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혜선 피아니스트 좌절 극복과 하나님 신앙 감동 간증
좌절 끝에 만난 하나님: 백혜선 피아니스트 감동 간증
좌절을 딛고 일어선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혜선: 그녀의 드라마틱한 인생 이야기와 신앙 간증 상세 정리
주영훈 님과 안선영 님, 박미선 님 세 분의 진행자가 밝고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새롭게하소서 프로그램의 문을 엽니다. 오늘의 초대 손님은 좌절의 순간을 통해 오히려 더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고백하는 특별한 분이라고 소개하며 기대감을 높입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서 정상에 섰을 때가 아닌,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하나님을 만났다는 간증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위로와 희망을 전해줄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 피아니스트 백혜선 선생님이 스튜디오에 등장하며 따뜻한 환영을 받습니다.
진행자 주영훈 님은 백혜선 피아니스트를 32년 전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소개하며, 당시 여름 시라가 콩쿨 등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설명합니다. 조성진, 임윤찬과 같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반열에 일찍이 올랐던 그녀의 화려한 이력을 간략하게 언급하며 기대감을 고조시킵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겸손하게 자신을 한국을 알리는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말하며, 당시 국제 콩쿨에 도전하는 한국인이 드물었던 시대에 파격적인 행보였음을 인정합니다.
진행자는 백혜선 피아니스트가 발간한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 라는 책 제목에 주목하며,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와는 대조적인 제목에 대한 궁금증을 제기합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출판사에서 붙여준 제목이라고 밝히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끊임없는 문제와 어려움 속에서 살아왔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성공적인 피아니스트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좌절과 극복의 연속이었다는 반전을 제시하며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냅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책에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담고 싶었지만, 출판사의 제약으로 인해 아쉬움이 남았다고 털어놓습니다. 오늘 이 방송을 통해 마음껏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며, 진솔한 간증을 기대하게 합니다. 책은 자신을 사랑해 준 주변 사람들의 부재와 주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쓰여졌으며, 좌절이 없었다면 하나님을 찾지 않았을 것이라는 깊은 깨달음을 전합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강조하며 겸손한 태도를 보입니다.
진행자는 구체적인 출판사 이름까지 언급하며 기독교 출판사가 아니었음을 짚어내고, 하나님께서 백혜선 피아니스트의 인생을 어떻게 좌절의 순간마다 특별하게 바꾸셨는지 본격적인 이야기를 요청합니다. 피아노 연주와 기도의 힘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어떤 순간에 하나님의 힘을 느꼈는지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가장 처음으로 경험했던 큰 국제 콩쿨을 회상하며 기도의 힘을 느꼈던 놀라운 순간을 이야기합니다. 1989년 첫 국제 콩쿨은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권위 있는 콩쿨이었고, 1등에게는 뉴욕 데뷔와 다수의 연주 기회, 상당한 상금이 주어졌습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자신감보다는 부족함을 느끼며 매일 기도했고, 우연히 잡지에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 두 장애 아이를 키우는 싱글 어머니의 눈물 어린 글을 읽게 됩니다.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가정을 위한 기도를 시작하며 순수한 마음을 드러냅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콩쿨에 나가 상금을 받게 된다면, 어떤 상이라도 그 가정을 위해 쓰겠다는 서원 기도를 드립니다. 새롭게하소서 출연을 준비하면서 잊고 지냈던 과거를 떠올리며 새로운 은혜를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순수했던 자신의 옛 마음을 되돌아보며 감격에 벅찬 모습을 보입니다. 기도가 자신의 삶에 중요한 시작이었음을 강조하며 감동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콩쿨 기간 동안 매일 기도하며 "저를 잘 치게 해주세요" 가 아닌, 가정을 위한 기도를 드렸다고 설명합니다. 어떻게든 그 가정과 연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했고, 두 장애 아이와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놀랍게도 1등을 수상하게 되면서 기도의 힘을 생생하게 경험하게 됩니다. 자신의 실력 때문이 아닌 기도의 응답임을 강조하며 겸손한 태도를 유지합니다.
