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에서 희망으로, 김은혜 집사의 색소 실조증 극복 인생 이야기
절망에서 희망으로! 김은혜 집사의 감동적인 인생 이야기
절망 끝에서 피어난 희망, 온유 엄마 김은혜 집사의 감동적인 이야기: 고난을 넘어선 긍정 에너지 발산 노하우 대방출
삶의 무게에 짓눌려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계신가요? 혹시 지금, 어둡고 긴 터널 속에 갇힌 듯한 절망감에 휩싸여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지금부터 여러분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따뜻한 위로와 희망의 빛을 전해줄 특별한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오늘 주인공은 바로 색소 실조증이라는 희귀병을 앓는 아이 온유의 엄마, 김은혜 집사님이신데요, 그녀는 절망의 순간들을 딛고 일어서, 오히려 더욱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놀라운 힘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지금부터 김은혜 집사님의 진솔한 이야기 속으로 함께 떠나, 우리 삶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올 지혜와 용기를 얻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시련, 절망의 늪에 빠지다: 29세 젊은 엄마에게 찾아온 감당하기 힘든 현실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어려움과 마주하게 됩니다. 특히, 사랑하는 아이에게 예상치 못한 시련이 닥쳤을 때, 부모는 감당하기 힘든 절망감에 휩싸이게 되는데요. 김은혜 집사님 역시 2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색소 실조증이라는 희귀병을 가진 아이 온유를 마주하며, 깊은 절망과 슬픔에 잠겼다고 합니다. 과거 건강했던 자신과 평범한 삶을 꿈꿔왔던 그녀에게, 온유의 질병은 마치 예고 없이 찾아온 거대한 폭풍과 같았습니다. 그녀는 “29살까지 저는 건강한 사람이었어요. 장애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냥 건강하게 살고, 나밖에 모르고 살았거든요.”라며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결혼과 출산이라는 기쁨 속에,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그녀에게 온유의 질병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본능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지, 희생을 각오하는 것은 아닐 텐데요. 대부분의 부모는 건강한 아이와 함께 행복한 삶을 꿈꾸며 출산을 결심합니다. 하지만 김은혜 집사님에게 현실은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온유의 장애는 그녀에게 엄청난 충격과 절망을 안겨주었고, 그녀는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막막함에 휩싸였습니다.
온유의 장애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그녀는, 자신의 불행에 집중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흔히 아이가 태어나면 모성애가 샘솟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현실은 다를 수 있습니다. 특히 예상치 못한 어려움과 마주했을 때, 엄마도 인간이기에 혼란스럽고 힘든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김은혜 집사님은 “온유를 낳고 이 아이가 장애 아이고, 이 아이가 불쌍하고, 이 아이의 포커스가 아니라 내가 너무 불쌍한 거예요. 내가 어떻게 살아가지? 나는 어떻게 해야 되지? 레시피가 없는 거예요. 내 정보가 없는 거예요. 그럼 난 어떻게 해야 되지? 나는 장애아를 키우는데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되지? 그게 너무 당황스러웠던 것 같아요.”라며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녀는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힘든 감정을 숨기기보다, 솔직하게 드러내며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고자 했습니다.
신앙의 위기, 원망과 절망 속에서 길을 잃다: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을 경험하다
예상치 못한 시련 앞에서, 신앙인조차 하나님을 원망하고 신앙의 위기를 겪을 수 있습니다. 오랜 모태신앙이었던 김은혜 집사님 역시, 온유의 질병 앞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녀는 과거 하나님을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분으로 여기며, 기도를 통해 자신의 필요를 채우는 데 집중했습니다. 마치 요술램프의 지니처럼, 하나님이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인데요. 하지만 온유의 질병은 그녀의 믿음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 원망 너무 많이 했고, 제가 사실 모태 신앙이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그 전까지는 하나님은 나를 위해서 사는 계시, 약간 꼬봉 같은, 그니까 우리 막 그렇게 하잖아요. 기도도 우리 하나님 뭐 해 주세요, 뭐 해 주세요, 뭐 도와주세요, 나 뭐 해 주세요, 계속 이렇게 기도하잖아요. 우리가 지니 요정처럼 생각하죠, 맞아.”라며 과거의 신앙을 회상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교회를 다니며 하나님을 믿어왔지만, 진정한 믿음보다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데 급급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하지만, 절망 속에서도 그녀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 깊이 새겨진 믿음은, 혼란 속에서도 희미하게나마 빛을 발하고 있었는데요. 그녀는 어린 시절 변기에서 볼일을 볼 때조차 하나님을 의식하며 창피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그녀의 삶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좀 다른 게 있다면 정말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어졌던 것 같아요. 그거는 확실히 있었던 거 같아. 그래서 좀 변기에서 똥 쌀 때, 제가 하나님이 내 옆에 있는데 창피하잖아요, 막 힘 주는 모습이, 그래서 하나님 지금 보지 마세요, 조금 옆으로 가세요, 그 아기 때 어렸을 때 아 그랬어요, 까지 할 정도로. 어 그렇게 그냥 하나님은 그냥 믿어요.”라며 솔직하게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온유의 질병 앞에서 하나님은 더 이상 자신을 도와주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늘 자신의 편이라고 믿었던 하나님은, 어려움 앞에서 침묵하는 듯했습니다. 그녀는 배신감과 분노를 느끼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찬송도 부르지 않고, 예배도 드리지 않고, 기도도 중단하며 하나님에게 등을 돌린 것인데요. 그녀는 “하나님은 늘 나를 도와주는 사람, 도와주는 분, 그런데 내가 애를 낳았는데 어, 음, 나 안 도와, 어, 그네, 어, 나 위해서 일 안 해, 지금 뭐야, 나 지금 너랑 절교할 거야, 그 정도의 그런 느낌, 되게 막 배신감, 항상 나를 위해 있었잖아, 네가, 근데 어, 너, 갓까지 아도 하나님이 절 위해 있었잖아요, 그니까 하나님 아빠라 그랬잖아, 내 아빠잖아, 근데 왜 날 위해서 열심히 일 안 하고, 왜 나한테 아픈 아이를 이렇게 만들게 한 거야? 나 너랑 절교할 거야, 막 약간 처음에는 삐져 가지고 내가 어, 나 너랑 절교할 거야, 친구 친구랑 절규하듯이, 찬송도 안 불러 줄 거야, 예배도 안 드릴 거야, 나 너랑 기도 대화도 안 할 거야, 어, 너 이제 나 만나러 오지 마, 너가 약간 이런 느낌으로 제가 좀 삐져 있었던 것 같아요.”라며 솔직한 심정을 고백했습니다. 그녀는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며, 스스로의 아픔을 마주하고 극복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절망의 끝에서 발견한 희망,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깨닫다: 담대한 마음과 평안을 얻다
절망의 시간 속에서, 문득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엄마가 틀어놓은 찬양 소리가 평소에는 듣기 싫었지만, 그날따라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는데요.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은, 혼란스러웠던 마음에 잔잔한 평안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과거에는 하나님에게 땡깡을 부리는 존재였다면, 이제는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김은혜 집사님은 “그런데 좀 어느 순간 좀 하나님을 다시 그냥 확 받아들였던 순간이 제가 이제 그 전에 이제 그리스도인이라는 그 단어가 갑자기, 그니까 저희 엄마가 맨날 집에서 막 성경 말씀 같은 거 틀어놓고 저 이제 힘들까 봐 그런 거 틀어, 찬양 틀어놓고 아 막 듣기도 싫어, 막 가서 막 끄고 막 이랬거든요. 근데 어느 날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탁 그냥 들리는 거예요, 저한테. 근데 그 말이 솔직히 아무 맥락이 맞지 않는데 되게 위로가 되는 거예요. 어 나 그리스도인이지, 그니까 그 전에는 내가 하나님한테 땡깡 뿌리고 하나님이 날 도와주는 사람이었으면, 내가 이제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좀 받았다고.”라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습니다.
