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유가족 위로법과 공감 치유 이야기 박경임 선교사 강연 정리
자살 유가족 위로법: 박경임 선교사의 공감과 치유 이야기
만약 자살 유가족을 만나게 된다면? 이렇게 말해주세요! (박경임 선교사 강연 상세 정리 및 노하우 소개)
오늘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들이 외면하거나 금기시하는 주제, 바로 ‘자살’과 그로 인해 남겨진 유가족들의 이야기에 대해 깊이 있게 나눠보고자 합니다. 특히 사랑하는 가족을 자살로 잃은 유가족들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떤 말과 행동을 건네야 할까요? 섣부른 위로나 공감 없는 침묵은 오히려 그들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길 수 있습니다. 오늘 이 글에서는 박경임 선교사님의 깊이 있는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자살 유가족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위로와 격려, 그리고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들을 상세히 정리하여 소개하고자 합니다. 20000자 내외의 분량으로, 구체적인 서술과 함께 실제적인 노하우를 전달하며, 단순히 내용을 요약하는 것을 넘어, 깊이 있는 이해와 공감을 돕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박경임 선교사의 개인적인 배경과 고난
박경임 선교사님은 현재 필리핀 북부에서 선교 사역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그녀가 사역하는 샤멀로그라는 지역은 필리핀 북부 산지 사람들이 도시 빈민촌을 이루며 살아가는 곳으로, 2007년부터 필리핀에서 대학생 사역을 시작, 2015년부터는 샤멀로그로 사역지를 옮겨 척박한 환경 속에서 헌신하고 계십니다. 초창기 샤멀로그는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고, 공동묘지에서 도박이 이루어지는 어둡고 암울한 마을이었지만, 박 선교사님과 마을 주민들의 노력으로 쓰레기통과 가로등이 설치되면서 밝고 희망찬 공간으로 변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 뒤에는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이 있었습니다.
특히 박 선교사님은 2007년 필리핀 선교 초기, 풍토병으로 인한 고열과 심한 귀 통증을 겪으며 오른쪽 청력을 완전히 잃게 되었습니다.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청력을 잃는 것은 상담 사역을 꿈꾸던 그녀에게 큰 절망이었지만, 오히려 이 경험을 통해 타인의 고통에 더 깊이 공감하고 마음의 소리를 듣는 상담가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이러한 개인적인 고난 외에도, 박 선교사님은 어머니와 오빠를 자살로 잃는 깊은 슬픔을 겪었습니다.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그 후 겪어야 했던 고통스러운 시간들은 그녀의 삶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어머니의 자살: 어린 시절의 깊은 상처
박 선교사님의 어머니는 신앙심 깊고 헌신적인 분이었지만, 극심한 고부 갈등과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깊은 우울증을 겪으셨습니다. 1980년대, 대한민국에 기독교 부흥이 일어날 때, 박 선교사님의 아버님은 예수님을 믿고 새벽기도를 나가는 등 신앙적으로 변화되었지만, 어머니의 마음 속 깊은 고통은 치유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어린 박 선교사님과 식사 도중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당시 다섯 살이었던 박 선교사님은 어머니의 죽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엄마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죽음 이후, 박 선교사님은 동네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비난, 심지어 모욕적인 언어폭력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온갖 부정적인 소문과 함께, 어린 박 선교사님에게 "막내가 엄마 닮았다"라는 말은 가장 듣기 싫은 말이었고, 이는 혹시 자신도 어머니처럼 불행하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은 어린 박 선교사님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고, 이후 오랫동안 ‘엄마’라는 단어는 금기어가 되어 가족 누구도 입 밖에 낼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어머니의 유품과 사진을 모두 태워버렸고, 박 선교사님은 어머니의 얼굴과 목소리조차 희미하게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박 선교사님은 갑자기 철이 든 아이처럼 변해야 했습니다. 막내로서 누리던 특권은 사라지고, 스스로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 놓였으며, 초등학교 2학년 때 새어머니가 오시면서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새어머니는 포악하고 잔인했으며, 딸들을 사회로 내쫓으려 했고, 박 선교사님은 초등학교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박 선교사님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중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 김경옥 선생님입니다.