콩쿨 과정에서 겪었던 웃지 못할 해프닝을 털어놓으며 흥미를 유발합니다. 연주 중 갑자기 피아노 줄이 끊어지는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고,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대처했습니다. 피아노 조율사의 빠른 대처 덕분에 연주를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하는 특별한 경험을 합니다. 콩쿨 역사상 전례 없는 사건이었음을 강조하며 극적인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줄이 끊기지 않았다면 오히려 실수했을지도 모른다는 반전을 제시하며 신의 섭리를 암시합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잡지사에 연락하여 장애인 가족을 찾으려 노력했고, 어머니께 이 사실을 알립니다. 어머니는 하나님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가족 찾기에 나섰습니다. 상금 액수를 묻는 어머니에게 만 불에서 2만 불 정도라고 답했고, 어머니는 상당한 금액에 놀라워합니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장애인 가족과 연결될 수 있었음을 강조하며 감사를 표합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상금을 장애인 가정에 전달했고, 이후에도 어머니께서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피아노 레슨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고 덧붙입니다. 소아마비를 앓고 있던 어린 소녀가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고, 피아노 선생님이 되었다는 감동적인 후일담을 전합니다. 기도의 힘이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진행자는 기도 이야기를 이어가며, 어머니의 기도가 백혜선 피아니스트에게 큰 영향을 미쳤음을 언급합니다. 어머니 또한 기도의 사람이었는지 질문하며 가족사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합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어머니가 콩쿨 때마다 기도로 응원해 주셨다고 회상합니다. 외국 유학 시절 어머니는 직접 찾아오지는 못했지만, 늘 전화로 기도하고 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는 밤낮으로 기도에 매달리는 모습이었고, 어린 백혜선은 어머니의 기도에 대한 궁금증을 품었습니다. 병원을 운영했던 넉넉한 환경 속에서도 어머니는 끊임없이 기도하며 가족의 안녕을 기원했습니다. 환자들과 직원들로 늘 북적이는 집에서 어머니는 안방에서 밤새도록 기도했고,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어머니의 열정적인 기도를 신기하게 여겼습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음악가들의 정신적인 고통과 예술가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며 공감을 얻습니다. 겉으로는 화목해 보이는 가정도 숨겨진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사회가 개인의 아픔을 드러내기 힘든 분위기임을 꼬집습니다. 자신의 가족사를 조심스럽게 꺼내며 숨겨진 아픔을 고백합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 아버지의 재혼 사실을 몰랐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히며, 가족 관계에 대한 혼란을 겪었음을 털어놓습니다. 친구의 놀림으로 재혼 사실을 알게 되었고,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충격을 받았다고 회상합니다. 복잡했던 가족사를 솔직하게 고백하며 진솔함을 더합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재혼 가정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심했던 과거를 언급하며,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알려야 할지 부모님도 고민했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돌싱과 재혼이 흔한 사회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힘든 일이었다고 회상합니다. 아버지는 장로로서 사회 활동도 활발했지만, 어머니는 늘 집안 걱정과 자녀 걱정으로 근심이 많았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혼자 서울로 유학을 떠났던 백혜선 피아니스트에 대한 어머니의 염려가 컸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가족의 화목과 자녀의 안녕을 위한 절실한 몸부림이었음을 강조합니다.
