonesome Tonight? (웃음 버전 포함)

  14. Rubberneckin’

  15. Yesterday / Hey Jude

  16. In The Ghetto

  17. Suspicious Minds

  18. Can’t Help Falling In Love

이 세트리스트는 엘비스의 초기 로큰롤 히트곡(‘Heartbreak Hotel’, ‘Hound Dog’)부터 최근 곡(‘In The Ghetto’, ‘Suspicious Minds’)까지 포함하며, 그의 음악적 진화를 보여줍니다. 특히 비틀즈의 ‘Yesterday’와 ‘Hey Jude’ 커버는 당시 현대적인 감각을 더했습니다.

3. 에피소드

(1) 엘비스의 긴장과 압도적인 무대

1969년 7월 31일 첫 공연은 초대받은 VIP, 할리우드 스타, 언론인 등 약 2,000명이 참석한 스타 중심의 이벤트였습니다. 엘비스는 1956년 라스베이거스 공연 실패의 기억 때문에 큰 부담을 느꼈지만, 무대에 오르자마자 그의 카리스마와 에너지로 관객을 압도했습니다. 뉴욕 타임스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이곳에 와서 순수하고 흥미진진한 로큰롤의 놀라운 공연을 펼쳤다”고 평했으며, 공연은 “거칠고 거의 광적인 에너지”로 가득했다고 전했습니다.

(2) ‘Are You Lonesome Tonight?’ 웃음 버전

8월 26일 미드나잇 쇼에서 엘비스는 ‘Are You Lonesome Tonight?’을 부르다 웃음을 참지 못해 노래를 망치는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그는 가사를 바꾸거나 장난스럽게 부르며 관객과 소통했고, 이 버전은 이후 팬들 사이에서 전설적인 순간으로 남았습니다. 이는 엘비스의 유쾌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순간입니다.

(3) 엘비스의 긴 모놀로그

공연 중간, 엘비스는 약 10분간 자신의 경력을 회고하는 모놀로그를 펼쳤습니다. 그는 유머를 섞어 1950년대 로큰롤 스타로 떠오른 시절, 군 복무, 영화 경력 등을 이야기하며 관객과 친밀감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일부 비평가는 이 모놀로그가 공연의 에너지를 떨어뜨린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8월 23일 미드나잇 쇼에서 엘비스는 약 24분간 이야기를 나눴으며, 이는 전체 공연 시간의 30%에 달했습니다.

(4) 팬과의 특별한 순간

엘비스는 공연 중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습니다. 8월 23일 공연 후 팬들과의 만남이 기록되었으며, 프랑스 팬인 마리 샹탈 리비에르(Marie Chantal Riviere)는 100프랑을 보내며 8월 11일부터 10일간 미드나잇 쇼 예약을 요청한 편지를 호텔에 보냈습니다. 이는 엘비스의 글로벌 팬덤을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5) 스타들과의 만남

공연 기간 동안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낸시 시나트라, 톰 존스, 돈 호 등 당대 유명 인사들이 엘비스의 쇼를 관람했습니다. 특히 톰 존스는 엘비스가 1956년 실패를 딛고 라스베이거스에서 성공을 거두고 싶어 했다고 회고했습니다. 엘비스는 낸시 시나트라의 오프닝 나이트 파티에 참석하며 라스베이거스 엔터테인먼트 커뮤니티와 교류했습니다.

(6) 역사적인 계약

엘비스의 인터내셔널 호텔 공연 계약은 그의 매니저 톰 파커(Colonel Tom Parker)와 호텔 사장 알렉스 슈피(Alex Shoofey)가 체결했습니다. 이 계약은 주당 10만 달러로, 엘비스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공연 직후 출연한다는 점에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계약 협상 중 파커는 테이블보에 메모를 적으며 협상을 진행했다고 전해집니다

( 1969년 8월의 미화 100,000달러는 2025년 기준으로 약 855,000달러의 구매력에 해당합니다.

1969년 8월의 미화 100,000달러는 2025년 기준 한화로 약 11억 9,700만 원입니다.)

4. 공연의 특징과 영향

음악적 구성: 엘비스는 로큰롤 히트곡뿐 아니라 컨트리, 가스펠, R&B, 팝 발라드를 아우르며 그의 다재다능함을 과시했습니다. 특히 ‘Suspicious Minds’와 ‘In The Ghetto’는 그의 새로운 음악적 방향성을 보여줬습니다.

TCB 밴드와 백업 보컬: TCB 밴드(나중에 공식적으로 명명됨)는 제임스 버튼(기타), 제리 셰프(베이스), 로니 터트(드럼), 래리 무호베락(피아노)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The Sweet Inspirations와 The Imperials의 보컬은 엘비스의 공연에 풍성함을 더했습니다.