온유의 눈 문제로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았던 날, 예상치 못한 수술 동의서 앞에서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속에 담대한 마음과 평안이 찾아왔는데요. 보통이라면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포기가 아닌 평안함이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이 평안함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임을 직감했습니다. 김은혜 집사님은 “그래도 힘들고 막 이제 마음적으로 힘들고 그런 경험, 그런 세월을 보내다가 이제 오유가 눈 때문에 이제 또 병원에 갔는데, 거기서 일산에 제가 살았거든요, 그때 일산에서 병원에서 막 보더니 얘 우리 병원에서 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되게 그때 뭐 생후 한 한 달 정도밖에 안 됐어요. 근데 우리 병원에서 할 수 없다는 거예요, 빨리 큰 병원으로 가라는 거예요, 서울대 병원으로 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얘를 데리고 이제 막 서울대 병원 응급실로 갔죠. 서울대 병원 음식들로 가서 이 애를 어떻게 해야 되나, 나는 막 어리둥절, 제가 그때 말씀드렸 저는 대학 병원이라는 거를 태어나서 처음 가 봤어요. 진짜 이 시스템이 어떻게 되는지도 몰라요, 29 이제 30서 됐어요,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막 갔어요, 가 가지고 이제 딱 가서 애를 이제 응급실에 배정을 해 주잖아요. 응급실 배정을 딱 눕히는데, 눕히자 맞아 애를 데리고 가요, 그래서 어 애를 데리고 가네, 이렇게 보고서는 이렇게 난 그럼 뭐 해야 되지, 어떻게 해야 되지, 이러고 막 이렇게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이제 막 와, 이제 저기 종이를 한 장 들고 이제 인턴 분이 오시더니 수술 동의서의, 수술 동의서의 그걸 사인을 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아니 지금 나는 지금 뭐 검사를 맡으러 온 건데, 갑자기 수술 동의서를 써야 되고, 빨리 쓰래요, 자기 가지고 가야 된다고, 봤는데 밑에 막 무시무시한 말이 써 있잖아, 수술동의서에 요. 그니까 저는 그때 너무 막 당황스럽고 놀래고, 수술 도서 일단 사인을 했어요, 막 열심히 읽어보려고 했거든요, 사실은. 근데 빨리 쓰라고 막 수술 빨리 동의서에 썼죠. 그리고 가고 나니까 이 두려움이라는 게 정말 물 밑들이 오고, 옛날 같으면 하나님 뭐 미안해요, 내가 이제 절교 잘못했어요, 우리 온유만 살려주세요, 막 이렇게 기도가 나와야 정상인데, 왠지 모르게 되게 그냥 담대한 마음이 드는 거예요, 저한테. 어 그냥 담대한 마음이 들고, 이게 포기했다는 이런 마음과는 전혀 다른 거 같아요, 포기가 아니라 평안함, 음. 갑자기 내가, 내가 이거 또 한번 미쳤나, 이 지금 이 상황은 막 간절히 막 막 붙잡고 기도해야 되는 이 상황에, 왜 내 마음이 이렇게 편안하지, 음, 왜 이렇게가 평안하지? 그리고 뭔가 이렇게 담대해지고, 내가 하나님 저 있잖아요, 하나님이 어떠 결론을 내리시고, 네, 온유를 어떠한 형태로 나한테 다시 돌아오던, 그니까 근데 다시 안 돌아오던, 만약에 뭐 수술방에서 어떻게 잘못 되던, 나 다 받아들이겠다, 그니까 왜냐면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거야. 그 온유는 가져갔고, 나는 그냥 빈 그 응급실에 약 진짜 영화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막 주변에 막 사람들이 막 응급실 사람들이 막 울고 막 막 네, 로그가 넘어가는 같은면서 딱 그 이제 응급실에 제가 이렇게 커튼을 쳐 놨잖아, 그 거기에 정말 나밖에 없는 느낌이 딱 드는 거예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지만 나밖에 없는 약간 이런 느낌이 들면서, 옆에 빈 텅빈 온유가 있어야 할 그 빈 침대 옆에 내가 딱 앉았는데, 거기 벽이 이제 있었거든요, 벽에 내가 벽 앞에 이렇게 있는데, 햇빛이 이렇게 비춰서 이 햇빛이 앞 쫙 비춰요, 벽 벽에. 그래서 내가 이렇게 벽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이 감정이 뭐예요? 이 평안함이 뭐예요? 이 담대함이 뭐예요? 나 이거 너무 좋아요, 나 진짜 온유 와도 어떠한 일도 내가 담대하게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이거구나, 내가 고난은 어떤 고난이 형태가 여러 가진데, 어떠한 고난이 중요한 게 아니고, 이 내 마음이 담대하게 먹는 이 마음이면 어떤 것도 헤쳐 나갈 수 있겠구나, 약간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아 나 이 마음, 그다음부터 제가 기도가 딱 그거 하나예요, 음, 내가 담대한 마음,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 그니까 내가 스스로 막 애써서 갖는 평안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이 평안만이 나 진짜 괜찮다, 어떤 것도 이겨낼 수 있겠다. 그래서 그때 그 기도를 하고, 음, 그 그 마음을 가졌던 거 같아요.”라며 극적인 심경 변화를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그녀는 고난의 본질은 상황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담대한 마음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놀라운 힘을 선사했습니다. 이후 그녀의 기도는, 자신의 소원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담대한 마음과 평안을 유지하는 것에 집중되었습니다. 그녀는 진정한 믿음은 고난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며, 하나님과의 깊은 교감을 통해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깨달았습니다.