진행자는 어머니의 기도 외에도 백혜선 피아니스트를 위해 기도해 준 또 다른 인물이 있었는지 질문하며 새로운 인물의 등장을 예고합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새롭게하소서 출연을 계기로 잊고 있었던 특별한 분을 떠올렸다고 이야기하며 기대감**을 높입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병원에서 요리를 담당했던 나이 많은 도우미 아주머니를 소개합니다. 아침마다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축복 기도를 해주셨던 따뜻한 분이라고 회상합니다. 어린 백혜선은 기도의 의미를 잘 몰랐지만, 아주머니는 늘 "주여, 주여" 외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우리 혜선이가 잘되게 해 주시고, 나중에 하나님을 위해 큰 일을 하게 해주세요" 라는 기도는 어린 백혜선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오랫동안 함께 했던 소중한 분임을 강조합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아주머니가 밥 짓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다락방에서 기도했다고 회상합니다. "아줌마 뭐 해요?" 라고 물으면 "늘 기도해야 돼" 라고 답하며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어머니에게 40일 금식 기도를 권유하며 기도를 가르쳐 준 영적인 스승과 같은 존재였음을 밝힙니다. 병원이 기도원 같았다는 재미있는 비유를 사용하며 기도가 일상이었던 특별한 분위기를 묘사합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아주머니에게 "아줌마 하나님 봤어요?" 라고 순수한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아주머니는 "믿음으로 만나지" 라고 답하며 신앙적인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믿음의 눈이 떠여야 보인다" 는 심오한 말과 함께, 백혜선 피아니스트에게 큰 축복이 있을 것이며 하나님을 위해 쓰임 받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기도를 통해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힘들 때마다 기도할 것을 조언했습니다. 갑자기 아주머니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고 말하며 놀라움을 표현합니다. 자신에게 기도의 원천을 가르쳐 준 분이 아주머니였음을 깨닫고 감사를 전합니다. 늘 온 가족을 위해 기도해 주셨던 헌신적인 모습에 감동받은 표정을 짓습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어린 시절 아주머니로부터 받았던 축복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힙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묵묵히 기도로 살아갔던 아주머니의 헌신적인 삶에 깊은 감명을 받은 모습입니다. 진행자는 기도로 삶을 살아왔던 아주머니의 삶을 강조하며 존경심을 표합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어머니의 기도와 도우미 아주머니의 기도가 있었기에 오늘의 자신이 존재함을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두 분의 기도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며 감격에 젖은 모습을 보입니다.
진행자는 미국 유학 시절 어린 나이에 겪었을 외로움과 어려움에 대해 질문하며 미국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요청합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매일 일기 형식으로 기도문을 썼다고 밝히며 솔직함을 드러냅니다. "하나님 죄송해요" 로 시작하는 기도는 일상적인 잘못과 고민을 담고 있었습니다. 공부, 숙제, 연습 부족과 같은 소소한 잘못부터, 연애와 결혼에 대한 진지한 고민까지 다양한 내용을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청년 시절 순수했던 고민을 이야기하며 미소를 짓습니다. 연애를 하면 결혼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순수한 가치관을 드러내며 풋풋함을 자아냅니다.
진행자는 순수했던 백혜선 피아니스트의 과거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귀엽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의 일기장은 죄인이라는 고백과 회개로 가득 차 있었고, 매일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 때마다 자신이 잘못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도우미 아주머니로부터 받은 기도의 영향이 일기에도 고스란히 드러났음을 설명합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보스턴에서 성공적인 유학 생활을 마치고 국제 콩쿨에서 두각을 나타낸 후, 20대 후반에 서울대학교 교수로 임용되는 화려한 경력을 쌓습니다. 20대라는 젊은 나이에 서울대학교 교수가 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음을 강조합니다. 대한민국 최고 명문대학교인 서울대학교 음대 교수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지만,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서울대학교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이곳은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직감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갑갑하고 숨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1994년 임용 당시 서울대학교는 권위적인 분위기가 강했고, 교수의 권위는 절대적이었습니다. 유교적인 한국 문화와 자유로운 미국 문화의 차이를 느끼며 문화적 이질감을 경험합니다. 서울대학교 교수라는 사회적 지위가 자신을 가두는 틀처럼 느껴졌고, 진정으로 원하는 삶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생들을 섬기고 싶었지만, 교수라는 직함 때문에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남학생들은 나이가 자신과 비슷하거나 더 많은 경우도 있었고, 교수와 학생 사이의 권위적인 관계에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학생들이 음악보다는 서울대학교 졸업장을 목표로 하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1, 2학년 때는 미팅에 바쁘고, 3, 4학년 때는 취업과 유학 준비에만 몰두하는 학생들의 모습에 실망했습니다. 