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 나들 목사 인생 스토리: 가수에서 엔터 교회까지
'좋아 좋아' 나들, 기적의 인생: 가수에서 목사로
‘니가 좋아 너무 좋아’에서 목사로: 나들 목사의 파란만장 인생 이야기
안녕하세요, 오늘은 대한민국 대표 발라드 그룹 ‘일기예보’의 멤버이자, 현재는 목회자로 새로운 삶을 살고 계신 나들 목사님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상세히 정리하여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의 파란만장했던 음악 인생과 갑작스러운 건강 위기, 그리고 그 모든 고난을 딛고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된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통해, 우리 삶 속에서 마주하는 어려움과 그 의미에 대해 함께 묵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나들 목사님의 진솔한 고백과 삶의 지혜는 분명 여러분에게 깊은 울림과 위로를 선사할 것이라고 확신하는데요, 그럼 지금부터 나들 목사님의 인생 여정을 자세히 따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일기예보’ 나들, 국민 가수로 성공하기까지
나들 목사님은 ‘일기예보’라는 그룹으로 데뷔하여 ‘좋아 좋아’, ‘인형의 꿈’ 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90년대 가요계를 풍미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성공 가도를 달렸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1집, 2집 앨범은 대중의 큰 반응을 얻지 못했고, 팀은 해체 위기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발매한 3집 앨범의 타이틀곡 ‘좋아 좋아’가 대학로를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반전되기 시작했는데요, 당시 대학로 골목마다 ‘좋아 좋아’가 울려 퍼지는 것을 보고 멤버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드디어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된 ‘일기예보’는 방송 활동을 시작하며 승승장구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곧 현실의 벽에 부딪히게 되는데요, 당시 가요계에는 김건모, 신승훈, 핑클 등 쟁쟁한 선배 가수들이 이미 확고한 입지를 다지고 있었고, 신인 그룹이었던 ‘일기예보’는 방송국 대기실에서부터 차별을 느껴야 했습니다. 나들 목사님은 당시를 회상하며 “대기실 크기부터 달랐다. 우리는 여러 팀이 좁은 대기실을 함께 썼지만, 톱스타들은 독방을 쓰는 것을 보며 자격지심과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오히려 나들 목사님에게 더 큰 성공에 대한 욕망을 불러일으켰고, 다음 앨범에서는 반드시 1위를 하겠다는 독한 마음으로 음악 작업에 매진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앨범 제작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싱글 앨범이 흔하지 않았고, 보통 10곡 이상이 수록된 정규 앨범을 제작해야 했는데요, 멤버들은 작사, 작곡은 물론, 세션 섭외, 녹음 진행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책임져야 했습니다. 나들 목사님은 “앨범 제작은 정말 피 말리는 작업이었다”고 회상하며, “더욱 성공해야 한다는 욕심과 스트레스 때문에 몸이 완전히 망가지는 시간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2. 성공의 그림자, 건강 악화와 깊어지는 갈등
끊임없는 밤샘 작업과 불규칙한 생활, 과도한 스트레스는 결국 나들 목사님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사실 나들 목사님은 태어날 때부터 간염 보균자였고, ‘일기예보’ 활동 당시 잦은 음주와 피로 누적으로 간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던 것인데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마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시면서 나들 목사님은 간경화라는 심각한 진단을 받게 됩니다.
건강 악화는 팀 활동에도 적신호를 켰습니다.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나들 목사님은 팀 해체를 결심하게 되는데요, 당시 ‘일기예보’는 3집 앨범의 성공으로 막 인기를 얻기 시작한 시점이었기에, 멤버 강현민 씨는 나들 목사님의 갑작스러운 팀 해체 통보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나들 목사님은 “멤버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을 것이다. 이제 막 날아올라야 하는데, 나 때문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니까 너무 미안했다”고 당시 심정을 전했습니다.
팀 해체를 고민하던 나들 목사님은 마지막으로 멤버 강현민 씨와 미사리 통기타 업소 공연을 제안받게 됩니다. 높은 출연료를 제시하는 매력적인 제안이었지만, 건강이 좋지 않았던 나들 목사님은 고민에 빠지는데요, 결국 그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공연 제안을 받아들이고, 멤버와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게 됩니다. 하지만 마지막 공연마저 주최 측의 사기로 무산되고, ‘일기예보’는 그렇게 아쉬운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3. 여자친구와의 만남, 그리고 예상치 못한 신앙의 여정
팀 해체 후, 나들 목사님은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됩니다. 첫눈에 아내에게 호감을 느낀 나들 목사님은 그녀와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했지만,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아내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나들 목사님에게 벽을 느꼈습니다. 나들 목사님은 아내와의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며, “여자친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억지로 교회를 다녔다”고 털어놓았습니다.