현실 육아의 고통, 육아 우울증과 공황 장애를 겪다: 정신적인 어려움에 직면하다
아이 셋을 키우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와 희생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특히 장애를 가진 아이와 연년생 동생들까지 돌봐야 하는 상황은, 상상 이상의 어려움을 수반합니다. 김은혜 집사님 역시 현실 육아의 고통 속에서 육아 우울증과 공황 장애를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녀는 장애 아이 온유를 키우는 것은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었지만, 연년생 두 아들까지 더해지면서 현실적인 육아의 벽에 부딪히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그거야 말로 뭐 하나님이 주신 마음 그럼 상황과 환경은 그대로지만 아니데 저희가 이 인스타그램을 보니까 세 명이세요, 이제 자녀가 그죠, 예 아이가 시, 그러니까 이제 오유 다음에 이제 둘째, 셋째 이렇게 또 나오신 거잖아. 근데 아이 세 명을 키우는 거 특히 또 온유와 더불어 그렇죠 현실 유관도 다르잖아요, 제가 그런 말을 해요, 장애 아이가 집에 없으면 없이 비장애 아만 키우는 가정 너무 힘들 거 같아, 내가 막 우스갯소리로 그런 말을 하거든요. 그니까 그만큼 저는 장애 아이가 키워서 힘들어요, 이것도 있지만 비장애 아이를 키우는 것도 힘드시죠, 아 유가는 다 기본적 너무 힘 맞아요, 힘든 일이잖아요. 근데 저도 장애 오유를 키우면서 이 두 연년생 아이를 키우, 그 첫째가 11월 생이여 가지고 20개월 바차 해 안나요, 그래서 년생이에요, 많이 졌네, 또 또 많이 다 보니 그래가지고 예. 그래서 연상이 가지고 너무 이제 현실 유가가 너무 힘든 거예요, 사실 온유는 제가 담대함과 평안함으로 이겨내리라 주먹을 불끈 주면서 정신력으로 애를 막 키우니까 막 키우겠어든 이게 거기에 이 두 아들이 끼니까 이거는 현실과 이 정신적인게 막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서 이게 육가 우울증 아고 제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제가 그게 약간 공황 장애를 겪었던 거 같아요.”라며 육아의 고통과 정신적인 어려움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예배 도중 갑자기 교회 건물이 무너지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는 그녀는, 숨이 막히고 손이 떨리는 공황 장애 증상을 경험했습니다. 평소 스트레스를 인식하지 못했던 그녀는, 갑작스러운 공황 발작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교회라는 안전한 공간에서 겪은 공포는, 그녀에게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김은혜 집사님은 “근데 그때는 몰랐어요, 제가 진짜 무지했고 한번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교회예요, 무슨 일반 건물도 아니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갑자기 그냥 예배를 잘 드리고 있었거든요, 갑자기 아다고 이렇게 제가 몸을 숙였어, 왜냐면 갑자기 교회 건물이 확 무너지는 기분이 드는 거예요, 맞아요, 나데 제가 겪었던 똑같은 거 맞죠? 근데 제가 나중에 이제 뭐 연예인들이 공이 얘기 어 내가 그때 겪었던게 그건가, 근데 확 건물이 무너지는게 느껴지는데 제금 얘기하면서도 막 소리이 끼지는게 악 하는데, 제가 어 뭐지하고 이렇게 건물 하는데 안 무너지는 거예요, 근데 이상하다, 왜 이런 기분이 들지라고 하는데, 이 건물이 무너진다는게 제 마음에는 확신이, 그니까 이게 이 공포가 숨이 안 쉬어지고 이게 손이 이렇게 떨려요, 그냥 막 손 다리가 막 이렇게 이렇게 막 떨리고. 그리고 이게 이게 안 무너지는데, 그니까 머릿속으로는 계속 제가 어 이거 하나님 지금 교회고 하나님의 집에서 내가 마귀가 씨였다, 하나님의 공간이잖아요, 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내가 이게 이런 두려움이 있다라는게, 근데 난생 처음 겪어 보는 거고, 그 전에 내가 뭐 스트레스 받는 거 이런 건 생각지도 않고 그냥 갑자기 어느 순간 갑자기.”라며 당시의 끔찍했던 경험을 생생하게 전달했습니다. 그녀는 공황 발작의 공포와 혼란스러움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정신적인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했습니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장롱 속에 숨었던 경험은, 육아 우울증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이성적인 판단과 달리, 감정과 몸은 통제되지 않았습니다. 엄마로서의 책임감과 개인적인 고통 사이에서 갈등하며, 극심한 혼란을 겪은 것입니다. 김은혜 집사님은 “그래서 막 손이 막 달달달 떨리는데 여기를 벗어나지 않으면 이게 숨이 안 쉬워지니까 이렇게 이렇게 숨이 안 쉬워지니까 여기를 빨리 벗어나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남편한테 막 전화를 해서, 근데 그 상황에서 걱정되는 건 오유 리아니 시아니 다 다른 곳에서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잖아요, 그니까 오유는 오유 나이에 맞는 예배당 시아니 시아이 리아이 다 다른 예배당을 드리는데, 저희 남편이 또 다른 곳에 있었어요, 그래서 남편 또 어디가 있어, 남편은 그때 왜 예배당에 안 들어왔지, 뭐 카페 있었나, 아무튼 다른 곳에 있었어. 그래서 제가 남편한테 막 전화를 했 오늘 양지 다니시죠, 그때는 일산 교회 일산에 있는 교회였어요. 그래가지고 제가 전화를 해서 예배 아아 예배드리고 있는 중인데, 거기다가 전화를 해서 여봐 빨리 애들 너무 데고 와서 어디로 빨리 데고 나와, 그니까 예배 중에 조용한데 중에 조 그럴 수가 없는 거예요, 이게 제 숨 못 버티겠어, 숨이 안 서니까 숨도 헐떡이면서 제가 얘기를 한 거예요. 