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이식 코디네이터 유세웅 간호사의 감동 생명 나눔 이야기
죽음의 그림자를 넘어 생명을 나누는,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 유세웅
흔하지 않은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 자리에 내가 지원한 이유: 유세웅 간호사의 감동적인 이야기
안녕하세요, 오늘 여러분에게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드릴 유세웅 간호사입니다. 저는 현재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지만, 제 삶은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시선으로는 불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들의 연속이었죠. 하지만 신앙의 관점에서 되돌아보면, 그 모든 고난이 감사로 바뀐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은 제가 어떻게 고난을 이겨내고 이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 그리고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라는 흔치 않은 직업을 선택하게 된 이유에 대해 솔직하고 자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린 시절, 죽음의 그림자와 마주하다
제 인생의 첫 번째 고비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극심한 통증이 시작되었는데, 동네 병원에서는 단순한 염증으로 오진했었죠. 하지만 통증은 점점 심해져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결국 큰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은 결과, 악성 종양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피부 밑 활액막에 생기는 희귀암이었죠.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현실 앞에서 저는 절망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제게 "한 달만 늦었어도 살리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죽음의 그림자가 바로 눈앞까지 다가왔음을 실감했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공포감이 엄습했고, 밤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하지만 절망 속에서 저는 빛을 보았습니다. 어느 날 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살려만 주신다면, 저처럼 아프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겠습니다." 그때의 간절함은 지금도 제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습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시련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암세포 전이를 막기 위해 큰 수술을 두 번이나 더 받아야 했고, 한 달 넘게 병원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학교에도 제대로 가지 못하고, 친구들과 뛰어놀 수도 없는 제 모습은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 덕분에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갈 무렵, 예상치 못한 슬픔이 또다시 저를 덮쳤습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감당하기 힘든 슬픔
제 생일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께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신 것입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암 투병까지 했던 저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죠. 가뜩이나 힘들었던 가정 형편은 더욱 어려워졌고, 어머니 혼자서 세 명의 자녀를 키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점점 삐뚤어져 갔습니다. 게임에 빠져 살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방황했습니다. 어머니께 함부로 대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며 속을 썩여드렸죠.
돌이켜보면 참 철없는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런 저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새벽마다 교회에 나가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제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저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신 것입니다. 저는 어머니의 사랑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반항했지만, 어머니의 기도는 묵묵히 제 영혼을 지켜주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 방황을 멈추고 변화를 시작하다
중학교 2학년, 교회에서 가정 비전스쿨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에서 부모님의 발을 씻겨드리는 순서가 있었는데, 어머니의 발을 씻겨드리면서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주름이 가득한 어머니의 발을 통해 삶의 고단함과 자식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 저는 그동안 어머니께 너무나 못되게 굴었던 제 모습을 후회하며 눈물을 쏟았습니다. 어머니의 발을 씻겨드리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날 이후, 저는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당장 게임을 끊지는 못했지만, 예전처럼 방황하지는 않았습니다. 교회 선생님들과 수학 과외 선생님은 저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고, 저는 처음으로 공부에 재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성적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지만, 담임 선생님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저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저를 믿고 기도해주셨습니다. 어머니의 인내와 사랑이 저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교회 학교 선생님께서 어머니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새벽기도 때 누군가 제 이름을 부르며 간절히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제서야 어머니께서 새벽마다 저를 위해 기도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에서는 티도 안 내시면서, 뒤에서는 저를 위해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셨다니. 어머니의 깊은 사랑에 저는 또다시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어머니의 기도 덕분에 제가 지금까지 이 자리에 올 수 있었음을 확신합니다.