하지만 억지로 시작한 교회 생활은 나들 목사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예상치 못한 여정의 시작이었습니다. 교회 소그룹 모임에서 ‘크리스찬의 이성교제’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들 목사님은 스스로의 죄를 마주하게 됩니다. 교회 상담 목사님과의 상담 과정에서 과거 자신의 문란했던 성적인 경험과 유흥업소 출입 등을 떠올리게 되었고, 그동안 죄라고 인식하지 못했던 행동들이 죄책감으로 밀려왔던 것인데요, 나들 목사님은 “죄책감에 눈물이 쏟아지는 경험을 했다”고 고백하며,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당시 충격적인 경험을 전했습니다.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나들 목사님에게 목사님은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을 건네주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라는 말씀을 통해 나들 목사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자신의 모든 죄가 용서받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깨끗하게 지워졌고, 새로 태어난 아기처럼 깨끗해졌다는 말씀이 너무 감사해서 기쁨의 눈물을 쏟았다”고 간증하며, “그 순간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후, 나들 목사님의 삶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결혼 축가 요청을 예배 참석 조건으로 내걸기도 했습니다. 나들 목사님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답답해서 견딜 수 없었다. 무조건 믿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당시 뜨거웠던 열정을 회상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들 목사님에게 신앙을 선물해 준 여자친구와의 관계는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고, 결국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4. 간경화 투병, 죽음의 문턱에서 만난 하나님의 은혜
나들 목사님이 예수님을 믿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을 무렵, 건강에 또다시 적신호가 켜집니다. 간경화가 급속도로 악화되어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인데요,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간 질환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나들 목사님은 극심한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그는 “더 이상 음악을 하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일기예보 활동 중단을 결심했다”고 당시 절박했던 심정을 전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나들 목사님은 치료를 위해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갑니다. 전라북도 진안 마이산 근처에 3년 동안 머물면서 자연 속에서 요양 생활을 시작한 것인데요, 매일 아침 산에 올라 약초를 캐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건강 회복에 힘썼습니다. 나들 목사님은 “시골 생활은 문화 충격이었다. 도시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여유를 경험했고, 여유가 생기니 하나님을 찾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시골에서 나들 목사님은 ‘산책 기도’라는 새로운 영적 습관을 갖게 됩니다. 매일 아침 산책을 하며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인데요, “하나님, 오늘 고사리를 조금밖에 못 땄어요. 더 많은 곳을 알려주세요” 와 같이 사소한 일상 속에서 하나님과 친밀하게 소통하며 위로와 평안을 얻었습니다. 또한 새벽 작정 기도를 통해 깊은 영적 체험을 하기도 했는데요, 새벽 예배 후 교회 종탑 기도실에 올라가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3년 간의 시골 요양 생활은 나들 목사님의 건강뿐 아니라 신앙적으로도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도시에서의 치열했던 경쟁과 성공에 대한 욕망을 내려놓고, 자연 속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인데요, 특히 시골 교회 성도들의 따뜻한 사랑과 헌신은 나들 목사님에게 큰 감동과 위로를 주었습니다. 그는 “시골 교회에서 진정한 교회의 의미를 경험했다. 전 교인이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가족처럼 아끼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고 회상했습니다.
5. 목회자의 꿈, 그리고 다시 찾아온 시련
시골 생활 3년 차, 나들 목사님은 꿈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특별한 경험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집 앞에서 팔을 벌려 안아주시며 “12시 20분까지 꼭 오세요” 라고 말씀하신 것인데요, 생생한 꿈에 이끌려 기도원에 들어간 나들 목사님은 7일 만에 목회자의 길을 가라는 응답을 받게 됩니다. 그는 꿈 속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12시 20분’이 서울로 돌아오는 날짜와 집 호수라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목회자의 꿈을 품고 서울로 돌아온 나들 목사님은 신학교 입학을 준비하며 새로운 삶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갑자기 피를 토하고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가게 되는데요, 검사 결과 간경화가 전혀 호전되지 않았고, 오히려 합병증까지 겹쳐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라는 진단을 받게 됩니다. 나들 목사님은 “하나님께 속은 것 같았다. 믿음의 뿌리가 흔들리는 고통을 경험했다”고 당시 절망적인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하지만 절망 속에서도 나들 목사님은 아내의 격려와 지지를 통해 다시 힘을 냅니다. 아내는 꿈 때문에 시골에서 서울로 일찍 돌아온 것이라며, 하나님께서 나들 목사님을 살리시기 위해 서울로 보내셨다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나들 목사님은 아내의 믿음 덕분에 다시 투병 의지를 다지고, 간 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합니다.