김경옥 선생님과의 만남: 위로와 성장의 씨앗
김경옥 선생님은 박 선교사님에게 처음으로 만난 ‘좋은 어른’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박 선교사님을 동정하거나 불쌍히 여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따뜻하게 맞아주셨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려던 박 선교사님에게, 김 선생님은 3년간 모아온 결혼 자금 통장과 도장을 건네며 고등학교 졸업을 격려했습니다. 비록 당시에는 통장을 받지 못했지만,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은 큰 위로와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김 선생님의 사랑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박 선교사님이 선교사로 헌신했을 때 첫 후원자가 되어주었고, 한국에 나올 때마다 목욕탕에 데려가 등을 밀어주시며 격려와 사랑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박 선교사님이 작년에 출간한 책 ‘슬픔은 발효 중’을 가장 많이 구매해주신 분도 김 선생님이었습니다. 3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변함없이 박 선교사님을 지지하고 격려해주는 김 선생님은, 친정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어린 시절, 박 선교사님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일기와 기도로 달랬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동시 숙제로 ‘바닷속에 빠진 엄마’에 대한 시를 썼지만, 선생님은 그 시를 찢어버렸고,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일기장과 기도는 박 선교사님에게 유일하게 슬픔을 표현하고 마음을 쏟아낼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특히 시편 56편 8절 말씀을 묵상하며, 눈물을 주의 병에 담아달라는 기도를 통해 위로를 얻었습니다.
오빠의 자살: 되풀이된 비극과 죄책감
어머니에 이어, 박 선교사님은 사랑하는 오빠마저 자살로 잃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장손이자 외아들이었던 오빠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가정의 어려움을 짊어지고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결혼을 약속했던 여성과 갑작스럽게 헤어지면서 오빠는 더욱 깊은 절망에 빠졌고, 칩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결국 오빠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방식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습니다.
오빠의 죽음은 박 선교사님에게 큰 충격과 죄책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새어머니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어린 시절, 오빠의 잘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이야기했던 일 때문에 오빠가 새어머니에게 칼을 들고 위협받는 상황에 놓였던 과거가 떠올랐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오빠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살았던 박 선교사님은, 오빠가 우울증으로 힘들어할 때 용기를 내어 오빠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오빠는 오히려 박 선교사님을 위로하며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란다는 말을 전했지만, 얼마 후 오빠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빠의 유서를 미리 발견했지만, 아버지에게 상처가 될까 봐 유서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던 것이 박 선교사님에게는 큰 죄책감으로 남았습니다. 만약 유서를 봤다는 사실을 알렸더라면 오빠를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혔습니다. 오빠의 장례 또한 조용히 치러졌고, 주변 사람들에게 오빠의 죽음에 대해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자살 유가족들이 겪는 가장 고통스러운 감정은 바로 ‘죄책감’이며, 이 감정은 쉽게 드러내고 이야기하기 어렵다는 것을 박 선교사님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자살 유가족으로서의 정체성: 애도와 치유의 과정
오랜 시간 동안 자살 유가족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아왔던 박 선교사님은, 시민 상담 공부 중 ‘애도 상담’ 과목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애도하는 과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018년, 짝꿍과의 대화 시간에 어머니와 오빠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털어놓으면서, 억눌렸던 슬픔이 터져 나왔고, 자신이 여전히 도움이 필요한 상태임을 깨달았습니다.
교수님과의 개인 면담에서, 박 선교사님은 어린 시절 겪었던 언어폭력과 사회적 편견에 대한 깊은 위로와 공감을 받았습니다. 교수님은 자살로 가족을 잃은 것은 수치가 아니라 함께 울어야 하는 아픔이며, 어머니를 닮았다는 말은 어머니가 아름다운 분이었다는 의미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이 말을 통해 박 선교사님은 어머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고, 40년 가까이 경계했던 ‘엄마 닮았다’는 말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박사 과정 공부를 하면서 자살 유가족 관련 선언문을 작성하고, 자신의 경험을 책 ‘슬픔은 발효 중’으로 출간하면서 박 선교사님은 깊은 치유를 경험했습니다. 특히 ‘슬픔은 발효 중’은 한국 사회에서 그리스도인 자살 유가족 당사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처음으로 낸 책으로, 자살 유가족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과 위로, 애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박 선교사님은 책을 통해 자살 유가족들이 더 이상 숨지 않고, 슬픔을 마음껏 표현하며 애도하고, 일상으로 회복될 수 있도록 돕고자 했습니다.