그래서 막 정말 기어서 막 갔어요, 막 그 예배당을 막 기어 나와서 사람들 지금고 이렇게 하니까 링 같아 사람들이 이상하게 아마 저를 생각했을 거예요, 근데 막 진짜 그렇게 하면서 예배당을 나와서 이제 밖을 나와서 숨을 막 쉬어요, 제가 막 하면서 막 숨을 쉬니까 숨이 이제 탁 쉬지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내가 왜 이러지 마귀 쉬었나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내 교회에서 이게 무슨 일, 남편이 막 허겁지겁 아이들을 막 데리고 막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어 은혜야 왜 그래, 내가 오빠 나 이러이러한 경험을 했어, 나 왜 이러지, 나 무슨 일이지, 나 지금 뭐야, 막 이랬더니 우리 남편이 아무렇지도 않게 아 그럴 때가 있어, 뭐 그럴 수도 있어 이러는 거 밥 먹으러 가자 이러는 거예요. 그서 내가 어 또 그냥 그런가 보다 어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면서도 어 좀 또 진정이 됐네, 뭐지데 이상한 일을 겪었네요, 그냥 밥을 먹으러 갔죠, 그 맞죠, 그런 거 맞아 맞아 어 그런 일도 겪고 또 이제 육아할 때 너무 이제 갑자기 막 힘이든 거예요, 도망가고 싶었어요. 전 진짜 리아이 시한이 오유랑 이제 집에 있는데 도망을 가고 싶은데, 그니까 이게 희한하게 몸과 이성은 있거든요, 네, 이성이 있는데 그이 감정이랑이 몸이 이거를 이성은 알지만 막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진짜 희한한 감정이에요. 그래서 오유 리아니 시이가 있는데 나는 여기를 진짜 못 버티게 있는 거야요, 갑자기. 그래서 제가 장롱에 숨었어요, 음, 예, 아 그 박 꼭지 리 한게 아니라 그 그런 거 한게 아니라 애들 노는데 그냥 혼자 예 그냥 갑자기 제가 장롱이 숨 근데 사실은 도망가고 싶었어요, 짐을 써서 도망가고 싶거든요, 그런데 그럴 수 없는 거예요, 그럴 순 없잖아, 이성은 계속 말리고 말리 안 되지, 그러니까 장롱에 숨었어요, 제가 장롱이 이렇게 숨어 있는데 애들이 막 갑자기 막 놀다가 엄마가 없으니까 엄마 엄마 막 저 찾아요, 근데 그게 소리가 들려요, 그러면 아 걱정돼서 나가야 되잖아요, 안 나가져요, 이게 장롱 이게 숨어 있는 문이 몸이 안 따라지 몸이 안 나가져요, 근데 애들이 걱정되지 않 예 어 어 애들이 걱정되지 않아, 그 애들이 막 나가는 소리가 들려요, 엄마 엄마 엄마 어디어 애들 막 울어요, 엄마 어디어 엄마 막서 문을 열고 나가요, 띠리링 하고 문 탁탁 열리는 소리가 형가 문이 열리는 거예요, 대문을 열고. 그래서 애들이 아 이성으로는 아 애들이 나가서 길을 잃어서 막 미아가 될 수도 있겠다, 난이 아이를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서 막 나가요 막 리안이 시한이 막 근데 소리가 들리는데 몸이 안 돼 아니 안 슬퍼 아 안 슬퍼요 안 슬프고 아무렇지도 않아요, 마음이 그냥 어 잃어버릴 수 있겠다는 그냥이 이성의 그냥 문제야, 아이 아이가 나가서 잃어버 수 있겠다 끝 거기에 감정이 더해지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 그냥 장롱에 있었어요, 한참 있었어요 정말 한참, 근데 진짜이 똑똑한 리아니 시이가 다시 돌아왔어요, 엄마 어디 간 거야 다시 아이들 목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근데 어 아이들이 돌아왔다 끝 거기에 감정이 안 더해져요, 그러고 그냥 계속 이렇게 숨어 있었어요. 그래서 엄마 막하고 애들이 계속 저를 찾아요, 근데도 장롱에 숨어 있다가 애들이 저를 찾은 거예요, 장문이 덜컥 열렸어요, 엄마 여기 있었어 그러면서 막 애들이 막 울어요, 근데 때서야 우 제가 애들이 나를 딱 찾는 순간 울음이 터져 폭포수처럼 터지는 거예요, 막 울면서 막 애를 막 애들을 끼아 으면서 그때서야 감정이 확 들어오죠, 들어오는 거예요, 몇 더 들어오죠, 그니까 그 전에는 감정이 없어요, 근데 감정이 막 들어오는 거예요, 그때서야 그래서 막 제가 엄청 막 울었어요, 애들을 막 끼고, 근데도 저는 몰랐어요, 그게 내가 이렇게 위험한 상황이라는 거, 병원도 가셨어요, 근데도 병원 갈 생각을 못 했어요.”라며 절망적인 심리 상태를 고백했습니다.
정신과 진료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높은 턱은, 정신적인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더욱 고립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김은혜 집사님 역시 스스로 병원을 찾을 생각조차 못 할 정도로, 정신적인 어려움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정신적인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제가 미련하게 제가 얘기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이 정신과를 찾아간다는게 생각보다 굉장히 문이 높아요, 턱이 높아서 내가 내문 열고 갑자기 예약을 해, 우리 왜 몸도이 치아도 정말 견디다 견디다 못 견딜 때 가듯이 가잖아요, 보통들 병원을. 근데 이 정신적으로도 정말 이 정도 갖고 내가 가야 되나, 가서 무슨 얘기를 해야 되지, 뭐 이런 얘 그리고 지금은 제가 이렇게 방송에까지 나와서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정도 는네 그렇죠, 그 생각을 못 하죠, 음, 얘기하고 싶지도 않고 그때는 너무 그냥 힘듦 속에 있을 때는 나의 힘듦이 보이지가 않았던 거 같아, 그니까 나를 추수지 못해, 그럴때 보통은 누군가가 내 손을 자꾸 끌고가 줘야 돼요, 사실은, 내 발로는 못 가요, 내발로 내가 예약하고 몇시 가게게 안 되거든요. 근데 누군가가 결국 끌고 가야 되죠 맞 그래서 지금도 제 인스타에 DM이나 이런 걸로 사람들이 이런 얘기할 때 저는 가라고 그래요, 왜냐면 위험한 경네 상황이 너무 많이 있서 이렇게까지 감당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저는 오히려 추천을 해요.”라며 정신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힘든 시간 속에서도 신앙생활을 이어나갔던 그녀는, 하나님을 핫바지처럼 여겼던 과거를 반성하고 진정한 신앙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한 노력은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고난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고, 성경 공부와 예배를 통해 진정한 믿음을 키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김은혜 집사님은 “하지만 분명한 거는 내가 이겨내야 되는 거는 그러면 이렇게 정신적으로도 우울하고 굉 힘든 시기에 신앙생활은 어떻게 했어요? 