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시가디로우 간증: 절망에서 신앙으로 희망을 찾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래퍼 시가디로우의 감동 간증
꿈과 현실, 그리고 청년: 래퍼 시가디로우의 진솔한 인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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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막함 속에서 만난 희망, 그리고 새로운 시작
안녕하세요, '새롭게하소서'의 진행자 주영훈입니다. 오늘 여러분께서는 인생의 막막함과 외로움 속에서 신앙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 특별한 분의 이야기를 듣게 될 것입니다. 바로 래퍼 시가디로우 님이신데요, 의지할 곳 없이 홀로 외딴길을 걷는다고 느끼는 분들에게 오늘 시가디로우 님의 이야기가 마음속 깊은 희망의 씨앗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시가디로우 님, 귀한 시간을 내어 저희 '새롭게하소서'에 귀한 발걸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시가디로우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주영훈 : 와, 정말 예술가의 풍모가 느껴지는데요.
안수지 : 저는 예수님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정봉균 : 안경 쓰신 예수님 같으시네요!
주영훈 : 범규 씨가 '가디 로우' 라고 소개했는데, '시가 디로우' 가 정확한 발음인가요?
시가디로우 : 네, 시가 디로우가 맞습니다.
주영훈 : 이름이 독특해서 발음도 어렵네요. '시가 디로우' 라는 이름은 어떤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나요?
시가디로우 : '시가' 는 '시가 디자인' 에서 따온 것이고, '디' 는 '디자인', '로우' 는 '낮은 곳' 을 의미합니다. 예전에 고대 시가를 '말씀의 씨앗' 과 '노래 가락' 을 합쳐서 불렀다고 하는데요, 저는 '말씀과 노래로 낮은 곳을 향하는' 래퍼가 되고 싶어서 '시가 디로우' 라고 이름 짓게 되었습니다.
주영훈 : 아, 그렇군요. 그런데 '시가 디로우' 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동명이인 래퍼가 있다고 들었는데요?
시가디로우 : 네,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차별성을 두기 위해 'D' 를 하나 더 붙여서 '시가 D로우' 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드니로' 처럼 발음하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주영훈 : 본명은 어떻게 되시나요?
시가디로우 : 심영민 입니다.
주영훈 : '시가 디로우' 라는 이름이 외모와도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뭔가 섹시하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이랄까요?
시가디로우 : 감사합니다.
주영훈 : 래퍼라고 하면 보통 사회 비판적인 내용이나 강렬한 디스랩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시가 디로우 님께서 부르시는 곡들은 '사마리아 여인', 'My Father' 처럼 신앙적인 제목이 많더라고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시가디로우 : 하나님과 관련된 노래를 만들고 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신앙적인 노래를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감동을 주셨다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사마리아 여인' 이라는 곡도 원래 만들 계획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서 며칠 만에 곡을 완성하게 되었죠. '예수님은', '담대히', '주님은 나의 반석' 같은 곡들도 온 마음을 다해 주님께 찬양을 드리고 싶어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주영훈 : 간증을 들어보니 어린 시절에는 무신론자셨다고 들었는데요. 신은 없다고 생각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시가디로우 : 가정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희 집안은 평범한 가정이었지만,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셨습니다. 병원에 늦게 이송되는 바람에 8년 동안 반신불수로 누워계셨죠. 할머니께서 혼자 간병하시면서 온 집안이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마저 위암 4기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집안에 환자가 두 명이나 생기니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불행이 닥치는 걸까' , '나는 왜 이런 집안에 태어난 걸까' 라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위해서 처음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는 기도가 뭔지도 잘 몰랐지만, '신' 이 있다면 제발 어머니를 살려달라고 간절히 빌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결국 고등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습니다. 기도를 해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신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영훈 : 어린 시절에 공의의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셨는데, 그때는 그 말이 가증스럽게 느껴졌다고요.
시가디로우 : 네, 맞습니다. '공의의 하나님' 이라니, 저에게는 너무 가증스럽게 들렸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계속해서 앗아가는 신이 어떻게 공의롭다고 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은 없다고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신은 미운 존재 그 자체였습니다. 무시하고 싶었고,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고등학교 친구가 교회에 전도했지만, 저는 코웃음치면서 "나는 그런 거 안 믿는다" , "교회 밥이나 얻어먹으러 가라" 고 냉소적으로 대했습니다.
주영훈 : 어머니를 잃은 슬픔은 상상하기조차 힘든데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집안 분위기는 어떻게 바뀌었나요?
