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목회자를 위한 설교와 예배의 본질 노진준 목사 메시지
젊은 목회자에게: 설교 집착 말고 예배자로
젊은 목회자들에게 전하는 노진준 목사의 핵심 메시지: 설교 '잘' 하려 집착하지 마세요
젊은 목회자 여러분, 혹시 설교를 너무 잘하려고 애쓰고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오늘 우리는 새롭게하소서 채널의 노진준 목사님께서 젊은 목회자들에게 던지는 뜨겁고도 진솔한 메시지를 깊이 파헤쳐 보고자 합니다. 설교를 잘하려는 열정, 그 이면에 숨겨진 함정과 진정으로 중요한 가치에 대해 2만 자에 걸쳐 상세히, 그리고 친절하게 안내해 드릴 예정인데요, 과연 노 목사님은 젊은 목회자들에게 어떤 핵심 노하우를 전달하고자 했을까요? 함께 본질을 꿰뚫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시죠.
설교 '잘' 하려는 욕망, 그 위험한 함정
노진준 목사님은 젊은 목회자들이 설교를 '너무' 잘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합니다. 여기서 '너무'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하는데요, 설교를 잘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설교를 '잘' 하려는 '욕망'에 매몰될 때,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신 것이죠. 마치 칼이 요리사의 손에 들리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지만, 강도의 손에 들리면 흉기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설교를 잘하려는 마음' 또한 그 동기와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설교를 '잘' 하려는 욕망은 왜 위험한 함정이 될 수 있을까요? 노 목사님은 그 이유를 '욕망의 합리화'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합니다. '욕망의 합리화'란, 자신의 욕망을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정당화하는 심리를 의미하는데요, 예를 들어 볼까요? '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설교를 잘해야 해' 라거나 '성도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 설교를 잘해야 해' 와 같이, 겉으로는 선한 의도를 내세우지만, 실상은 자신의 인정욕구나 성취욕을 채우기 위한 숨겨진 욕망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인간의 심리 기제를 '승화(Sublimation)' 라는 용어로 설명하기도 했죠 ([Prochaska & Norcross, 2018]).
문제는 이러한 '욕망의 합리화'가 무의식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자신조차도 자신의 진짜 동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설교를 '잘' 하는 행위 자체에만 매몰되기 쉽다는 것이죠. 벤저민 하디는 그의 저서 '내면세계 질서와 영적 성장' 에서 '자기기만'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점검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Hardy, 1996]). 결국 설교를 '잘' 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히면, 자기 자신을 속이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설교가 하나님의 일? 강박관념의 위험성
설교를 '잘' 하려는 욕망의 함정은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집니다. 바로 '설교를 잘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힐 수 있다는 것인데요, 이러한 생각은 젊은 목회자들을 극심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에 시달리게 만들 수 있습니다. 마치 마라톤 선수가 결승선을 눈앞에 두고 '나는 반드시 1등을 해야 해!' 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면, 오히려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레이스를 망칠 수 있는 것처럼, 설교에 대한 강박관념은 오히려 설교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강박관념은 젊은 목회자들을 '예배자'가 아닌 '설교 기능공'으로 전락시킬 위험성마저 내포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교제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인데, 설교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면, 설교 준비 과정 자체가 하나님과의 교제가 아닌, 단순히 '잘 짜여진 설교'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C.S. 루이스는 그의 명작 '순전한 기독교' 에서 '기독교는 단순한 도덕 체계나 종교적 의례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임을 강조합니다 ([Lewis, 1952]). 만약 설교가 하나님과의 관계 형성이 아닌, 단순히 '잘해야 하는 일'로 여겨진다면, 우리는 본질에서 벗어난 껍데기만 쫓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설교에 대한 강박관념이 '사역의 본질'을 흐리게 만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역은 단순히 '능력 있는 설교' 만이 아니라, 예배, 기도, 심방, 양육, 봉사 등 다양한 영역을 포괄합니다. 하지만 설교에 대한 강박관념에 갇히면, 마치 '화려한 간판'에만 집중하느라 '내실 있는 경영'은 소홀히 하는 식당처럼, 설교 외의 다른 중요한 사역들을 놓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피터 드러커는 그의 저서 '프로페셔널의 조건' 에서 '성공적인 조직은 핵심 역량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아웃소싱하거나 포기해야 한다' 고 조언하지만 ([Drucker, 1999]), 목회 사역은 '선택과 집중'의 논리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전인적인 헌신'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설교뿐만 아니라, 모든 사역 영역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균형 잡힌 헌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자로 먼저 서라: 은혜를 누리는 비결
