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문턱에서 섬 의료 봉사로 삶의 가치를 찾은 의사 박정욱
죽음에서 삶으로, 섬마을을 섬기다
"우리는 이런 의사를 기다려왔다" 박정욱 원장: 죽음의 문턱에서 삶의 가치를 발견하다
삶을 살아가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익숙함에 갇혀 변화를 두려워하고,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게 되는데요. 혹시 여러분도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권태감을 느끼고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오늘, 우리에게 신선한 자극과 깊은 감동을 선사해 줄 특별한 분을 모셨습니다. 바로 극적인 경험을 통해 세상을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셨다는 박정욱 원장님입니다. 박원장님께서는 과연 어떤 특별한 경험을 하셨기에, 우리에게 이토록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지금부터 박정욱 원장님의 감동적인 이야기 속으로 함께 떠나보시죠.
먼 길을 달려 광주에서 와주신 박정욱 원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수많은 환자들을 만나오셨을 텐데, 늘 똑같은 환자들을 반복해서 마주하다 보면 의사 선생님들께서도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원장님께서는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솔직한 이야기를 여쭤보고 싶은데요. 의사도 결국 사람이기에,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박원장님께서는 특별한 계기를 통해, 이러한 매너리즘을 극복하고 환자를 대하는 태도를 완전히 바꾸셨다고 하는데요. 그 계기는 바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던, 정말 끔찍했던 사고 경험이었다고 합니다. 과연 박원장님께서는 어떤 사고를 겪으셨던 걸까요?
사고 당시, 박원장님은 의과대학 본과 3학년, 졸업을 1년 앞둔 의대생이었습니다. 아내는 의대 선배였고, 결혼한 지 불과 2주밖에 되지 않은 신혼이었는데요. 어느 날 아침, 갑자기 혈변을 쏟아내는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젊은 나이에, 그것도 처음 겪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지만, 사태는 점점 심각해져만 갔습니다. 미련하게도 학교 수업과 발표를 강행했지만, 결국 가족들과 상의 끝에 응급실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응급실에 실려 갈 정도였다니,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데요. 당시 상황은 정말, 상상 이상으로 위급했다고 합니다.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박원장님의 혈색소 수치는 4.3까지 떨어져 있었습니다. 정상적인 남성의 혈색소 수치가 12~13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이는 생명을 위협하는 대량 실혈 상태였음을 의미합니다. 수혈을 10팩이나 했지만, 출혈 속도가 수혈 속도보다 빨라 응급 수술이 불가피했습니다. 문제는 출혈 부위를 찾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는 점인데요. 혈관이형성증으로 인해, 넓고 긴 장 어디에서 출혈이 발생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의료진은 일일이 피를 씻어내면서 내시경으로 장을 샅샅이 훑어야만 했습니다. 정말 아찔한 상황이 아닐 수 없는데요, 수술에 들어가기 직전, 담당 교수님마저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결혼 2주 차 새신랑에게 닥친, 정말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 박원장님은 절망했습니다. 수술실로 향하는 이동 침대에 누워 형광등 불빛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아, 내가 정말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의식이 점점 희미해지는 순간, 박원장님은 '이렇게 죽는 거구나, 하나님 곁으로 가는구나' 생각하며 체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절망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은 있었습니다. 다행히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에,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께 의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이제 갑니다. 저를 잘 받아주세요." 삶의 마지막 순간, 박원장님은 간절한 기도와 함께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수술은 무사히 끝났을까요?
다행히 6시간에 걸친 대수술 끝에, 출혈 부위를 찾아 절제하고 봉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수술 후, 박원장님은 중환자실에서 눈을 떴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살았다!' 하는 안도감과 함께, '하나님께서 아직 나를 보내지 않으셨구나' 하는 깨달음이 밀려왔습니다. 생명의 위기를 넘겼다는 기쁨과 감사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동시에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특히 등 쪽의 통증은 견디기 힘들 정도였는데요. 오랜 시간 수술대에 누워있었던 탓에, 욕창과 비슷한 통증이 느껴졌던 것입니다. 배를 절개한 수술 부위의 통증 또한 엄청났지만, 등에 비하면 오히려 덜하게 느껴질 정도였다고 합니다.