라스베이거스 엔터테인먼트의 혁신: 엘비스의 성공은 라스베이거스를 단순한 도박 도시에서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중심지로 바꾸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의 공연은 셀린 디옹, 엘튼 존, 아델 같은 후대 아티스트들의 레지던시 공연의 선구적 모델이 되었습니다.

녹음과 발매: RCA는 이 공연들을 스테레오로 녹음했으며, 8월 23일과 26일 공연은 이후 음반으로 발매되었습니다. 특히 ‘Live at the International Hotel, Las Vegas, NV August 26, 1969’는 엘비스의 강렬한 보컬과 밴드의 완벽한 연주를 담아내며 팬들 사이에서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5. 비평과 반응

비평가 반응: 빌보드와 버라이어티는 엘비스의 공연을 극찬하며 그의 무대 장악력과 로큰롤의 에너지를 강조했습니다. 버라이어티는 “엘비스는 더 이상 1956년의 괴짜 소년이 아니라 슈퍼스타로 거듭났다”고 평가했습니다.

팬 반응: 공연은 매진되었고, 관객들은 엘비스의 히트곡과 새로운 곡들에 열광했습니다. 특히 ‘Suspicious Minds’는 라이브 초연으로 큰 화제를 모았으며, 이후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습니다.

논란: 일부 비평가는 엘비스의 긴 모놀로그와 유머러스한 태도가 공연의 흐름을 방해한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라스베이거스 특유의 화려한 쇼 스타일이 엘비스의 원초적인 로큰롤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6. 후속 영향

엘비스의 1969년 공연은 그의 경력뿐 아니라 라스베이거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이후 1970년대 내내 라스베이거스에서 정기적으로 공연하며 ‘라스베이거스의 왕’으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의 과도한 공연 일정은 그의 건강 악화와 약물 의존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공연은 엘비스의 음악적 자신감을 회복시켰고, 그의 팬층을 재확립하며 새로운 세대에게도 그의 매력을 알렸습니다. 2019년, 이 공연 50주년을 기념해 소니 레거시는 11개의 공연을 담은 ‘Live 1969’ 디럭스 11CD 박스 세트를 발매하며, 이 시기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했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1969년 8월 인터내셔널 호텔 공연은 단순한 콘서트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이는 엘비스가 영화배우에서 다시 무대 위의 로큰롤 전설로 돌아온 순간이었으며, 그의 음악적 재능과 카리스마를 재확인한 역사적인 무대였습니다. ‘Are You Lonesome Tonight?’의 웃음 버전, 팬들과의 따뜻한 교감, 그리고 ‘Suspicious Minds’의 라이브 초연 등은 이 공연을 전설로 만들었습니다. 엘비스는 이 공연을 통해 라스베이거스를 재정의했고, 그의 유산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빛나고 있습니다

ㅇ 공연중. 멤버 소개..

신사 숙녀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제가 다른 걸 하기 전에 제 밴드 멤버들을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인사해요, 이쪽은 제리... 네, 이제 서로 알았으니 쇼를 계속할 수 있겠군요.

저를 위해 환상적인 일을 해주고 있는 제 스태프 멤버들입니다. 우선, 오늘 밤 저희 쇼의 문을 열어준 아가씨들입니다. 정말 이름값을 하는 분들이죠, 신사 숙녀 여러분, 스위트 인스피레이션스입니다. 배경에서 들으시는 아름다운 목소리는 위대한 임페리얼스입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임페리얼스.

리드 기타를 맡은 젊은 친구는 제가 만나본 최고의 기타 연주자 중 한 명입니다. 그의 이름은 제임스 버튼입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제임스.

리듬 기타를 맡은 젊은 친구는 RCA에서 음반을 내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존 윌킨슨입니다. 존. 이거 꼭 데이트 게임 같네요. 누구누구, 누구누구, 아시죠. 드럼을 맡은 젊은 친구는 댈러스 텍사스, '빅 디' 출신입니다. 로니 터트입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로니 터트.

베이스를 맡은 젊은 친구, 이름은 제리 셰프입니다. 제리.

그의 이름은 터트고, 이쪽은 셰프죠. '터트 셰프'네요, 어떻게 자르든 말이죠.

저희 훌륭한 피아노 연주자, 신사 숙녀 여러분, 그의 이름은 래리 무호베락입니다. 래리. 네. 그리고 저희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신사 숙녀 여러분, 바비 모리스 씨입니다. 바비. 바비 모리스 오케스트라입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환상적입니다. 멋져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에게 물을 건네주고, 뭐, 제 목을 닦아주고, 기타를 챙겨주고, 그냥 어슬렁거리는 이 친구... 좋은 친구인데, 제가 군대에 있을 때 만났죠. 1932년에요. 앨라배마 디케이터 출신입니다. 세상에 앨라배마 디케이터 출신인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요,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요. "다들 잘 지내시우?" 이런 식이죠. 저는 멤피스 출신입니다. 멤피스. 아무튼, 그의 이름은... 울리 부거입니다. 아니요, 그의 이름은 찰리 호지입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찰리.