필리핀 선교 사역: 상처 입은 영혼들을 품다
박 선교사님은 필리핀 선교 사역을 통해, 자신과 같이 상처 입은 영혼들을 돌보고 위로하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2014년 나사렛대학교에서 만난 대학생 ‘제디’는 박 선교사님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존재입니다. 예배 후 눈에 밟히던 제디에게 복음을 전했고, 제디의 귀신 들림 치유와 축사, 이후 양육까지 헌신적으로 섬겼습니다. 제디는 8남매 막내로, 어머니의 부재와 주변의 냉대 속에서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왔으며, 박 선교사님은 제디에게서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제디는 박 선교사님의 사랑과 헌신적인 양육으로 잘 성장했지만, 오빠의 죽음과 남자친구와의 잘못된 만남으로 다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남자친구와 야반도주 후 1년 만에 박 선교사님을 찾아왔고, 5년 후 다시 돌아와 신학을 공부하며 사역자로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박 선교사님은 제디를 통해 상처 입은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치유의 역사를 경험하며, 샤멀로그 마을 사역뿐 아니라 현지인 목회자 양육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제디와 남자친구는 결혼을 앞두고 있으며, 이들 부부가 샤멀로그에서 든든한 사역자로 성장하여 마을을 변화시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 이해와 감사
박 선교사님은 아버지와의 관계 또한 오랜 시간 동안 어려움을 겪었지만, 현재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감사하는 관계로 회복되었습니다. 어머니와 오빠를 잃고 술에 의존하며 무능해 보이는 아버지를 원망했지만, 시간이 흘러 아버지의 깊은 슬픔과 절망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후처에게 재산을 빼앗기고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88세 고령에도 건강하게 살아계신 아버지께 감사함을 느끼며, 아버지의 사랑과 헌신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박 선교사님은 30년 넘는 선교사 생활 동안 경제적으로 아버지께 도움을 드리지 못했지만, 아버지는 오히려 딸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지지해주셨습니다. 현재 아버지는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고 계시며, 박 선교사님은 아버지의 건강과 신앙에 감사하며,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했습니다.
어머니와의 작별: 그리움에서 이해로
어린 시절, 어머니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렸던 박 선교사님은, 애도 상담 공부를 통해 어머니와 마음의 작별을 할 수 있었습니다. 2018년, 언니와 함께 어머니 산소를 찾아 어머니께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어머니와의 공식적인 작별 시간을 가졌습니다. 풍토병으로 한국에 돌아와 요양하던 중, 어린 딸이 어머니를 찾는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가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 고통을 끝내고 싶었던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오해가 이해로 바뀌면서, 박 선교사님은 어머니를 마음속으로 용서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책 ‘슬픔은 발효 중’을 집필하는 과정 또한 어머니를 애도하고 슬픔을 흘려보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현재 박 선교사님은 어머니를 향한 깊은 그리움과 함께, 어머니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마음의 평안을 찾았습니다.
자살 유가족 위로: 공감과 경청, 그리고 진심
강연 말미에 박 선교사님은 자살 유가족을 위로하는 방법에 대한 실제적인 조언을 전해주었습니다. 특히 어린 아이에게는 죽음을 모호하게 설명하기보다,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이야기해주는 것이 중요하며, 장례식에 참석하여 공식적으로 작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자살 원인을 함부로 추측하거나 고인에 대한 비난, 평가를 삼가고,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을 공감하고 경청하며, 진심으로 위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박 선교사님은 자살 유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비난과 정죄가 아닌, 따뜻한 위로와 격려, 그리고 슬픔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억지로 슬픔을 억누르거나 괜찮은 척하지 않고, 슬픔을 자연스럽게 애도하고, 일상으로 회복될 수 있도록 사회적인 지지와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무엇보다 자살 유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라는 솔직한 표현과 함께, 진심으로 함께 아파하고 공감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습니다.
결론: 슬픔을 넘어 희망으로, 함께 울어주는 사회
박경임 선교사님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 깊은 울림을 던져줍니다. 자살이라는 비극 뒤에 남겨진 유가족들이 겪는 고통과 상처, 그리고 그들을 향한 사회의 냉담한 시선과 편견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박 선교사님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며, 오히려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강연을 통해 우리는 자살 유가족에게 필요한 진정한 위로는 섣부른 조언이나 평가가 아닌, 진심으로 함께 울어주고 슬픔을 공감하며, 따뜻한 마음으로 곁을 지켜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슬픔을 억압하고 외면하는 문화에서 벗어나, 슬픔을 자연스럽게 애도하고, 서로에게 위로와 격려를 건네는 따뜻한 공동체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박경임 선교사님의 용기 있는 고백과 헌신적인 삶이, 자살 유가족들에게는 희망의 빛을, 우리 사회에는 깊은 성찰과 변화의 계기를 제공해주리라 믿습니다.