중환자실에서의 시간은, 그야말로 고통과 감사의 연속이었다고 합니다. 육체적인 고통, 각종 의료 기기 소리, 옆 침상 환자들의 신음 소리, 그리고 가족들의 울음 섞인 간절한 기도 소리가 뒤섞인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박원장님은 하나님의 임재와 부재를 동시에 느꼈다고 합니다. 삶에 대한 희망과 불안감이 뒤섞이는 가운데, 박원장님은 끊임없이 기도하며 이 고난의 의미를 묵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 걸까?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이기에…' 병상에 누워 깊은 묵상에 잠기면서, 박원장님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과연 박원장님은 고난 속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되었을까요?
병상에서 가장 많이 묵상했던 말씀은 시편 119편 37절, "내 눈을 돌이켜 헛된 것을 보지 않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였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박원장님은 자신이 얼마나 헛된 것을 쫓으며 살아왔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병상에서 시편 119편을 읽으며, 이전에는 딱딱하게 느껴졌던 말씀들이 가슴 깊이 와닿기 시작했습니다. 고난과 조롱, 아픔과 세상의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회복과 사랑을 갈망하는 시편의 내용이,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새로운 눈을 뜨게 되면서, 세상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새로운 눈을 열어주셔서, 세상을 새로운 안목으로 살아가도록 이토록 큰 고통을 주셨구나" 박원장님은 이제 고난의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으니, 이제 모든 것이 순탄하게 풀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퇴원 후, 박원장님은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바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였습니다. 죽을 뻔했던 경험은, 심각한 심리적 불안감을 남겼습니다. 체력은 극도로 쇠약해졌고, 정신적으로도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서 다시 실습에 복귀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실습은, 박원장님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수술실 트라우마 때문에, 5분도 채 버틸 수 없었던 것입니다.
수술실에 들어서는 순간, 박원장님은 극심한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수술 장면을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었습니다. 이전에는 그저 '오늘 무슨 수술, 무슨 수술' 하고 무덤덤하게 지나쳤던 수술 장면들이, 이제는 자신의 고통과 겹쳐져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환자의 고통이 마치 자신의 고통처럼 느껴지는 극심한 공감(Sympathy) 상태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집에 돌아오면 불안감에 휩싸였고, 결국 실습을 중단하고 휴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3학년을 겨우 마치고 1년간 휴학, 6개월 동안 집 밖에도 나가지 못하는 힘겨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시 죽을 것 같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심각한 불안 장애를 겪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절망 속에서도, 박원장님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기도와 아내의 헌신적인 보살핌 덕분이었습니다. 아내는 전공의 과정을 포기하고 박원장님 곁을 지켰습니다. 함께 산책하고 운동하며, 박원장님의 회복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왔습니다. 6개월간의 노력 끝에, 박원장님은 서서히 안정을 되찾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피를 봐도 아무렇지 않고 각종 시술도 능숙하게 해내지만, 당시에는 정말 정신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극복한 후, 박원장님은 환자와 가족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하는데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으면서, 박원장님은 진정으로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병실 안 환자뿐 아니라, 병실 밖에서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의 마음까지 헤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콧줄(L-tube)의 이물감, 목 넘김의 고통까지 생생하게 기억났습니다. 환자들이 겪는 불편함과 고통을, 이제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과거에는 그저 '담낭절제술 환자', '파킨슨병 환자' 와 같이 질병 중심으로 환자를 바라봤지만, 이제는 한 명 한 명의 환자를 소중한 인격체로, 각자의 스토리를 가진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면서, 박원장님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의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눈을 열어주셨다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닌 것입니다.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 박원장님에게, 특별한 경험이 하나 더 찾아옵니다. 재활학과 레지던트 시절, 의식이 좋지 않은 환자들이 많이 입원해 있는 재활 병동에서 근무하게 된 것입니다. 그 중에는 의식이 완전히 없는 환자도 있었지만, 의식이 회복될 가능성이 있는 환자들도 있었습니다. 의식이 회복 중인 환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콧줄을 잡아 뽑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행동입니다. 콧줄이 폐로 들어가 질식사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환자의 남편은, 아내가 자꾸 콧줄을 뽑자 화를 내며 손을 묶어놓기까지 했습니다. 새벽 3~4시, 아내가 콧줄을 뽑는 바람에 당직이었던 박원장님은 어쩔 수 없이 환자를 찾아가야 했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화를 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미안하고 속상했을 것입니다.