시가디로우 :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3개월 만에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연달아 두 분을 잃으니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갑자기 법사가 되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당시에는 이유를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무당이 되라는 신의 계시를 받으셨다고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네가 신내림을 받지 않으면 둘째 아들(제 친동생)이 죽을 수도 있다" 는 말을 들으셨다고 합니다. 할아버지와 어머니를 잃은 아버지께서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신의 존재를 절실히 믿게 되셨고, 무당의 길을 걷게 되셨습니다. 그때부터 저희 집은 신당이 되었고, 평범했던 가정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주영훈 : 갑작스러운 가정 환경의 변화는 시가 디로우 님께 큰 충격이었을 것 같은데요?
시가디로우 :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친구들도 저희 집에 무서워서 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집안은 항상 정유장 불빛 같은 요란한 조명으로 가득했고, 기괴한 분위기가 감돌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는 아버지, 나는 나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습니다. 아버지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셨기 때문에 서로에게 피해 주지 않고 각자 인생을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때부터 아버지와 저는 서로에게 무관심하게 지냈습니다.
주영훈 : 어머니께서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인생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을 것 같은데요.
시가디로우 : 네, 어머니께서 마흔셋이라는 젊은 나이에 돌아가시는 것을 보면서 인생이 정말 덧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 후회 없이 살아야겠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고 죽어야겠다' 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갈등도 많았습니다. 어머니 살아계실 때도 말썽을 많이 부렸고, 좋은 아들은 아니었습니다.
주영훈 : 형제들과도 갈등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시가디로우 : 네, 친동생과 많이 싸웠습니다. 형으로서 동생을 잘 챙겨줘야 했는데, 오히려 못된 형이었습니다. 동생을 강하게 키우고 싶다는 생각에 엄하게 대했고, 동생은 그런 저에게 반감을 가졌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런 저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셨습니다. 동생은 아버지 말씀을 잘 들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동생만 예뻐하셨죠.
주영훈 : 각자 알아서 살아가기로 선언한 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시가디로우 : 어릴 때부터 오토바이를 좋아해서 오토바이 정비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직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20살 때부터 오토바이 정비 일을 했습니다. 군대도 1년 늦게 갔습니다. 오토바이 정비 일로 평생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고, 열심히 기술을 배웠습니다.
주영훈 : 오토바이 정비 일은 적성에 잘 맞으셨나요?
시가디로우 : 네, 재미있었습니다. 오토바이를 고치고 만지는 일이 정말 좋았습니다. 군대 가기 전에도, 제대하고 나서도 서울에 상경하기 전까지 계속 오토바이 정비 일을 했습니다. 22살부터 26살까지 했으니 꽤 오래 했죠.
주영훈 : 좋은 직업을 가지셨네요. 계속 오토바이 정비 일을 하셨으면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었을 텐데요.
시가디로우 : 하지만 사고를 많이 쳤습니다. 한 가게에서 세 번이나 잘렸습니다.
주영훈 : 가게에서 세 번이나 잘리다니, 무슨 사고를 치셨나요?
시가디로우 : 첫 번째는 손님과 싸웠습니다. 비 오는 날에 손님 오토바이를 내리다가 머플러를 망가뜨렸습니다. 제자리에서 넘어진 건데, 순간 욱하는 마음에 손님과 말다툼을 했습니다. 사장님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려야 했는데, 자존심 때문에 그러지 못했습니다. '가게에서 실수한 건데, 가게에서 알아서 처리해주겠지' 라고 안일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장님께서는 "네가 먼저 잘못했다고 말해야지" 라고 혼내셨습니다. 순간 욱하는 마음에 "그럼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라고 말해버렸습니다. 손님이 수리 맡긴 오토바이를 제 돈으로 사버렸습니다. 자존심을 세우고 싶었던 거죠. 하지만 결국 사장님께 들통나서 해고당했습니다.
주영훈 : 오토바이 정비 일 외에 열차 정비 일도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그러다가 갑자기 래퍼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있나요?
시가디로우 : 홍대에 갔다가 완전히 다른 세상을 경험했습니다. 26살 때까지 홍대는 저에게 크라잉넛 같은 펑크 록 밴드들의 인디 문화 성지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홍대 거리에 가보니 클럽 문화, 힙합 문화, 소극장 공연 등 다양한 문화가 융합된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마치 해외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주영훈 : 홍대에서 무엇을 보셨길래 그렇게 새로운 세상을 느꼈나요?