음악에 대한 진정한 열정을 가진 학생을 찾기 힘들었고, 학생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 2학년 학생들은 사춘기를 제대로 겪지 못한 것처럼 미성숙했고, 3, 4학년 학생들은 현실적인 문제에만 매몰되어 음악적 성장에 소홀했습니다. 연주자는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기량을 갈고닦아야 하지만, 학생들은 연습 부족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음악에 대한 가치관 차이에서 오는 갈등은 결혼 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남편과의 관계 또한 점점 악화되었습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더 이상 서울대학교 교수로서의 삶을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사직을 결심합니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 아닌, 순간적인 감정에 휩싸여 衝動적인 결정을 내렸음을 암시합니다. 서울대학교 교수직을 미련 없이 그만두기로 결심하며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합니다. 가족과 남편, 아이들과의 충분한 상의나 동의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했음을 털어놓습니다. 결혼 당시 외국에 나가 활동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가정을 이루면서 현실에 안주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남편의 기대와는 달리, 자신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20대 후반에 교수가 되었지만,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해야 하는 음악가로서의 갈망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가르치는 일은 에너지 소모가 크고, 자신은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실력이 점점 퇴보하는 것을 느끼며 불안감을 느꼈고, 남편은 안정적인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방학 때마다 해외 연주를 다니고, 한 달에 한 번씩 국내 연주를 했지만, 여전히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어느 날, 남편과 자신이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음을 깨닫고 결별을 결심합니다. 부부는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나아가야 하지만,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합니다. 결국,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음을 암시합니다.
진행자는 서울대학교 교수직을 그만둔다는 결정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질문합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자신의 결정이 자만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정합니다. 서울대학교 사직, 이혼 등 과거의 선택들을 돌아보며, 당시 국내 최고로 인정받던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부족했음을 시인합니다. 자신감만만하게 외국에 나가 아이들을 키우며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이혼만 해달라고 남편에게 강압적으로 요구했던 철없던 과거를 반성합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났고, 뉴욕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지만, 예상치 못한 어려움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아이들을 데리고 뉴욕으로 이주하여 맨해튼에 아파트를 구했지만, 곧 정신 나간 여자라는 자책을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도시 중 하나인 뉴욕 맨해튼에 무모하게 보금자리를 마련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합니다. 맨해튼 한복판의 고급 아파트는 상상 이상으로 비쌌고, 경제적인 부담은 점점 커져갔습니다. 아이들을 최고의 환경에서 키우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아이들을 유명 인사 자녀들이 다니는 최고급 유치원에 보냈지만, 과소비였음을 인정합니다. 마이클 J. 폭스, 우디 앨런 등 유명 인사 자녀들이 다녔다는 유치원을 예시로 들며 화려함을 쫓았던 과거를 반성합니다. 유치원 이름을 우스꽝스럽게 발음하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조합니다. 승리한 아이들이라는 유치원 이름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처참한 현실을 대조하는 듯합니다. 어린이집 수준의 유치원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던 과거를 후회합니다. 당시에는 금전적인 여유가 있었지만, 계획성 없는 소비는 결국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빠 유산으로 집 세 채를 마련했지만, 눈에 보이는 것에만 현혹되어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아빠 유산으로 어린 시절부터 넉넉하게 자랐고, 재테크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보스턴에서 아파트 값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면서 재테크에 흥미를 느꼈고, 아빠가 사준 작은 아파트가 몇 년 후에 가격이 급등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재테크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본격적으로 뛰어들기로 결심합니다. 직장 없이 재테크만으로 생활할 수 있다고 착각하며 무모한 계획을 세웁니다. 친구가 수입 없이 재테크만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했지만,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남편 또한 걱정했지만, 자신감에 눈이 멀어 현실적인 조언을 무시했습니다. 고급 아파트 세 채는 겉으로는 화려했지만, 실상은 위험한 투자였습니다. 3, 4년 동안은 풍족하게 살았지만, 예상치 못한 경제 위기가 닥쳐옵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어느 날 갑자기 은행이 무너지는 금융 위기를 맞닥뜨립니다. 미국 전체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혼란에 빠졌고, 아파트 값은 폭락하고 이자는 폭등했습니다. "이건 어떻게 하라는 거지?" 