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원 목사 중보기도 사역과 한국 교회 변화 이야기
중보기도 불을 지핀 이동원 목사: 한국 교회를 깨우다
한국 중보기도 사역의 시초를 만나다: 이동원 목사의 삶과 중보기도의 놀라운 힘
오늘 우리는 한국 교회의 중보기도 사역에 깊은 발자취를 남기신 이동원 목사님의 이야기를 통해, 중보기도의 능력과 그 놀라운 영향력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이동원 목사님은 지구촌교회 원로목사님으로서, 한국 교회에 중보기도 사역을 뿌리내리게 하신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셨는데요. 뿐만 아니라, 셀 목회, 코스타(KOSTA) 집회, 가정 사역, 강해 설교 등 한국 교회에 다양한 사역들을 도입하고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오늘 글에서는 이동원 목사님의 파란만장했던 인생 이야기와 더불어, 그가 한국 교회에 끼친 지대한 영향, 그리고 특히 중보기도 사역의 시작과 발전 과정에 대해 심층적으로 탐구해보고자 합니다.
이동원 목사님의 어린 시절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졌고, 심지어 아버지가 집을 떠나시는 아픔까지 겪으셨다고 합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가정교사를 하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셨는데요. 이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그는 "나는 왜 이런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을까"라는 깊은 열등감과 함께, 잿빛 하늘과 같은 암울한 마음으로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회고합니다. 명문고등학교 졸업 후 당연히 명문대학교에 진학할 것이라는 주변의 기대와 달리, 대학 입시에 실패하며 인생의 첫 좌절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절망적인 순간에, 이동원 목사님은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재수 기간 동안 영어 공부를 위해 참석했던 영어 성경 공부 모임에서, 그는 처음으로 기독교를 접하게 되었는데요. 특히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영어 원서로 읽으면서 기독교 신앙의 핵심 교리, 즉 십자가를 통한 죄 용서와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메시지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M.R. 딘니건(M.R. DeHaan) 목사의 저서를 통해 갈라디아서 2장 21절 말씀을 접하고, 율법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복음의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이죠. 그는 1965년 9월, 뜨거운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삶의 방향을 완전히 전환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후, 이동원 목사님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짓눌렀던 죄책감과 우울함이 사라지고, 내면에 감춰져 있던 밝고 적극적인 성품이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더 이상 법대를 꿈꾸는 대신, 신학을 공부하여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하게 되는데요. 그는 김장환 목사님과 여러 선교 단체의 도움을 받아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됩니다. 신학 대학 졸업반 시절, 에베소서와 골로새서 비교 연구 과제를 통해 '교회론'을 깊이 묵상하면서, 교회의 영광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공동체로서의 교회 비전에 압도당했다고 합니다. 이 숙제를 계기로, 그는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굳게 결심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미국 유학 시절, 이동원 목사님은 첫 번째 신학교 졸업 채플에서 설교를 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영어 설교를 열심히 준비했고, 놀랍게도 그 해의 설교자 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게 되는데요. 이 경험은 그에게 평생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의 길을 걸어가라는 하나님의 격려와 확신으로 다가왔다고 합니다. 그는 "요한복음 21장 15-17절의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을 본문으로 설교하며, 실패와 좌절, 배신의 경험을 가진 베드로에게 다시 사명을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자신과 같이 부족하고 연약한 자를 목회자로 부르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과 감사를 간증 설교에 담아냈다고 합니다.
이동원 목사님은 한국 교회 중보기도 사역의 물꼬를 트신 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물론 중보기도 자체는 오래전부터 교회 안에 존재했지만, 중보기도를 '사역화'하여 교회 시스템 안에서 지속적으로 실천하도록 체계를 구축한 것은 이동원 목사님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중보기도 사역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미국 이민 목회 시절의 두 가지 중요한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첫 번째 경험은 심장 수술 중이던 한 성도의 아내를 위한 긴급 중보기도 요청 사건입니다. 수술 중 출혈이 멈추지 않아 위급한 상황 속에서, 이동원 목사님은 교회의 신실한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즉시 연락하여 합심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놀랍게도, 기도 요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피가 멈췄다"는 기적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고, 합심 기도의 강력한 힘을 직접 체험하게 됩니다.
두 번째 경험은 목회자 세미나 강사로 나서기 전날 밤, 갑작스러운 불안감과 함께 잠 못 이루었던 사건입니다. 강의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고 마음이 불안하여, 그는 교회 스텝들에게 기도 요청을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미국에 있던 아내로부터 둘째 아들의 교통사고 소식을 듣게 되었고, 아내가 중상을 입었지만 긴급 기도 덕분에 깨어났다는 간증을 듣게 됩니다. 이 두 가지 사건을 통해, 이동원 목사님은 중보기도, 특히 합심하여 드리는 중보기도의 놀라운 능력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이동원 목사님은 미국 교회들을 탐방하며 중보기도 사역을 벤치마킹하고, 한국에 돌아와 지구촌교회를 개척하면서 중보기도 사역을 교회의 핵심 사역 중 하나로 설정합니다. 교회 개척 초기부터 중보기도팀을 조직하고, 중보기도실을 운영하며, 교인들의 기도 제목을 접수하고 24시간 기도하는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에 중보기도 사역을 확산시키기 위해 '중보기도 사역 세미나'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약 2,000여 교회가 이 세미나를 통해 중보기도 사역을 교회에 도입했다고 합니다. 이동원 목사님은 중보기도 사역을 통해 한국 교회가 더욱 기도하는 교회, 서로를 위해 섬기는 교회로 변화되기를 소망했다고 전합니다.