시가디로우 : 힙합 음악을 취미로 듣고 있었는데, 홍대에서 다이나믹 듀오 앨범 발매 행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구경하러 갔습니다. 말로만 듣던 다이나믹 듀오 형님들을 실물로 바로 눈앞에서 보니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거리에서 자유롭게 공연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습니다. 그때 신인 아티스트로 행주 님이 소개되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저와 동갑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부러움과 질투심을 느꼈습니다. '나도 음악을 한번 해볼까? 힙합 래퍼에 도전해볼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숙소로 돌아와서도 다이나믹 듀오의 공연 잔상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주영훈 : 기술을 배우는 것과 달리 음악은 미래가 불확실하고 보장되지 않는 꿈을 쫓는 도전인데요, 어떻게 도전할 용기를 내셨나요?
시가디로우 : 현실과 꿈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음악만으로는 당장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음악을 병행해야 했습니다. 장기간 고생할 것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우선 직장부터 구해야 했습니다. 수중에 200만 원밖에 없었기 때문에 당장 생활비부터 마련해야 했습니다. 직업소개소에 소개료를 내고 고시원에 들어갔습니다. 음악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고시원이 있다고 해서 일부러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보증금과 월세를 내고 나니 정말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급하게 여의도 IFC몰 보안요원 일자리를 구해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음악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져갔습니다. 돈은 없고, 장비는 부족하고, 옆방에서는 다른 음악 하는 사람들이 장비 자랑을 하고 음악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보니 점점 초조해졌습니다. 원주에서 쓰던 낡은 컴퓨터를 낑낑대며 서울까지 가져왔지만, 제대로 작업할 수 없었습니다.
주영훈 : 돈 때문에 음악 작업에 어려움이 많았겠네요.
시가디로우 : 답답한 마음에 결국 대출을 받았습니다. 큰돈을 빌려서 장비를 구입했습니다. 하지만 갚을 능력도 없으면서 무리하게 대출을 받은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빚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졌습니다. 돈은 벌지 못하고 생활비는 계속 카드로 나갔습니다. 결국 홍대 주방에서 설거지 보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개인회생을 신청했습니다. 2012년은 정말 힘든 한 해였습니다.
주영훈 : 대출 금액이 얼마나 되었나요?
시가디로우 : 처음에는 900만 원 정도 대출받았는데, 이자가 불어나고 카드값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순식간에 3000만 원까지 늘어났습니다. 정말 끔찍했습니다.
주영훈 : 개인회생으로 빚은 잘 갚으셨나요?
시가디로우 : 네, 개인회생 절차를 통해 빚을 모두 갚았습니다.
주영훈 : 서울에 혈혈단신으로 상경해서 의지할 곳도 없이 힘든 시간을 보내셨네요.
시가디로우 : 네, 정말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친구들에게 10만 원 빌려달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신용불량자였습니다. 인간관계도 엉망이었고, 정말 밑바닥까지 내려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힘든 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힘든 시간 속에서도 주님께서 귀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주영훈 :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셨나요?
시가디로우 : 고시원에서 음악 작업을 하면서 만난 동료 음악가들, 그리고 상암동 콜센터에서 만난 여자 선생님이 기억에 남습니다. 콜센터 교육 중에 졸다가 여자 선생님께 혼났는데, 순간 너무 창피하고 수치스러워서 교육 도중에 뛰쳐나왔습니다.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라 선생님의 작은 지적에도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상암동에서 성산동까지 걸어오면서 '내 인생은 왜 이렇게 꼬인 걸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득 어린 시절 어머니 병원에 입원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힘들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만약 신이 있다면, 왜 나에게 이렇게 힘든 시련을 주는 걸까? 혹시, 내가 이 시련을 견뎌낼 수 있다고 생각해서 나에게 시련을 주시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한번 이 고난을 이겨내 보겠다' 고 마음먹고 자기 전에 기도를 드렸습니다. 처음에는 할아버지와 어머니께 기도했지만, 나중에는 '신' 이 있다면 제발 도와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저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월급 180만 원 정도 되는 안정적인 직장입니다. 그것만 주시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라고 구체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주영훈 : 놀랍게도 기도 응답을 받으셨다고요?
시가디로우 : 네, 정말 놀라웠습니다. 구인구직 사이트를 살펴보던 중에 홍대 노래방에서 직원을 구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새롭게 리뉴얼 오픈하는 곳이라 시설도 깨끗하고 급여도 괜찮아 보였습니다. 바로 지원했고, 야간 매니저로 채용되었습니다. 월급도 제가 기도했던 180만 원 이상을 받았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주영훈 : 기도 응답을 받은 후에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확 바뀌었겠네요.