라는 절망적인 심정을 토로하며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집을 대출받아 산 사람들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집을 포기하고 도망치는 상황이 속출했습니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이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도망쳐야 했던 절박한 상황을 설명합니다. 뉴욕 중심부에 살았던 자신의 주변에도 도망치는 사람들이 속출했고, 심각한 경제 위기를 실감했습니다. 자신 또한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집 세 채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매달 수천만 원에 달하는 이자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은행에 집을 빼앗기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합니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무너져내리는 현실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매달리는 심정을 절절하게 드러냅니다. 너무나 황당하고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넋을 잃은 모습입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함에 휩싸입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진정으로 주님을 만났다고 고백합니다. 성장 과정과 한국에서 승승장구하던 시절에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지만, 뉴욕에서 광야와 같은 삶을 겪으면서 비로소 하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서울대학교 사직도, 재테크 성공도 모두 자신의 힘으로 이룬 것이라고 착각했지만, 뉴욕에서 겪은 어려움을 통해 교만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 더욱 간절하게 기도하며 하나님께 의지하게 되었고, 진정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성장기를 거쳐 진정한 신앙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어머니가 자신의 힘든 상황을 알고 크게 화를 내셨다고 합니다. 멀쩡한 결혼을 깨고, 서울대학교 교수직을 그만두고, 혼자 아이 둘을 데리고 나가 잘 살겠다고 큰소리쳤지만, 결국 집도 잃고 힘든 상황에 처한 딸을 안타까워하고 질책했습니다. "너 지금 무슨 얘기 하는 거냐?" 라며 어머니는 현실을 믿을 수 없어 했고,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어머니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자신 또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고민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40일 작정 기도를 시작하며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기도만이 유일한 희망이었음을 강조합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40일 작정 기도 후 응답을 받았다고 간증합니다. 기도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구 가톨릭 대학교에서 석좌 교수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한 학기에 일주일만 강의하면 되는 파격적인 조건이었고, 외국에 거주하면서 한국에 와서 강의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외국에 나간 지 6, 7년 만에 한국에서 교수 자리를 제안받은 것은 기적과 같았습니다. 주시는 분도 하나님,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이라는 깨달음을 얻으며 모든 것이 주님의 섭리임을 인정합니다. 앞으로는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합니다. 광야의 삶이 시작되었지만, 하나님께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음에 감사합니다. 40일 작정 기도가 터닝 포인트가 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음을 강조합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그 이후 자신의 계획과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서울대학교를 감사함 없이 그만둔 것에 대한 대가를 수십 년 동안 치러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하나님께 여쭙지 않고 제 마음대로 선택했던 과거를 후회합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간 것도 제 욕심이었고, 교회는 열심히 다녔지만, 겉으로만 신앙생활을 했을 뿐 진정한 믿음은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주님께서 자신의 삶을 만지기 시작했고,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났다고 간증합니다.
진행자는 회심 이후 연주가 달라졌는지 질문하며 음악적인 변화에 대한 궁금증을 드러냅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의 음악 세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묻습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자신을 변화시킨 것은 뉴욕의 광야 같은 삶과 뉴욕 한인 교회라고 강조합니다. 컬럼비아 대학교 앞에 위치한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교회는 동부 지역 교회들의 어머니 교회와 같은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보스턴 교회와 비슷한 분위기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처음에는 유년 주일학교에서 봉사했습니다. 어느 날, 정경화 선생님 어머니가 백혜선 피아니스트를 알아보고 교회 관계자에게 그녀를 음악으로 봉사하게 해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추천합니다. 정경화 선생님 어머니의 격려와 지지는 백혜선 피아니스트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교회를 음악으로 축복해야 한다는 정경화 선생님 어머니의 말씀은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2007년 이후부터 성가대 지휘를 시작하면서 음악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습니다. 음악의 근본은 노래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되었고, 성부의 아름다움에 깊이 감동받습니다. 