울리 부거.

다음엔 뭘 하더라? 아, 저희는 노래가 너무 많아요. 제가 설명해드릴게요. 제가 녹음하고 활동했던 노래가 너무 많아서요. 영화나 뭐 이런저런 것들에서요. 제가 한 게 너무 많아서, 녹음 안 된 것들도요, 여러분이 알면 안 되는 것들 말이죠. 그래서 가끔 뒤돌아서서 다음에 뭘 하는지 물어봐야 해요. 노래가 너무 많아서요. 대단한 일이죠, 뭐. 이 친구, 나를 또 9년 동안 감방에 보내겠네. 그럴 것 같아요. 세상에, 맙소사. 네.

ㅇ ELVIS - monologue - LIVE Las Vegas 1969/08/23... 번역

네, 여러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제 입장에서의 이야기를 좀 들려드릴게요.

저는 시작했습니다. 잠깐, 스트랩 좀 맬게요. 스트랩 어떻게 매는지도 기억이 안 나네. 소문이 다 났어요, "저 녀석 조심해, 다람쥐 같은 놈이야."

저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했을 때 시작했어요. 마이크에 대고 이런저런 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저 녀석 내보내, 미친놈이야."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트럭 운전을 시작했고, 전기 기술자가 되려고 훈련받고 있었죠. 그런데 제가 배선이 잘못됐었나 봐요, 자기.

아무튼 어느 날 점심시간에, 점심시간이었는데, 이 작은 음반사에 들어가서 여자애를 만들려고... 아니, 음반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리고 그들은... 저는 제 개인적인 용도로 음반을 만들었고, 이 업계에 뛰어들 생각은 정말 없었어요. 오, 맙소사, 이걸 만지고 저걸 만질 때마다 감전되네요. 네, 뜨겁네요. 쇼 끝나고 봐요, 자기. 아무튼, 그래서 제가 들어가서 이 음반을 만들었고, 그 사람이 약 1년 반 후에 그 음반을 발매했어요. 그리고 하룻밤 사이에 제 고향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야? 뭐야? 진짜야? 진짜야?"라고 말하기 시작했죠. 저는 "내가? 내가 뭘 알아."라고 생각했어요.

그 음반은 나라의 특정 지역에서 꽤 인기를 끌었지만, 아무도 제가 누군지 몰랐어요. 저는 작은... 목에 개구리가 꼈네요. 오늘 먹는 첫 고기네요, 여러분. 저는 작은 나이트클럽, 작은 축구장, 작은 골목, 그리고 천장에 작은 파란 눈의 것들이 기어 다니며 당신을 쳐다보는 이상한 방들에서 연주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말하려다가 말았어요.

하지만 아무도 제가 누군지 몰랐어요. 그래서 저는 약 1년 반 동안 이렇게 활동했죠. 오, 나였군요. 그래서 저는 이걸 하고 있었고, 1956년에 샌더스 대령을 만났어요... 파커. 파커요. 그래서 그들은 저를 텔레비전에 출연시키기로 했어요. 그래서 저는 뉴욕에 갔고... 제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었어요. 저는 스티브... 글리슨, 아니, 스티브... 재키 글리슨 쇼에 나갔어요. 맙소사, 제가 무너지고 있네요. 정신도, 몸도, 모든 게 동시에 그냥...

귀뚜라미네요. 아까도 있었는데. 아직도 저기 있네요. 저는 재키 글리슨 쇼에 세 번 나갔고, 그 다음에는 에드 설리번 쇼에 나갔죠. 그리고 그때부터 저에게 정말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저는 설리번 쇼에 출연하고 있었는데, 카메라가 저를 허리 위로만 촬영하고 있었죠. 그리고 설리번이 옆에서 "이런 젠장"이라고 말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고맙습니다, 에드. 고맙습니다"라고 했죠. 그가 그때 저를 뭐라고 부르는지 몰랐거든요.

그리고 저는 스티브 앨런 쇼에 나갔어요. 그때쯤 그들은 저를 진정시키려고 했어요. 저를 길들이려고 했죠. 그래서 저에게 턱시도를 입히고, 의자에 앉은 개에게 노래를 부르게 했어요. 그런데 그 개가 발정기였고 저는 몰랐죠. 그래서 제가 그 개에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넌 사냥개일 뿐이야"라고 부르니까 개가... 그래서 그들은 개를 다른 방으로 데려갔어요. 저로부터 개를 보호하려고요.