그때는 아까 말하고 좀 연결이 되는데 제가 진짜 하나님 봉처럼 생각했다 그랬잖아요, 근데 신앙생활이 그때 이제 그 담대함 딱네 음을고 다시 하나님 화해했어, 나 혼자 삐졌다가 화해를 하고 그럼 하나님 나 진짜 하나님밖에 없어요, 이제. 그리고 나서 되돌아보니까 내가 모태 신앙이어야 아주 적절한 표현이에요, 진짜 핫바지로 했더라고요, 들이 지런 괜찮아요 방송 그 요즘도 레비라 하네요 국민학교 어디 나오셨어요? 국 국민학교 세대요, 저 되게 젊어 보이시는데 아니 아까 계속 어 아니 20 29살을 굉장히 어릴 때라고 자꾸 하셔서 얼마 안 되신 거 같은데 자꾸 쓰는 단어는 굉장히 구수해도 변수라고 하어 아 변수까지다고 예 국민학교 세대인데 어쨌든 그래가지고 아 어 뭐 뭐 얘기 저희도 지금 단기 기억 상실증에 가가지고 지금 어디까지 갔지 지금 단기 기억 산실 아 신앙생활 할 때지지지 하나님을 좀 엄마바지 아 하나님을 좀 핫바지로 제가 본 거예요.”라며 솔직하고 유쾌하게 과거의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가다: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삶의 기쁨을 발견하다
과거에는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하나님을 믿었다면, 이제는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신앙의 의미를 깨닫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기쁨과 보람을 느낍니다. 온유를 키우는 모습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전하고, 하나님께 칭찬받는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합니다. 김은혜 집사님은 “그 다시 내가 아 하나님을 좀 제대로 알겠다, 그니까 어릴 때는 그냥 뭐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됐네 이런 식으로 그냥 하나님을 믿었던 거예요. 그런데 내가 다시 하나님을 알고 싶어서 진짜 온유 데리고 수요 예배 아기띠 매고 수요 예배 다니고 금요 처라 다니고 그리고 성경 공부 이런 거 처음으로 해본 거예요, 이제. 그니까 그 전까지는 그냥 엄마 아빠 따라서 그냥 교회만 다니고 그냥 찬양 부르고 아 하님 님 똥싸 때 절로 가세요 막 이렇게 믿었다면, 어 뭐지 나 성경 궁금해 진짜 나는 그냥 하나님을 당연히 공기처럼 내 삶처럼 여겼는데 이게 정말 맞나 아니면 이게 정말 하느님에 대해서 궁금해라고 해서 공부를 하기 시작하니까네 무섭더라고요, 아음. 그래서 이제는 신앙이 어떤식이냐면 내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거예요, 예. 그니까 내 하나님이 날를 위해 존재하는게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위에 지금이 삶을 살고 있거든요, 그래서 내가 하 딱 두려움이 왔을 때 이겨 내잖아, 그러면은 하나님 봤죠, 나 이겨내는 거 봤죠, 하나님 지금 기쁘죠, 나 하나님한테 예쁜 짓 했죠, 이렇게 바뀌어졌습니다,이 대화의 내용이 살짝 달라졌어요. 옛날에는 이제 공처럼 하나님 뭐 해 줘요, 뭐 해 줘요, 어 빨리 이거 나 지금 필요하니까 빨리 이거 해 줘요, 이렇게 맞아요 그랬다면 지금은 하나님 저 보세요, 저 지금 잘한 거 보셨죠, 하나님 지금 기쁘시죠, 이렇게 좀 바뀌어요, 나 이겨내야지, 나 이거 진짜 마귀한테야지 하고 나서 딱 이겨내고 나면 하나님 저 지금 보셨죠, 그리고 뭔가 내가 이제 세상 속에 빛과 소금이아요, 세상 속에 뭔가 빛의 모습을 내가 스스로 느꼈을 때 아 뿌듯해라 경험을 가지면 하나님 지금 저 봤죠, 어 저 지금 잘했죠, 이런 거. 그리고 온유 키우는 모습이나 이런 것들도 아마 제가 오늘이 방송도 하느님 보고 계시죠, 저 오늘 잘했죠, 많은 사람에게 유를 키우는이 모습이 감동이 된대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나와서 방송 저 잘했죠, 지금 옆에 그 빠지 하나님 보시기에 기쁘시죠, 이런 식으로 신앙이 조금 아이 빠져 그러면 안 돼 그래가지고 이제 그렇게 좀 신앙이 바뀐 거 같아요.”라며 성숙해진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따뜻한 사랑과 위로: 고난을 함께 이겨나가는 힘
교회 공동체의 따뜻한 사랑과 위로는, 고난을 이겨나가는 데 엄청난 힘이 됩니다. 특히 구역 모임을 통해 만난 교회 식구들은, 김은혜 집사님에게 실질적인 도움과 정신적인 위로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힘든 시간 속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그녀에게 큰 힘이 되었고 신앙을 지켜나가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김은혜 집사님은 “아니 근데 그 힘들 때 좀 정말 교회분들이 좀 도움 많이 주고 그러지 않으셨어요? 제일 중요해요, 기도, 맞아요. 그래서 제가 항상 마음에 우리가 교회 아아, 제 마음에 하나님이 있, 그렇지만 이 공동체라는게 진짜 중요한게 제가 공동체 생활을 통해서 정말 하나님을 만난 거예요, 어떻게 생각하면. 그래서 그리고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시아요, 그러니까 사람을 통해서 그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체험했어요. 그니까 제가 그 일산 교회 다닐 때 이제 여자들끼리만 하는 이제 순 모임 구역 모임이었어요, 그때는 그래서 거기를 다니면서 온유 이제 안고 다니면서 그때는 진짜 온유 많이 아팠어요, 어렸을 때는 막 119도 막 실려가고 막 이러니까 리아니는 아긴데 얘를 막 둘이 할 수가 없으니까 제가 맨날 리안이를 전화해요, 뭐 동 집사님한테 전화해서 있는 103동 어 해서 계시면 리안이 거기 그 집에 갔다 놓고 나는 오유 데리고 병원 가고 막 뛰어가고, 아니면은 집사님들이 우리 집에 와서 봐 주시고 나는 가고, 그러니까 또 뭐 살림이나 했겠어요, 애들 데리고 막 온유 데리고 병원 다니기 바쁘니까. 그러니까는 이제 뭐 음식도네 해서 반찬도 그때는 또 신혼이니까 제가 음식도 잘 못 하잖아요, 그러니까 반찬도 해서 주시고 나도 막 아플 때 있으면 막 미역국도 해서 갔다 주시고, 뭐 진짜 그리고 구역 모임을 가면 저보다 더 기도하시고 막 많이 울어주시고 하니까, 그리고 그때는 온유 수술이 매번 있었어요, 매해 그니까 거의 뭐 매년 수술방에 들어갔다 나왔다 했기 때문에 그때마다 항상 기도해 주시고 같이 울어 주시고 저도 도 거기 가서 막 쏟고 울고 또 말씀 듣고 또 하나님에 대서 또 배우고 이러면서 짜 이겨.”라며 교회 공동체의 소중함을 강조했습니다.