간호사의 꿈을 꾸다, 봉사활동을 통해 확신을 얻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 저는 어릴 적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를 떠올렸습니다. "저를 살려만 주신다면, 다른 사람들을 돕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간호사라는 직업이 떠올랐습니다. 마침 작은 누나가 호스피스 병동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고, 누나를 통해 간호사의 삶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누나는 환자들을 정성껏 돌보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저는 간호사라는 직업에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누나에게 간호사가 되고 싶다는 뜻을 밝히자, 누나는 흔쾌히 봉사활동을 제안했습니다. 누나가 일하는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간호사의 일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청소를 하거나 환자들의 심부름을 들어주는 정도의 일만 했지만, 점점 간호사들이 환자들을 돌보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환자들을 따뜻하게 대하고, 정성껏 간호하는 모습은 저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특히, 창문에 비친 간호사와 환자의 모습은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간호사는 정말로 숭고하고 가치 있는 직업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제 인생을 간호사에 걸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간호학과에 지원하겠다는 저의 결정에 어머니와 누나는 처음에는 반대하셨습니다. 간호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어머니는 제가 어릴 적 아팠던 경험 때문에 몸이 힘든 일은 하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하지만 봉사활동을 통해 간호사의 꿈을 확신하게 된 저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족들의 반대에 반발심이 생겨 더욱 간호사가 되고 싶어졌습니다. 결국, 저는 소신대로 간호학과에 지원했고,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뜻밖의 좌절,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간호학과에 진학하기까지는 순탄했지만, 뜻밖의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수능 시험에서 수학 점수가 예상보다 훨씬 낮게 나온 것입니다. 이과생에게 수학은 매우 중요한 과목이었기 때문에, 수학 4등급으로는 원하는 대학교에 진학하기 어려웠습니다. 재수를 해야 할지, 간호사의 꿈을 포기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저는 제 안에 숨겨진 우상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새벽기도 시간, 하나님께서는 제게 이렇게 물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유세웅, 너는 정말로 간호사가 되고 싶은 것이냐, 아니면 명문대생이 되고 싶은 것이냐?" 솔직히, 제 마음속에는 명문대에 대한 욕심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을 올린 것도, 좋은 대학교에 가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간호사로서 헌신하겠다고 기도했지만, 마음 한켠에는 남들에게 인정받는 명문대생이 되고 싶은 욕망이 숨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숨겨진 욕망을 깨달은 순간, 저는 하나님께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명문대생도 되고 싶지만, 정말로 간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제 욕심을 버리고, 간호사의 길을 걷겠습니다." 그렇게 결심하고 간호학과에 지원했고, 놀랍게도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간호사의 길로 인도하고 계심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는 말씀은 제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지침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세상의 기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이 제 삶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중환자실 간호사에서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로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흉부외과 중환자실 간호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중환자실은 생과 사를 넘나드는 환자들이 가득한 곳이었고, 매일 힘든 일의 연속이었지만, 저는 보람을 느꼈습니다. 특히, 심장 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가 새 삶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죽음을 앞두었던 환자가 새 심장을 이식받고 건강을 회복하여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모습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나누어주고 떠나는 기증자와 가족들에게 깊은 슬픔과 연민을 느꼈습니다. 그분들을 위로하고 돕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져갔습니다.
그러던 중, 병원 내 공고를 통해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를 모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는 뇌사 상태에 빠진 환자의 장기 기증을 돕고,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와 기증자를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저는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야말로 제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망설임 없이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 자리에 지원했고, 감사하게도 합격하여 지금까지 이 직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 생명 나눔의Bridge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는 기증자의 숭고한 뜻을 존중하고, 이식 대기자에게 새로운 희망을 전달하는 Bridge 역할을 합니다. 뇌사 판정을 받은 기증자의 가족들을 만나 장기 기증에 대한 설명을 드리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은 매우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생명을 나누는 숭고한 결정을 돕는다는 보람은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힘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이식 과정과 주의사항을 안내하고, 정신적인 지지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입니다. 환자들은 장기 이식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끼기 때문에, 세심한 배려와 격려가 필요합니다.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로 일하면서, 저는 과거에 겪었던 고난들이 환자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린 시절 질병으로 고통받았던 경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한 슬픔, 방황했던 시절 등 저의 모든 아픔들이 환자들의 고통을 공감하고 위로하는 밑거름이 된 것입니다. 환자들과 함께 아파하고, 기뻐하면서, 저는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가 환자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사랑은 결국 저 자신을 치유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물론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라는 직업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뇌사 환자 발생 시, 언제든 병원으로 출동해야 하고, 24시간 긴장 속에서 일해야 합니다. 하지만, 생명을 구하는 숭고한 일에 헌신할 수 있다는 자부심과, 환자들의 감사 인사는 힘든 순간들을 잊게 해줄 만큼 값진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로서 더 많은 생명을 구하고, 환자들에게 희망을 전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저를 이 자리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은혜 덕분입니다. 저의 이야기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격려가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겪었던 고난은 결국 저에게 주신 은혜였습니다.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서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저를 선한 길로 인도해주셨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환자들을 사랑하고 위로하며,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소명을 감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저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널리 전해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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