제가 개를 다시 쳐다보기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멈추고 잠시 반지나 만지작거렸죠. 그들은 그때쯤 제가 완전히 미쳤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스티브 앨런 쇼에 나갔고, 다음 행선지는 할리우드였어요. 그렇게 되는 거죠. 히트 음반을 내고... 맙소사. 히트 음반을 내고 텔레비전에 나가고, 그 다음엔 할리우드로 가는 거죠. 그때 저는 준비가 안 됐었고, 할리우드도 저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었죠. 저는 구레나룻에 긴 머리, 이상하게 생긴 놈이었거든요. 14년 전에는 힘들었어요. 구레나룻, 머리 때문에 "잡아, 잡아! 젠장, 다람쥐 같은 놈이야!"라고 했으니까요.

저는 '러브 미 텐더'를 했고... '러빙 유'... 그녀를 사랑하고... 그때 손에 닿는 누구든 사랑했죠. 저는 '제일하우스 록'과 '킹 크리올'을 했어요. 그래서 저는 네 편의 영화를 찍었죠.

저는 영화배우 노릇에 정말 익숙해지고 있었어요. 할리우드에 약 3년 있었고, 캐딜락에 선글라스까지 있었죠. 그리고 차 뒷좌석에 발을 올리고 앉아서 "난 영화배우야! 난 대단한 놈이라고! 헤이, 헤이!" 이러고 있었어요. 햄버거 먹고 펩시콜라 마시면서요. 운전하는 사람은 "쟤는 완전히 야생에서 왔나 봐"라고 생각했겠죠. 저는 할리우드 생활에 완전히 익숙해졌어요. 즐기고 있었죠. 그러다 징집됐어요. 완전히 당했죠.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게 바뀌었어요. "쟤는 어떻게 될까? 특별 대우를 받을까? 뭐? 우리가 쟤를 두들겨 패줄까?" 뭐 이런 식이었죠. 처음에는 군대에서 사람들이 제가 어떻게 할지 그냥 지켜보기만 했어요. 제가 그들과 똑같은 일을 하는 걸 보고는, 그들도 마음을 열었죠. 유일하게 못했던 건, 처음에는 차렷 자세를 잘 못 섰다는 거예요. "차렷!"하면 저는... 그들은 "쟤 쓰레기통에 처넣어. 완전 미친놈이야."라고 했죠.

저는 2년 동안 군 복무를 했어요. 그리고 군대에 있는 사람들은... 아주 외로운가 봐요. 서로를 '마더'라고 많이 부르거든요. 그리고 저도 그걸 배웠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어요. 할리우드로 돌아갔을 때 그게 잘 안 먹히더군요. 어떤 감독한테 가서 "어떻게 지내, 이 자식아?"라고 하니까... "쟤 내보내"라고 하더군요.

고마워요, 자기. 저는 할리우드로 돌아가서 '지.아이. 블루스', '블루 하와이', 그리고 '비바 라스베가스'를 찍었어요. 그리고 '비바 라스베가스', '걸스! 걸스! 걸스!'... 이건 영화가 아니라 그냥 '걸스! 걸스! 걸스!'였죠. 그리고 '업 유어 노즈'라는 8mm 흑백 언더그라운드 영화도 찍었어요. 아직 개봉 안 했어요. 아직 거친 부분을 편집하고 있거든요.

그중 하나는 '장의차의 스미티' 같은 거였어요. 정말이에요. 아무도 스미티가 뭔지 모르죠, 여러분? 스미티가 뭔지 모르시죠? 그건 장의차에 다는 거예요.

아무튼, 저는 계속해서 영화를 찍었고... 그러다 보니 1년에 세 편씩 찍게 됐고, 저는 틀에 박혔어요. 할리우드 대로 바로 옆에 있는 큰 틀이었죠. "나 좀 여기서 꺼내줘!"라고 소리치면, 그들은 "저기 놔둬, 머리도 길고, 또 저 귀뚜라미 소리네. 이리 와, 헤이! 이리 와, 지미니! 지미니 크리켓, 넌 좀 생각 좀 해야겠어."라고 했어요. 아무튼, 저는 계속해서 이런 영화들을 찍고 있었고, 저는 정말로... 살아있는 귀뚜라미와의 접촉이 그리웠어요. 아니, 라이브 관객과의 소통이요.

저는 구니 버드를 한 마리 샀어요. 아니, 그냥 작은 구니 버드를 샀어요. 이상한 새인데, 아주 좋은 친구가 되어주죠. 아주 좋은 친구예요, 그 새.

그래서 아무튼, 제가 이 영화들을 찍으면서 그리워했던 건... 저기 귀뚜라미가 또 오네요. 이제 이쪽으로 오고 있네요.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나 봐요. 똑똑한 척하는 귀뚜라미.

그래서 이 이야기의 요점은, 제가 사람들 앞에서 라이브로 공연하는 것이 정말 그리웠고, 그래서 제가 여기 있는 겁니다. 너무 지루하게 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게 다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마더'를 연주할 수 없어요.

ㅇ 1969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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