기적적으로 나들 목사님에게 간을 이식해 줄 기증자가 나타났습니다. 사촌 동생이 선뜻 간 이식을 자처한 것인데요, 10살이나 어린 건강한 동생 덕분에 나들 목사님은 간 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수술 후 3주 만에 퇴원하는 놀라운 회복력을 보였다”며,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는 생각에 삶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고 간증했습니다.
6. 크리스찬 엔터테인먼트 공동체, 그리고 골목 콘서트
간 이식 수술 후 건강을 회복한 나들 목사님은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크리스찬 엔터테인먼트 공동체’ 설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합니다. 교회 사역 대신 대중음악 사역을 통해 전도와 선교, 구제를 실천하고자 했던 것인데요,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새로운 앨범을 발표하고 방송 활동도 재개했지만, 대중의 반응은 냉담했고, 공동체 설립은 지지부진하게 이어졌습니다.
계속되는 실패에 지쳐갈 무렵, 나들 목사님은 작업실 앞 삼겹살집 부부를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힘겹게 가게를 운영하는 부부를 위로하기 위해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불러주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삼겹살집에서 작은 콘서트를 열게 되었는데요, 예상외로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골목 콘서트’라는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게 됩니다.
골목 콘서트는 당구장, 탁구장, 김밥집, 치킨집 등 다양한 소규모 자영업 공간을 무대로 삼아 진행되었습니다. 나들 목사님은 직접 음향 장비를 챙겨 전국 곳곳의 골목을 누비며 무료 공연을 펼쳤는데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진심을 담아 노래하는 나들 목사님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했고, 골목 콘서트는 침체된 골목 상권에 활력을 불어넣는 뜻깊은 사역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골목 콘서트가 입소문을 타면서 방송국에서도 섭외 요청이 쇄도했습니다. KBS ‘배철수의 7080’, JTBC ‘싱어게인’ 등 인기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다시 한번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인데요, 나들 목사님은 방송 출연을 통해 골목 콘서트 사역을 알리고, 후배 음악인들과 함께 무대에 설 기회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는 “골목 콘서트를 통해 진정한 노래의 기쁨과 의미를 깨달았다. 평생 이렇게 노래할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7. 엔터 교회 개척, 그리고 새로운 시작
골목 콘서트 사역을 통해 삶의 보람을 느끼던 나들 목사님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합니다. 오랜 고민과 기도 끝에 2022년 2월, ‘엔터 교회’를 개척한 것인데요, ‘엔터’라는 이름에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좁은 문을 통과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와, 자판기의 ‘엔터’ 키처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았습니다.
엔터 교회는 음악인, 예술인 등 젊은 세대들이 편안하게 다가올 수 있는 열린 공간을 지향합니다. 딱딱한 교회 이미지를 벗어나 카페처럼 편안한 분위기에서 예배와 교제를 나누고, 음악, 공연, 예술 활동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새로운 형태의 교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나들 목사님은 “엔터 교회를 통해 젊은 세대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삶의 참된 목적과 기쁨을 누리도록 돕고 싶다”는 비전을 밝혔습니다.
교회 개척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개척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OST ‘좋아 좋아’가 음원 차트 역주행을 하면서 저작권료가 유입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나들 목사님은 “비단 빚을 지게 해주시려는 줄 알았는데, 비단길을 열어주셨다”며,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섭리에 감사드린다”고 감격했습니다.
현재 엔터 교회는 합정동에 작은 공간을 마련하여 예배와 다양한 문화 사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개척 초기 8명으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17명으로 성도 수가 늘어났고, 젊은 세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나들 목사님은 “목회 사역은 전혀 해보지 않았기에 짐이고 부담이었지만, 순종했더니 하나님께서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셨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설교 준비도 어렵지 않고, 오히려 너무 재미있다. 평생 목회 사역을 즐겁게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행복한 소감을 전했습니다.
8. 고난을 통해 완성되는 삶, 그리고 희망의 메시지
나들 목사님의 인생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교훈을 줍니다. 성공과 좌절, 건강과 질병, 기쁨과 슬픔 등 파란만장한 삶의 굴곡 속에서 그는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고난을 통해 더욱 성숙하고 단단해지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죽음의 문턱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는 그의 인생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는데요, 나들 목사님은 간증을 마무리하며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만 있다면, 지나간 모든 일들이 다 잘 된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지금 어렵고 힘든 상황에 놓여있더라도, 하나님을 믿는다면, 지금의 어려움이 훗날 ‘정말 다행이었다’라고 고백할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현재의 어려움을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나들 목사님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개인의 성공 스토리가 아닌, 고난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의 강인함과 믿음의 힘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드라마입니다. 그의 삶을 통해 우리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오늘 나들 목사님의 이야기가 여러분의 삶에 작은 위로와 격려가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