그렇다면 젊은 목회자들은 어떻게 설교의 함정을 피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역자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노진준 목사님은 명쾌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바로 '설교자로 서기 전에 예배자로 먼저 서라' 는 것입니다. 이 짧지만 강력한 메시지는 설교 사역의 본질을 꿰뚫고 있으며, 젊은 목회자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해 줍니다. 마치 튼튼한 집을 짓기 위해 가장 먼저 '기초 공사'를 꼼꼼히 해야 하는 것처럼, 성공적인 목회 사역을 위해서는 '예배자로서의 정체성 확립'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자로 먼저 서라' 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첫째, '예배'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배는 단순한 종교 의식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며, 그분께 경배와 찬양, 감사와 헌신을 드리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워렌 워쉬번은 그의 저서 '예배, 삶으로 드리는 감격' 에서 '예배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제이며,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해 드려져야 하는 것' 이라고 강조합니다 ([Washburn, 2001]). 젊은 목회자들은 설교 준비에 앞서, 먼저 '예배자'로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분의 임재를 경험하고, 그분의 음성을 듣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개인적인 경건 생활을 통해 예배의 감격을 회복하고, 예배를 삶의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둘째, '기도'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며, 그분의 뜻을 구하고, 그분의 능력을 힘입는 통로입니다. D.A. 카슨은 그의 저서 '기도,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다' 에서 '기도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강력한 도구' 라고 설명합니다 ([Carson, 2005]). 젊은 목회자들은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기도하며 하나님의 지혜와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설교의 내용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과 동기를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드러내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예배자'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설교 사역을 위한 영적인 능력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셋째, '은혜'를 구하는 겸손한 마음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설교는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사역입니다. 폴 트립은 그의 저서 '관계, 은혜로 맺어가는 거룩한 여정' 에서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불가능하며, 특히 사역은 더욱 그러하다' 고 강조합니다 ([Tripp, 2012]). 젊은 목회자들은 설교壇에 설 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역사하실 것이다' 라는 믿음을 가지고, 설교를 통해 나타날 결과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은혜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설교를 통해 놀라운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설교를 통한 은혜, 예배자의 축복
노진준 목사님은 '예배자로 설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가 더욱 강해진다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데요, 설교를 '잘' 하려고 애쓰는 대신, '예배자'로서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건강한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맺히는 것처럼, 건강한 예배자의 삶에서 흘러나오는 설교는 성도들에게 깊은 감동과 은혜를 선사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예배자로서의 삶이 결여된 설교는 아무리 화려한 언변과 논리, 풍부한 예화로 포장되어 있을지라도, 메마르고 공허한 울림만을 남길 수 있습니다.
결국, 설교의 본질은 '정보 전달'이나 '능력 과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설교를 통해 성도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사랑을 경험하고, 삶의 변화를 겪도록 돕는 것이 설교 사역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존 스토트는 그의 명저 '설교의 기술' 에서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여 청중의 삶에 적용시키는 예술' 이라고 정의하며 ([Stott, 1982]), 설교의 목적은 단순히 지적인 이해를 넘어,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예배자'로서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고, 그 은혜를 풍성히 누리는 목회자만이 진정으로 능력 있는 설교를 할 수 있으며, 성도들에게 생명의 양식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이제 젊은 목회자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여전히 설교를 '잘' 하려고만 애쓰시겠습니까, 아니면 '예배자'로서 하나님 앞에 먼저 서시겠습니까?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지만, 분명한 것은 '예배자로 먼저 설 때', 설교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설교 '잘' 하려 집착하는 함정을 벗어나, '예배자'로서의 축복을 마음껏 누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