온누리 교회 순 모임을 통해 남편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부부 동반 모임이라는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순 모임을 통해 마음의 문을 열고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10년 동안 숨겨왔던 아픔을 공유하며, 부부는 서로를 이해하고 더욱 깊은 관계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김은혜 집사님은 “근데 이제 온누리 양재로 제가 이제 온유 학교를 이제 오면서 이사를 하면서 온누리 양재로 왔요, 예 이사를 했어요, 이제 이사를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 제가 이제 일산 살다가 남편이랑 이제 서울로 이사를 왔는데, 온누리 양재에서 이제 왔잖아요, 근데 제가 오늘이 양재에서도 이제 순 모임 그걸 하고 싶은 거예요, 근데 여기는 부부 동반이라는 거예요, 네네 근저 남 그때 조금 저랑 멀어져 있었거든요, 왜냐면 어쨌든 아이도 키우가 서로 이제 바쁘고 이제 30대는 바쁘잖아 하느라 바쁘고 신앙도 뭐 이제 서로 이제 각자의 신앙을 열심히 하고 있었던 터고, 저는 이제 좀 더 구역 식구들한테 더 애를 쓰고 살고 있었는데, 근데 이제 여기는 부부가 같이 나와야 되니까 내가 착 확 이제 걱정이 되는 거야, 아 우리 남편은 이런 모임이나 다른 새로운 사람 람들에게 이런 불편해 하는 것죠 불편해 할 거 같은데. 그래서 고민하다가 내가 남편한테 아 그냥 등록만 해 달라, 왜 내가 순 모이면 엄청 위로를 받는 걸 당신도 알고 있지 않냐, 그러니까 등록만 해 주면 내가 오빠는 그다음부터 나오지 말고 나 혼자 다니겠다 애들이랑 그니까 등록만 해 달라 해서 저희가 일대일 양육 시스템이 있어요, 그래서 그거를 했는데 그때 이제 저희 남편이 만났던 장로님이 굉장히 우리 오빠 남편한테 큰 영향 쳤, 그래서 그분의 영을 굉장히 크게 받고 저희 남편이 예배를 처음에 같이 가겠다는 거예요, 등록을 했는데 그래 어 등록만 해 주는게 아니라 같이 가겠다고 오케이 해가지고 이제 처음에 첫날 딱 갔어요 같이, 근데 저는 살짝 불 불편했어요, 왜냐면 순 모임이라는 건 내 얘기도 다 하고 뭐 남편 좀 들어가고 들어 좀 그래는데 남편 같이 가면 얘기를 모든 얘기를 다 못하잖아 원을 못본 느. 그리고 저희 남편과 저는 이제 그런 얘기를 많이 이제 속속들이 이렇게 하지 못한 상황이여 가지고 좀 이게 좀 어색했어요 사실, 그래서 좀 걱정스럽다고 근데 처음에 딱 같이 갔는데 천 첫날 간 첫날 저희 남편이 갑자기 신앙 고백을 하는 거예요, 근데 저희 남편 진짜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요, 어느 누구한테도 뭐 속마음을 얘기한다거나 이런 사람이 아닌데 갑자기 이제 온유 얘기를 하면서 어 본인도 참고 있었던게 있었구나, 근데 그게 10년이 흘렀어요, 오늘고 10년이 흐른 뒤였어요. 근데 남편이 그 얘기를 하더라고요, 자기가 이제 너무 은혜가 너무 슬퍼하니까 자기까지 슬퍼하면 이 가정이 무너질 것 같은 기분이었 대요, 통 가정 남편들이 다 그럴 거예요, 그래서 매일 차 안에서 매일 두시간씩 물고, 그러구나 집에 올라와서는 이제 안 우는 모습을 저한테 보여, 네, 근데 저는 오히려 그게 서운했구나 그렇지 어 같이 울어주기 원했는데 거기서 그 처음들은 거예요, 우리 오빠 그랬구나 처 10년이 지나서, 그래서 그 순 예배에서 처음 남편이 그 고백을 한 거예요, 자기가 매일 두 시간씩 울고 집에 와서는 은혜 앞에서 안 우는 모습을 딱 보였다, 그러니까 그때서야 아 오빠도 진짜 힘들었었나 많이, 근데 그거를 참아왔던 거였구나 10년간 10년간 아이, 그러니까 그게 저도 오빠의 고백을 처음 듣고 오빠도 그런 고백을 하는데 와 이랬구나, 그래서 그 순 모임을 정말 열심히 다니고 저희 오빠도 열심히 다니고 예, 그래서 이 구역 모임과 공동체가 함께하고 사람과이 나누는 이게 진짜 중요한 거 같아요, 맞아요. 그래서 저희 남편이 지금 순장님이 와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야 그 제가 순모랍니다, 순장 순모 이렇게 순모라고도 해요, 거게 리더 부부를네 맞아요, 그렇게 명칭하고 그래서 제가 순모로 날라리 순모로 세상 사람들을 다 이렇게 공감대를 성할 수 있게 예 하고 있죠 지금 그 남편 얘기 듣고네 그동안 서운했던 점들 다 좀 눈녹듯이 좀 녹았을 것 같은데 근데 사실 막 눈 녹듯이 녹지는 왜냐면 그 갖고 안 돼 그건 아니야, 눈녹듯이 다 아니고 10년 동안 아포카토 정도 그냥 커피 위 있는데 아포카토 정도 이해했다 남편을 이해했다.”라며 순 모임을 통해 부부 관계가 회복되고 더욱 성숙해진 신앙으로 나아가게 된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그녀는 공동체의 힘과 나눔의 중요성을 깨닫고, 앞으로도 교회 공동체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긍정 에너지 전파, 희망의 아이콘으로: 장애에 대한 편견을 넘어선 당당한 삶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공유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넘어, 자신만의 개성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SNS를 통해 소통하며, 장애인 가족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김은혜 집사님은 “근데 사실 막 눈 녹듯이 녹지는 왜냐면 그 갖고 안 돼 그건 아니야, 눈녹듯이 다 아니고 10년 동안 아포카토 정도 그냥 커피 위 있는데 아포카토 정도 이해했다 남편을 이해했다 그까 그 전에는 아 너무 서운했어요 사실 그니까네 29 살이었고 저희 남편도 33살이네 다 어릴 때니까 너무 어릴 때였고 저희가 또 연애를 막 길게 막 깊게 한 상황은 아니었어서 너무 갑작스럽게 너무 큰 슬픔이 오니까 오빠가 그랬잖아 매일 두 시간씩 울고 올 올라왔다 그니까 나한테는 그 슬픔이 보이지 않았던 거예요. 그니까 저는 어떻게 이렇게 매정한 사람이 있지 아이가 장애를 얻었고 힘든데 어떻게 울 울지도 않고 그렇게 생각 로보트야 막 그리고 나를 토닥거리고 않고 나를 위로해 주지도 않고 그러니까 저는 오히려 그니까 이렇게 하는 순간 내가 터질까 봐 얘를 자 피하 피했던 거요, 그래서 남편하고 저는 그고 저 그니까 나는 더 봐봐 나 더 슬퍼 나 이렇게 슬 거야 하고 나는 막 더 막 슬픔을 표출하고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 남편은 저기다가 나까지 얹으면 더 안 되겠구나 그니까 이게 점점점 멀어진 세월이 10년이었던 거 그까 10년 동안 너무 조금 각자 열심히 살았던 거 같아요. 그래가지고 그 10년 후에 그 당신의 마음을 알고 나서 눈녹듯 까지는 아니었지만 아포카토 정도네 예 아직 커피 아이스크림이 녹지 않고 있어 예 그 아 왜 아 좀 어리석은 나를 탓 았어요 그렇지 남편도 슬펐겠지만 미워했을까 남편을 탓 했을까 남편 너도 좀 슬퍼해 봐 안 슬퍼 막 약간 이렇게 말했던 내가 어렸구나라는 거를 좀 깨닫고 남편을 이해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어 그다음에는 좀 남편하고 좀 노력하려고 했고 좀 슬픔이 있으면 같이 좀 슬프자너 우리 약간 그렇게 이해하는 시간들을 좀 가졌던 거 같아요, 그러니까 이제 찾아오는 새로운 또 순에 새로 들어온 부부나 아픔을 겪고 있는 분들이 있으면 너무 공감해 예 공감하고 위로해 줄 수 있잖아요 임도 많이 올 거 같아요. 