시가디로우 : 네, 그렇습니다. 홍대 노래방에서 일하면서 신주현 사모님이라는 독실한 크리스천 사장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모님께서는 저를 친 아들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셨고,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월급도 넉넉하게 챙겨주시고, 핸드폰 요금이 밀린 것을 보시고는 "이것부터 해결하라" 며 월급을 가불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신용불량자였던 저를 믿고 선뜻 도움을 주시는 사모님의 사랑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주영훈 : 노래방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랩 연습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시가디로우 : 네, 노래방은 저에게 최적의 작업 공간이었습니다.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마음껏 랩 연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실력도 많이 늘었고, 자신감도 붙었습니다. 노래방에서 3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1000만 원 가량의 돈을 모았습니다. 개인회생 절차도 잘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좋은 사장님을 만난 덕분에 인생역전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습니다.
주영훈 : 하나님을 믿게 된 후에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시가디로우 : 고시원에서 만난 동생 경민이의 영향이 컸습니다. 어느 날 경민이에게 전화해서 "나 예수님을 믿어볼까 해" 라고 말했더니, 경민이가 무릎을 꿇고 감사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경민이는 저를 위해 오랫동안 중보기도를 해왔다고 합니다. 경민이의 기도 덕분에 저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신 중에 왜 하필 예수님일까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왠지 예수님이라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예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주영훈 : 신앙생활은 순탄하게 이어졌나요?
시가디로우 : 처음에는 교회에 잘 나가지 못했습니다. 노래방 일이 밤늦게 끝나서 주일 예배에 참석하기 어려웠습니다. 몇 번 교회에 가려고 노력했지만, 잠 때문에 도저히 버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관심은 계속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튜브에서 하나님 관련 영상을 찾아보고, 예수님 영화를 보면서 신앙을 키워나갔습니다. 말씀은 처음에는 어려워서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주영훈 : 빚도 다 갚고 개인회생도 마무리했는데, 음악 활동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셨나요?
시가디로우 : 노래방에서 일하면서도 계속 믹스테이프를 만들고 음악 작업을 이어나갔습니다. 쇼미더머니에도 출연했지만, 1차 예선에서 탈락하는 등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은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삶이 먼저였기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계속 일을 해야 했습니다. 개인회생 빚도 갚아야 했고, 생활비도 벌어야 했습니다. 돈을 모았다가 빌려주고 떼이는 일도 겪으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이는 점점 먹어가는데 음악적으로 뚜렷한 성과가 없으니 점점 초조해졌습니다. 2020년까지 계속 일과 음악 활동을 병행했습니다. 자비로 뮤직비디오도 제작하고, 싱글 앨범도 발매하는 등 열심히 활동했지만, 경제적 어려움은 계속되었습니다. 1년에 싱글 앨범 4장과 뮤직비디오 2편을 제작하면서 모아둔 돈을 다 쓰게 되었습니다. '180만 원 월급 받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을 응답해주셨는데, 왜 또 다시 힘들어지는 걸까?'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주영훈 : 힘든 시간 속에서도 신앙에 도움을 주는 귀한 분들을 만났다고 들었습니다.
시가디로우 : 네, 그렇습니다. 힘든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귀한 분들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김대인 형제라는 그림 그리는 친구가 있는데, 성경 공부 모임을 하고 싶어서 기도하던 중에 저와 제 친구 타쿠, 김현관 형제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저희 네 명은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천로역정' 을 함께 공부했습니다. 8~9개월 동안 꾸준히 성경 공부를 하면서 전에는 몰랐던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인간이 죄인이라는 개념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만약 세상에 인간이 없으면 죄도 없을 텐데, 왜 인간만이 죄인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성경 공부를 하면서 죄가 인간 때문에 존재하게 되었고, 죄를 없애려면 인간이 없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천지창조 이야기부터 아담과 하와 이야기까지 꿰뚫어보면서 인간이 본질적으로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원죄를 깨닫게 되니 하나님께서 제 마음속까지 꿰뚫어보신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길을 걷는 것이 정말 힘든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이 길을 제대로 걸어갈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김대인 형제와 전도사님께 "예수님 믿는 것을 후회한다, 교회에 다니고 싶지 않다" 고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1년 동안 교회를 멀리했습니다.
주영훈 :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깨닫게 되셨나요?
시가디로우 : 교회는 멀리했지만, 하나님에 대한 갈망은 계속 가지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의 사랑은 무엇일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달라' 고 기도했습니다. 2023년 2월 1일 새벽, 하나님을 묵상하다가 문득 하나님 관련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일까? 하나님의 사랑은 무엇일까?' 라는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었습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라는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이미 세 번 정도 봤던 영화였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영화가 전과는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걸까? 우리는 그렇게 사랑받을 자격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희생하신 것이구나! 이것은 사랑이 없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구나!' 라는 깨달음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구나!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신 것이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새벽 기도 중에 김대인 형제에게 전화해서 "미안하다, 내가 잘못 알았다,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진다" 고 고백**했습니다.