박원장님은 환자 남편에게 다가가 따뜻하게 위로했습니다. "의식이 있어서 콧줄을 뽑는 거예요. 오히려 좋은 징조입니다. 저도 콧줄 3주나 꽂아봤어요. 멍하니 누워만 있는 분들은 회복 가능성이 적어요. 어머님은 의식이 돌아오고 있다는 증거이니,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박원장님의 진심 어린 위로에, 환자 남편은 물론, 주변에 있던 환자 가족들까지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습니다. 새벽 4시, 인공호흡기 소리만이 가득한 중환자실은, 박원장님의 따뜻한 위로와 함께 눈물바다로 변했습니다. 박원장님의 따뜻한 마음은, 환자들에게 큰 위로와 희망을 선사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환자는 얼마 후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식장을 찾아간 박원장님은, 슬픔에 잠긴 남편에게 죄송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제가 좀 더 잘했더라면… 건강하게 퇴원하실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남편은 오히려 박원장님을 위로하며, 새벽에 해주었던 위로의 말을 잊지 않고 있었다며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박원장님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얻은 공감 능력을 통해 환자들에게 진정한 위로를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죽음의 문턱에서 삶의 가치를 다시 발견한 박원장님의 변화된 모습 덕분이었습니다.
현재 박원장님은 병원을 운영하면서, 의료 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계십니다. 특히 의료 시설이 부족한 섬 지역을 중심으로, 꾸준히 의료 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하는데요. 죽음에서 삶을 되찾은 후, 봉사를 통해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으신 박원장님.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섬 지역 의료 봉사를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섬 지역 의료 봉사는, 박원장님에게 단순한 봉사 활동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합니다. 죽음에서 되살아난 삶, 이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던 그의 서원이, 의료 봉사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입니다.
병상에서 하나님께 서원했던 박원장님은, 퇴원 후 의료 선교를 통해 헌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다양한 의료 선교 활동을 고민하던 중, 섬 지역 의료 봉사가 가장 의미 있는 헌신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섬 지역은 의료 환경이 열악하고, 고령 인구가 많아 의료 지원이 절실한 곳입니다. 박원장님은 의료 선교의 6가지 원칙, 'STRENGTH' 를 세우고 섬 지역 의료 봉사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STRENGTH'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시급성(Timeliness), 섬김(Serve), 협력(Teamwork), 적절성(Righteousness), 자원 효율성(Efficiency),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선교적 마음(Nurturing)을 의미합니다. 이 6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박원장님은 단순한 의료 지원을 넘어, 복음을 전하고 지역 사회와 연계하는 통합적인 의료 선교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박원장님께서 생각하시는 의료 선교의 6가지 원칙, 'STRENGTH' 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첫 번째 원칙은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입니다. 일회성 봉사가 아닌, 지속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두 번째는 시급성(Timeliness)입니다. 단순히 개인적인 만족을 위한 봉사가 아니라, 복음적, 의료적으로 정말 필요한 곳에 도움을 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는 섬김(Serve)입니다. 섬 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고령이고, 건강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세상적인 가치 기준으로 보면,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이라고 치부될 수도 있지만, 박원장님은 오히려 '영적인 가치' 에 주목합니다. 섬 주민들은 대부분 6개월에서 2년 안에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복음을 전해야 할 가장 시급한 시기라고 강조합니다. 이정환 선교사님과 함께 낙도 선교를 다녔던 경험을 통해, 박원장님은 섬 지역이야말로 '선교적 시급성이 가장 높은 곳' 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네 번째 원칙은 협력(Teamwork)입니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섬 지역 의료 봉사는, 다양한 팀과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박원장님은 재활의학과 전문의이지만, 섬 주민들에게는 내과, 치과 등 다양한 진료과목의 의료 지원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여러 진료과목의 의사들과 협력하고, 필요한 경우 더 큰 병원으로 연계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는 적절성(Righteousness)입니다. 자원 낭비를 막고, 효율적인 봉사 활동을 위해 적절한 자원 공급과 평가, 피드백 시스템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여섯 번째 원칙은 선교적 마음(Nurturing)입니다. 단순히 의료 기술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고 영적인 필요를 채우는 것이 의료 선교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믿습니다. 이러한 6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박원장님은 진정으로 필요한 섬 지역, '무의촌' 을 찾아 의료 봉사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의료 혜택에서 소외된,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료 선교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박원장님은, 점점 더 오지로, 더 작은 섬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완도군에만 50여 개의 섬이 있지만, 박원장님이 향하는 곳은 병원도, 보건소도 없는 작은 섬들입니다. 20가구 이하, 심지어 5가구 이하의 작은 섬들을 찾아, 사선을 타고 들어가 의료 봉사를 펼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큰 섬들을 중심으로 봉사했지만, 이제는 점점 더 오지로, 접근하기 힘든 섬들을 찾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섬 지역 봉사는, 생각보다 훨씬 힘들고 위험한 일이라고 하는데요. 섬에 한번 들어가려면, 광주에서 한국까지 2시간, 한국에서 배를 타고 1시간, 큰 섬에서 다시 사선을 타고 들어가야 합니다. 왕복 5~6시간, 꼬박 하루를 이동에 쏟아야 섬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여객선이 하루에 한 번, 심지어 없는 섬도 있고, 기상 악화로 발이 묶일 수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풍랑을 무릅쓰고 섬으로 향하지만, 때로는 섬에 갇혀 꼼짝 못하는 상황도 발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원장님은 섬 지역 의료 봉사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큰 어려움 없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안전하게 봉사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가장 힘들었던 섬은 어디였을까요?