근데 너무 감사한게 악플이 없어요, 저는 샤랄랄랄라 오늘 달리려나 아니 플이 없어 그 들 정말 이게 고민 얘기를 이제 DM 오시는 DM 보통 자기 이야기를 나 질문 보 보통 같은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질문도 하시고 그리고 감사하다라는 디 되게 많이 와요, 그러니까는 오히려 그니까 저랑 똑같은 거예요, 그니까 저도 그런 장애 잘못된 장애 인식을 가지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었어요, 처음에 그 그 프레임에 들어가려고 노력했거나 슬프고 좀 뭐 힘들고 막 이런 프레임에 자꾸 들어가려고 했는데 돈이 긍정의 여자야 이게 안 들어가져, 그 장애인가 내가 알고 있는 그 장애인 가족의 모습에 안 들어가지는 거야, 애라 모르겠다 그냥 난 나대로 살자라고 그냥 나대로 살기 시작하니까 그 모습을 보는 같은 장애인의 가족들이나 또 장애인을 키우는 부모님들이 비장애인 부모님들이 보시기에 너무 속시원 하셨나 봐요, 그리고 나도 너처럼 살아도 되는 거지, 나도 너처럼 핑크 원피스 입어도 되는 거지? 어 나도 막 명품백 매도 되는 거지? 그럼 되지 그럼 그럼 너무너무 고맙다고 자기가 너무 우울하고 자기도 아이를 낳았는데 너무 갑자기 장애인이 나왔으니까 우울하고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되지 장애인 프레임에 넣어야 되나라고 했을 때 나를 발견하면 어 괜찮네 장애인 프레임이 안 들어고 이렇게 그냥 자기 자기의 모습대로 살아가는 장애인 엄마도 있네 그럼 나도 이렇게 살게 고마워 응원해 이런 디엠들이 되게 많이 와요, 예 그런 거 볼 때마다 아 그래 나를 보이는게 나는 내가 뭔가 이렇게 뭐 이렇게 하세요 이렇게는 말 못 해요, 그리고 아이를 육아도 어 뭐 오은영 교수님처럼 뭐 공부를 하거나 이러지 못했어요, 그런 학위를 딴 사람도 아니에요, 그러나 내가 아이를 이렇게 키워 사랑으로 키우고 안아주고 뽀뽀해 주고 그리고 내 장애 아이도 자기가 행복하대, 내가 그렇게 키웠어 어떠한 공부를 하지 않아도 내가 이렇게 키웠어 어 이런 것들을 보고서는 어 그냥 나 그냥 그대로 보여 주는게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고 용기가 된다는게 어 좋아 내가 보여줘야겠다 너무 큰 할 하시는 거예요, 그게 그래서 지금 온유와 함께 이런 삶을 내 삶을 보이는 것이 너무 당당하고 그래서 다들 또 좋게 봐 주실 거 아니니까 그 그 지금 이제 말씀 계속 나누는 거 보면 이제 하나님 하나 어떤 편안함 그죠, 이제 하나님이 주신 어떤 정말 자유 이런게 지금도 느껴지지만 인스타그램 안에서도 느껴지는 거 같아요, 맞아요, 그걸 통해서 많은 분들이 위로를 받으실 것 같은데 어떠세요? 저는 얘기할 때 우리가 고난이라는 얘기를 많이 해요, 그리고이 아이가 장애로 온 것도 사실은 제 인생의 고난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제가 여러 경험을 하면서 아 이것 또한 내 교만이나 그래요 그래요 맞아 이거는 고난도 아니야, 맞아이 세상에 너무 많은 난이 존재해네 진짜 멀리까지 가보자면이 세계를 따지면 정말 막 시리아 막 아프리카 정말 너무 많은 고난이 있는데, 내가 너무 작은 내 세상에서 이게 내 고난이야말로 내가 온유의 이거를 고난이라고 표현하면 안 돼, 근데 고난일 수 있죠 왜냐면 손가락에 바늘도 아픈 거니까, 그런데 그 아픔에 포커스를 두면 안 되겠다, 내 삶에서 포커스가 온유가 아니에요, 그리고 장애가 아니에요, 어 그냥 각자 내 삶 내 즐거운 삶 그리고이 아이와 어떻게 내가 이거를 이겨내 가느냐 즐겁게 사느냐 그게 중요한 거거든요, 그래서 자꾸 전 사람들한테도 고난에 포커스를 두지 마, 너의 고난은 네가 지금 너무 힘들겠지만 어떻게 보면 이 세상을 보면 이 지나온 천년 시대부터 이렇게 지나온이 세계 세상을 보면 그렇게 큰고 도 아니야, 그니까 너무 그거를 내 고난이라고 너무 몰입할 필요가 없어 좀 떨쳐내, 그 대신 떨쳐내는 대신 그니까 물론 완전히 없앨 수는 없죠, 제가 우리 온유의 장애를 없앨 수 없듯이 늘 가지고 있듯이 이 고난은 고난 대로 헤쳐 나가지만 그래도 고난보다 내가 오늘 뭐 더 재밌었지, 오늘 얘랑 얼마나 더 웃었지, 얼마나 더 행복했지, 하나님 보이시죠, 제가 지금 엄청 행복하게 웃고 있죠, 오늘도 즐겁게 살았죠, 하나님 보시기에 좋으시죠, 하나님이 야 은혜야 너의 삶이 내가 보기에 참 좋다, 네가 지금 고난을 이겨내는 그 모습이 참 내가 보기가 좋다, 그렇게 내가 살고 있는 거 같아요, 제가 지금 그래서 그냥 사람들도 너무 큰 슬픔에 그 고난에 너무 포커스를 두지 말고 그거를 한 구석에 좀 놓고 내 인생 좀 즐겁게도 살고 멋진 옷도 있고 즐겁게도 살고 맛있는 것도 먹고 또이 아이와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그게 진짜 중요한 거 같아요, 그래서 고난에 너무 포커스를 두지 않았으면 예 그런 생각이 들어요.”라며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강조했습니다. 그녀는 고난에 매몰되기보다, 작은 행복들을 찾아 즐기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삶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파하고, 희망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온유는 축복의 통로, 고난을 통해 성장하는 삶: 모두가 누려야 할 행복한 삶
온유는 김은혜 집사님 가족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온유를 통해 더욱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하고,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난 속에서 발견한 희망은,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녀는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강조합니다. 김은혜 집사님은 “저는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얘기를 다 주신 거 같아요, 정말 제일 중요한 얘기 데 맞아요,이이 모두가 온유가 축복의 통로 역할을 해 주는 바람에네 맞아요, 분명히 오유가 축복의 통로가 분명히 있었지만 꼭 장애 아이가 나한테 와서 그랬을까 그거를 제가 저희 남편하고도 얘기한 적이 있어요, 오빠 내가 우리 온유가 우리한테 와서 우리가 이렇게 이런 많은 것들도 깨닫고 이렇게 그래도 좀 성인으로서 어른으로서 성장할 수 있었던 거 아닐까라고 얘기를 했더니 저희 남편이 나는 그렇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어 그래서 왜 랬더니 너는 꼭 장애라는 아이가 오지 않았어도음 그냥 훌륭하게 신앙생활 했을 거고 이렇게 건강하고 긍정적이게 살았을 것 같다라는 거야, 그러니까 또 거기서 마저도 나는 장애의 포커스를 맞췄던 거잖아요, 아 그러네 내 삶이 변한게이 장애를 내가 이겨내 근데 은혜야 너는 너는 그럴 사람이야 너는 되게 좋은 사람이고 원래도 굉장히 긍정적인 여자였어 괜찮네요 그 애 없었어도이 온가 건강게 태어났어도 비장애 아이를 새키도 너는 이렇게 훌륭하게 살았을 거라고 그래서 아 그것마저도 장애의 포커스를 버려야겠다, 어 그니까 모든 탓을 장애로 돌리지 말아야겠다 맞는 말이 핑계 없는 삶을 살아야겠다 그래요 맞아 남편분 나중에 저랑 같이 만나서 아포카도 한잔하자고네 같이 진하게 그분도 또 다 녹지 않은게 있을 거거든요 우리 남편도 정말 정신적인 그게 너무 많죠 하면서 아포카도 한잔하고 싶 순장님이 만나신 순장님 예 그래서 저도 진짜 훌륭한 인격을 가진 저와 저희 남편이 어 만나서이 가정을 잘 이끌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네 아 많은 분들에게 정말 와닿는 얘기였던 거 같아요 예 연일 자면 어떻게 들으셨어요? 