이동원 목사님은 셀 목회 시스템을 한국 교회에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목회자이기도 합니다. 교회가 성장하여 출석 교인이 만 명을 넘어서면서, 그는 교인들의 신앙생활을 제대로 심방하고 양육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흩어지는 수많은 교인들이 과연 진정한 신앙 성장을 이루고 있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 것이죠. 이러한 고민 속에서, 그는 삶을 변화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구조는 '소그룹'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12 제자를 택하시고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시며 훈련시키신 모습에서, 그는 소그룹의 중요성을 발견하고, 교회 조직을 셀 중심 시스템으로 전환하기로 결심합니다. 2002년부터 지구촌교회는 모든 교인을 10명 단위의 소그룹 '목장'으로 편성하여, 목장 중심의 사역을 시작합니다. 목장에서는 교인들이 삶을 나누고, 말씀을 공부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고, 이는 교인들의 신앙 성장과 공동체 의식 강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동원 목사님은 셀 목회를 통해 교인들이 '구경꾼'이 아닌 '일꾼'으로 변화되고, 평신도 사역자들이 세워지는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가고자 했습니다. 셀 목회 시스템 구축 후, 그는 '셀 컨퍼런스'를 개최하여 셀 목회 노하우를 한국 교회와 공유했고, 약 2,000여 교회가 셀 컨퍼런스를 통해 셀 목회를 도입하거나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코스타(KOSTA, Korean Students Abroad) 집회는 이동원 목사님의 또 다른 중요한 사역 업적 중 하나입니다. 1986년, 미국 워싱턴 근교에서 유학생들을 위한 수련회를 처음 개최한 것이 코스타 집회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에는 대학가 주변에 한인 교회가 없는 경우가 많았고, 유학생들이 미국 교회에 출석하면서 언어와 문화적인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동원 목사님은 유학생들을 위한 신앙 축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유학생 수련회를 기획하게 됩니다. 첫 번째 코스타 집회는 홍정길 목사님을 비롯한 한국의 유명 강사들이 참여하여 유학생들에게 큰 은혜와 도전을 주었고, 이후 코스타 집회는 미국 전역, 나아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놀라운 부흥을 경험하게 됩니다. 코스타 집회를 통해 수많은 유학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선교 헌신을 하는 열매를 맺었으며, 이용규 선교사 또한 코스타 집회를 통해 선교사의 꿈을 키웠다고 합니다.
가정 사역 또한 이동원 목사님이 한국 교회에 큰 영향을 끼친 분야입니다. 어린 시절 가정의 어려움을 겪었던 그는, 건강한 기독교 가정을 세우는 것에 대한 깊은 갈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국 유학 중 '가정 사역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가정 사역의 중요성을 깨닫고, 한국 교회에 가정 사역을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 초, '새 생활 세미나', '라이프 세미나' 등의 이름으로 가정 사역 세미나를 개최하여 큰 호응을 얻었고, 한국 교회에 가정 사역의 필요성을 일깨우는 데 기여했습니다. 송길원 목사와 같은 가정 사역 전문가들이 이동원 목사님의 가정 사역 세미나를 통해 도전을 받고 가정 사역에 헌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동원 목사님은 가정 사역 세미나를 통해 부부 관계, 부모-자녀 관계, 기독교적 자녀 양육 등 가정생활의 다양한 문제에 대한 성경적 해법을 제시하고, 건강한 가정을 세우도록 돕는 데 힘썼습니다.
강해 설교는 이동원 목사님의 설교 사역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성경 본문을 깊이 연구하고, 본문의 의미를 정확하게 해석하여, 현대인의 삶에 적용하는 강해 설교를 강조했습니다. 미국 유학 시절 강해 설교를 접하고, 강해 설교의 중요성을 깨달은 그는, 목회 현장에서 강해 설교를 실천하고, '설교 클리닉'을 통해 후배 목회자들에게 강해 설교 노하우를 전수했습니다. 이동원 목사님의 강해 설교는 성경 본문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함께,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실천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는 설교를 통해 교인들이 성경을 깊이 묵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도록 도왔으며, 한국 교회 강단이 성경 중심의 설교로 회복되는 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21년, 이동원 목사님은 사랑하는 아들을 암으로 먼저 떠나보내는 슬픔을 겪었습니다. 42세의 젊은 나이에 대장암 4기 진단을 받고 8개월의 투병 생활 끝에 세상을 떠난 아들 故 이동준 변호사의 소천 소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동원 목사님은 아들의 투병 기간 동안 기적을 간절히 기도했지만, 결국 아들을 하나님의 품으로 보내는 아픔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절망과 슬픔 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감사를 선택했습니다.
아들의 장례 예배에서 이동원 목사님은 10가지 감사 제목을 나누며, 슬픔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아들의 죽음을 통해 암 환자들의 고통, 자녀를 먼저 떠나보낸 부모들의 아픔에 공감하게 되었고, 남은 삶을 통해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고 섬기는 사역을 감당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아들을 잃은 슬픔을 '상실 극복 세미나'를 통해 나누고, 위로와 회복을 전하는 사역을 시작하며,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동원 목사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도전을 줍니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한국 교회에 큰 발자취를 남긴 그의 삶은, 진정한 믿음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중보기도 사역을 통해 한국 교회가 기도하는 공동체로 변화되도록 헌신하신 그의 노고는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동원 목사님의 삶을 통해 중보기도의 능력과 가치를 다시 한번 깨닫고, 우리 자신도 중보기도의 삶을 살아가도록 결단해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어떠한 고난과 슬픔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믿음을 배우고, 상실의 아픔을 겪는 이웃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