가장 힘들었던 섬은, 5가구, 5명만이 살고 있는 마삭도였습니다. 말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마삭도는, 배를 갈아타고 또 갈아타야 겨우 닿을 수 있는 외딴 섬입니다. 노아도에서 다시 작은 배로 갈아타고 들어가야 하는데, 뱃길마저 험난합니다. 높은 파도에 배가 심하게 흔들리고, 갯벌에 배가 묶여 꼼짝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힘들게 섬에 도착하면, 좁은 경로당에 간이 진료소를 차리고 진료를 시작합니다. 초음파 기기를 들고 다니며, 섬 주민들의 건강 상태를 꼼꼼히 확인합니다. 관절이 불편한 할머니에게는 초음파로 염증 부위를 확인시켜주고, 주사 치료를 해드립니다. "여기 염증 보이시죠? 염증 때문에 아픈 거예요. 주사 맞으면 좀 나아지실 거예요."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에, 환자들은 안심하고 치료를 받습니다. 치료 후에는, 따뜻한 격려와 함께 기도도 잊지 않습니다. "하나님, 이분 아픈 곳을 깨끗하게 치료해주시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게 해주세요." 박원장님의 진심 어린 기도에, 할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감사를 표합니다. 의료 시설은 물론, 약국조차 없는 섬마을에서, 박원장님의 의료 봉사는 그야말로 '단비' 와 같습니다. 섬 주민들에게 육체적인 치료뿐 아니라, 마음의 위로와 평안까지 선물하는 박원장님. 정말 '우리가 기다려왔던 의사' 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요?
박원장님은 의료 봉사를 통해, 마을 사람들을 '모으는 역할' 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료 봉사를 통해 마을 사람들이 모이면, 교회 목사님과 연결해주고, 봉사팀원들이 복음을 전하고 영접 기도를 돕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지역 교회와 섬 주민들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의료 봉사의 진정한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일부 의료 봉사팀처럼, 플래카드 걸고 자신을 드러내는 봉사가 아니라, 철저히 '조력자' 역할을 자처합니다. 가운도 입지 않고, 철저히 자신을 숨기고 봉사에 임합니다. 봉사팀에 항상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을 동행하여, 복음 전파에 힘쓰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혹은 진료 후, 자연스럽게 복음을 접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치료를 받기 위해 경로당에 온 어르신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영접 기도를 권유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천국에 갈 수 있어요. 이 세상의 고통은 잠시뿐이고,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박원장님의 진심 어린 외침은, 섬마을 곳곳에 울려 퍼집니다. 박원장님은 의료 봉사를 통해, 단순히 질병 치료뿐 아니라, 영혼 구원이라는 더 큰 가치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1년에 한두 번 방문하는 의료 봉사로, 섬 주민들의 건강을 완전히 개선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의료 봉사를 통해, 복음을 접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습니다. 박원장님은 바로 이 '계기' 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그저 '잊혀지는 조력자' 로 남고, 복음이 섬마을에 뿌리내리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것이 바로 박원장님이 생각하는 진정한 의료 선교의 모습입니다.