저 아 아까 되게 공감이 됐던게 저도 예전에는 하나님이 어 내 기도를 들어주시고 하나님이 나를 어 위해서 존재하는 그런 하나님으로 생각을 했었는데 이런 저런 일을 겪다 보니까 아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게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정말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내가 살기 위해서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는데, 그걸 깨닫기까지는 정말 고난이 없이는 그 시간을 견딜 수가 없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고난에 포커스 드는 것이 아니라 그냥 우리는 평생 고난과 함께 가는 거 같아요, 하지만 그 고난이 나의 어떤 나와 고난만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손꼭 붙잡고 가는 길이기 때문에 이게 감사라고 고백되지 수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고난에도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그런이 되 감사로 플러스 누리는 상 꼭 누려야 돼요, 이 세상 하나님이 저는데 뭐 신하 뭐 지금 보니까 아무나 모를 못하 모네요 모님 모 그래서 저 모님 모입니다 그래서 저 항상 그래서 누리는 삶이 세상 하나님이 제가 항상 그 누리는 람 누리라고 주신 거잖아요, 누려야 돼요 감사 누리는 예 우리 박현 목사님 아 저는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그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께 너무 감사한 거예요, 다른 세상의 어떤 신도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왜냐면 우리 모두 사실은 보이든 보이지 않든 다 장애가 맞아 하나님은 그런 장애로 가득한 우리를 친히 자녀 삼아 주신 거예요, 그 하나님이 더 느껴줘서 감사하고 오늘 우리 은혜 님을 보면서 아 온유라는 이름이 도저히 온유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 삶에 정말 내던진 거 같은데 오히려 온유를 통해서 하나님을 진짜 깊이 만나게 되고 그리고 우리가 오늘 고백하는 것은 아 그렇구나 우리 모두를 이렇게 아프고 또 힘든 우리를 품어주신 하나님 아버지 근데 그분이 살아가는 모든 삶에 또 장애물이 있는데 그걸 같이 넘게 해 주시잖아요네 엄마랑 온유가 같이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것처럼 예 저는 오늘 그걸 더 깊이 느낀 거 같고 이제는이 밝음을 통해서 아파는 많은 이들에게 이제 하나님을 더 전할 수 있는 귀한 통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제가 귀한 통로가 되고 싶어요 아 그럼요네아요 예 우리가 사실 고난을 하나님이 왜 저에게 이런 고난을 주십니까 기도하지만 오늘 말씀하신 것처럼 참 다 다른 형태로 찾아오잖아 어 중간 고사를 못 봐서 방에서 울고 있는 아이도 그 순간 굉장한 고난이라고 느낄 것이고 맞 우리가 볼 때 감기가 걸려서 끙끙 앓고 있는 사람도 고난일 수 있고 수백억을 가지고 있지만 얼마가 좀 모잘라서 힘들어하는 죽고 싶어하는 분도 계시고 단돈 몇 천원 때문에도 힘든 사람 있고 여러 형태로 각자 다 힘들고 고난이라고 얘기하는데 오늘 말씀하신 것처럼 그 역시 좀 저도 역시 교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간증을 좀 더 보시자면 저도 너무나 힘든 시기에 내가 죽고 싶고 내가 너무나 힘들어하는이이 순간이네 누군가에겐 꿈이겠지 생각을 갖게 한 거예요, 나는이 순간을 벗어나고 싶은데 누군가는이 순간으로 오고 싶어서 열심이 자리로 오고 싶어서 열심히 매일 밤을 눈물로 오히려이 자리에 오지 못해서 고난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죠 다 다른 형태의 삶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뭐 장 든 각자 처 있는 환경 속에서 하나님께서 늘 기도의 제목으로 우리가 늘 표현하는 육체의 가시로 다여 형태로 우리에게 기도 제목을 주셨는데 말씀하신대로 우리가 그것을 꼭 고난이라고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께서 나를 애타게 찾을 수 있는 나를 변화시키고 나의 인격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길을 방법을 각자에게 맞는 처방법을 보내주셨구나 생각으로 생각을 고치게 되면 그 또한 감사하고 그래서 그것이 축복의 통로라고 표현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 주 절실하게 우라는 존재를 통해서 해주셔서 모님 이렇게 좋은 자를 또 맡 맡기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오늘 점심에 어저 디저트는 아보카도를 추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굉장히 또 정말 가슴에 와닿는 간증을 나눠주셔서 너무나 감사하고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분을 잘 감당하는 우리 성도님을 응원하겠습니다 가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음악] [박수] [음악] I
결론적으로, 김은혜 집사님의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고난 앞에서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인 마음과 신앙의 힘으로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그녀의 경험은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나갈 수 있다는 용기와 위로를 전해줍니다. 오늘 김은혜 집사님의 이야기를 통해 얻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마음 속에 가득 채우고, 자신의 삶을 더욱 사랑하고 가꾸어 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혹시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혼자 괴로워하지 말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고, 김은혜 집사님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힘을 내시길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