주영훈 :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후에도 인생이 갑자기 장밋빛으로 변하지는 않았을 텐데요.
시가디로우 : 네, 현실은 여전히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난 후에는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영적인 눈이 뜨였다고 할까요? 세상 일들이 단순한 사건들의 나열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의미 있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라고 말씀하신 것이 무슨 뜻인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인간으로 이루어져 있고, 선과 악의 역사 속에서 흘러간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주영훈 : 음악 활동은 어떻게 이어가고 계신가요? 개인 스튜디오도 마련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시가디로우 : 네, 개인 스튜디오를 만들었습니다. 건설 현장에서 오랫동안 일한 경력이 있어서 직접 스튜디오를 설계하고 시공했습니다. 목수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방음벽도 세우고 방음 시설도 완벽하게 갖췄습니다. 스튜디오를 만드는 데 꽤 많은 돈이 들었지만, 2015년부터 2023년까지 3년에 걸쳐 조금씩 만들어 왔습니다. 돈이 없어서 기초 공사만 해두고 몇 년 뒤에 다시 공사를 이어가는 식으로 진행했습니다. 개인 스튜디오를 만들고 나서 음악 작업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영훈 : 현재 소속되어 있는 '홀라이프 워십' 팀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시가디로우 : 개인 스튜디오를 만들고 음악 작업을 하던 중에 지인을 통해 '홀라이프 워십' 대표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저를 예전부터 눈여겨보셨다고 합니다. 길을 가다가 저를 보신 적이 있는데, 인상이 깊었다고 합니다.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음악 이야기가 나왔고, 제가 만든 음악을 들려드렸습니다. 그 곡이 바로 '사마리아 여인' 가이드 버전이었습니다. 오래전에 만들어 놓고 돈이 없어서 발매하지 못하고 하드디스크 속에 묵혀 두었던 곡이었죠. 대표님께서는 제 음악을 들어보시고 "함께 해보자" 며 저에게 투자를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홀라이프 워십' 팀에 합류하게 되었고, 백스테이지 멤버로 활동하면서 음악 사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주영훈 : 대표님께서는 시가디로우 님의 과거 이야기를 알고 계셨나요?
시가디로우 : 전혀 모르셨습니다. 오늘 방송을 통해 처음 알게 되셨을 겁니다.
주영훈 :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 가장 행복한 점은 무엇인가요?
시가디로우 :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할까요? 전에는 눈앞의 현실에 만 급급했지만, 지금은 세상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방향을 알게 되었다고 할까요?
주영훈 : 마지막으로 앞으로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 기도 제목이나 비전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시가디로우 : 제 삶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영감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제 이야기는 결국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긍정적인 이야기로 승화시켜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이루고 싶습니다. 제 음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위로와 힘을 얻고,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를 갖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영훈 : 래퍼 시가디로우 님, 오늘 귀한 간증 정말 감사드립니다. 오늘 방송을 보시는 청년 분들에게 큰 도전과 위로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시절을 딛고 일어나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찬양 사역자로 활동하시는 시가디로우 님을 응원하며, 앞으로 더욱 멋진 음악 활동을 기대하겠습니다.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시가디로우 : 감사합니다.
정봉균 : 오늘 시가디로우 님과 함께 하면서 하나님께서 정말 기뻐하시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어려운 시절을 겪고 있는 청년 분들에게 시가디로우 님의 간증이 큰 힘과 위로가 되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안수지 : 저도 오늘 방송을 통해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나아가는 시가디로우 님의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많은 청년 분들이 자신의 이야기처럼 공감하고, 함께 기도하고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다.
주영훈 :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가디로우 님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청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힘든 과정들을 모두 겪으셨습니다. 가난, 실패, 좌절, 외로움 등 수많은 고난을 이겨내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선 시가디로우 님의 모습은 많은 청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가디로우 님을 통해 이 시대 청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싶어 하시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시가디로우 님께서 만드실 음악은 이 시대 청년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그들의 신앙을 담아내는 찬양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권사님들이 부르시던 찬송가 가사와는 다르게, 다음 세대들이 공감하고 함께 외칠 수 있는 새로운 찬양을 만들어주시기를 기대하며 응원하겠습니다. 오늘 함께해주신 시가디로우 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시가디로우 : 감사합니다.
[음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