섬 지역 봉사는,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함께 봉사하는 팀원들의 헌신과 노력이 필수적입니다. 박원장님은 직원들과 함께 섬 지역 봉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에게 봉사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합당한 보상을 제공합니다. 월급 외에 봉사 수당을 지급하고, 교통비, 숙박비 등 모든 경비를 자비로 부담합니다. 심지어 봉사 수당은 급여에 포함시키지 않고, 현금으로 따로 지급합니다. 봉사를 통해 세금 혜택을 받는 것조차 경계하는 박원장님의 올곧은 신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봉사에 참여하는 직원들은, 단순한 직원이 아닌, 박원장님의 '든든한 동역자' 입니다. 5년에서 10년 이상 함께 일해 온 직원들은, 이제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꿰뚫어볼 수 있을 정도로 찰떡궁합을 자랑합니다. 환자가 많든 적든,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능숙하게 봉사 활동을 펼칩니다. 다른 봉사팀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과는 대조적입니다. 직원들은 봉사 활동을 통해,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을 넘어, '누군가를 돕는다' 는 '일의 가치와 의미' 를 깨닫고 자긍심을 느낀다고 합니다. 박원장님은, 이 모든 것이 직원들 덕분이라고 겸손하게 말합니다. 하지만 봉사팀을 이끌고, 헌신적인 봉사 활동을 펼치는 것은, 결국 박원장님의 리더십과 헌신 덕분입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귀한 직원들과 함께, 박원장님은 오늘도 섬 지역 주민들에게 희망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섬 지역 봉사를 처음 시작했던 곳은, 특이한 지형을 가진 비금도였습니다. '고래 꼬리' 모양을 닮은 비금도에서, 박원장님은 잊지 못할 경험을 합니다. 사실 처음부터 의료 봉사를 목적으로 섬에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섬 지역 의료 환경을 조사하기 위해, 답사 차원에서 방문했던 것입니다. 비금도에서 강도사님을 만났는데, 강도사님은 간 이식 수술 후유증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워, 사모님은 어린이집을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강도사님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박원장님을 맞이했는데, 알고 보니 다른 사람 배를 밀어주다 종아리 근육이 파열된 상태였습니다.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파열된 다리로 봉사자들을 맞이했던 것입니다. 박원장님은 초음파로 강도사님의 다리 상태를 확인하고, 응급 처치를 해주었습니다. 다음 환자는, 장독대를
옮기다 발가락이 부러진 할머니였습니다. 할머니는 발가락이 부러진 줄도 모르고, 된장만 바르고 통증을 참으며 살고 있었습니다. 2019년, 대한민국 섬마을에서 벌어진 현실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섬은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섬 주민들은 의료 혜택에서 소외되어 있었고,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정환 선교사님과 함께 섬 지역을 탐방하면서, 박원장님은 '섬을 섬겨야 한다' 는 강렬한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박원장님의 섬 지역 의료 봉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섬에는 여전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방 의료 붕괴, 필수의료 위기 라는 말이
나오는 요즘, 섬 지역 의료는 더욱 심각한 상황입니다. 의료 정책과 시스템의 손길이 닿지 않는 의료 사각지대, 바로 섬 지역입니다. 박원장님은, 이러한 의료 사각지대를 묵묵히 채워나가고 있습니다.
섬 주민들과 정기적으로 만남을 이어가고 싶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습니다. 섬이 너무 많고, 봉사팀 인력은 부족합니다. 박원장님은, 이 방송을 통해 간절한 부탁을 전하고 싶다고 합니다. "저와 같은 의료 봉사팀이 서너 팀만 더 있다면, 1년에 한 번씩 모든 섬을 방문할 수 있습니다." 섬 지역에 대한 관심과 봉사 참여를 호소하는 박원장님. 의료 봉사뿐 아니라, 다양한 봉사 활동을 통해 섬 주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도배, 장판 교체, 집수리 등, 손길이 필요한 곳이 많습니다. "섬 주민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의료 지원만이 아닙니다. 따뜻한 관심과 사랑, 그리고 복음입니다." 박원장님은, 의료 봉사를 넘어, '통전적인 복음' 을 전하는 봉사를 꿈꿉니다.