모든 악기는 사람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것이며, 피아노 또한 다양한 성부를 표현하지만, 근본은 단선율인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성가대 지휘를 10년 정도 하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은혜를 경험했고, 매주 감격에 눈물을 쏟았습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성가대 지휘를 하면서 예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배에서 성가대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설교 전 찬양은 사람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주고 영적인 치유를 가져다줍니다. 목사님께 한 달 전에 설교 말씀을 미리 받아 성경 봉독과 맥락이 같은 찬양을 선곡하고, 가사를 설교 말씀에 맞게 바꾸기도 합니다. 뉴욕에는 뛰어난 성악가들이 많고, 교회 성가대에는 20대부터 85세 이상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성도들이 함께 봉사합니다. 음악을 전공한 젊은 성악가들과 신앙심 깊은 어르신들이 함께 은혜를 나누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젊은 음악가들은 어르신들의 열정에 감동받고, 어르신들은 젊은 음악가들의 재능에 감탄하며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음악은 기교가 아닌 마음과 영으로 소통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마음과 영으로 드리는 예배와 같은 연주를 하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연주를 통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음악에 접근하게 되었음을 강조합니다. 간증을 하면서 계속 감격에 겨워 눈물을 글썽입니다. 성가대를 통해 큰 은혜를 받고 있으며, 교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교인들은 성가대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성가대를 최고로 칭찬합니다. 목사님 또한 성가대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교인들은 매주 성가대를 통해 큰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성가대를 통해 가장 큰 은혜를 받고 감사를 느낀다고 고백합니다. 교회와 교인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자신처럼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다음 세대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넵니다.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며,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혼신을 다해야 합니다. 부모님들은 자녀가 좋아하는 것을 선입견 없이 지지하고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5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지만, 죽는 날까지 배움과 자기 개발을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편안한 삶에는 한계가 있으며,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에게는 늘 기도할 제목이 있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을 때는 하나님의 뜻이 다른 곳에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자기 개발과 배움을 멈추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 더욱 의지하고, 지금은 때가 아닐 수 있다는 믿음으로 기다리면 된다고 격려합니다. 아멘으로 화답하며 훈훈하게 마무리됩니다. 음악을 꿈꾸는 다음 세대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조언을 전하며 감동을 선사합니다.
진행자는 백혜선이라는 세 글자가 클래식 음악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이라고 언급하며 과거 백혜선 피아니스트의 명성을 상기시킵니다. 조성진, 임윤찬과 비교하며 과거 백혜선 피아니스트의 위상을 높이 평가합니다. 과거와 현재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로 변화되었음을 강조하며 놀라움을 표합니다.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 획을 그었던 피아니스트가 하나님으로 가득 찬 기쁨에 넘치는 연주자로 변화된 모습에 감탄합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의 피아노 연주와 성가대 지휘 영상을 찾아보고 싶다는 관심을 표현하며 여운을 남깁니다.
진행자 박미선 님은 백혜선 피아니스트의 인생을 악기에 비유하며 탁월한 비유로 감탄을 자아냅니다. 젊은 시절 피아니스트로서 최고의 연주와 명예를 얻었지만, 인생이라는 악기는 조율이 필요했던 시기였다고 비유합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와 같은 시간을 통해 백혜선 피아니스트를 하나님의 소유로 조율하시자, 멋지고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보다 더욱 아름다운 인생이라는 악기로 변화되었다고 극찬합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의 간증이 큰 도전이 되었고, 앞으로 하나님 손에 맡겨질 더 많은 사람들을 기대하며 응원합니다.
진행자들은 표어를 제안하며 유머를 더합니다. 성공을 이루었을 때 자신에게 영감을 준 원천에 대한 질문에 백혜선 피아니스트는 과거에는 교만하게 자신의 능력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니 모든 영감은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이 피아니스트가 된 것도 매일 무릎 꿇고 기도했던 어머니의 기도와 도우미 아주머니의 축복 기도 덕분이라고 겸손하게 고백합니다. 자녀들에게 꿈을 강요하면서 자신은 자녀를 위해 기도하지 않았던 과거를 반성하며 부모로서의 책임감을 느낍니다. 기도가 자신을 만들었음을 강조하며 기도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다시 태어난 것 같다는 심정을 고백하며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냅니다.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와 후배 양성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감을 전하는 음악가가 되기를 소망하며 마무리합니다. 세상에 감동을 주는 음악인으로 남아달라는 진심 어린 부탁과 기도로 마무리하며 방송을 마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