봉사 활동 중, 박원장님은 하나님께 회개하는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처음 큰 섬에 봉사를 갔을 때, 하루 80명이 넘는 환자를 진료하느라 지칠 대로 지쳐있었습니다. 20분 후 기차를 타야 하는 상황, 마음은 급해지고, 짜증이 밀려왔습니다. 그때, 한 할머니가 진료를 받을까 말까 망설이는 듯한 눈치로 주변을 서성거렸습니다. 직원들이 진료받을 건지 물었지만, 할머니는 대답 대신 짐부터 챙겼습니다. "안 할 거면 빨리 가세요! 우리
배 타야 해요!" 박원장님은 속으로 짜증을 내며, 직원들에게 그냥 가자고 했습니다. 배에 오르자, 갑자기 마음속에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여기 대접받으러 왔느냐? 원장님 소리 듣고, 고맙다는 말 들으려고 왔느냐? 네가 여기서 주인공이냐?" "나는 너를 위해 침 뱉음 당하고, 채찍에 맞고, 조롱당하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 사람들은 나를 '만나' 대신 예수를 죽이라고 외쳤다. 그렇게 모진 고통을 겪으면서까지 너를 위해 희생했는데, 너는 고작 대접받으러 왔느냐?" 30분 동안 배를 타고 돌아오는 내내, 박원장님은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자신의 교만함과 이기심을 뉘우치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회개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제가 여기서 더 심한 욕을 들어도, 섬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야 했습니다." 그날, 박원장님은 진정한 봉사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봉사는, '대접받는 것' 이 아니라, '섬기는 것' 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선한 일을 하다 보면, 낙심할 때도 있고, 하기 싫을 때도 있습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는 말처럼, 봉사 활동은 명분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힘들고 지칠 때도 있지만, 박원장님은 예수님을 바라보며 다시 힘을 냅니다. "이까짓 어려움, 내가 못 넘겠어?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주셨는데!" 박원장님은, 예수님의 사랑을 묵상하며, 다시 봉사의 길을 나섭니다.
박원장님은 마지막으로, 두 가지 부탁을 전했습니다. 첫째, 섬 지역 봉사에 동참할 봉사팀이 더 많아지기를 희망합니다. 의료 봉사뿐 아니라, 도배, 집수리 등 다양한 봉사팀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둘째, 5년간의 섬 지역 봉사 활동을 기록한 책, '낙도행전' 이 출판되기를 소망합니다. 책을 통해 섬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섬 지역 의료 시스템이 개선되기를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웹툰 '우당탕탕 박원장' 의 최철규 작가님과 함께 기독교 웹툰을 제작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습니다. 웹툰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기독교 문화 콘텐츠를 확산시키고 싶다는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웹툰은 요즘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 콘텐츠입니다. 웹툰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박원장님의 마지막 부탁은, 단순한 부탁이 아닌, '섬 지역에 대한 깊은 사랑' 과 '복음에 대한 뜨거운 열정' 이 담긴 외침이었습니다.
오늘 박정욱 원장님과의 대화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선사했습니다. 긍휼의 마음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긍휼의 마음을 가진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물질적인 도움뿐 아니라, 마음을 나누고,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사랑이 세상에 전파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박원장님처럼, '하나님 나라의 다리' 가 되어,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박현 목사님께서는, 박원장님의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의 마음' 을 엿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픈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고통받는 영혼들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안식일 율법에 갇혀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완악한 그들의 마음을 탄식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또한, 예수님의 마음이 아닌, 무덤덤하고 굳어있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박원장님의 삶은, 우리에게 진정한 '치유' 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육체적인 질병 치료뿐 아니라, 영혼의 치유, 마음의 치유까지 아우르는 '전인적인 치유' 가 필요합니다. 박원장님의 헌신적인 삶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마지막으로 주영훈 님은,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의대 정원 문제에 대한 생각을 밝혔습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의사를 꿈꾸지만, 그 목표가 '돈', '명예' 가 아닌, '섬김', '헌신' 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화려한 도시의 병원이 아닌, 소외된 지역에서 묵묵히 봉사하는 의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미래 의사 꿈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박원장님과 같은 '참된 의사' 들이 많아질 때,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밝아질 것입니다. 의사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박원장님과 함께 섬 지역 봉사 활동에 참여하고, '환자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의사' 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박정욱 원장님의 이야기가, 많은 젊은이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미래 의료계를 이끌어갈 '참된 의사' 들을 키워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귀한 간증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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